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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글들 포스타입에 업로드해두었습니다!


안녕하세요

mesk입니다 :-)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전에 운영했던 블로그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기뻐요 :-)

 

현재까지 간간히 독자분들이

DM이나 댓글 등으로 작품에 대해 문의를 주셔서

이전 작품들을 모아둔 포스타입을 새로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

 

앙스타 관련 완성작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열람하실 수 있도록 올려두겠습니다.

 

https://mesk-backup.postype.com/

 

운영했던 블로그가 많아 글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데,

이번 기회에 한 공간에 모아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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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2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결혼날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샵에 같이가고 , 샵에서 나온 후엔 그녀와 내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를 사고, 그녀의 인가친척에게 돌릴 선물들을 고르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휙휙 보내다보니 어느 덧 결혼식 날은 하루 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어차피 남들처럼 분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될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집이 벌써부터 그립다거나하는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진정으로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의 가장이 되어 제 한사람 몫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역할 수행을 동시에 해야하는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짖눌러 결혼이라는 것이 두렵게 다가왔다. 그녀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래봤자 어차피 내일 나는 결혼식 장에 입장할 것이고, 이제와서 도망칠 거라는 용기있는 결단도 못 내릴 겁쟁이지만 말이다.

 피부를 위해서 일찍 자두라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오늘따라 왜이리 잡념이 많은거냐. 나는 벽에 걸린 시계가 벌써 자정을 가리키는 것을 보며 어머니의 충고대로 얼른 잠에 들자고 마음 먹었으나 인간은 항상 긴장하면 잠이 안오기 마련인 동물이다. 나는 처음 수학여행 가는 어린애라도 된 것 마냥 결국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눈만 멀뚱멀뚱히 뜬 상태로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먼저 결혼한 형이 이르기를, 연애랑 결혼은 많이 다르다던데 그녀도 결혼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져버리는 걸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을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참한 여성이니 바가지 긁는 모습은 전혀 상상히 안갔다. 아이는 둘이나 셋 쯤이 좋을까.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적당할 것 같단 말이지. 내일 친구들은 몇명이나 올려나. 대학 친구들은 온다고들 하던데, 중학교 동창들은 와줄까? 아무래도 집끼리 아는 손님들이 많이 오겠지.  

 에이치는... 오려나? 나는 급기야 생각난 소꿉친구의 이름에 조금 가슴이 먹먹해졌다. 녀석은 올 생각일까. 그 날 이후 다시 연락 한 통 없네.

 역시 녀석이 아무리 내게 심한 소리를 했다고 해도 역시 친구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이런 때 녀석이 몹시 생각나는 거 보면. 얼굴이 생각나니 녀석의 다정한 목소리가 조금 듣고 싶어졌다. 녀석이 나를 사랑의 감정으로서 좋아하든 말든 지금은 그저 내 일생의 대부분을 같이 지냈던 소중한 '친구'인 텐쇼인 에이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녀석이 괜찮다고 해주면, 나는 당장에라도 미래에 관한 두려움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편안한 기분으로 잠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다 깬 잠은 저 한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남들이 보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법하게 '텐쇼인 에이치'라고 정직하게 저장된 이름을 보니 조금 두근거렸다. 늦은 시간인데 전화 걸어도 될까-, 처음에 말은 뭐라고 꺼내지, 녀석이 일부러 안받는 건 아닐까? 라고 혼자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때, 운명같이도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너무나 기가막히는 타이밍이라 나는 잠시 방 안에 몰래카메라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주변을 휘휘 돌아보다가 이내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케이토"

"어, 에이치"

 이게 뭐라고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설상가상으로는 손에 땀까지 차서 핸드폰 놓칠 뻔 했다.

"내일 결혼 축하한다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늦게까지 안자고 있었나보네"

 녀석의 음색은 한없이 다정하고 포근했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녀석의 목소리를 퍽 좋아했다. 외모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사실 에이치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딱히 녀석이 별 말을 건낸 것은 아닌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그 날 밤, 내 귀가 어떻게 되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에이치는 내가 아는 그 다정한 음색의 에이치로 돌아와 있었다. 

"너야말로 이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뭐하냐. 뭐. 축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얼른 자둬. 그래야 내일 이쁘게 하고 만나지."

"곧 신랑될 사람한테 이쁘게 하라는 게 뭐냐."


"흐음 글쎄. 뭐,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하니까 말이야."

 녀석이 지금 내게 농을 건낸 건가? 하고 녀석의 말에서 과연 유머코드가 어디에 담겨 있었는지 해석해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녀석은 이내 내일 결혼할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내일보자 케이토"

 전화를 끊고 나는 정중히 테이블 위에 방금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어느덧 불안과 초조함은 눈 녹듯 사라져 있어, 나는 이게 친구 좋다는 건가- 싶었다. 자, 어서 자자. 그리고 내일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자.





 다음날, 나는 눈이 부셔서 감았던 눈을 떴다. 굉장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이었다. 아마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 쪽으로 나있는 발코니 덕인 듯 싶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발코니가 방의 채광을 담당하고 있는 값비싼 호텔 스위트룸 같은 이 곳은 내 방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기우뚱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침대가 무척 푹신했기 때문에 어디가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일어나는 것이 잘 되지 않을까? 나는 궁금해서 내 몸을 살피다 발견하고야 말았다. 없어진 내 팔과 다리를. 너무 비현실적이라 순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꿈 속인가? 아니 이건 필히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만에 삼십년을 달고 살아온 멀쩡한 팔다리가 신체분리 마술이라도 부린 것 마냥 없어질 리가 없으니까. 나는 너무나 깔끔히 잘려있는 팔 다리의 절단면을 바라보다가 팔다리가 없어지는 꿈은 흉몽일까 길몽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 너무 꿈 속에 안주하고 있으면 결혼식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꿈에서 깨려고 노력했다. 꿈 속에서 이게 꿈이란 것을 의식하면 으레 깨어나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의식해도 이 꿈은 깨어지지가 쉽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무언가 무서운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아냐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애써 밀려 들어오는 생각을 무시하고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입술을 한껏 물어 뜯었다.

"케이토 일어났어?"

  알고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 꿈에서 일어나려고 노력해도 전혀 효과가 없어 마침 울고 싶어 진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에이치가 꿈에 나오다니. 드문 일이었다. 나는 꿈 자체를 잘 꾸지 않을 뿐더러, 에이치가 나오는 꿈은 살면서 몇 번 꿔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생한 형태의 꿈이라니. 어떤 악마가 이런 꿈을 내게 보여주는 지는 몰라도, 이 꿈은 너무 생생하고 정교해서 정말 까닥하다가는 진짜라고 믿어버릴 것 만 같았다. 홍차잔을 들고, 흰 양복을 입은 에이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침대 머리에 앉아 내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었다. 이렇게 생생한 촉감과 온도라니, 정말 실력좋은 악마가 프로그래밍한 꿈 인가보군. 

