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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6[이즈마코] 마왕님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걸 016
  2. 2016.03.24[스바코가] 개와 함께 춤을
  3. 2016.03.20[레이코가] 오이디푸스 01
  4. 2016.03.18[미카슈/R-18] 무제
  5. 2016.03.16[이즈마코] 수취인 S
  6. 2016.03.13[이즈마코] 슬침연 썰
  7. 2016.03.10[에이케이] 군주론 01
  8. 2016.03.05[이즈마코] 슬침연(膝枕緣) 02
  9. 2016.03.03[이즈마코] 슬침연(膝枕緣) 01
  10. 2016.03.02[이즈마코] 우상철회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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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마왕님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걸 01








 마왕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로만 한정짓기에는 송구스러울 만큼, 인간계의 내노라하는 미녀들을 다 데려다 그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서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어도 저 남자만의 발끝에도 못 닿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잠시 이 곳이 마계가 아닌 천상계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손에 쥐고있는 피로 얼룩진 장검이 얼른 마왕의 목을 따버리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신비로운 마력에 사로잡혀 마왕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용사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몇년 전 일이라 흐릿하지만, 아마 그것은 마왕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물들이 인간계를 침범해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마왕 본인이 인간계로 넘어오는 일은 없었고, 마왕을 잡으러 갔던 용사들은 단 한명 돌아온 이가 없었기에 마왕에 대해서는 소문만 자자할 뿐이었다. 아마 그 때 배우고 있던 책에서는 '마왕은 너무나 용모가 끔찍하여 그 용모를 본 사람들은 기절한다고 한다. 그러니 마왕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흉측한 것에도 단련이 되야 한다.'라고 써져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 반대였다. 마왕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라도 몸이 경직된다, 라고 고쳐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인간계에 돌아간다면 그 책의 저자를 찾아가서 이 구절은 잘못되었다고 일러주리라. 물론 살아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보였지만. 


 솔직히 마왕성에 들어왔을 때는 마왕도 쉽게 생각했다. 잘하면 내가 마왕의 목을 따고 돌아가서 나라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래봬도 나는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용사였고, 여기까지 무수한 마수들과 싸우면서 결국 끝에가서는 다 처리했으니 이런 자만감이 붙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마왕을 보자마자 나는 용사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이것은 백이면 백 다 지는 싸움이라고. 앞서 물리쳐왔던 집채만한 마수들보다 나와 비슷한 체격을 지니고 있는 저 마왕이라는 남자가, 훨씬 강했고 훨씬 위험했다. 


 아아,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죽음은 각오하고 왔지만 어째서인지 막상 죽어야한다니까 도망치고 싶은 심경이었다. 이대로 도망쳐버릴까? 하지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여기에 나를 묶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초인간적인 존재라는 걸까. 수천년을 살아온 마왕에게 수십년밖에 못사는 인간이 덤비기에는 역시나 무리란 말일까. 그래도, 그래도 살고 싶었다. 집에 돌아 갈 수 있다면, 스바루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싶었고 호쿠토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아주 오래전에 마오라는 애도 마왕성 토벌군에 합류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아이도 이 마왕을 봤을까? 아니면 마왕성에 도착하기 이전에 죽어버린걸까?


  " 흐응 -. "


 마왕이 눈을 떴다. 아마 애초부터 잠자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금방이라도 날 덮쳐올 정도로 생생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왕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 미소는 이미 승리자의 미소였다. 마왕은 져본적이 없으리라, 수천년동안 그 누구에게. 


 마왕, 그는 웃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이즈마코] 마왕님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걸 01

                   w. mesk 












 "아 진짜아! 글쎄 이런거 필요 없다니까요? 여자도 아니고 꽃다발이 뭐예요 꽃다발이!"

 "하지만 이건 마왕님이 용사님을 위해, 백년에 한번 핀다는 꽃 암브로스를 꺾어다 만든…"

 "아 글쎄 내가 여자도 아니고! 됐다고요!"


 꽃다발을 다시 받아든 마수의 표정이 슬픈 듯 축 쳐졌다. 그래봤자 인간들의 눈에 보기엔 흉측한 표정이지만. 여하튼 암브로스인지 브로맨스인지 그게 얼마나 귀한 꽃인지는 몰라도, 남자가 준 꽃다발은 결단코 받기 싫었다. 줄거면 아리따운 쭉쭉빵빵한 누님이 주면 좀 좋냐고! 마계에는 예쁜 애도 없냐? 마왕한테 다 얼굴 몰아주기 하고 있냐? 이런거 줄거면 좀 예쁜애한테 시켜서 보내든가, 금방이라도 사람잡아먹을 거 같이 생긴 마수를 통해 전달하는 건 또 무슨 심보래. 나는 축 쳐져있는 마수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전한 뒤 문을 쾅 닫아버렸다.


"마코토님.. 이대로 돌아가면 마왕님이 절 죽이실 지도 몰라요.."


 문밖에서 우는 소리가 집안으로 흘러 들려왔다. 알게뭐냐, 마수의 죽음따위 오히려 기쁘거든? 이라고 대꾸해주고 싶었으니 기본적으로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어느새 나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이미 내 손은 문을 열어서 마수에게서 다시 그 꽃다발을 가져가고 있었다. 마수는 방긋 웃으며 '살았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그 웃음마저 흉측하게 보였지만. 하여튼 마수는 제 임무를 다하고 뒤를 돌아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녀석들도 나름 귀여운 놈일지도 … 라고 생각하는 내 머리를 쥐여박고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용사인 나와 마수인 저들이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사건은 위로 거슬러가서 내가 마왕의 목을 따려던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흐응 -.'


 나는 곧 죽는다고 생각했다. 마왕은 금방이라도 개미를 밟아죽이려는 아이처럼 즐겁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여전히 나는 손가락 마디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동공만을 움직여 내가 겁에 질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마왕은 왕자에서 사뿐히 내려왔다. 그는 합리적이게 오만했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나는 최고야, 라는 오만함이 묻어있었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동안에도 시선은 나에게서 떼지 않은 채로 마왕은 신중히 나를 훑었다. 그리고 내 눈 바로 앞까지 그가 다가오는 순간,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아름다운 피사체에 대한 경외감에 몸을 부르르 떨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인간은 몇 안되는데, 보기보다 실력이 있나보네?'


 마왕은 검지손가락으로 내 턱을 좌우로 돌리며 뜻밖에도 내 실력을 칭찬했다. 방심하게 만든 다음에 죽이려는 속셈인가 이녀석.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죽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죽여도 될 것이다. 아니면 인질로 삼겠다는 건가? 하지만 나따위를 인질로 삼아서 뭐하게? 나는 일개 용사일 뿐이다. 나라에서 나 하나를 구하려고 귀중한 국력과 돈을 투자할 리가 없다. 


 '이름이 뭐야?'

 '유ㅡ 유우키 마코토.'


 입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내 이름이 유우키 마코토였나. 머리가 멍해졌다. 마왕의 얼굴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것에 감명한 나는 주륵- 눈물을 흘렸다. 마왕의 입술이 내게 닿았다. 말캉, 생각보다 마왕의 입술은 별 다를 것 없이 인간에 가까웠다.



 "으아아아아아아!! 그거 내 첫키스였다고!!"


 나는 암브로스인지 브로맨스인지 하는 꽃다발을 거실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쳤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온몸에 닭살이 오소소 돋고, 얼굴이 벌게지고 개미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아 진짜 죽어! 얼굴만 예쁜 변태새끼! 예쁘다고 생각한 내 뇌를 뜯어버리고 싶다. 그런 스토커새끼가 뭐가 이쁘다고 으아아아아! 솔직히 가장 죽이고 싶은건 그 키스에 느껴버린 나지만. 누가 그런식으로 키스해 올 지 알았겠냐고! 내 키스 돌려내 이 사이코 마왕자식!




*




 "네?"

 "마계에 다녀오라고. 왕명이다."

 "싫다면요?"

 "음. 이자리에서 당장 네녀석을 죽이는 수 밖에."

 "으아아아! 농담이거든요 농담. 농담도 못합니까?"


 목 바로 앞에 멈춰진 검을 보며 나는 덜덜 떨었다. 쿠누기대장님은 진짜 나를 베어버리기라도 할려는지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낮에는 대장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밤에는 마왕에게 동정을 위협받는 처지라니. 이렇게 불쌍한 처지가 세상에 어딨어, 흑흑흑. 


 "그럼 다녀온다고 한거다?"

 

 네 그럽구말구요. 나는 제발 내 목앞에 있는 이 검 좀 치워달라는 눈빛으로 쿠누기대장님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은 검을 내 목에서 거둬 칼집에 넣어두더니 이내 툭-하고 무언가를 던졌다. 보따리였다. 응? 이건 왜..


 "자, 갔다와라."

 "지금부터요?!!?! 아니 저 옷가지도 안챙겨왔 …"

 "불만있냐?"


