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사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지하실은 넓었으므로 혼자서 다 청소하기는 무리였기에, 츠카사는 강단의 주변을 기점으로 열심히 쓸고 닦았다. 교회에서 자주 쓰는 긴 의자를 한 번 닦자마자 걸레가 금방 시커매졌다. 이대로 닦다간 정말 끝도 안나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원래 좀비란 체력과 쓸모없는 생명력만 넘쳐나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츠카사는 물이 담긴 큰 양동이에 시꺼매진 걸레를 푹 담궜다가 꺼내 손으로 주욱- 짜냈다. 꾸정물이 뚝뚝 양동이로 떨어져서, 물이 금방 탁해지고 말았다.

 걸레질을 끝마친 뒤에는 창고에서 꺼내 온 부드러운 붉은 카펫을 입구에서 강단까지 깔았다. 카펫은 신부와 신랑이 입장하기 위한 용도로, 결혼이란 것은 해 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던 츠카사지만 서재에 있는 책을 찾아 조사 해보니 인간의 결혼식은 대략 이런 형태로 하는 것 같아 지하 창고를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카펫 이외에도 지하실을 인간들의 결혼식장처럼 꾸미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의 울타리 즈음에 피어있던 흰 제비꽃도 꺽어와 곳곳에 장식했고, 촉감 좋은 융단도 내빈석 곳곳에 깔았다. 물론 내빈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츠카사는 인간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제 신부에게, 가장 최고의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은 좀비건 인간이건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밤이 되서야 그럴 듯 하게 결혼식장이 완성 되었다. 흑백이 주로 쓰인 결혼식 장은 얼핏보면 장엄한 종교 집회와 같은 이미지를 가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도들이 하나씩 나와 교주에게 자신의 죄를 고할 것 같은 신성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츠카사는 이만하면 혼자 준비한 것 치곤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일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선 일찍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츠카사는 침실로 돌아가 옷장에 있던 가장 부드러운 실크잠옷을 몸에 걸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뭍었다. 이 넓기만 한 침대도 이제는 끝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츠카사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살풋 걸려있었다.



*



 츠카사가 자신의 신붓감과 다시 조우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도 그 인간 남자는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간 여자와 함께 큰 바구니를 양 팔에 끼고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츠카사는 울타리에 피어난 담쟁이 덩굴 뒤에 숨어 그들을 살폈다. 여전히 그들은 저 하늘을 닮은 쾌청한 웃음을 피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이제 자신도 저렇게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츠카사는 조금 주변을 살피다 이내 격리지대와 안전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섰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정말 방어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울타리였다. 이러니 항상 좀비들이 조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안전 지대를 침범하지.

 츠카사는 천천히 남매에게 다가섰다. 둘은 등을 돌린채로 한참을 독버섯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 빠져 츠카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보였다. 남자쪽이 이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자 쪽에게 훈계조로 말하고 있으니, 여자 쪽도 지기 싫은 지 얼굴을 붉힌 채 조금 부투룽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시시덕거리더니, 지금은 싸우고 있네. 츠카사는 인간들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의아함을 품으며 한발짝, 두발짝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탁- 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꽤 크게 숲을 울리는 소리에, 남매가 반응을 했다. 

 우선 여자 쪽의 비명이 먼저 들려왔다.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츠카사가 만나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보았을 때 얼어 붙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둘 중 한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얼어 붙는 쪽의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잠시 얼어붙어 츠카사를 멀뚱히 바라보며 사태파악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사태파악을 끝마치고 여동생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응이다. 츠카사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인간들을 볼 때 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자식을 감싸는 부모들을 식량으로 삼을 때는 조금 입맛이 떨어지곤 했다.

"루카, 넌 어서 달려나가. 여긴 내가 맡을게."
"하지만 오.."
"어서!"

 츠카사는 남매의 대화 내용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매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리 달려봤자 그 약한 인간의 체력으로는 자신들과 견줄 수 없는 데 인간들은 한 명이 희생하면 한 명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제 오빠의 호통에 조금 겁먹은 듯 츠카사와의 반대편을 향해 무작정 뛰어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츠카사의 앞을 가로막고 츠카사의 관심을 루카에게서 돌려내기 위해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자세를 취했다. 여자쪽은 별로 관심도 없고 이대로 쫓아가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츠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신붓감에게 다가섰다. 나는 그냥 당신만 원할 뿐 인데.

 이내 처절한 고함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

 츠카사는 침대에서 곤히 눈을 붙이고 있는 남자의 옷주머니를 뒤져 약간의 소지품을 찾아냈다. 열쇠와 지갑, 그리고 이 지역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그 중 지갑에는 약간의 돈과 신분증, 그리고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아까본 그 여자애가 같이 찍혀있었으므로 츠카사는 아마 가족 사진일 것이라 판단했다. 사진을 다시 지갑속에 고이 껴두곤 츠카사는 신분증을 손에 들었다.

'츠키나카 레오'. 츠카사는 자신의 신붓감의 이름을 낮게 읊조려 보았다. 레오, 레오.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려지는 그 음이 마음에 들었다. 츠카사는 레오의 옆머리를 귀 뒤로 다정히 넘겨주었다.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고 있는 달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레오는 마치 밤을 관장하는 여신과 같았다. 그는 밤을 훔쳤다.

 레오는 츠카사에게 물린 상태로, 현재는 죽어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몸의 살점들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며 좀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좀비가 된다는 걸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하기도 우습지만 여하튼 레오는 내일이면 아마 살아날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결혼식을 올리자. 이 아름다운 신부와, 내일,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자.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자. 네가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너도 나처럼 모든 기억을 잃고야 말겠지. 그 땐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줄게, 레오. 나의 신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