"생각보다 안아프지? 실력 좋은 사람한테 부탁해했거든."

 녀석이 내 이마에 제 입술을 맞췄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 입술 촉감에 나는 한순간 생각 저 뒤 편으로 밀어두려고 노력했던 그 공포를 무방비하게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피부가 조금 거치네. 케이토. 그러게 일찍 자랬잖아.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존재니까 말이야."

 구토가 일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이 현실에, 차라리 이 자리에서 즉시 기절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은 이미 내 편이 아니었기에 그것마저 쉽게 이뤄주지 않았다.

"어서 가자. 우리 결혼식에 늦겠다."

 그런 다정한 음색으로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 녀석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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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1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어릴 적 부터 내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사춘기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야 에이치와 친하게 지내라는 아버지의 명령도 있었고, 에이치는 여러모로 나보다 훨씬 잘나고 인기도 많은 놈이었기에 이 쪽에서 오히려 에이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에이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게 친구로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인가?'하는 의문이 피어 오르기가 반복되고, 직접적으로 '너 좀 이상해, 친구끼리 이러는 거 좀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에이치는 나에게 농익은 연정을 품었을 때로 에이치에게,

' 좋아해'

 라는 고백을 받았다. 물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이라니. 딱히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나 자신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 해본 적이 전혀 없었고, 출산 능력이 없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평생을 사로 잡혀있던 나에게 절대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선 나는 여자가 좋았다. 여자의 알몸 사진이 잔뜩 박혀져 있는 성인용 잡지를 몰래 침대 밑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 마다 그것으로 종종 자위를 하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어디서 듣기론, 사춘기 무렵에는 우정과 사랑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데서 생기는 질투심을 '사랑'으로 잘못 착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에이치도 그런 부류겠거니 하고 어렴풋이 넘겨 짚었다. 아무래도 에이치는 당시에는 몸이 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고 있었기에, 매번 병실에 들러 이것저것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들을 챙겨주는 내가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어리석게도 가볍게 넘겨짚고 말았다. 그 뒤로 에이치는 다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므로 역시 나는 에이치가 당시에 우정과 사랑을 착각해 우발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구나-하고 안심했다. 최근까지는 말이다.





 우리 집은 꽤 유서깊은 가문이기 때문에 내가 혼기가 차자마자 고리타분하게도 결혼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꽤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여서 나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아름다운 여성과는 절대 눈 한 번 못 맞춰 봤을 것이 뻔해서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고분고분 이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혼수이야기도 오가고 결혼식 날짜도 잡히고, 그렇게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니 주변에선 '니가 벌써 결혼을 하냐?'라거나 '축하한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 중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에이치에게서 만큼은 회답이 오지 않아서 나는 내심 에이치가 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돌아간 제 아버지를 대신해 텐쇼인 가의 실질적 소유주 자리를 인수인계 받느라 바쁘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이십년을 넘게 알아 왔던 친구이니만큼 축하한다고 문자 하나 보내주지 않는 것이 내심 섭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이치가 찾아왔을 때는 결혼 식이 얼마 남지 않은 불특정한 날의 아주 늦은 밤 시간이었다. 나는 유카타 한 장만을 품위없게 걸치고 있던 채로 대문을 열었는 데 못 본 시간 동안 많이 핼쓱해진 에이치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고요한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몇 달만에 얼굴을 비친 소꿉친구가 반가워서 입으로는 왜 이런 밤 중에 찾아왔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내심 기뻐하며 그를 집 안으로 맞아 들였다. 사실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요새 많이 바쁜가보다? 그래도 친구 결혼한다는 데 문자 하나는 좀 줄 수 도 있었잖냐."

  나는 내 방 테이블에 앉은 에이치에게 직접 끓인 차를 내주며 내심 장난인 척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뱉었다. 평소같았으면 유하게 웃으며 '미안 요새 좀 바빠서'라고 대답해주었을 친구였으나 그 날은 어딘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에이치는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나는 에이치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최근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하고 자신을 성찰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치에게 잘못한 것이 없자 나는 단순히 에이치가 피곤해서 저런 것일거라고 생각해서 녀석을 웃게 해주려고 어줍짢게 알고 있던 농을 하나 건네려고 했는데 마침 에이치가 입을 열었기에 그것은 무산이 되었다.

"하스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낯설었다. 어릴 적 부터 한 번도 녀석이 나를 성으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인가.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는 종종 '하스미'라고 불리고 있으면서 어쩐지 녀석이 부르는 '하스미'는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이질적으로 들렸다. 

"하지마."

"뭘?"

"결혼말야."

 무리한 것을 말하는 주제에 녀석의 목소리는 꽤나 당당하기까지해서, 나는 내심 결혼이 이제 사회적으로 용인 될 수 없는 나쁜 짓으로 낙인 찍힌건가?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결혼이 나쁜 짓일리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 받아야 마땅한 일생일대의 기쁜 행사이지 않는가. 그런데,몇달 만에 얼굴을 비춘 소꿉친구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의 파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신이 어떻게 됐냐? 이미 결혼 이야기 다 오고가고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무슨 니가 결혼을 하라마라야."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에이치를 쏘아 붙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억 저편의 어딘가에서, 에이치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덜 여문 사춘기의 어느 날을 회상해냈다. 설마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할 셈인가?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쭉 돋았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친구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연인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단순히 녀석이 아직은 이성에게 흥미가 없을 뿐 언젠가 녀석은 자신처럼 참한 아가씨를 만나 좋은 자신을 닮은 유순한 아들 딸 두 명을 낳고 나와 인생의 동무로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누군가에게 흥미가 없던 게 아니라, 십년 전 나에게 고백했던 그 시점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른 시점부터 녀석이 '나에게만' 오롯이 흥미를 보였던 거라면?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졌다, 당장이라도 십수년 전 처럼 녀석이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올 까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텐쇼인 에이치는, 가끔 무서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 말랄 때 하지마. 정말로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붙잡아 두는 수가 있어."

 얼어 붙은 나를 뒤로 한 채 에이치는 '그럼, 차 잘마셨어'하고 다시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나에게 인사를 건내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날 그렇게 떠나버린 녀석의, 생각보다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녀석이 내게 보인 집착의 크기에 무서워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녀석이 뱉은 말 하나 하나까지 잘 곱씹어 보았어야 했다. 녀석은 어렸을 때 부터 괜한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뒤로 내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하루 아침에 멀쩡하게 불어있던 팔 다리를 잃었는가-하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짧은 과정과, 현재 나와 에이치의 관계와 행위 관한 현상 파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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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마오] 가볍게 가자 01




"이사라군은 보면 꾸준히 그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쩌다 마오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옆에서 흘끗 쳐다본 주임이 마오에게 말을 붙였다. 주임은 낯익은 연예인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마오의 배경화면을 보며 이게 누구더라, 가수인가 배우인가- 하고 얼마 남지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어 왔다. 마오는 '지금은 배우예요 예전에는 가수였지만' 하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그래그래, 배우지! 그 왜 이름이...우리 딸내미가 좋아하는 앤데..하고 주임이 마오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연예인 이름 외우는 것보다 이번 달 내야할 자동차 보험비에 관심이 더 많을 나이인w지라 주임은 쉽게 이름을 기억해내질 못했다. 생각나지 않는 이 연예인의 이름때문에 답답한 지 급기야 가슴까지 치던 주임은 이내 근처에 앉은 마오의 동료에게 헬프의 눈빛을 보냈다. 주임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마주한 동료는 대체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뭔데요 봐봐-'하고 목을 길게 빼내어 마오의 핸드폰 배경을 보려고 노력했다. 