 다시 칼집에 꽂아둔 칼로 손을 가져라려는 대장님의 행동에 '아니요 불만 없습니다, 흑흑'하고 눈물을 흘리며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지독한 사람들이랑 엮이는 걸까. 아니 한명은 이미 사람이 아니지만... 얼마 전에 미도리가 저승으로 훅 가는 약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디서 구했냐고 좀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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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코가] 개와 함께 춤을









 드르륵- 한적한 시골동네에 드물게 거슬리는 소음이 포장도 안 된 길가를 울렸다. 그것은 곧게 다려진 흰셔츠차림의 스바루의 손에 끌려가는 캐리어에서 나는 소리였다. 스바루를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 정류장에 떨군 버스는 카랑카랑 낡은 엔진소리를 내며 다음정류장으로 떠나버렸다. 으아 덥다, 스바루는 셔츠의 옷깃을 팔랑거리며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재빨리 하였다. 정자에서 수박을 쪼개먹고 있던 노인들이 이 시골에서 보기드문 새로운 젊은이의 등장에 수근거렸다. 스바루는 붙임성 좋게 그 쪽으로 다가가서 노인들에게 인사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게 중에 스바루를기억하고 있던 노인이 있었는지 이내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스바루 아니여? 왜 있잖여, 고 마당넓은 집 외손주!"

 "아아, 야가 겨여?"


 이내 다른 노인들도 '흐메 많이컸네'라던가 '멋있어졌네-'라며 스바루를 반겨주었다. 스바루의 손에 가장 큼직한 수박 조각을 쥐여준 슈퍼 아주머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호들갑을 떨며 스바루 본인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스바루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도 욕심이 많아서 제 주먹만한 사탕을 볼 양쪽에 두개씩 넣고 다녔다거나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에에, 제가 정말 그랬어요?' 하고 스바루는 넉살좋게 노인들과 말을 맞추다가 이내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있다간 저녁이 되도 집에 못 들어 갈 것 같았다. 노인들이란 말이 많은 법이니까. 스바루는 일어나서 다시 캐리어를 붙잡고 제 외할머니가 있는 신사로 향했다. 


 외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아래서 녹초가 된 스바루는 집에 들어오자 마자 마루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으아아- 여긴 에어컨도 없을 텐데.나 이대로 잘 지낼 수 있을까-따위의 약한 소리를 하던 스바루가 차가운 마루의 냉기에 조금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일어서서 외할머니를 불렀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 가셨나? 아니면 뒷뜰에라도 계신가? 뒷뜰에 있는 정원가꾸기가 취미인 외할머니였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스바루는 현관에 있던 슬리퍼를 주워신고 뒤뜰로 향했다. 여전히 뒷뜰가꾸기 취미는 유지하고 계시는 건데, 뒷뜰은 온갖 종류의 꽃들이 만개하게 피어있었다. 어렸을 적엔 저것들의 이름을 다 알았는데 지금은 멍청해졌는지 고작해야 해바라기 정도밖에 모르겠다. 


  "할머니 계세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여기도 아닌가? 혹시 창고에 계신가? 아니면 집 안 가장 끝쪽에 위치한 사당에 계신걸까? 스바루가 어디를 먼저 가 볼까 고민하는 사이 무언가 복슬거리는 게 다리 사이로 지나다녔다. 으앗, 뭐야! 하고 깜짝 놀란 스바루가 자세히 그 복슬거리는 털뭉치를 살펴보니 다름아니라 어릴적에 함께했던 개였다. 언제 이렇게 자랐대, 하긴 여기 마지막으로 온 지도 엄청 오래됐구나.  


 얘 이름이 뭐였더라 …, 하고 스바루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개를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다, 다이 뭐시기였던 거 같은데 …, 하고 스바루는 가물가물한 기억력을 더듬어 제 눈 앞의 이 생물의 이름을 찾아내려 애썼다. 분명 자신이 지은 이름인데도 어째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기 때 봤던 것과는 다르게 몸집이 훨씬 커져버려서 그런가? 하고 구차하게 이유를 덧붙여봐도 겉모습이 조금 변했다고 애완동물의 이름까지 잊을 정도면 그냥 치매일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개의 보드라운 몸을 주물거리며 스바루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다이지? 아냐 조금 이름이 길었던 것 같다. 다이키로? 이것도 아니다. 다이..다이..아, 그래 다이키치! 


 "다이키치!"

 "멍!"


 스바루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탄성과 함께 다이키치의 이름을 부르자 다이키치가 멍! 하고 그에 화답했다. 헥헥-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니 아마 이 이름이 맞는 것 같다. 스바루는 조금 멋쩍어져서 다이키치를 든 손을 쭉 뻗어 비행기를 태웠다. 낑낑- 하고 다이키치가 무서워하자 스바루는 히죽 웃으며 더욱 더 다이키치를 높이 쳐들었다. 껭껭, 다이키치가 약하게 짖었다. 그제서야 스바루는 다이키치를 푹신한 잔디에 내려주었다. 경계의 눈으로 스바루에게서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미움받아버린 듯 했다. 이내 다이키치는 스바루에게서 등을 돌려 넓은 잔디밭 마당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버렸다. 에에- . 스바루는 아쉬운 소리를 냈다. 저 아이가 제 손바닥보다 겨우 큰 강아지였을 때는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는데, 조금만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미움 받아 버리다니.


 스바루는 다이키치가 사라져버린 쪽을 바라보다 이내 따라가보기로 결심했다. 다이키치가 밟고 지나간 푸른 잔디들은 조금씩 꺽여져 있어서 찾기가 용이했다. 그러고보니 외할머니는 어디 계시는거지? 스바루는 마당에 나온 본 목적을 깨닫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디 마을이라도 외출하신걸까?


 스바루는 다이키치의 뒤를 좇다가 창고에 도착했다. 아, 창고다! 어렸을 적에 자주 숨어들어 놀곤 했던 낡디 낡은 창고였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 이외에도, 외할머니에게 혼날 것 같은 때면 종종 이곳을 찾아 그 작은 몸을 숨기곤 했다. 여기는 진짜 하나도 안 변했구나 -, 하고 스바루는 키득거렸다.


 집 곳곳에 고집스러움이 남아있는게 제 외할머니와도 같았다. 거의 칠팔년만에 다시 찾는 집이었지만제 어릴적 기억 그대로 일치한다. 흐흐흥- 즐거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창고의 문이 조금 벌어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다이키치가 이곳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아마 잘하면 할머니도 여기 계실지 모른다. 스바루는 끼이익 바닥에 끌리는 녹슨 철제문을 손으로 더 벌려서 그 안으로 들어섰다. 


 멍! 하고 창고 안에서 다이키치의 목소리가 났다. 창고는 창문이 없어서 빛이 안들었기에 스바루는 그 어둠 속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스바루는 더듬거리며 앞으로 몇발자국 나아갔다. 멍! 다이키치가 또 짖었다. 햇빛이 안들어서 그런가, 여기는 엄청 서늘하네…라고 생각한 스바루가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에에, 할머니 여기 계셨어요? 제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 …"

 "뭐냐 네녀석은? "


 스바루는 비명 한 번 못지르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멍! 다이키치가 기절한 스바루의 주위를 맴돌며 시끄럽게 짖어댔다. 남자는 눈썹을 찌푸리며 기절한 스바루의 볼을 손끝으로 꾹꾹 눌러댔다. 

 "얘가 그 할멈의 손주야? 할멈이랑 다르게 되게 띨띨해보이네." 





(다음편...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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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가] 오이디푸스 01




※정확히는 레이아들(라이) x 코가입니다. 





 "라이군은 Y대 법학부에 지원한다고 했었나? 마음이 바꼈다던가 하진 않았니?"


 푸근한 미소를 가진 담임이 학기 초에 조사한 대학희망 종이를 팔랑이며 물었다. 기본적으로 상담가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본직은 화학교사라지만 담임에게는 문과적 소양이 다분해 보였다. 뭐, 그래서 학생들에게 신뢰받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 역시도 담임은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 사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Y대에 가겠다는 마음에 딱히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기에 굳이 입을 열어 에너지 소모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라이군은 성적 좋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부활동만 좀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나저나 라이군정도면 T대도 가능한데 굳이 Y대에 지원하는 이유가 있니?"


 담임은 조금 아쉽다는 어투로 내가 Y대를 지원하는 이유를 물어왔다. 사실 어릴적부터 법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는데 어느날 Y대의 학생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부터 …라던가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Y대가 집에서 제일 가깝고 그나마 좋은 대학이기에 그 곳에 가려고 하는, 무척 재미없고 무기력한 이유였다. 그리고 법학과라고 쓴 것은 그다지 아는 학과도 없고, 관심있는 분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사람한테 지나가는 말로 법학과나 지원할까- 라고 했을 때 반응이 좋았던 이유도 있고. 


 "별로 없어요"


 솔직하게 말해버리자 담임은 잠시 당황하는 얼굴이 되었다. 누가 솔직함이 인간의 미덕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어느정도의 위선으로 살아야 미덕있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법이다. 교실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선생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 솔직하게 살아버리면 평판 나쁜 인간으로 자라버린다. 그 중 하나의 예가 나다. 나는 그다지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은 귀찮다. 그리고 이 예의없는 솔직함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 외모로 용서되는 사회다.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재수없는 내용이지만 나는 겉껍데기만은 훌륭하다. 아마 일본 전역에 있는 기획사란 기획사의 명함은 다 받아 봤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주변에는 내 팬클럽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있는 모양이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있거나 수돗가에서 땀을 식히고 있으면 어디선가 셔터소리가 한두개씩 들려온다. 뭐, 나에게 관심을 가져오는 것은 귀찮긴 하지만 그것을 작정하고 쫓아내는 것은 더더욱 귀찮은 일이므로 가만히 두고 있었다. 이 외모가 가져오는 이점은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얼굴이 지독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아침 거울을 보며 커터칼로 얼굴을 북북 그어버리는 망상을 할 만큼.

