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님께서 신청해주신 리츠마오 짧은 글입니다.

*주제는 비오는 날입니다.









"이왕이면 마군이랑 놀러가고 싶었는데."


 리츠는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덤덤한 듯 말을 꺼냈다. 사실 저렇게 덤덤한 척 하고 있어도 꽤나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리츠와 거의 십년을 넘게 한 마오는 잘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원지에 놀러가기로 한 날 이렇게 큰 비가 올지는 자신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 걸. 어제까지만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어째서 내려도 오늘 비가 내리는 걸까ㅡ 하고 실망스럽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마오는 리츠를 먼저 달래는 것이 우선이라서,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비내리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리츠의 곁에 자신도 쭈그려 앉았다. 


"유원지는 다른 때에 가도 되니까 그렇게 실망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 동거한지 일주년인데. 표도 다 사뒀는데..."


 리츠는 제 바짓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둔 표를 꺼내 마오의 눈 앞에 팔랑팔랑 흔들었다. 표에 잡혀있는 주름들이 리츠가 유원지에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가를 증명해주는 것 같아 마오는 괜히 제가 미안해졌다. 분명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풀이 죽어있는 리츠를 보고 있으니 소풍취소된 아들내미를 보고있는 어머니의 심정마냥 가슴이 따끔따끔했다. 할 수 있다면 날씨를 바꿔서라도 유원지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자신은 신이 아니니까 그건 무리다.


"DVD라도 빌려와서 영화라도 볼까?"


 마오는 리츠의 우울한 기분을 전환시켜주려고 요 앞 DVD가게라도 가서 영화라도 빌려볼 것을 제안했다. 리츠는 그다지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푸딩도 사도 돼?하고 묻는 것은 옵션으로.  간식 하나 사먹는 것 까지 제게 허락을 구해오는 리츠가 귀여워져서, 마오는 물론이지-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마오가 먼저 일어나 외투를 챙기려하자, 리츠는 마오쪽으로 양 팔을 크게 뻗었다.


"마-군. 나 일으켜줘."

"일어나는 것 쯤은 좀 혼자 해라."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마오는 리츠의 양 겨드랑이를 끌어안아 끙차- 하고 리츠를 일으켜 세웠다. 리츠를 일으켜 세우자, 리츠는 그대로 폭 마오의 품에 안겨왔다. 으으응- 마군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다니 너무하잖아-하곤 리츠는 새끼고양이마냥 마오의 목덜미에 머리를 한껏 부볐다. 대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얼굴이 붉어진 마오가 리츠의 몸을 밀어 리츠를 떼어내려 했으나 도저히 리츠는 제게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얘는 운동도 싫어하는 게 어디서 이렇게 힘을 키워오는 거야.. 그나저나 얘 좀 체중 늘어난 것 같은데. 


"리츠, 너 점점 무거워 지는 것 같다. 요새 야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거 아니야?"

"음, 진짜? 그럼 운동이라도 할까."

"무슨 운동? 너 운동하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섹스가 그렇게 칼로리소모가 높다던데"

"사쿠마!!"

"에, 장난이야 장난."


  사실 그렇게 장난인 것만도 아니지만, 하고 마오가 기겁할 만한 사족을 덧붙이며 리츠는 마오의 품에서 떨어져 쇼파의 행거에 걸려있는 얇은 가디건을 아무렇게나 주워입었다. 가디건의 안감과 겉이 뒤바뀐 채였지만 리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슬렁슬렁 현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예리한 마오의 눈에 걸려 그것을 지적당하고 말았다.


"리츠! 너 뒤집어 입었잖아."

"음, 아, 그러네. 귀찮으니까 이대로 가자."

"같이 다니는 내 입장은 생각 안하냐!"


 진짜 손이 많이 간다니까- 라고 잔소리하면서도 마오는 다정한 손길로 리츠의 팔을 들어올려 가디건을 벗겨냈다. 어떻게 이 상태로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한 건지! 마오는 가디건을 뒤집어 리츠에게 다시 입히며 이것저것 쫑알쫑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모습이 흡사 신데렐라의 계모와도 같아서 다른 사람의 반응에 둔감한 리츠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불만스럽다는 듯 말을 뱉었다.


"으으 마-군 시끄러워."

"네가 제대로 하면 이런 일도 없.."

 

 뒷 말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리츠의 입술이 쉴새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던 마오의 입술을 막아버렸기 때문으로 마오는 그대로 굳어있다가 농밀히 혀를 섞어오려는 리츠때문에 그제서야 정신차린 듯 화악- 리츠를 밀쳐냈다. 


"마-군은 부끄럼쟁이. 이제 키스는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마오는 어릴때는 너무나도 순진하게 자신을 따랐던 리츠의 얼굴을 잠시 떠올려보다, 누구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입술을 번들거리며 농염한 눈빛으로 마오의 위아래를 훑고 있는 지금의 리츠와 비교해 보았다. 얼굴은 그때 그대로 잘 자라 준 것 같지만.. 


"마군, 우리 오늘은 영화말고 섹스할까?"


 아. 내가 어릴때 부터 호랑이 새끼를 주워길렀구나.. 어릴 때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결국 그 귀여운 얼굴에 넘어가버린 내 탓일까.. 


 비는 점점 잦아들었지만, 어째선지 마오의 마음은 점점 착잡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