"아, 사쿠마 리츠 맞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답게 동료는 보자마자 리츠의 이름을 뱉어냈다. 아니, 너무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게 이상하려나. 정답을 말한 동료에게 마오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옆에서 고기를 두어점 집어다가 제 입에 넣고 있던 주임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익숙한 그 이름에 이제야 속이 뻥 뚫리겠는지, 제대로 씹지 않은 입안의 음식물을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열의까지 보이며 아 맞다 걔!하면서 두툼한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쳤다. 키야- 내가 이래뵈도 유행에 많이 뒤쳐지지는 않는 아저씨란 말이지- 하는 말까지 덧붙여가면서.

"이사라씨 리츠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는데."

 동료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쿠마 리츠'라는 연결고리가 생기자 대화에 물꼬가 튼 기분이었다. 

"아, 뭐.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연예인 중에선 그나마 좋아하는 편이에요."

"에이. 이사라군 벌써 이년째 그 배우 좋아하는 거 우리 팀 다 알고 있는데. 그 뭐시기 뭐냐. 이사라군 잘생겼는데도 애인도 없고 남자 배우만 좋아하고 있으니까 유우키군이 이사라군 게이 아니냐고 묻던-"

"주임님!!!!!!!"

 테이블 맨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씹고 있던 마코토가 갑자기 봉변을 맞았다. 너 나를 그렇게 말하고 다녔냐- 하는 조금 씁쓸한 눈빛으로 마오는 제 후임인 마코토를 쳐다보았다. 주변에서 와하하-하고 웃어와 분위기는 유쾌해졌지만 마코토만은 절대로 그 유쾌한 분위기에 녹아 들 수 없었다. 마코토는 해명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말이 얽히고 섥혀서 이내 자기도 감당이 안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마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왔다. 

 딱히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던 마오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뭐 내가 게이인 게 사실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유우키는 옆 부서의 어떤 남정네한테 무한 대쉬를 받고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게이가 될 확률이 높았다. 마오는 특별히 마코토를 동정의 의미로다가 용서해주기로 했다. 마코토의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자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꽤 오래 전 부터 사쿠마 리츠 좋아하셨나봐요? 사실 저도 가수 활동때부터 좋아했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동료가 이사라와의 공통점을 찾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근하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걸어왔다. 동료가 자기는 나이츠-사쿠마 리츠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룹 이름- 팬페이지도 운영해 본 진성팬임을 은연 중에 밝히며 자랑스러워하자 마오는 속으로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말이지, 하고 조금 난처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완전 빠돌이로 낙인 찍하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연예인 중에선 사쿠마 리츠를 가장 좋아하고, 핸드폰 배경으로 사쿠마 리츠의 사진을 설정해 놓고 있었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 잘생겨서 등이 아닌 조금 특별한 이유에서다. 너무 힘들어서 방황만 하던 과거의 어느 날, 리츠라는 존재가 그에게 큰 해답을 주었기에 마오는 그 때부터 리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삼년 전 쯤인가, 마오는 고시원에 틀어박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에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사회적으로 청년들 대다수가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되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 해졌고 마오는 앞 서 두어번 쳤던 공무원 시험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 이렇게 세번 네번 열번 스무번을 더 시험쳐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마오는 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우연히 누군가 읽다가 공원 의자에 놓고 간 연예 잡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손에 든 것이었는데 은근 재미가 붙어서 마오는 잡지를 꽤 진지하게 정독했다. 그러던 도중 중간 쯤에 아마도 스페셜 게스트인지 잡지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는 연예인의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마오는 거리를 오가다 종종 광고 포스터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 이름이 사쿠마 리츠구나. 본명일까? 하고 마오는 생각했다. 프로필을 보니 자신보다 나이가 겨우 한 살 많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회적으로 석공하다니. 이런 애들은 얼굴이 조금 반반하다는 이유로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서 부럽네- 하는 조금 삐뚤어진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내리고 있던 마오는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에서 읽어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눈으로 진지하게 그 부분을 다시 더듬었다.


 Q:리츠씨는 일이 뜻대로 안 풀리실 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A:그냥 잡니다. 사실 일이 뜻대로 안되면 초조하고 불안해지잖아요. 사실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되는 거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어지게 자보는 거예요. 하루종일 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이틀을 누워서 마음껏 빈둥거려보시고, 그래도 부족하면 일주일도 좋을 거 예요. 저는 스케쥴이 밀려있어서 그러면 매니저한테 당장 혼나지만요(웃음)





 사실 별 내용 아니었는데 거기서 위안을 얻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마오는 조금 우스워졌다. 그래봤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별거없는 조언에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위로받을만큼 힘들고 지쳐있던 건 지도 몰랐다. 여하튼 잡지 속의 조언대로 충실에 일주일은 내리 빈둥거리며 자신의 생애에서 그렇게 지루한 기간은 더이상 없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재충전 기간이 끝나고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여기가 역시 내 길이다. 그 이후로 더욱 맘을 잡고 연필을 쥐어 공부했다. 그그래서 다음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고.

 회식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마오는 제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로 가기 위해 가로등만이 조용히 켜져있는 동네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술도 조금 들어갔겠다, 벌써 새벽 늦은 시간이겠다, 길에는 아무도 없겠다-이 완벽한 삼박자 덕에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 된 마오는 콧노래로 나이츠의 3집 앨범 타이틀 곡을 흥얼거렸다. 

 그래 나이츠가 해체한다고 할 때는 꽤 충격이었지, 처음에는 사쿠마ㄴ 리츠 때문에 알게 된 그룹인데 노래 듣다가 그 그룹에도 빠지게 됐으니까. 다른 수록곡도 좋지. 으으, 그래 역시 3집으 타이틀 곡이 제일 좋았어-하고 마오가 한창 필이 충만해졌다.흥얼거리고 있는 노래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사쿠마 리츠의 부분을 콧노래를 너머 이젠 입으로 열심히 열창하고 있었는데,

"저기"

 이 밤 중에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의 앞에 선 한 남자가 통행을 가로막았다. 마오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길에서 대놓고 나이츠의 노래를 열창했던 것인데, 이렇게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죽을 듯이 쪽팔려져서 술이 한 방에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얘, 얘는 뭐, 뭔데 이 밤 중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헉, 혹, 혹시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없다던가 하는 귀신인가. 아니면 그냥 변태인가? 마오는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 속설을 상기하며 땅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제대로 있는 것을 보아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역시 변태인가. 근데 어째서 나한테.. 하고 두서없이 생각하던 마오는 이내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에 몸이 굳었다.

