"저도 같아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면을 떼어 내어, 보고싶네요. 당신의 그 민낯이."


 이런 연극같은 대사를 지껄이며 히비키 와타루가 나를 응시해왔다. 그것은 나는 너를 잘 알고있어- 라고 주제넘게 참견하려는 부모나, 선생의 눈빛과 같았다. 나는 픽 웃었다. 병신새끼 똑같긴 누가 똑같다는 거야-. 이런새끼의 도발에 넘어가는 것은 기초적인 수준의 저능아밖에 안된다. 그러니까 이런 알기 쉬운 도발에 넘어갈 놈은 내가 돌보고 있는 그 '꼬맹이' 같은 멍청이 정도 뿐이라는 소리다.


 같다, 같다라. 내가 너랑 같다라. 그게 나에게 엄청 무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네녀석은 나름대로 내 격을 높여주려는 의미로써 나를 너와 '같다'고 표현했겠지만, 그것은 지독히 나에게 엿같은 모욕감을 안겨주는 표현이다. 제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다 무너져내려서 결국 얼빠진 놈 코스프레나 하고 있는 너따위와, 어디에서나 신망받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일컫어지는 너와는, 그 가면의 무게가 근본부터 다르다. 너와 내가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거짓으로 일관하는 것 , 그것 하나뿐.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히비키님. 아니, 히비키 와타루. 당신 정말 마음에 안들어."

 "와-. 집사씨도 진실이란 걸 말할 줄 아는 사람이네요."


 히비키 와타루가 내 앞으로 두어발자국 성큼 다가왔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던지라 녀석이 두어발자국만 앞으로 다가오자 곧 녀석의 얼굴이 내 코에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버리고 있달까. 눈을 두어번 깜빡하는 사이, 녀석의 얼굴은 좀 더 기울어지고, 녀석의 단내나는 숨결은 내 입술에 닿을 정도로 다가와 버린다. 내가 한번 눈을 깜빡이는 사이, 0.2초. 그 사이에 네가 내 앞으로 다가선 거리 0.2cm. 난 정확하고 민첩하게 계산되어있던 그 사냥에 머리를 굴릴 여를도 없이 포획되어 버린다. 네가 혀로 내 입술을 공략하고 무너져버리는 시간, 2초. 그리고 내가 정신을 겨우 차리고 너를 밀어내는 시간, 20초. 


 "저는 꽤 당신이 마음에 드는데 말이죠. 이런 의미로다가. "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은 어느정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이 남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밀려왔다. 솔직히 인정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이 남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사실을. 





*




 "요새 생각이 많은 것 같구나."


 원체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결국 식사시간에 입을 열었다. 나는 고등어자반 토막을 젓가락으로 집으려다가 잠시 멈칫하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무심한 얼굴로 내쪽은 바라보지 않고 미소된장국의 그릇을 들어 젓가락을 휘휘 젓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 나를 향한 단호한 어투로 입을 뗐다.


 "잡념이 많은 것은 좋지 않아 후시미. 유능한 사용인에겐 특히나."


 그러니까 넌 가만히 시키는 거나 해라- 라는 것이 본뜻일 거다. 직설적으로 말해버리면 되는데, 이래서 배운 사람일수록 상대하기가 더욱 번거로워진다. 가만히 데친 나물을 입으로 가져다대며 나는 '명심하겠습니다'라고 기계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생각을 숨기고 살아야 아버지가 말하는 '유능한 사용인'이 될 수 있는지, 나는 그 기준에 평생 닿을 수 있기나 한 건지 갑자기 숨이 조여왔다. 그렇게 생각을 죽이고, 기척을 죽이고 누군가를 보필하는 존재로서만 살아가다보면 나도 아버지 당신 처럼 되는 건가요? 재미라고는 하나도 모른채 그저 한 가문을 위하는 것을 평생 영광으로 알고 살아가는 고집 쎈 남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인가요? 


 "잘먹었습니다."


 왜 이럴때 나는 당신이 생각날까, 히비키 와타루. 나도 당신처럼 얼빠진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 그렇게 하면 아버지대, 아니 그 위의 위의 윗대부터 자연스레 상속되어온 이 무거운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얼빠진 척 행동했던 것은, 네가 찾아낸 최선의 방법이었던건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결국 얻어낸 답은 주변의 기대를 한껏 누그러트리자는 것이었나. 나는,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어쩌지? 


[잠깐 만날수 있습니까?]


 나는 녀석에게 처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메일주소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



 "유즈루군, 전화와."

 "그런거, 몰라."

 "꽤 대담하네. 집사씨. 뭐든 시키는 것만 하는 능숙한 개인줄 알았는데."

 "몰라, 얼른, 넣기나 해."


 테이블 위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기를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채 이불 속으로 파묻어버리고, 이 행위에 집중했다. 그래봤자 그 꼬맹이나, 집안에서 걸려온 전화겠지. 내 인간관계는 그렇게 넓지를 못하다. 어렸을때부터 '히메미야가문'의 충실한 개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라볼 필요도, 그럴 여력도 없었다. 


 히비키 와타루와 이런 관계가 된 것은 벌써 몇주 전의 이야기다. 그 사이, 우리는 서로 왕창 섹스했다. 뇌가 흐물흐물 녹아내려버릴 것 같은 쾌감을 따라 이짓을 한 지 몇주째. 결국 하루에 오분간격으로 누군가에게서 꾸준히 전화가 걸려와버리고 있지만, 뭐- 그게 상관있나. 이왕 엇나가기로 한 거. 최고로 유능하게 엇나가 버릴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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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큐큐 더쓰려했는데 졸리네요...

와타유트 영업해준 ㄹㅇ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