 

  이 얼굴은 나의 부친인 '사쿠마 레이'에게서 고대로 물려 받은 것으로, 내 부친의 생전 동창이었던 카오루씨는 가끔 날 보면 '진짜 사쿠마씨 판박이잖아...물론 성격은 반대지만.'이라는 말을 해왔다. 언젠가 봤던 부친의 졸업앨범에선 정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었다. 그만큼 닮았던 것이다. 우리 둘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너무 기분 나쁘게 똑닮아있었다. 차이점은 언제나 올라가있는 아버지의 입꼬리와, 언제나 세상 일에 무력한 듯 살짝 내려간 나의 입꼬리 정도가 아닐까. 차라리 평범하게 생겼던 엄마 쪽을 닮았으면 좋았을걸. 그리고 내가 이 외모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


 






 "왔냐 라이? 오늘 저녁은 카레다."


 현관을 열자 앞치마를 두르고 밥주걱을 든 오오가미가 보였다. 아마 지금 막 밥을 푸려던 중인 것 같았다. 연두색의 앞치마에는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지역의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었다. 방긋웃고 있는 강아지 캐릭터가 '어서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삼년은 넘게 쓴 앞치마라 조금 너덜거렸지만 그래도 난 저 앞치마가 참 좋았다. 오오가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오늘은 좀 늦었다? 혹시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냐?"

 "내가 넌 줄 알아? 담임이랑 상담했어"

 "이자식이 또 싸가지없게 반말이나 찍찍해대는거 봐라.." 


 오오가미는 내 머리에 주먹을 쿵- 쥐여박았다. '어렸을때는 꽤 잘따랐는데…'하면서 혀를 쯧쯧차며 시선을 올려 나를 째려봤다. 삼년 전에는 내가 오오가미를 조금 올려보아야 했는데, 어느샌가 오오가미가 날 올려다 봐야하게 됐다. 이것이 삼년 간 우리 관계의 진전일까, 라고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젠 내가 더 키도 크잖아. 오오가미는 오오가미로 충분해."


 조금 꿍해져서 오오가미에게 툴툴거리니 오오가미의 눈이 잠시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갸웃거리며 내 이마를 제 손바닥으로 집어보더니 '열은 안나는데..'하고 중얼거렸다. 아마 최근 더욱 심해진 나의 투정이 오오가미에게는 어디가 아픈걸로 비춰지는 모양이었다. 바보. 멍청이. 오오가미는 멍청하다. 가끔 국에 설탕과 소금을 구별하지 못해서 설탕을 부을 만큼 멍청하다. 서른 후반의 나이가 되었어도 무서운 영화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멍청하다. 언젠가 곰국을 끓이다가 외출해서 집을 홀라당 태워버릴뻔 했을 정도로 멍청하다. 그리고, 이제는 너에게 존칭하지 않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정말로 오오가미는 멍청하다. 








 "이제 곧 있으면 니 부모님 기일이네. 금요일인거 같던데. 학교끝나고 바로 올 수 있냐?"


 카레는 조금 싱거웠다. 후각이 예민한 오오가미는 향신료가 강한 요리는 항상 싱겁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오오가미가 만든 카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밑반찬으로 나온 마늘장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귀가부였고, 방과후에 딱히 삼삼오오 모여서 어디를 놀러가는 체질도 아닌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부모 기일에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 것은 낳아준 부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의 부모는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외투를 껴입지 않으면 안되는 이 늦가을에 죽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고 한다. 둘은 교토로 단풍을 보려 내려간 모양이었고, 그 곳에서 취객이 운전하는 차에 들이받혀져 그대로 그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오오가미의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 딸랑이나 가지고 놀면서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어린 나를 데리고 긴시간 차 여행을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던 내 부모님의 처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다. 아니, 사실은 그때 죽어버리는 것이 좋았을까?

 

 원래 내 부모의 재산도 상당했거니와, 보험금까지 나와서 솔직히 나는 고아치고는 분에 넘칠듯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살던 집은 너무 커서 이미 예전에 처분해버렸지만, 지금 살고있는 이 집도 두명이 살기에는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 될 만큼 컸다. 실질적으로 이 집을 계약한 오오가미의 말로는 이 집의 정원이 레온이 뛰어다니기 좋을정도로 커서 이 집을 골랐다고 한다. 정말 단순한 이유였다. 


 지금 그 레온은 죽고 없어서, 마당 한 켠에는 빈 개집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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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슈/R-18] 무제


*캐붕

*r-18






 이츠키의 연약한 유두가 손가락의 마찰에 의해 쓸렸다.  우웅, 뭐야, 카게히라.. 너 너무 거칠잖아, 하고 이츠키는 조금 얄궂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가장 흥분되는 건, 험하게 다뤄지고 있는 자신이었다. 유두의 돌기를 지분거리고 있던 카게히라의 손가락은 목선을 타고 얼굴로 올라오던니 이내 입술을 지분거렸다. 적절히 본능적인 교성을 쏟아내고 있는 이츠키의 입술은 적당히 도톰해서 만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숙한 무언가를 자극하는 그것이 있었다.


 카게히라는 참지못하고 급하게 손가락 두어개를 신음하는 이츠키의 입에 쑤셔 넣었다. 침으로 범벅된 점막이 손가락을 통해 만져졌다. 그것을 요령좋게 훑으면 이츠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손가락을 입의 흡입을 이용해 애무하고 있었다. 아아, 이거 말고 좀 더 큰 걸로-, 라고 귀엽게 조르는 목소리를 내며 이츠키가 정성을 다해 카게히라의 손가락을 빨았다. 보상으로 무언가를 더 바라는 듯 이츠키는 카게히라의 눈치를 종종 살펴가며 그의 손가락을 새끼 고양이처럼 할짝할짝 핥았다가, 좀 더 자신의 목젖까지 닿을 수 있도록 제 입 안에 넣고 빨았다가를 반복했다. 조급해 하는 이츠키의 모습을 보고있으면 이쪽에서도 그다지 절제되지 않아서 카게히라는 재빨리 벨트를 풀고 제 사타쿠니쪽으로 이츠키의 뒷통수를 가져다 댔다. 


 영특하게도 이츠키는 입으로 카게히라의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빨로 조심스레 지퍼 끝부분을 내리며 카게히라를 바라보는 이츠키의 시선에는 앞으로 얼마나 자신이 엉망이 되게 될 지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츠키는 조심스레 두 손으로 카게히라의 물건을 잡아 들었다. 아직 발기하지 않은 상태라지만 그 크기는 언뜻보기에도 꽤 위험해 보였다. 이런 물건이 제 구멍에 와서 꽂힌다니, 상상만해도 뇌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릴 것 같았다. 얼른 이 훌륭한 남근을 맛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 심장이 활어마냥 팔딱 뛰었다. 결국 이츠키는 잠깐을 참지 못하고 카게히라의 것을 제 입에 가져다 물었다. 우웁,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입에 꽉 차는 훌륭한 크기였다. 이 물건은 이츠키의 입보지와 뒷구멍을 언제나 훌륭하게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벌써 몇번이나 이 물건한테 쑤셔진 걸까 세보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이츠키는 맛있는 사탕이라도 되는 냥 카게히라의 남근을 쪽쪽 핥았다. 카게히라의 입에서 으으, 하는 신음이 흘렀다. 다행히도 카게히라는 자신의 행위를 만족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츠키는 더욱 힘내서 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영양가득한 우유를 구멍에 부어주는 카게히라였다. 이런 호모색골에게 카게히라는 너무나 관대한 존재다. 솔직히 처음에 원조교제하는 장면을 카게히라에게 들켰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카게히라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더럽고 냄새나고 작은 자지를 가진 아저씨들에게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이리저리 돌려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안된다. 


 푸슛푸슛, 카게히라의 남근이 이츠키의 입보지 안에서 왕복운동을 했다. 목젖까지 찔러오는 그 행동은 생리적으로 눈물이 맺히게 했지만, 반대로 기분은 짜릿해져서 이츠키의 그것도 이내 절조를 잃고 벌떡 서 있었다. 카게히라는 이츠키의 벌떡 서있는 그것을 보고 서로 다른 색깔의 눈을 미묘하게 번뜩였다. 그리곤 발을 들어 이츠키의 벌떡 선 자지 위에 올려놓고 체중을 실어 자지를 눌렀다. 흐익! 하는 귀여운 소리가 이츠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아, 스승님 귀엽습니다- 하고 카게히라는 진심섞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이후의 내용은 쓰다가 날렸습니다 (티스토ry 자동저장기능을 믿지맙시다 여러분..) 

제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 뒷부분 다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아..진짜 자동저장이래서 안심했는데 진짜 t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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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수취인 S






 안녕하세요, S씨. 저 M이에요. 당신은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지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사실 아직까지 오므라이스의 달걀 지단을 갈라지게 하지 않고 부치는 법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오늘도 점심에 오므라이스를 시도해 봤는데 역시나 당신처럼 지단을 만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혹시 그런 제 모습을 천국에서 바라보면서 비웃었습니까? 천국에서는 지상이 보인다는데 진짜인가요? 왠지 그렇다면 당신은 하루종일 저만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름이 돋습니다. 아, 지금 너무해!라고 하셨죠? 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그런데 진짜 하루종일 저만 보고 계신건 아니시죠...? 