" 나- 좀 재워줄 수 있어?"

 남자의 말에 얼이 빠진 마오가 예?하고 되물었다. 생긴 것은 엄청 멀끔히 잘 생겼을 거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변태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진 몰랐지만, 마오는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피신하는 것과 인근 경찰서로 달려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하고 마오가 머릿속에서 재어보고 있는데 그런 마오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조금 불쾌하다는 목소리 톤으로 상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나 수상한 사람 아니거든-?"

 아니 저기요. 밤 중에 선글라스 끼고 생초면인 사람한테 재워달라고 하는 사람을 수상하다고 하지 않으면 대체 수상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수상하다고 할 것 같은 데 말이죠. 마오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상대는 한 숨을 푸욱 쉬더니 마오를 설득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 처럼 선글라스를 벗었다. 사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두 눈이 뚫려있는 귀신이라는 추측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으려 할 땐 마오는 잠시 쫄았다가 그 얼굴을 확인하고 망부석 처럼 굳어버렸다.

"저기, 알아보겠어?"

이사라 마오는 당연히 몰라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쿠,마..리츠?"

 사쿠마 리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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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2







 츠카사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지하실은 넓었으므로 혼자서 다 청소하기는 무리였기에, 츠카사는 강단의 주변을 기점으로 열심히 쓸고 닦았다. 교회에서 자주 쓰는 긴 의자를 한 번 닦자마자 걸레가 금방 시커매졌다. 이대로 닦다간 정말 끝도 안나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원래 좀비란 체력과 쓸모없는 생명력만 넘쳐나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츠카사는 물이 담긴 큰 양동이에 시꺼매진 걸레를 푹 담궜다가 꺼내 손으로 주욱- 짜냈다. 꾸정물이 뚝뚝 양동이로 떨어져서, 물이 금방 탁해지고 말았다.

 걸레질을 끝마친 뒤에는 창고에서 꺼내 온 부드러운 붉은 카펫을 입구에서 강단까지 깔았다. 카펫은 신부와 신랑이 입장하기 위한 용도로, 결혼이란 것은 해 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던 츠카사지만 서재에 있는 책을 찾아 조사 해보니 인간의 결혼식은 대략 이런 형태로 하는 것 같아 지하 창고를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카펫 이외에도 지하실을 인간들의 결혼식장처럼 꾸미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의 울타리 즈음에 피어있던 흰 제비꽃도 꺽어와 곳곳에 장식했고, 촉감 좋은 융단도 내빈석 곳곳에 깔았다. 물론 내빈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츠카사는 인간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제 신부에게, 가장 최고의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은 좀비건 인간이건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밤이 되서야 그럴 듯 하게 결혼식장이 완성 되었다. 흑백이 주로 쓰인 결혼식 장은 얼핏보면 장엄한 종교 집회와 같은 이미지를 가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도들이 하나씩 나와 교주에게 자신의 죄를 고할 것 같은 신성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츠카사는 이만하면 혼자 준비한 것 치곤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일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선 일찍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츠카사는 침실로 돌아가 옷장에 있던 가장 부드러운 실크잠옷을 몸에 걸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뭍었다. 이 넓기만 한 침대도 이제는 끝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츠카사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살풋 걸려있었다.



*



 츠카사가 자신의 신붓감과 다시 조우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도 그 인간 남자는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간 여자와 함께 큰 바구니를 양 팔에 끼고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츠카사는 울타리에 피어난 담쟁이 덩굴 뒤에 숨어 그들을 살폈다. 여전히 그들은 저 하늘을 닮은 쾌청한 웃음을 피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이제 자신도 저렇게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츠카사는 조금 주변을 살피다 이내 격리지대와 안전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섰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정말 방어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울타리였다. 이러니 항상 좀비들이 조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안전 지대를 침범하지.

 츠카사는 천천히 남매에게 다가섰다. 둘은 등을 돌린채로 한참을 독버섯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 빠져 츠카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보였다. 남자쪽이 이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자 쪽에게 훈계조로 말하고 있으니, 여자 쪽도 지기 싫은 지 얼굴을 붉힌 채 조금 부투룽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시시덕거리더니, 지금은 싸우고 있네. 츠카사는 인간들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의아함을 품으며 한발짝, 두발짝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탁- 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꽤 크게 숲을 울리는 소리에, 남매가 반응을 했다. 

 우선 여자 쪽의 비명이 먼저 들려왔다.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츠카사가 만나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보았을 때 얼어 붙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둘 중 한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얼어 붙는 쪽의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잠시 얼어붙어 츠카사를 멀뚱히 바라보며 사태파악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사태파악을 끝마치고 여동생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응이다. 츠카사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인간들을 볼 때 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자식을 감싸는 부모들을 식량으로 삼을 때는 조금 입맛이 떨어지곤 했다.

"루카, 넌 어서 달려나가. 여긴 내가 맡을게."
"하지만 오.."
"어서!"

 츠카사는 남매의 대화 내용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매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리 달려봤자 그 약한 인간의 체력으로는 자신들과 견줄 수 없는 데 인간들은 한 명이 희생하면 한 명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제 오빠의 호통에 조금 겁먹은 듯 츠카사와의 반대편을 향해 무작정 뛰어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츠카사의 앞을 가로막고 츠카사의 관심을 루카에게서 돌려내기 위해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자세를 취했다. 여자쪽은 별로 관심도 없고 이대로 쫓아가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츠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신붓감에게 다가섰다. 나는 그냥 당신만 원할 뿐 인데.

 이내 처절한 고함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

 츠카사는 침대에서 곤히 눈을 붙이고 있는 남자의 옷주머니를 뒤져 약간의 소지품을 찾아냈다. 열쇠와 지갑, 그리고 이 지역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그 중 지갑에는 약간의 돈과 신분증, 그리고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아까본 그 여자애가 같이 찍혀있었으므로 츠카사는 아마 가족 사진일 것이라 판단했다. 사진을 다시 지갑속에 고이 껴두곤 츠카사는 신분증을 손에 들었다.

'츠키나카 레오'. 츠카사는 자신의 신붓감의 이름을 낮게 읊조려 보았다. 레오, 레오.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려지는 그 음이 마음에 들었다. 츠카사는 레오의 옆머리를 귀 뒤로 다정히 넘겨주었다.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고 있는 달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레오는 마치 밤을 관장하는 여신과 같았다. 그는 밤을 훔쳤다.

