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어릴 적 부터 내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사춘기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야 에이치와 친하게 지내라는 아버지의 명령도 있었고, 에이치는 여러모로 나보다 훨씬 잘나고 인기도 많은 놈이었기에 이 쪽에서 오히려 에이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에이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게 친구로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인가?'하는 의문이 피어 오르기가 반복되고, 직접적으로 '너 좀 이상해, 친구끼리 이러는 거 좀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에이치는 나에게 농익은 연정을 품었을 때로 에이치에게,

' 좋아해'

 라는 고백을 받았다. 물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이라니. 딱히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나 자신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 해본 적이 전혀 없었고, 출산 능력이 없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평생을 사로 잡혀있던 나에게 절대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선 나는 여자가 좋았다. 여자의 알몸 사진이 잔뜩 박혀져 있는 성인용 잡지를 몰래 침대 밑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 마다 그것으로 종종 자위를 하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어디서 듣기론, 사춘기 무렵에는 우정과 사랑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데서 생기는 질투심을 '사랑'으로 잘못 착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에이치도 그런 부류겠거니 하고 어렴풋이 넘겨 짚었다. 아무래도 에이치는 당시에는 몸이 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고 있었기에, 매번 병실에 들러 이것저것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들을 챙겨주는 내가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어리석게도 가볍게 넘겨짚고 말았다. 그 뒤로 에이치는 다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므로 역시 나는 에이치가 당시에 우정과 사랑을 착각해 우발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구나-하고 안심했다. 최근까지는 말이다.





 우리 집은 꽤 유서깊은 가문이기 때문에 내가 혼기가 차자마자 고리타분하게도 결혼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꽤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여서 나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아름다운 여성과는 절대 눈 한 번 못 맞춰 봤을 것이 뻔해서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고분고분 이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혼수이야기도 오가고 결혼식 날짜도 잡히고, 그렇게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니 주변에선 '니가 벌써 결혼을 하냐?'라거나 '축하한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 중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에이치에게서 만큼은 회답이 오지 않아서 나는 내심 에이치가 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돌아간 제 아버지를 대신해 텐쇼인 가의 실질적 소유주 자리를 인수인계 받느라 바쁘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이십년을 넘게 알아 왔던 친구이니만큼 축하한다고 문자 하나 보내주지 않는 것이 내심 섭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이치가 찾아왔을 때는 결혼 식이 얼마 남지 않은 불특정한 날의 아주 늦은 밤 시간이었다. 나는 유카타 한 장만을 품위없게 걸치고 있던 채로 대문을 열었는 데 못 본 시간 동안 많이 핼쓱해진 에이치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고요한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몇 달만에 얼굴을 비친 소꿉친구가 반가워서 입으로는 왜 이런 밤 중에 찾아왔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내심 기뻐하며 그를 집 안으로 맞아 들였다. 사실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요새 많이 바쁜가보다? 그래도 친구 결혼한다는 데 문자 하나는 좀 줄 수 도 있었잖냐."

  나는 내 방 테이블에 앉은 에이치에게 직접 끓인 차를 내주며 내심 장난인 척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뱉었다. 평소같았으면 유하게 웃으며 '미안 요새 좀 바빠서'라고 대답해주었을 친구였으나 그 날은 어딘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에이치는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나는 에이치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최근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하고 자신을 성찰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치에게 잘못한 것이 없자 나는 단순히 에이치가 피곤해서 저런 것일거라고 생각해서 녀석을 웃게 해주려고 어줍짢게 알고 있던 농을 하나 건네려고 했는데 마침 에이치가 입을 열었기에 그것은 무산이 되었다.

"하스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낯설었다. 어릴 적 부터 한 번도 녀석이 나를 성으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인가.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는 종종 '하스미'라고 불리고 있으면서 어쩐지 녀석이 부르는 '하스미'는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이질적으로 들렸다. 

"하지마."

"뭘?"

"결혼말야."

 무리한 것을 말하는 주제에 녀석의 목소리는 꽤나 당당하기까지해서, 나는 내심 결혼이 이제 사회적으로 용인 될 수 없는 나쁜 짓으로 낙인 찍힌건가?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결혼이 나쁜 짓일리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 받아야 마땅한 일생일대의 기쁜 행사이지 않는가. 그런데,몇달 만에 얼굴을 비춘 소꿉친구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의 파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신이 어떻게 됐냐? 이미 결혼 이야기 다 오고가고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무슨 니가 결혼을 하라마라야."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에이치를 쏘아 붙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억 저편의 어딘가에서, 에이치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덜 여문 사춘기의 어느 날을 회상해냈다. 설마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할 셈인가?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쭉 돋았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친구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연인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단순히 녀석이 아직은 이성에게 흥미가 없을 뿐 언젠가 녀석은 자신처럼 참한 아가씨를 만나 좋은 자신을 닮은 유순한 아들 딸 두 명을 낳고 나와 인생의 동무로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누군가에게 흥미가 없던 게 아니라, 십년 전 나에게 고백했던 그 시점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른 시점부터 녀석이 '나에게만' 오롯이 흥미를 보였던 거라면?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졌다, 당장이라도 십수년 전 처럼 녀석이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올 까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텐쇼인 에이치는, 가끔 무서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 말랄 때 하지마. 정말로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붙잡아 두는 수가 있어."

 얼어 붙은 나를 뒤로 한 채 에이치는 '그럼, 차 잘마셨어'하고 다시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나에게 인사를 건내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날 그렇게 떠나버린 녀석의, 생각보다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녀석이 내게 보인 집착의 크기에 무서워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녀석이 뱉은 말 하나 하나까지 잘 곱씹어 보았어야 했다. 녀석은 어렸을 때 부터 괜한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뒤로 내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하루 아침에 멀쩡하게 불어있던 팔 다리를 잃었는가-하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짧은 과정과, 현재 나와 에이치의 관계와 행위 관한 현상 파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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