 당신이 그 곳으로 가신지도 벌써 1년이 되었네요. 계절은 네번 바뀌어 다시 당신이 떠나버린 겨울이 되었습니다. 겨울은 상실의 계절인거 같네요. 모든 생명력을 앗아가잖아요. 생각해보니 어릴적 제가 키우던 강아지 '지로'도 겨울에 얼어 죽었던 것 같네요. 저는 이 겨울이 참으로 밉습니다. S씨는 겨울을 좋아한다고 하셨죠? 우리는 참으로 공통분모가 없는 것 같네요. 이렇게 당신과 다른 저를, 당신은 왜 좋아해주었는지 아직까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뭐, 극단끼리는 끌린다는 말도 있지만요. 그러고보니 천국에는 계절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가요? 천국의 겨울은 어떤가요? 아, S씨. 천국에는 가신 겁니까? 문득 걱정이 되네요. 


 일년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나이가 한살 한살 더 먹어갈 수록 시간이 너무 휙휙 지나가는 기분이라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던 추억은 금방 잊어먹게 되네요. 음.. 글쎄 뭐가 있을까요. 아, 사쿠마 리츠씨가 얼마 전에 일주일동안 깨어나지 않고 깊이 잔 일이 있었습니다. 마오군에게 리츠씨가 일주일째 깨어나지 않는다는 전화가 왔을때는 사쿠마씨도 당신의 뒤를 따라 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냥 단순히 일주일 간 숙면했던것이라고 해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일주일이나 잠을 잘 수 있을까요. 그러보면 당신이 속해있던 그룹은 참으로 개성적인 사람이 많았지요. 


 아, 그리고 아라시군은 최근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간간히 배우활동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아라시군 이름으로 메이크업 브랜드도 런칭했다고 해요.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면서 아라시씨 이름으로 메이크업 제품이 담긴 박스가 두상자나 도착했을때는 처치 곤란했습니다. 아무래도 전 주변에 아는 여자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께 친구들과 나눠쓰시라고 드렸더니 참으로 좋아하시더군요. 레오씨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계세요. 얼마 전에 일본전역을 강타한 걸그룹의 히트송을 써서 몸값이 꽤나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레오씨는 정말 작곡에 재능있는 분이네요.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으려니 당신이 저희집에 찾아왔던 그 날이 생각나네요. 이제 한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S씨가 말해왔을때는 솔직히 속으로 질색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제는 스토킹을 하다 못해 거짓말이라도 쳐서 동정표를 얻으려는 건가? 라고 생각했어요. 너무하다고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S씨의 평소 행실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하여튼 이제 한 달밖에 살 수 없으니 한 달만이라도 저희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을 때는 진심으로 경찰에 신고할 참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진중한 분위기의 S씨를 보고 있자니 어째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지요. 제가 허락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지고 왔던 짐을 제 집안으로 들여놓던 당신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좀 많이 무섭지만요.


 아, 당신이 가져왔던 제 피규어는 아직도 선반 위에 모셔두고 있답니다. 당신이 당당히 그것을 꺼내서 선반위에 올려놨을 때는 대체 당신은 어느정도까지 구제불능인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치우자니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느낌이라 아직도 제 선반위에 놓아져 있어요. 몇달 전에 제 집을 방문한 스바루군이 그 피규어를 보더니 'M군 혹시 나르시스트야...?'라고 썩은 물고기의 눈알로 바라봤지만요. 그것은 어찌저찌 잘 해명했습니다. 그나저나 그런 피규어는 대체 어디서 제작한 겁니까 S씨? 혹시 그 피규어에게 이상한 짓을 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지요? 아무리 당신이지만 거기까진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당신이 제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질색하셨던 것도 기억에 나네요. 아무래도 저는 평범한 남자일뿐이라 인스턴트라던가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당신은 그것을 모두 내다버리라고 명령하셨죠. 이런걸 먹고 피부가 썩어서 죽을 생각이냐며.. 전국에 인스턴트 식품 사장님들을 적으로 돌리는 소리를 간단히 해버리고 저희는 S씨가 만족할 만한 식품들로 냉장고를 채워넣기 위해 마트에 갔었죠. 사실 이건 비밀인데 당신이 내다버리라고 했던 그 인스턴트들은 아까워서 내다버리진 않고 도로 가져왔었어요. 화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당신처럼 뜯지도 않은 음식을 뭉텅이로 버릴 사람은 못되니까요.

 

 대충 마트에서 특가라고 써져있는 야채들을 고르고 있으려니 당신은 저에게 얼굴을 찌푸렸죠. 그리곤 농약의 해로움에 관해 이것저것 설교를 늘어놓은 뒤, 얼이 빠져있는 저를 이끌고 유기농 코너로 갔어요. 토마토 하나 고르는 데도 십분이 넘게 걸리는 S씨를 보면서 참으로 꼼꼼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모델으로서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있구나- 하고 조금 감탄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 날 저녁은 파스타였지요? 학창시절에 S씨가 종종 저에게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져다 줄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 안에 수면제라도 탄 건 아닐까 두려웠어서 한 번도 입에 댄 적은 없었습니다. 즉, 그 파스타가 제가 먹어본 S씨의 첫 요리였지요. 파스타는 잘 먹을 일이 없어서 어떤게 맛있는 파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S씨의 그 파스타는 꽤나 제 입맛에 맞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음식을 대접받고도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네요.

 

 감사했습니다 S씨. 당신의 그 파스타 무척이나 맛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그 답례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드렸는데, 기억나나요?  제가 보기에도 안 탄 부분보다 탄 부분이 더 많은 괴상한 요리가 되어있었지만, 굳이 버리자는 제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당신은 그것을 다 먹어 치우셨지요. 물론 당신다운 혹독한 악평은 잊지 않으 신 채로요. 이후에 당신은 제게 지단 부치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솔직히 저는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엉성하게 만들어진 제 오므라이스를 보고 있으려니 당신의 꾸짖음이 들리는 거 같아 조금은 웃게 됩니다. 역시 전 평생 오므라이스는 제대로 만들 수 없을 거 같아요.


 당신은 남은 한 달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다 가고 싶다고 어딘지 제게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S씨가 속해있던 그룹인 나이츠의 멤버들을 제 집에 초대했었죠. 그때 기억나시나요? 츠카사군이 '저 선배가 결국 인신매매까지 손댄건가..' 라고 중얼거리면서 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을요. 얼마안가 츠카사군은 당신에게 머리를 쥐어박혔지만요. 레오씨도 '결국 S녀석이 우려하던 일을 ...' 이라던가 아라시씨도 '이거 신고해야해 말아야해? 정의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라던가 어쩐지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서 우스웠어요. 하여튼 나이츠의 멤버들은 모두 재밌는 분들입니다.


 나이츠의 여러분에게 'S씨와 같이 살자고 제가 허락했습니다.'라고 말하니까 또 한번 나이츠의 모두가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리츠군은 '저기.. M군..S한테 협박당한거라면 경찰에 같이 신고해줄테니까..'라며 핸드폰을 건네왔지요. 당신 평소에 대체 행실이 어땠던 겁니까.. 


 그 날은 나이츠의 모든 분들이 밤늦게까지 저희 집에서 술파티를 벌였었네요. 당신의 주량이 그렇게 약한지 저는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주사를 알고 계셨습니까? 술취하면 힘이 장사가 된다는 말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말 같았습니다. 술취하자마자 저에게 달려드는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다행히 나이츠의 모든 분들이 당신의 사지를 잡고 말려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는 그 자리에서 동정을 빼앗길 뻔 했습니다. 진짜로 무서웠다고요. 진짜로요. 저도 남자니까 S씨가 아무리 덤벼들어도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건 제 착각이라는 것을 저는 그날 밤 깨달았습니다. 다시한번 그 때 S씨를 전력으로 말려준 나이츠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당신이 떠나버리고 가장 많이 울어주었던 것도 나이츠의 모두네요. 어째서 당신이 죽는다는걸 말하지 않았던 거냐고 리츠씨가 제 멱살을 쥐여올 때는 솔직히 쫄았습니다. 매일 잠만 자는 사람한테 그렇게 엄청난 기운이 있을 줄 몰랐어요. 아마 레이씨가 말려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보기좋게 이빨하나 정도는 나갔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꽤 사랑받고 있던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저도 당신처럼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이야기가 조금 세어 버렸네요. 나이츠 멤버분들이 고주망태가 되어 매니저라던가 지인이라던가에게 이끌려 사라 진 후, 당신은 '저녀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죽고싶지 않아.'라며 중얼거렸죠. 새벽바람에 흩어져 그 중얼거림은 미미하게 들렸지만 그래도 저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상을 사랑했던 것 이지요? 그 세상 안에 저도 들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자만일까요? 


 저희가 첫 입맞춤을 했던 날을 기억하세요?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는 당신의 요구에 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저에게 어느 정도의 애정을 기대하고 왔다는 것을 저는 잘 알았습니다. 당신을 집 안에 들여 놓은 것은 일종의 허락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사실 '뽀뽀해도 돼?' 라는 요구는 당신의 입에서 나온 것 치곤 너무 건전해서 놀랐답니다. 사실 저는 그 이외의 더 심한 짓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너무 변태인 건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아마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어도 저는 들어주었을 거예요. 저는 그정도로 각오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니까 당신은 조심조심 망설이며 제게 다가왔지요. 학창시절에는 대놓고 좋아한다고 스토킹 비스무리 한 것도 했던 당신인데 입맞춤 하나에 그렇게 바들바들 긴장하다니 솔직히 좀 웃었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인간답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당신을 예전부터 인간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확실히 제 입술에 닿은 당신의 말캉거리는 입술 촉감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당신은 인간이었어요.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맞추는 것에 긴장하는 보통의 인간이었어요. 왜 저는 당신을 예전부터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을까요? 그렇게나 인간다운 사람이었는데 말예요.