 레오는 츠카사에게 물린 상태로, 현재는 죽어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몸의 살점들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며 좀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좀비가 된다는 걸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하기도 우습지만 여하튼 레오는 내일이면 아마 살아날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결혼식을 올리자. 이 아름다운 신부와, 내일,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자.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자. 네가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너도 나처럼 모든 기억을 잃고야 말겠지. 그 땐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줄게, 레오. 나의 신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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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1






 츠카사가 '그것'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산책하던 도중이었다. 츠카사는 한 눈에 그것이 자신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들은 츠카사들을 '좀비'라던가 '괴물'등으로 불러 오는, 자신들 스스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무리였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구분하는지 츠카사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츠카사는 왜 '좀비'라고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고 소멸시키려하는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저들을 식량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가? 츠카사는 작은 인간 여자에게 미소지으며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인간 남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개나 돼지, 닭 등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인간은 왜 우리를 해치려 드는 걸까. 그것은 오래전부터 츠카사의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채로 남아있는 하나의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직접 연구해 볼 기회는 오지 않았으므로 츠카사는 오래전부터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딘가 간지러운 부분을 긁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 곳을 오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인데, 저 인간 남매는 어째서인지 이 곳을 잘 아는 사람들 마냥 풀 숲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여러 빛깔의 버섯들과 산과일들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댔다. 또한 자기들이 담은 버섯들을 꺼내 서로 비교하다 입꼬리를 올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무언가 재잘거렸다. 인간에 대한 츠카사의 두번째 궁금증은, 인간은 어째서 저렇게 얼굴을 다양하게 바꾸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자기의 기분에 따라 바꾸어낼까-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게 되어버린 '격리지대'에는 예전에 살던 인간들이 남긴 건물터나 물건들이 상당수 존재했는데, 그 중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묘사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그러한 택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수치심, 경멸, 사랑 등의 단어를 습득해나갔지만 글자만 가지곤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는 다르게 참으로 복잡한 감정선을 지녔다. 츠카사는 그래서 인간이 참으로 부러웠다.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츠카사는 울타리 너머에서 버섯을 따는 남매를 보며 저둘을 감싸고 있는 조금 따듯한 공기가 '기쁨'이라는 감정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책의 삽화에서 봤던 것과 유사해보였으므로. 


 츠카사는 남매를 관찰하다 그들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호선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쁨'이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츠카사는 밤잠을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인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부러움일까. 츠카사는 푹식한 베개에 머리를 묻곤 높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그 인간을 '먹고' 싶은 것일까. 츠카사는 여러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이 책장에는 모두 빽빽히 책이 꽃혀 있었다. 인간들이 남기고 사라진 이 서적들은 츠카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였음에도 츠카사는 책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격리지대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새로운, 최신의 책을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츠카사는 때때로 새로운 책이 필요한 날에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도 했다. 


 인간의 글은, 처음부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츠카사는 그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처음에는 '인간'이었을까?. 츠카사는 자신이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신기해져서 종종 아무런 소리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제 서재의 발코니에 걸터 앉아서, 인간 세상이 가장 잘 보이는 쪽을 내다보곤 했다. 푸른 어둠이 얕게 덮은 인간세계는, 이 곳과는 다르게 참으로 고요하기만 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생활리듬이 달랐으므로, 밤에는 다들 쉴새없이 놀리던 입을 다물고, 눈을 살포시 닫은 채로 편안한 단잠에 빠져버린다-,고 책에 쓰여 있었다. 그래서 츠카사는 되도록 밤 시간에 잠을 자려고 했다. 츠카사는 사실은, 인간을 동경했고 그래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최대한 베껴냈다.


 츠카사는 하늘 위에 커다랗게 떠 있는 창백한 보름달을 보며, 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외롭다고 생각했다.



*



  츠카사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마을로 들어섰다. 이 곳은 좀비들도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츠카사는 종종 이 마을을 산책하거나 가끔은 메말라버린 분수대에 걸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인간의 집'이었던 곳에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걷다가, 마을 광장 가까이에 위치한 노랑 지붕 집이 눈에 들었다. 무단침입이었지만, 츠카사는 어디선가 책에서 봤던 내용대로 '실례합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말을 꺼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먼지가 잔뜩 쌓여 매캐했고, 겨우 자그마한 창문 구멍만이 온 햇빛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의 반의 반도 안되어보이는 집의 크기에 츠카사는 인간들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뭉쳐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인간이었을 적엔 이렇게 조그마한 집에서 이렇게 조그마한 식탁에 둘러 앉아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을까. 때로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불평도 하고, 좋아하게 된 급우에 대해 부모님께 조잘거리며 그렇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았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 분했다.


 츠카사는 작은 토끼모양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여져 있는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익-. 경첩 녹슬었는지 문이 부드럽게 열리질 않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발산했다. 츠카사는 집 안에 들어왔던 걸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아마 여자아이의 방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인형과 동화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쪽 벽지엔 핏자국이 흥건히 베어있어 아마 여기서 좀비에게 일가족이 몰살 당했을 거라고 추정하게 했다. 


 츠카사는 담담히 그것을 바라보곤 이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동화책 중 하나를 골라 침대에 걸터 앉았다. 츠카사가 풀썩 침대에 앉자 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몇년을 쌓여져서 묵혀졌을 먼지는 츠카사의 작은 행동 하나에 금방 그 세월의 축적을 파기당해 버린다. 


 츠카사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동화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여기도 여전히 '기쁨'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은 기쁨이 무엇인지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는데 인간 세계에는 왜 이렇게 기쁨, 행복,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은 걸까. 츠카사는 표지를 한 장 넘겨 책을 읽어내렸다. 아동용 책이라 별 다른 노력없이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불행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가 '결혼'을 통해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해 진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지는 걸까? 나도, 신부를 얻으면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츠카사는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여자와 남자가 활짝 웃으며 궁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채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삽화를 단아한 손끝으로 조용히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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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가] 약한 얼굴 01


*레이 말투가 예전 말투입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를 너무 크게 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래서야 내가 엄청 기대하는 것 같이 되어버리잖아. 어떻게 티 안나게 침을 목 뒤로 넘겨낼까 고민하다가 입에 침이 흥건히 고여버릴 때 까지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애새끼들이 사용하는 턱받침이라도 구해 착용해야 할 만큼 차올라버린 입 속 타액 때문에 나는 고민하다 결국 다시 꿀꺽, 하고 한 번에 크게 침을 넘겼다. 예상대로 작은 웃음소리가 얇은 천 너머로 들려왔다. 눈 앞이 모두 암전되어있는 상황 속에서도 너의 목소리는 잘도 내 몸을 달구어 냈다. 시발, 섰잖아. 명백한 조롱이 담긴 웃음소리에도 반 쯤 발기해버리고 마는 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다. 


 이 행위 자체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생식기가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섹스를 좋아하냐고 한다면, 글쎄. 누구는 남자간의 섹스에도 흥분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파 뒤질 것 같았다. 똥을 싸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 그 용도의 구멍이 처음으로 남자의 육봉으로 후벼졌을 때, 나는 몸이 두개로 갈라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단 조금 덜 고통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래도 애널 섹스를 하며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난 아픈 것에 흥분을 하는 변태도 아니다.


