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사가 '그것'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산책하던 도중이었다. 츠카사는 한 눈에 그것이 자신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들은 츠카사들을 '좀비'라던가 '괴물'등으로 불러 오는, 자신들 스스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무리였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구분하는지 츠카사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츠카사는 왜 '좀비'라고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고 소멸시키려하는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저들을 식량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가? 츠카사는 작은 인간 여자에게 미소지으며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인간 남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개나 돼지, 닭 등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인간은 왜 우리를 해치려 드는 걸까. 그것은 오래전부터 츠카사의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채로 남아있는 하나의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직접 연구해 볼 기회는 오지 않았으므로 츠카사는 오래전부터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딘가 간지러운 부분을 긁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 곳을 오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인데, 저 인간 남매는 어째서인지 이 곳을 잘 아는 사람들 마냥 풀 숲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여러 빛깔의 버섯들과 산과일들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댔다. 또한 자기들이 담은 버섯들을 꺼내 서로 비교하다 입꼬리를 올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무언가 재잘거렸다. 인간에 대한 츠카사의 두번째 궁금증은, 인간은 어째서 저렇게 얼굴을 다양하게 바꾸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자기의 기분에 따라 바꾸어낼까-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게 되어버린 '격리지대'에는 예전에 살던 인간들이 남긴 건물터나 물건들이 상당수 존재했는데, 그 중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묘사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그러한 택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수치심, 경멸, 사랑 등의 단어를 습득해나갔지만 글자만 가지곤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는 다르게 참으로 복잡한 감정선을 지녔다. 츠카사는 그래서 인간이 참으로 부러웠다.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츠카사는 울타리 너머에서 버섯을 따는 남매를 보며 저둘을 감싸고 있는 조금 따듯한 공기가 '기쁨'이라는 감정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책의 삽화에서 봤던 것과 유사해보였으므로. 


 츠카사는 남매를 관찰하다 그들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호선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쁨'이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츠카사는 밤잠을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인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부러움일까. 츠카사는 푹식한 베개에 머리를 묻곤 높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그 인간을 '먹고' 싶은 것일까. 츠카사는 여러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이 책장에는 모두 빽빽히 책이 꽃혀 있었다. 인간들이 남기고 사라진 이 서적들은 츠카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였음에도 츠카사는 책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격리지대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새로운, 최신의 책을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츠카사는 때때로 새로운 책이 필요한 날에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도 했다. 


 인간의 글은, 처음부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츠카사는 그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처음에는 '인간'이었을까?. 츠카사는 자신이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신기해져서 종종 아무런 소리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제 서재의 발코니에 걸터 앉아서, 인간 세상이 가장 잘 보이는 쪽을 내다보곤 했다. 푸른 어둠이 얕게 덮은 인간세계는, 이 곳과는 다르게 참으로 고요하기만 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생활리듬이 달랐으므로, 밤에는 다들 쉴새없이 놀리던 입을 다물고, 눈을 살포시 닫은 채로 편안한 단잠에 빠져버린다-,고 책에 쓰여 있었다. 그래서 츠카사는 되도록 밤 시간에 잠을 자려고 했다. 츠카사는 사실은, 인간을 동경했고 그래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최대한 베껴냈다.


 츠카사는 하늘 위에 커다랗게 떠 있는 창백한 보름달을 보며, 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외롭다고 생각했다.



*



  츠카사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마을로 들어섰다. 이 곳은 좀비들도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츠카사는 종종 이 마을을 산책하거나 가끔은 메말라버린 분수대에 걸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인간의 집'이었던 곳에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걷다가, 마을 광장 가까이에 위치한 노랑 지붕 집이 눈에 들었다. 무단침입이었지만, 츠카사는 어디선가 책에서 봤던 내용대로 '실례합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말을 꺼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먼지가 잔뜩 쌓여 매캐했고, 겨우 자그마한 창문 구멍만이 온 햇빛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의 반의 반도 안되어보이는 집의 크기에 츠카사는 인간들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뭉쳐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인간이었을 적엔 이렇게 조그마한 집에서 이렇게 조그마한 식탁에 둘러 앉아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을까. 때로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불평도 하고, 좋아하게 된 급우에 대해 부모님께 조잘거리며 그렇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았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 분했다.


 츠카사는 작은 토끼모양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여져 있는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익-. 경첩 녹슬었는지 문이 부드럽게 열리질 않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발산했다. 츠카사는 집 안에 들어왔던 걸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아마 여자아이의 방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인형과 동화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쪽 벽지엔 핏자국이 흥건히 베어있어 아마 여기서 좀비에게 일가족이 몰살 당했을 거라고 추정하게 했다. 


 츠카사는 담담히 그것을 바라보곤 이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동화책 중 하나를 골라 침대에 걸터 앉았다. 츠카사가 풀썩 침대에 앉자 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몇년을 쌓여져서 묵혀졌을 먼지는 츠카사의 작은 행동 하나에 금방 그 세월의 축적을 파기당해 버린다. 


 츠카사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동화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여기도 여전히 '기쁨'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은 기쁨이 무엇인지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는데 인간 세계에는 왜 이렇게 기쁨, 행복,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은 걸까. 츠카사는 표지를 한 장 넘겨 책을 읽어내렸다. 아동용 책이라 별 다른 노력없이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불행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가 '결혼'을 통해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해 진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지는 걸까? 나도, 신부를 얻으면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츠카사는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여자와 남자가 활짝 웃으며 궁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채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삽화를 단아한 손끝으로 조용히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