 그 이후, 하루하루 수척해 지는 당신의 모습은 제 심장을 잘게잘게 찣어버리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 앞에선 애써 밝은 척 했을 진 몰라도 괴로운 것은 S씨 당신만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옆에서 당신을 지켜보던 저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아마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괴로운 일은 몇번 더 겪어야 하는 것이겠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거나 제 친구가 죽는다던가 할 때 말이에요. 저는 또 이 괴로운 일을 반복 할 자신이 없네요. 이것은 다 당신의 책임입니다 S씨. 


 당신이 죽기 전에 했던 부탁을 기억해요? '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나인걸로 해줘'라니 끝까지 당신다운 부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곧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면서도 저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당신에게는 그 전 부터 이미 질려있었지요. 사실 당신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저를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S씨였습니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모두들 아는 사실일텐데, S씨 당신은 왜 그런 부탁을 하고 떠난 것일까요? 뭐, 아직까지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보다 더 절 좋아해 주는 사람은 나타질 않고 있네요. 왠지 나타나게 된다면 당신이 무슨수를 써서라도 퇴치할거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사실 저는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언제나 빛나는 당신을 보며 저도 당신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달려왔어요.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당신과 같은 선상에 서고 싶어서 노력했기때문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지도 몰라요. 제가 지금 당신과 같은 선상에 섰다는 무례한 말은 하지 않아요. 저는 아무리 해도 S씨, 당신의 발치에도 닿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 쯤 당신이 저 먼 곳으로 떠나버려서 저는 이제 좇아야 할 상대가 없어졌습니다. 그것이 너무 분해요.


  저는 꽤 괜찮은 놈이었나요 S씨? 대답하지 않으신다면 그런 것으로 알겠습니다. 저는 원래 제멋대로인 억지쟁이니까요.


 이제는 봄이 다가옵니다 S씨. 당신이 가져간 겨울은 참 길기만 했네요. 이제, 봄에는 행복하세요. 




                                                                                         -M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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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슬침연 썰




 슬침연 1~2와 이어지는 내용. 세나 이즈미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 요양 차 시골에 있는 별장으로 내려옴. 나가서 친구라도 사귀라는 유모의 말에 내가 왜 이런 시골동네 애들이랑 친해져? 라는 생각을 품고 있던 이즈미였으나 어느날 동네를 산책하다 마코토를 본 이후로 마코토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함. 그래서 이즈미는 자기 나름의 호감표시로 마코토에게 과자를 선물해 줌. 마코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신이 난 이즈미는 그럼 다음날 만나면 더 좋은 것들을 주겠다고 함. 그렇게 이즈미는 다음날 만날 약속에 설레며 집으로 돌아감.

 하지만 다음날 약속했던 장소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려봐도 마코토가 나오지 않음. 이즈미는 마코토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함. 저녁이 되서야 자신을 찾아온 유모의 품에 안겨 울며 이즈미는 이제 친구따위는 사귀지 않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함. 

 그런데 마코토도 일부러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사정이 있었음. 이즈미랑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가 집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임. 마코토의 아버지는 이 넉넉하고 인심좋은 시골마을에서 몇 안되는 망나니중에 하나로 거의 도박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는 날은 일년에 끽해야 한손에 꼽을 정도임. 그마저도 돈이 다떨어져서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하러 오는 것이라 마코토는 당연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음. 혹시라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서 허겁지겁 집안에 들어가보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왠 낯선 남자가 서있음. 

 어머니는 자신을 보며 이제 끝났다- 라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는 보기 드물게 마코토를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임. 저 낯선 남자는 누굴까?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마코토에게 아비라는 자는 추접하게 웃으며 도박빚때문에 널 팔게 되었다고 말함. 그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마코토는 생전 처음으로 제 아버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림. 그래도 마코토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기에 아버지에게 상대가 되질 않고 아버지가 배은망덕한 놈이라며 마코토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버리고 얼굴에까지 손 대려는 찰나 낯선 남자가 그것을 제지함. 

 "이제 얘는 당신 아들도 아닌데 그쯤 해두게. 얼굴은 반반하니 내가 값은 더 쳐주겠네."

 마코토는 부잣집의 식솔로 들어감. 그 집에서는 그럭저럭 괜찮게 지내지만 그래도 밤마다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음. 생각해보니 만나기로 했던 이즈미 도련님께 미안해 지기도 함. 그렇게 몇년을 그 집에서 사는둥 마는둥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갔을까. 어느날 제가 모시는 마님의 친구인 포주가 찾아옴. 그 포주는 수도에서 엄청 큰 유곽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로, 젊었을 때는 지방에서 엄청 이름날리던 기생이라고 함. 마코토는 그 둘에게 차를 내옴. 그러자 포주가 마코토를 위아래로 훑더니 마코토가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님에게 마코토를 제게 팔 것을 제안함.

 "얘 꽤 반반하게 생겼네. 나한테 안팔래?"

 마님은 처음에는 포주가 장난으로 하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꽤 높은 값을 부르기에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마코토를 그 유곽으로 팔아버림. 그 여자가 포주인지 몰랐던 마코토는 또 다른 부잣집에 식솔로 들어가나-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따라갔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유곽. 유곽에서 잡일꾼역을 하는건가? 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님. 유곽에 찾아오는 특이취향인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마코토의 일. 처음에 남자한테 범해졌을 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음. 탈출도 여러번 시도했지만 결국 다 붙잡혀서 죽을정도로 처벌이 가해짐. 그 이후로 마코토는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음. 제 몸뚱아리의 세배는 될 법한 늙은 남자들이 헐떡거리며 왕복운동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코토는 자살을 생각하게 됨. 그 자살시도도 다 미수로만 끝나서 마코토의 손목에는 붉은 줄이 무수함.

 마코토가 유곽에서 자살을 기원하고 있을 때, 이즈미는 이 나라를 움켜쥐고 있는 세나가문의 충실한 당주역할을 해가고 있음. 세나가문은 텐쇼인 황가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 사람을 만나는 걸 지극히 싫어하는 이즈미지만 아무래도 세나가문쯤 되는 명문가의 당주라 이것저것 비즈니스 할 게 많은데 그 날은 외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느라 마코토가 있는 그 유곽을 찾음. 이 사신이 성적취향이 호모섹슈얼이라 수소문해서 남자기생을 들여놓는 다는 유곽을 찾은 것임. 접대실에 앉아있으려니 남자 기생 둘이 들어오는데 그 중 하나가 마코토. 세나 이즈미는 예전에 시골에서 만났던 그 소년과 제 눈앞에 있는 기생이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놀람. 마코토도 세나 이즈미를 알아봄. 

 "너 혹시 나 본 적 있지 않아?"
 
 이즈미가 물어봄. 마코토는 고개를 가로저음. 마코토에게 있어 제 유년시절은 너무나 성스러운 것이어서 지금의 더러운 자신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마코토는 세나 이즈미를 처음 본다고 거짓말 함. 이즈미는 너무 닮았는데.. 하면서 마코토를 훑다가도 닮은 사람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코토의 말을 납득해버리고 맘. 여기부턴 급전개로 써야지... 귀찮다...

 처음에는 마코토가 예전의 그 소년과 너무 닮아서 눈길이 갔던 이즈미인데, 점점 그것과 별개로 마코토 그 자체가 좋아져버림. 그래서 마코토를 자신이 빼오려는데 포주는 마코토가 이 가게의 매출을 많이 올려주고 있기 때문에 빼주려고 하질 않음. 게다가 텐쇼인 가문의 황족이 마코토의 단골이라 마코토를 빼올려면 분쟁을 감소해야함. 이즈미는 강제로 잡혀들어온 기생을 풀어주자는 법령을 올림. 그런데 황제인 텐쇼인 에이치는 그 기생애들을 싹 잡아들여서 사형을 내림. 사회 악이라면서 다 죽이라고 함. 문제는 잡혀들어온 기생들 중에는 마코토도 있다는 것. 

 이즈미는 황제인 에이치에게 대듬. 이게 또 에이치의 눈 밖에 보여서 반역죄로 이즈미는 사형선고가 내려짐. 이즈미는 황제에게 마지막 부탁으로, 마코토와 같은 감옥에 넣어달라고 함. 에이치는 그동안 자신을 보필한 정으로 이즈미를 마코토가 갇혀 있는 곳에 같이 넣어줌. 이즈미의 사형날짜는 마코토보다 하루 전. 이즈미는 사형당하기 하루 전날 마코토의 무릎에 누워 마코토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음. 

"역시 난 너의 곁에서 죽고 싶어."

 이즈미는 간수에게 돈을 좀 쥐여주고 몰래 공수한 독약을 입에 털어 넣음. 마코토는 그것을 제지하지 않은 채 그저 이즈미를 아기 어르듯 토닥이기만 함. 독약을 먹어서 그런지 의식이 가물가물해져옴. 눈이 풀려버린 것 처럼 초점이 맞지를 않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음. 그 와중에도 마코토의 자장가 소리는 정확히 들려옴.