 다만, 나는 '녀석'의 얼굴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비범위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네가 날 바라보며 비웃고 있을 그 아름다운 얼굴만 상상해도 나는 이렇게, 시발, 그래 욕정하고 만다. 


 "귀엽잖아, 그런데, 딱히 아무 것도 안했는데 이렇게 서다니. 조금만 더 만져주면 아예 싸겠는데. "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부풀어 오르는 성기가 바지와 맞닿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추하게 균형을 넘고 쓰러질 정도로 곤란했다. 계속해서 자세를 조금씩 수정해가며 무릎꿇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 그것을 방해하려는 듯 녀석의 발이 내 그 곳을 덮어왔다. 지긋이 힘을 주어 누르는 그 행동에 나는 힉, 하고 약한 소리를 무의식 중에 방출해버렸다. 아아, 분명 조롱하고 있을 것이다. 내 눈을 가린 이 천을 한꺼풀 벗겨내면 분명 그 고운 얼굴로 나를 병신 취급하며 바라보는 네가 내 앞에 앉아있겠지. 그래도, 핏빛 붉은 눈동자가 나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지나치게 흥분시켜 버린다. 나는 녀석의 얼굴에 너무나도 약하다.


 녀석은 발로는 내 그 곳을 앞 뒤로 문지르며, 손으론 내 얼굴을 다정하게 쓸어주었다. 그리곤 이내 내 눈 앞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벗겨내내주었다. 어두운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내 눈은 빛을 마주하자 잠깐 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시큰거려왔다. 빛에 적응하기 위해 꿈뻑꿈뻑 눈을 두어번 크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니 이내 곧 시력이 돌아오고, 머릿속에서 그려내오던 것 보다 더 고아하 피사체가 내 앞에서 자애롭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아, 그래 이 얼굴이다. 사쿠마 레이의 얼굴은 아무리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내보아도 직접 보는 것 보다야 한참은 부족하다. 아아, 아아. 인간은 아름다운 예술품에 예찬을 아껴선 안 된다. 인간은 예술품에 대해 경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축복받은 존재이다. 그 축복을 최대한 느껴보는 것, 그것이 나는 인간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에서 '사쿠마 레이'는 그 경외의 한 중심이 있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예술품에 대한 나의 감탄은 입으로 이뤄지지 않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사정해버린 교복바지가 축축히 젖어왔지만 그것은 하나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오로지 사쿠마 레이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바지춤이 축축히 젖어오건 유두가 서버려 까끌까끌한 셔츠의 감촉이 느껴지던 그것들은 내 정신에 흠 하나 가게 할 수 없었다.


 "코가는 여전히 내 얼굴이 좋은 모양이네"

 "네, 네, 선배, 선배는 너무, 아, 아-. "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한 채로 병신같이 얼굴만 붉혔다. 평소에는 '네녀석' 이니 '흡혈귀' 자식이니 하는 호칭으로 이 남자를 막 부르고 있지만 섹스를 할 때 만큼은 솔직해서 예전처럼 그를 '사쿠마 선배'라고 부른다. 선배도 마찬가지로 이런 행위를 할 때 만큼은 나를 이름으로 불러온다. 아마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계가 잘못된다는 것은 한참도 전에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네가 하는 말에 취해버릴 수 밖에 없다. 


 "그럼 내 자지 빨아줄래?"


 어째서 이 사람은 입꼬리 하나까지 완벽한 호선을 그리며 올라는 것일까. 어째서 말의 내용은 이리도 짖굳은데, 그런 천박한 말을 내뱉는 당신의 입술은 이리도 청순한 여름 바람 같은 것일까. 나는 선배의 바지 지퍼를 조심스레 내리고, 그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았다. 고간에서는 남성 특유의 야성적인 향기가 났지만, 그것이 또 절벽 위에 홀로 펴있는 붉은 장미같은 얼굴과는 대조적이어서 더욱 이 예술품에 경외를 자아내게 했다. 


 나는 그의 물건을 입에 조금씩 집어넣으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오나홀을 바라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선의 무게로 그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악마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옥이라는 존재에 대해 내 몸 속 깊숙한 곳까지 각인시키고 있었다.






* 이번 레이 카드보고 미모에 홀려서 급작스레 써 본 수위글입니다.

* 사쿠마 레이 뭘 먹고 그렇게 잘생겼을까요

* 아마 더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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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조사] 리츠마오/ 이즈마코 소설본


리츠마오- 오메가버스 AU(19금)

이즈마코- 단편집 (제목 미정)



수요조사폼: http://me2.do/xzIoiV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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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너는 변하지 않았다 (샘플)




 




 친구들이 죽었다. 그것은 벌써 삼 년이 된 일이었지만, 그 아이들은 아직도 내가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와줄 것만 같아서 나는 가끔 그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곤 한다. 아케호시 스바루, 히다카 호쿠토, 이사라 마오. 이 셋은 모두 다음 스케쥴을 위해 장소를 이동하다가 변을 당했다. 그 날 감기때문에 스케쥴을 같이하지 못한 나는, 혼자 살아남았다. 


 별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던 아이들은, 정말로 밤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를 두고 별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미워서 아직도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한다. 사실은 밤하늘만 못 올려다보게 된 것 만이 아니다. 나는 그 이후로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정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나는 기름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북북 긁으며 머리를 감은지 벌써 며칠째인지 속으로 어림잡아봤다. 어제는 확실히 아니었고, 엊그제도 기억이 없고, 아마 3일전 인 것 같다. 두피가 슬슬 가려워지는 것이 아마 3일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려운 머리를 감으러 화장실로 가는 대신 게임기가 연결된 TV앞 쪽에 앉는 쪽을 택했다.


 게임기 옆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용기, 음료수병, 과자봉지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나는 그것을 대충 발로 한 구석에 밀어버리고 발가락으로 게임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게임기가 로딩되는 것을 기다리다 조금 출출해져서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음식이 냉장고에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엊그제 먹다 남은 피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지이잉- 돌아가는 피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전자레인지의 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그곳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쳤다.


 여드름 가득한 피부, 아이돌로 활동했던 시절때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늘어난 체중, 감지 않아서 더러운 머리카락, 미용실에 간 지 일 년은 되지 않아 눈은 이미 다 덮은지 오래인 앞머리, 언제 갈아 입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목이 다 늘어난 꾸질꾸질한 티셔츠, 입을 열면 나는 역겨운 구취, 코만 조금 벌름거리면 쉽게 맡을 수 있는 시큼하고 쿱쿱한 체향. 이 모든 것이 다 역겹게 변해버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냄세나는 특징들이었다. 