"나, 당신한테 거짓말 한게 있어요. 당신이 예전에 만났다던 소년. 사실 저예요."
"…역시 그럴줄 알았다니깐."

 이즈미가 피식 웃음. 곧 입가가 경련하더니 손이 툭- 하고 싸늘하게 떨어짐. 생명이 끊긴 이즈미를 보곤 마코토는 토닥이던 손을 멈춤. 

"이번에는 정말로 만나러 갈게요."

 마코토는 제 무릎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이즈미의 입술에 키스하며 제 혀를 깨물어버림. 

 다음날, 사형 전 마지막으로 이즈미의 얼굴을 보러온 에이치는 나란히 죽어있는 이즈미와 마코토의 시체를 보며 쯧-하고 혀를 참. 이것 참. 내가 나쁜 놈이 되어 버렸네- 하면서 곁에 있던 병사에게 두 사람을 합장 시키라고 명령하곤 등을 돌려 그 감옥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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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군주론 01





 "저 분이 네가 자라서 모시게 될 에이치 도련님이란다, 어서가서 인사드리렴 케이토."


 아직 제 몸 하나 감당하기 힘든 열 살 아이에게 부모는 네가 모셔야 할 사람이라며 정원에서 놀고 있는 작은 소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그 손가락을 응시하다가 그 손가락 끝에 걸려있는 어느 소년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햇빛에 반사된 소년의 금빛 머리칼이 반짝-하고 빛났다. 꼬마는 아직 케이토 부자를 발견하지 못한 듯 한창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케이토는 아버지의 바지춤을 붙잡고 저낯선 꼬마에게 다가가기 싫다라는 나름의 반항을 몸으로 표현했으나 아버지는 냉혹하게 케이토의 등을 떠밀 뿐 이었다. 


 케이토는 조금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낯가림이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저 아이와 친해지는 것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원래 하라면 더 하기 싫은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니겠는가. 게다가 저 아이의 뒷모습에선 아직 열 살의 머리로는 정확히 정의하긴 힘든 어떤 불쾌한 기운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유없이 친구를 따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배워왔으나 저 아이에겐 어째서인지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것은 자신을 강자로 인식하고 자신보다 못한 약자를 짓밟고싶다는 잔인한 욕망이 아니였다. 오히려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두고 강자를 보면 있는 힘껏 줄행랑치고 싶어하는 약자의 논리에 가까웠다.


 케이토가 에이치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자 케이토의 아버지는 엄한 표정으로 아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 얼굴에는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엿보였다. 저 아이와 친해지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를 무척이나 실망시키는 일인 것 같았다. 케이토는 내키지도 않는 상대와 억지로 친구가 되는 것은 싫었으나 그때문에 제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케이토는 결심한 듯 제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금발머리 소년에게로 다가섰다. 부슥, 잔디가 신발 깔창에 짖이겨 지는 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고개를 조금 위로 올려 케이토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적의가 없는 깔끔한 시선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큰 눈을 여러번 깜빡였다. 그리고 그 조막만한 얼굴에 단정하게 위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렸다.


 "넌 누구야?"

 

 소년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소년의 얼굴을 보자 아까의 적의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 한켠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니!하는 일종의 자부심이 가슴 한 켠에서 피어났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으로 이렇게 갈대같은 것이다. 케이토는 얼굴을 부드럽게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손을 내밀었다.


 "난 케이토야. 오늘은 아빠를 따라서 이 집에 왔어. 너는 텐쇼인 에이치지?" 


  소년이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의 햇빛과 닮은 금빛머리칼이 고갯짓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버지가 그를 '도련님'이라고만 하지 않았다면 필히 여자아이로 착각했을 법한 예쁘장한 외모였다. 소년의 귓볼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낯을 타는 성격인 것 같았다. 저와 동갑이라고는 했지만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듯한 인상을 주었다. 


 "뭘 하고 있었어?"

 "나비와 놀고있었어."


 소년은 날개가 갈가리 찣긴 노란 나비를 케이토쪽으로 내밀었다. 나비의 몸통은 괴로운 듯 팔다리를 필사적이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자세히보니 더듬이도 한 쪽이 부자연스럽게 꺽여져 있었다. 아마 태어날 때 부터 저런 나비는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 저렇게 나비를 학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학대의 주범은 아마도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비를 내밀고 있는 이 소년이겠지. 케이토는 아까 느껴졌던 이질감이 다시 꿈틀 움직이려는 것에 놀랐다.


 아니다, 이 소년은 그저 순진한 것일 뿐이다. 그래, 잠자리의 날개를 떼며 노는 것은 사내아이라면 어렸을 적에 누구나 해봤던 사악하고도 순진한 장난 아니던가.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케이토는 나비에게 애써 시선을 주지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선가 나비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




 "우리 에이치가 케이토군을 참 잘 따르는 군요. 우리 애가 제대로 된 친구나 사귈 수 있을까 많이 염려하고 있었는데 케이토군 덕분에 여러모로 학교도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매달 한번씩 텐쇼인가와 하스미가가 어울리는 식사자리. 케이토와 에이치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케이토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스테이크를 썰 뿐이었다.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어딘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되게 에이치는 제 아버지의 옆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케이토라는 주어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늘어 놓았다. 케이토가 어제 자신의 미술숙제를 도와줘서 선생님께 칭찬받았다느니, 최근에는 케이토덕에 성적이 올랐다느니 하는 둥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사실 에이치는 케이토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으나 그런 식으로 종종 케이토를 띄워주곤 했다. 케이토도 사실은 그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하하. 이녀석. 그렇게 케이토가 좋냐. "


 텐쇼인 기업의 회장직을 꿰차고 있는 남자가 쉬지않고 케이토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제 아들에게 물었다. 에이치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런 아들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두어번 쓸으며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회장은 에이치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는 노산의 후유증으로 결국 에이치를 낳고 얼마 안 되어 하늘로 가버렸고, 홀로 남겨진 자신의 아들을 바쁘다는 이유로 유모의 손에 맡겨버린 것은, 어쩔수 없던 것이지만 그래도 아비로서 마음이 편치 못한 게 당연한 것이다. 제 아들은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었으나 가끔 그 웃음 뒤로 보이는 고독은 살대로 살아온 어른이 보기에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어서 종종 회장은 에이치가 나중에 커서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에 휩싸이곤 했다. 케이토군을 만나고 난 후에는 그 눈빛에서 고독은 읽을 수 없게 되었으나, 대신 그 자리엔 야생의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다. 


 종종 케이토를 바라보는 에이치의 눈빛에선 우정 그 이상의 분위기가 흘렀다. 회장이 그것을 느낀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장은 애써 부정했다. 어미잃은 새끼가 너무 가여워서, 아비는 그 앞에서 눈이 멀었다. 아비는 그저 제 자식이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인 존재인 것이다.


 



*




 하지메가 놀러왔다. 하지메는 에이치의 먼 친척으로 어디 제약회사의 외동딸이라고 했다. 텐쇼인 회장은 에이치에게 하지메와 잘 놀아주라며 당부했지만 에이치는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따위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저 방에서 밀린 방학숙제를 할 뿐이었다. 마침 케이토도 에이치의 집에서 같이 숙제를 하고 있었기에 그녀와 조우할 수 있었다. 한 손에 제 몸뚱이만한 곰인형을 끌며 나타난 그녀는 꽤나 낯을 가리는 성격인 듯 에이치의 방 한 구석에 앉아 그저 분홍색 곰인형을 가지고 놀 뿐이었다. 에이간단히 그녀를 무시한 채 케이토와 숙제 중이었다. 케이토는 그렇게 단순히 혼자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 숙제를 하는 동안 틈틈이 그녀 쪽을 흘끔거렸다. 


 "케이토 이 부분 좀 알려줘."


  케이토가 곰인형의 리본을 다시 매주고 있는 하지메를 힐끔 바라보고 있자, 그 곁에 있던 에이치가 어딘지 심통이 난 목소리로 문제집의 마지막 문제를 툭툭 쳐댔다. 케이토는 너무 간단한 수준의 문제에 갑자기 기가 막혔다. 앞서 말했듯, 모든 교과 과목에서 에이치의 성적은 케이토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뛰어났다. 특히 수학에 있어서는 에이치는 중학생인 주제에 대학교 과정의 수학을 가뿐히 풀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겨우 이런 시시콜콜한 문제나 물어보다니. 갑자기 에이치의 머리가 멍청해 진 게 아니면 분명 어딘가 제 마음에 안들어서 심통을 내는 것이었다. 케이토는 에이치의 변덕까지 일일히 받아주는 좋은 친구는 아니었기에 간단히 에이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고 한숨을 쉬었다.


 "이정도는 니가 풀 수 있잖아. 니가 풀어."

 

 하지메가 이 쪽을 바라봤다. 둘의 투닥거림을 조금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본 것 같았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에게 그다지 친구가 많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아마 이쪽에서 말 걸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토는 잔뜩 입이 나온 에이치를 간단히 무시하고 구석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하지메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메아가씨. 저라도 같이 놀아드릴까요?"


 케이토는 하지메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았다. 제게 관심을 가져 준 것이 기쁜 듯 하지메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웃음으로 화답하더니 케이토에게 제가 들고 있던 곰 인형을 건내주었다. 아마 그것으로 같이 놀아달라는 뜻 같았다. 기본적으로 케이토는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곰인형을 들고 평소엔 내지않는 가성으로 복화술까지 해보이며 하지메를 기쁘게 해주었다. 꺄르륵 거리며 박수를 치는 하지메를 보니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으면- 싶었다. 


 "..읏!"


 그때였다. 에이치쪽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케이토가 뒤를 돌아보니 에이치가 제 손가락을 쥐여잡고 아픈 듯 살짝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케이토는 하지메와 놀아주고 있던 곰인형을 방바닥에 급히 내려놓고 에이치에게 달려갔다. 문제집 한 귀퉁이에 피가 두어방울 떨어져 있었다. 아마 커터칼을 쓰려다가 베인 모양이었다. 


 "그러게 좀 조심하지! 기다려봐. 구급함을 가져올 테니까!"


 케이토는 허겁지겁 에이치의 방을 나갔다. 아마 이 집의 가정부에게 물어보면 구급함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케이토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에이치의 방문 너머로 들렸다. 하지메도 깜짝 놀란 듯 에이치의 손가락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피라는 것은 극히도 두려운 존재다. 


 에이치는 칼에 베어서 아프다는 표현으로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곱게 폈다. 그리고 제쪽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지메를 향해 즐겁게 웃음 지었다. 케이토를 제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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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슬침연(膝枕緣) 02








 "유키! 너 빨리 안 올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분명 멀리서 부르고 있을 터였는데 어째서인지 코 앞에서 윽박지르는 것마냥 귀가 울렸다. 저 여자는 저 목소리 하나로 이 구역의 관리자가 된 것일 거다. 그렇다는 데에 내기를 해도 좋았다. 이번에 새로 이 구역의 관리자가 된 저 기녀는 참을성이 부족했다. 게다가 엄청난 동성애 혐오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관리하고 있는 이 구역은 남창들만 모여사는 구역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입에선 저 고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지독한 말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저 여자는 

마코토를 유독 싫어했다. 정말이지 마음이 못난 사람이었다.


 마코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머릿기름을 조금 더 발라 뻗친 옆머리를 빗질했다. 저번의 관리자였던 기녀는 자주 자신의 머리를 빗어주곤 했다.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마코토를 신경써주며 이별선물로 이 빗을 선물한 아주 선한 사람이었다. 지방의 관리의 첩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마코토는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기녀의 삶이나 첩의 삶이나 그다지 행복할 거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마코토는 그녀가 그 곳에 가서도 그 미소를 유지하기만을 바랐다. 그녀는 기녀 짓을 하기엔 너무나도 성녀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 유곽을 떠나서 관리자가 저런 괴팍한 여자로 바뀐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지만. 


  "유키 너 이새끼 얼른 안와?"


 다시 한번 복도에서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키, 라고 불린 마코토는 얼굴을 찌푸리곤 '금방 갈게요'라고 퉁명스레 그녀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그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목소리로 마코토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같은 남자에게 다리나 벌리는 남창'이라거니 '우리 유곽의 수치'라거니 하는 악질적인 말들이었다. 마코토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너도 남자한테 다리 벌리는 처지인 주제에 뭐가 잘나서 그런 말을 씨부리는 거야?


 마코토는 자리를 일어섰다. 계속 굼뜨게 행동했다가는 저 기녀가 마마에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섞어서 마마에게 고발할 거라는 건 불보듯 뻔했다. 마마는 이 유곽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였다. 마마는 서양언어로 '엄마'라는 뜻이라고 했다. 성인 여자 평균에 훨씬 못미치는 자그마한 키를 가진 늙은 여자였지만 그 노련함과 처술은 무시할 게 못되었다. 그녀는 이 유곽거리에서 가장 많은 기녀를 보유하고 있고 가장 많은 단골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운영자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수도로 올라와 유곽을 차리기 전에는 지방에서 알아주는 기녀였다고 했다. 그녀는 마코토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딱히 대놓고 뭐라 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마코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초리에서 종종 혐오라는 감정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얼굴에 잔뜩 짜증을 덕지덕지붙인 기녀가 마코토를 새침하게 째려보았다. 정말이지 마음만 곱게 썼다면 이 유곽에서 세손가락 안에 기녀가 되었을 여자다. 제 손님에게는 그렇게 갖은 아양을 다 떨어대면서 동료에게는 평이 안좋다. 마코토는 방어수단으로 그녀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그녀는 재수없는 것을 봤다는 듯 대놓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휙 돌아서 접대손님이 있는 방으로 마코토를 안내했다. 


 이 유곽은 이 거리에서 제일 큰 유곽답게 복도도 길었고 방도 많았고 구조도 무척 복잡했다. 관리자가 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은 복도에선 쉽게 방을 헷갈리고 만다. 복도에는 다다미가 구김살 없이 깔려있고 방 문 앞에는 홍등이 하나씩 달려 있다. 여기저기 홍등이 켜진 방과 켜지지 않은 방이 보였는데 홍등이 켜졌다는 의미는 일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수의 홍등이 켜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교성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은 그녀 '연기'일 뿐인 교성이었다. 이 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누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지, 누가 억지로 교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은 여자의 교성이었으나 가끔은 굵은 목소리의 남자 것도 들렸다. 사실 이 유곽이 이렇게 까지 성장한 데에는 다른 유곽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은밀한 성적취향을 개별적으로 만족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변수들을 마련해 놓았다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 중에서는 남자를 좋아하는 손님도 있었으며사지가 없는 것을 좋아하는 손님도 있었고 때리는 데에서 흥분을 느끼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맞는 것에서 흥분을 느끼는 손님도 존재했다. 마코토는 그 중에서도 남자를 좋아하는 손님을 맞는 창남이었다.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존재했다.


" 어떤 방법으로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오늘도 그 사람이 널 지명했어. 참 웃기는 사람이라니까? 이 유곽엔 너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자가 발에 채일정도로 넘쳐나고 너보다 더 귀엽게 생긴 남자애들도 있는데 말이야?"


 여자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마코토 앞에서 그를 험담했다. 그렇지만 마코토는 그녀가 자신을 험담하면 험담할 수록 조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질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마코토가 이 구역의 에이스취급을 받고 있는게, 그리고 최근엔 왕족의 마음에 들어버린 것에.


 여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이 나라의 왕족인 '텐쇼인 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과는 먼 친척 사이지만 왕족이란 이유만으로도 이 유곽에서 그 손님을 특별 취급해주는 것은 당연했다. 딱히 왕족이 아니더라도 돈이 많은 사람이니 분명 특별관리 명단에 올랐을 것이지만. 여튼 마코토도 알게모르게 왕족이라는 이유로 그를 신경쓰고 있었다. 매너없고 제멋대로인 남자였지만 조금만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터였다. 당장 죽여져도 할말 없을 정도로 더러운 목숨이었지만, 그래도 목숨은 소중했다.


 "그럼 지명받아보시지 그랬어요." 

 

 마코토는 빙긋 웃으며 그녀를 도발했다. 보기좋게 그 도발에 넘어가버린 그녀는 얼굴에 형형색깔의 색을 피웠다. 그녀가 꽉 쥔 주먹을 부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때릴 기세로 주먹을 어깨로 치켜 들었다. 여자의 주먹이라 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실으면 꽤 아플 것이다. 마침 마코토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녀를 따돌리곤 휙-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통쾌했다.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해하고 있을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없던 식욕도 돌 지경이었다.


 "또 뵙습니다, 텐쇼인 아타야마님."


  방에 들어서니 한 쌍의 침구, 촛대 그리고 텐쇼인 아타야마라는 남자가 이미 그 안에 들어서 있었다. 마코토는 일단 차례를 지키려 무릎을 꿇고 그에게 절을 했다. 벌써부터 남자의 눈에는 번뜩이는 욕망이 엿보였다. 참으로 왕족답지 못한 남자였다. 이 나라의 왕인 '텐쇼인 에이치'는 굉장히 기품넘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의 피를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있는 저 남자는 어찌 저리 품위가 없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성미급하게 초에 붙은 불을 거센 입김으로 훅 불어버렸다. 심지에 붙은 미약한 불빛이 한순간에 사그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코토는 제 과거를 떠올렸다.









 마코토는 좀 전의 도련님에게 받은 과자 보따리를 소중히 빨랫대아에 넣고 길을 걸었다. 분명 어머니도 초콜릿이란 것을 맛보시면 기운이 나실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코토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다. 의원도 무슨 병인지 정확히 진단 내리지 못하는 희안한 병이었으나, 마코토는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의 7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나 흰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어 본 적 없었고, 또 도박꾼에게 시집와서 하루도 맘 편해 본 날이 없었다. 마코토의 아버지라는 작자는 한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하는 난봉꾼이었으며, 그마저 한번 돌아올 때 마다 도박에 쓸 돈을 찾기 위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다. 아직 소년의 몸인 마코토에게는 아버지를 막아낼 힘이 없었기에 마코토는 하루 빨리 자라서 못된 아버지를 쫓아내고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미니가 아프시기 때문에 마코토는 왠만한 집안일은 제가 다 하고 있었고, 이웃들의 빨래를 해주는 댓가로 푼돈을 얻어 조금이나마 살림을 꾸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초콜릿이 얼마나 하는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림잡아 짐작건데 이웃집의 빨래를 백번 해줘도 사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코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뛰었다. 집이 보였다. 어째선지 시끄러웠다. 집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마코토는 불안해졌다. 설마 아버지가 돌아온 것인가? 아버지가 오지 않은지 최근 두달정도 되었으니 아마 아버지가 돌아왔을 수도 있었다. 어디에서 객사하기를 매일밤 빌고 또 빌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코토는 황급히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제가 없다면 어머니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어어-. 저기 자네 아들 오는구만?"