 나는 더이상 이런 역겨운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어져 고개를 획 돌렸다. 이내 띵! 하고 전자레인지에서 조리를 끝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 안에서 피자를 빼 낸 나는 로딩이 끝난 TV게임 앞에 앉아 게임기를 손에 잡았다. 여러 음료수나 양념들이 찐득찐득하게 엉겨붙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굳이 그것을 닦아내려고 힘쓰고 싶진 않았으므로 애써 찐득거리는 게임기를 무시하며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벌써 최종보스까지 쓰러트린지 오래인 게임이었지만, 나는 이것을 반복하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유우군, 게임하고 있었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저녁 아홉시. 게임을 시작한 것이 세시쯤이었으니 벌써 여섯시간째 나는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나는 구부정해진 등을 조금 꼿꼿히 세우곤 이즈미씨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일만에 보는 이즈미씨였다. 아무래도 이즈미씨는 모델로 잘 나가고 있으니까 얼굴을 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는 다시 TV스크린에 집중했다. 이즈미씨는 아마 먹을 것을 만들 요량인지 부엌으로 들어갔다. 


 "유우군. 집이 엉망이네. 먹을만한 것도 없고."


 이즈미씨가 한숨을 쉬는 것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내 나에게 다가온 이즈미씨가 내 머리결을 만지며 '유우군 내가 감겨준 뒤로 머리 스스로 안감았지?'하고 물어왔다.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어진 나는 그 질문에 고분고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없으면 머리 하나 못 감는구나. 유우군은. 뭐, 일단 머리부터 감고 초밥이라도 배달시키자."


 끄덕끄덕. 다시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즈미씨가 일으켜주는대로 일어나선 화장실로 향했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팔까지 걷어부친 이즈미씨가 샤워기를 틀어 물 온도가 적당한 지 손에 대보고 있었다. 나는 별 말 없이 샤워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샤워기를 내 머리에 대는 이즈미씨의 행동에 흠칫했다.


 물의 온도는 적당히 맞춰져 있어서 조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즈미씨는 샴푸를 손에 조금 짜서 조심스레 내 머리에 거품을 냈다. 머리에 기름기가 많이 껴서 그런지 금방 거품이 사그라들고 미끌미끌 해졌다. 이즈미씨는 샴푸를 한 번 더 짜서 다시 거품을 냈다. 이번엔 거품이 풍성히 생겨났다.


 샴푸에서 사과향이 났다. 내가 이런 샴푸를 산 기억은 없으므로 아마 이즈미씨가 다 쓴 것을 교체해 준 모양이었다. 향이 나쁘지 않았다. 이즈미씨도 같은 브랜드의 샴푸를 쓰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유우군은, 정말 예쁜 얼굴이야."

 "다, 지난 이야기예요."

 "아니야, 유우군은 변함없이 예뻐."


 어째서 이 사람은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도 여전히 날 사랑해주는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에게, 항상 예쁘다는 말을 속삭여 주는 것일까. 어째서 당신은 친구들이 나만 빼고 하늘로 가버린 그 날부터 나를 찾아와 나를 살뜰히 돌봐주려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어째서 당신은 이렇게 변함없이 날 사랑해주는 걸까. 물어볼까, 하다가 이즈미씨마저 내게서 떠나버리는 것이 무서워 결국 그 질문은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이즈미씨에게 사랑받기엔, 난 너무나도 가치없는 인간이다. 







  "유우군, 예뻐."

 

 척추를 쓸어내리는 이즈미씨의 손길에 한순간 몸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등부분이 꽤나 예민하다. 그것은 발건한 것은 이즈미씨로, 그래서인지 이즈미씨는 애무를 할 때 등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부풀어버린 이 몸뚱아리를 이즈미씨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싫어서 나는 이즈미씨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즈미씨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보여달라는 이즈미씨의 요구에 나는 도리질을 치며 품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런 추한 얼굴, 보여준다면, 이즈미씨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이즈미씨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니까, 이렇게 변해버린 나따위는 사실 속으로는 혐오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은 이렇게 변해버린 나를 속으로 비웃는 것이 재밌어서 혹은 추해버린 내가 불쌍해서 내 곁에 남아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쪽이어도 좋다. 이즈미씨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비웃음 당하던지 얼마나 동정 당하던지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유우군은,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지금 나는 당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유우군은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나는 그 대사를 다시 곱씹으며 자고있는 유우군의 등을 쓸었다. 아아, 나는 너무 행복한 남자다. 이렇게 아름다운 유우군을 손에 넣은 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그 꼬맹이 삼인방에게는 진심을 다해 감사한다.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진 않지만 말이다. 그 애들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유우군과 붙어다닐때는, 정말로 죽여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말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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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어쩌다보니 일진짱 01


"마코토, 요새 바지통이 좀 좁아진 것 같다?"



 마코토는 반찬그릇에 담긴 콩자반을 짚다말고 잠시 멈칫했다. 정작 말을 꺼낸 어머니는 아마 큰 의미는 없었던 듯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마코토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눈치채버린건가- 싶어서 잠시동안 물을 마시는 척 하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어머 왜 그렇게 보니? 하고 마코토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가 가볍게 웃었다. 아아-.. 다행이다. 뭘 눈치채고 하신 말은 아니구나. 마코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곤 마저 밥을 먹었다.


 잘먹었습니다. 마코토는 다먹은 식기를 싱크대 위에 올려 놓곤 등교준비를 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 세워져있는 전신거울에 비춰진 자신을 보고있으려니 교복 바지의 통이 확실히 예전보다 좀 좁아보였다. 그래도 별로 안 줄인건데,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다른 아이들이 하라는 데로 바지를 줄였다면 아마 스타킹 정도가 됐겠는데. 


 아아, 학교 가기 싫다.. 마코토는 이번에는 입 밖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은 신세에도 없는 일진짱이 되어버린 것일까. 마코토는 박복한 제 인생이 불쌍해서 찔끔 눈물을 흘렸다. 그래 자신은 언제나 운이 없었다. 얼마나 운이 없었냐면 태어날때에는 탯줄이 목을 감아서 자칫하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못할 뻔 했고, 평평한 길을 걷다가도 넘어지기 일쑤였으며 조금 더 운이 나쁘면 개똥을 밟기도 했고, 거기서 좀 더 운수가 안좋으면 무서운 개한테 쫓기기도 했다. 게다가 고짱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어쩌다보니 일진짱이 되어있었다. 아아, 신한테 미움받는 것도 정도여야지. 이정도면 그냥 난 전생에 사탄이었던건 아닌가. 


 겨우겨우 억지걸음으로 집을 나온 마코토는 역으로 향했다. 학교는 지하철을 타고 30분거리라, 그다지 가깝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실 집 주변의 학교는 커트라인이 높은 명문고이기때문에 머리가 그다지 좋지못한 자신은 성적에 맞춰 알아보다보니 집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일반고에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과 학교사이의 거리가 조금 멀었기에 다행이도 동네에서 고교동창을 만날 일은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학교에서 이런 일진그룹에 끼어들어있다는 것을 아시면 어머니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실 게 자명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이후로 아들하나만 바라보며 사시는 어머니인데, 자신이 학교에서 이러고 다니시는 걸 안다면, 아아, 어머니가 제게 실망하는 모습은 생각도 하기 싫다. 마코토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굳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말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제 삼학년이고, 내년이면 졸업이니까. 그래, 이제 일년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 처럼 잘 숨기면 된다. 


 생각에 잠긴 마코토가 앞도 제대로 보지않고 걷자 이내 무언가 쿵- 하고 다가와 부딪쳤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제 부주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마코토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일단 고개부터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데도 상대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자 마코토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히익!"


 그 곳에는 무지막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나 이즈미가 팔짱을 끼고 자신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히이익, 왜 부딪혀도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이사람이랑인거야!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울상을 지으며 조금만 더 앞을 잘 보고 걸을걸-하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세나 이즈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한 대 칠 것만 같아서 마코토는 약간씩 뒷걸음질 했다. 세나 이즈미라하면 같은 동네에 살고있지만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엄친아로 왠만한 사람은 원서내기도 힘들다는 y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고, 게다가 간간히 모델까지하는 그야말로 가질 것 다 가진놈이었다. 아, 한가지, 신이 그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만들어낸 나머지 인성에서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 모양인지 세나 이즈미는 빈말이라도 성격이 좋다고 할 사람이 아니었다.


 마코토는 이즈미와 친한 사이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여러번 이즈미와 마주치면 그래도 같은 동네사람이라 미소를 띄우며 인사를 건내곤 하는데 이즈미는 한 번도 제 인사를 받아준 적이 없었다. 뭐 그건 딱히 자신만 미워해서 그런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사도 공평하게 씹고다니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다고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았다. 공부만 잘하고 잘생기면 뭐하냐, 인성이 안되어 있는데, 인성이! 마코토는 연신 자신을 노려보고 서있는 세나 이즈미에게 쫄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 깔면서도 손으로는 이즈미의 흉을 보았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


 아니 애초에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냐. 사람이 말야, 어? 가끔 생각에 빠지면 앞 좀 못 볼수 있는 거고말야, 살다가보면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는 일이 당연이 있기 마련이지, 뭐 너는 살면서 다른 사람이랑 한 번도 안 부딪혀봤냐고. 그리고 학교가야하는데 계속 그렇게 노려보고있으면 내가 학교를 못가잖아! 아 나 이래뵈도 일진짱이거든? 너같은 범생이는 나 따라다니는 애들 얼굴만 봐도 기겁하거든? 일진짱의 명령인데 얼른 내 앞에서 비켜라, 앙? 


 마코토의 협박-어차피 마음 속으로 한 거지만- 이 통했던 모양인지, 세나 이즈미는 아무 말 없이 마코토를 지나쳐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나저나 이렇게 자세히 이즈미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인데, 그래도 역시 모델은 괜히 해먹는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잘생긴 놈이었다. 저런 놈이 공부도 잘한다니. 세상은 불공평하다. 아마 예쁜 여자친구도 있겠지. 아아,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형님! 오늘 끝나고 같이 가라오케 가시겠습니까?"

 "아, 저기, 나도 이제 수험생이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데.."


 험악하게 생긴 까까머리 후배의 등장에 교실이 얼어붙었다. 아무리봐도 소 하나는 거뜬히 때려잡을 듯 한 인상을 가진 이 후배는 마코토를 '형님'이라고 칭하며 깍듯이 대해왔다. 벌써 이년동안 저를 따라다니는 후배들 중 하나였지만 마코토는 아무리해도 적응이 안 되었다. 이 교실의 모든 시선이 숨을 죽인 채 마코토와 이 목소리만 큰 까까머리 후배를 향했다.


 "하지만 형님께 불러드리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 저 연습해왔는데... "


 야, 왜 갑자기 여린 척 하고 그래! 그리고 니가 내 남친이냐! 나때매 노래는 왜 연습해오는데! 


 마코토는 왠지 여기서 빼면 자신이 나쁜 놈이 될 것만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엄마한테는 친구네 집에서 숙제하다 간다고 문자해야겠다. 사실 일학년때부터 주변에서 '불량서클에 소속되어있는 아이'로 낙인 찍혀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사겨보지 못한 마코토는 친구네 집, 이라는 단어를 문자로 치다 괜시리 눈시울이 울컥해졌다. 이게 다 입학식날 안경을 끼고 가지못한 제 책임이긴 했지만..


 그러니까, 벌써 이년전. 고등학교 입학식 당일이었다. 중학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는 혼자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고, 고등학교에 가서 새 친구를 사귀어야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하고 두렵기도 해서 그 날 밤은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아슬아슬하게 입학식에 참가할 정도의 시간이었고, 마코토는 준비는 얼른 마치고 학교로 향하려했지만 도무지 안경이 어디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신이 비몽사몽 옷을 갈아입다가 모르고 장롱에 넣어둔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장롱에 안경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마코토는 무척 좋지 않은 시력임에도 불구하고 첫 날의 지각만은 피하기 위해 결국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등교했다.


 하지만 남들이 행운의 여신의 사랑을 받을 때, 불운의 여신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 마코토는 입학식날이라고 딱히 불운이 피해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유독 그 날 더욱 불운의 여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안경이 없어서 사람형체만 흐릿하게 보이는 와중에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의 발을 마코토가 실수로 밟아버렸고, 하필이면 입학식날부터 양아치와 시비가 붙은 마코토는 미안하다는 의미로 머리를 숙인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불량그룹 우두머리에게 박치기를 한 꼴이 되서 더더욱 양아치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양아치무리가 자신에게 손을 대려하자 마코토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팔과 다리가 막 나가는데로 휘두른 것 뿐이었으나 그 자리에서 양아치무리를 다 때려 눕혀버렸고, 그 이후로 마코토는 불량그룹에 반강제적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물론 마코토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최대한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유대감이니 뭐니를 운운하면서 마코토를 매번 찾아왔고 덕분에 반친구들은 마코토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삼학년이 된 지금은 자신이 불량서클의 우두머리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아, 역시 이번생은 포기..할까...







"형님 어땠습니까! 제 노래가! "


 솔직히 돼지 멱따는 소리인줄 알았어, 라고 하기엔 마코토 자신은 그만한 깡이 없어서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잘 들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에 더욱 감동받은 까까머리 후배가 다음에는 더 좋은 곡으로 준비하겠다며 이상한 곳에서 열의를 태웠다. 삼분간 도무지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마코토는 머리가 아파져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자신의 열렬한 빠돌이임이 분명한 까까머리 후배는 그러면 저도 같이 가겠다며 마코토의 뒤를 따랐다.


 같이 나란히 소변기에 서서 볼 일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코토는 굳이 좌변기로 들어거 볼 일을 보고 있는데, 한순간 칸막이 너머로 까까머리 후배의 허밍-이라고 볼 수 없는 지옥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한 순간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버렸다. 뭐, 뭐야. 급작스러운 전개에 마코토는 당황해서 얼른 볼 일을 보고 칸막이 밖으로 나왔다. 그 곳에는 까까머리 후배에게 멱살이 붙들려있는..... 


"세나 이즈미...?"


 세나 이즈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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