 마당에 들어서니 낯선 얼굴의 남자가 마코토를 보고 누런 이를 들어내며 씨익 웃었다.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술에 절어있는 아버지가 서있었고 마당바닥에는 마코토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통곡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뭔가 평소와는 달랐다. 뭔가 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일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를 살피니 다행히도 아버지에게 어딘가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찝찝할까?


 "애가 참 곱상하게 생겼네. 사내애 맞아?"

 "하하, 물론입죠. 쟤가 생긴건 지 어미를 닮아 좀 기집애같긴해도 달릴건 다 달린 사내아입니다."

 "음, 뭐 요새 수도에선 저런 얼굴이 인기긴 하니까 말이지. 뭐 특별히 내가 더 쳐주겠네."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요. "


 남자와 제 아버지는 마코토를 두고 물건 흥정하듯 흥정하기 시작했다. 이내 이가 누런 남자가 마코토의 팔목을 잡아왔다. 본능적으로 이 남자를 따라가면 영영 이 곳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코토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어머니는 그 약한 몸으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통곡했다. 하지만 마코토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자에게 돈을 받은 아버지가 조용히 하라며 어머니를 때리는 것이 보였다. 마코토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이내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마코토에게도 손찌검을 해왔다. 투박한 그 주먹이 멍치를 강타하자 어째서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이러면 안 …돼는데, 내가 어머니를… 의식이 몽롱해졌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이후로도 마코토는 죽을때까지 그 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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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슬침연(膝枕緣) 01





"이즈미 도련님, 밖에 좀 나갔다 오세요. 분명 또래 친구들을 잔뜩 사귈 수 있을 거라니깐요?"


 유모는 걱정이 많았다. 이즈미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것이건 걱정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즈미의 교우관계에 대해 큰 걱정을 해왔다. 이즈미는 유모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이즈미에게는 흔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또래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우관계를 쌓지 못한 것은 이즈미 주변엔 가문끼리 잘 알고 지내는 어른들만 넘쳐나는 것이 주된 이유였고 어린아이치곤 조금 포악한 그의 성격도 한 몫했다. 사실 몇번 비슷한 신분의 가문끼리 만남이 있을 때 이즈미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먼저 다가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아이들은 모두 울면서 이즈미의 곁에서 나가 떨어졌다. 그러니 유모가 이런 걱정을 해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친구는 나이가 들 수록 만들기 어려운 법이었다.


 이즈미는 어제 내린 눈으로 밖이 추워져서 나가기 싫었으나 유모가 결국 외투까지 입혀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등쌀에 밀려 집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느리게 걸었다. 겨울이라 짚으로 덮어놓은 밭들은 생명력이라는게 좀 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시골바닥에서 마을 사람들은 대체 뭘 하고 사는걸까? 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아마 이 마을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 적당히 이곳에 가정을 꾸리고 이 동네를 세계의 전부로 인식한채 큰 도시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로 이대로 적당히 죽어버리고 말겠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야.


 이즈미는 입을 비틀어 웃었다. 자신은 이곳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자신은 왕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귀족 가문의 외동아들이었으며 필히 제 가문을 물려받아 이 안쓰러운 사람들을 지배하는 나라 제일의 관리가 예정이었다. 이 천박한 곳에 머무는 것은 잠시 뿐, 어머니의 허리가 거의 회복되었기에 다음주가 되면 이 구질구질한 동네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유모가 바라는 친구같은 걸 그다지 만들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한바퀴만 더 동네를 돌다가 집에 들어가자- 라고 생각하던 때 우물가에 도착했다. 동네 쳐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빨래를 하고 있었다. 겨울이라 살얼음까지 낀 물에 빨래를 하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일텐데 어찌된 일인지 처녀들의 얼굴엔 웃음만이 가득 펴있었다. 아이를 등에 들쳐매고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여자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저들끼리 깔깔대더니 이내 곧 근처에 서있던 이즈미를 발견했다.


 이 시골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곱상한 외모의 이즈미를 보며 처녀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대충 말을 엿들어보니 '세나가문의 도련님'이라던가 '저 큰 대궐의 도련님'이라던가 자신의 이름을 대신해 부르는 명칭들이 들렸다. 아마 자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시골바닥에서 꽤 유명인사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라고 여자들에게 쏘아주고 싶었으나 굳이 나서서 이동네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기특한 생각도 없었지만.


 "마코토, 저 도련님 너랑 나이또래가 비슷하겠다. 말이라도 걸어봐."

 

 한 처녀가 곁에 있던 아이에게 말거는 소리가 들렸다. 마코토, 라고 이름불려진 소년은 아마 자신보다 한두살 어린 티가 나는 같은 소년이었다. 저 무리의 유일한 남성이기도 했다. 소년은 빨개진 손을 호호 불며 적의없는 맑은 눈으로 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이즈미는 저 맑은 시선에 빠져들어 잠시 생각을 멈춘 채 소년의 눈동자만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씨-익 입을 찣으며 웃는, 아직 풋내나는 소년의 미소에 제가 넋을 놓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곤 얼굴을 붉혔다. 어째서 난 남자 따위한테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린걸까! 부끄러웠다. 치욕에 가까운 부끄러움이었다.


 이즈미는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제가 왔던 길을 더듬어 본가로 향했다. 쿵쿵, 심장이 발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었다. 이즈미는 심장의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땅을 박차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정말이지 귀족의 몸가짐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있는 아버지가 보았다면 품위없다고 한소리 들었을 법한 장면이었다.











"어머. 도련님 나가시게요?"

 

 외투를 제 스스로 챙겨입는 이즈미를 보고 유모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침 이즈미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려 했던 것인지 유모의 두 손엔 양과자와 찻잔이 담긴 작은 소반이 들려있었다. 이즈미는 이 동네에 와서 산 지 반년동안 한번도 제 스스로의 의지로 이 집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어제는 저 어린 도련님을 겨우겨우 등쌀을 밀어서 나가게 한 것이었는데 하루만에 저렇게 스스로 외출준비까지 하고 나가려 하다니. 사람이 하루만에 변하면 큰 일이라던데 …하고 유모는 조금 걱정했다. 이상적으로 바라던 장면이었지만 어쩐지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감동보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 …그 과자 좀, 싸 줄 수 있어?"


 이즈미가 유모의 시선을 조금 피한 채 물었다. 저 어린 도련님은 어릴때부터 부끄럽다고 생각할때마다 시선을 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의 곁에서 그를 가장 많이 겪어온 유모만은 알고 있는 버릇이었다. 왜 과자를...? 설마 도련님께 친구가 생기신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유모는 좀 전까지 하던 걱정이 떨쳐지고 이내 감격으로 마음이 울컥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련님께 친구라니! 이건 세나 가문에 길이 남아야 할 소중한 역사적 순간이 아닌가! 하고 조금 호들갑스러운 마음으로 유모는 소반을 들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즈미에게 싸줄 과자를 고운 색의 보자기에 담기 위해서. 



 "어? 어제 그 도련님이죠?"


 우물가에는 어제와 같이 소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다만 어제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던 시끄러운 처녀 무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 쪽 고목나무 아래서 몇몇 동네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이즈미를 한 눈에 기억해 냈다. 사실 기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값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이 마을에서 세나 이즈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마코토의 옷은 다 헤져서 여러번 천을 덧 댄 낡은 유카타였다. 이즈미는 소년의 말에 별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소년의 빨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이즈미쪽을 힐끗거렸던 소년도 이즈미가 별 말이 없자 원래하던 빨래에 집중했다. 찰박찰박, 물소리가 듣기 좋았다.


 이내 소년은 빨래를 끝마친 것인지 몇 번 방망이질을 툭툭해대더니 빨랫감이 담긴 대야를 들고 구부렸던 다리를 펴서 일어섰다. 다리가 조금 저린 것인지 으으-하는 작은 신음을 냈다. 그러곤 아직까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이즈미를 보고 무슨 볼일이?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 이즈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소년은 조금 이상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즈미를 한번 훑곤 그를 지나쳐 제 갈길을 가려했다. 하지만 곧 소년의 발걸음은 타인의 힘에 의해 멈춰졌다. 제 어깨를 잡아온 세나 이즈미를 보며 소년은 다시 그 맑은 시선으로 충분히 이즈미를 기다려 주었다. 이즈미가 입을 떼었다. 귀기울이지 않으면 공중으로 분해 될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소년은 참을성있게 이즈미의 목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해주었다.


 "저기 …, 과자 먹을래?"


 이즈미가 품 안에 넣어두었던 과자가 담긴 보자기를 내밀었다. 소년의 시선을 약간 피한 채 였다. 귓볼은 감나무에 갓 열린 단감마냥 붉은 기세로 달아올라 있었다. 보자기를 내밀고 있는 오른손은 긴장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소년은 이즈미의 제안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소년은 자신이 종종 나무를 하러 오른다는 동네의 나즈막한 동산에 이즈미를 데려갔다. 그곳에선 이 마을을 한 눈에 다 담을 수 있었다. 세나가문의 별장도 이 동산에선 막힘없이 다 보였다. 새끼손톱만한 초가집들 사이에 그 집들의 열배는 훌쩍 넘어보이는 자신의 집이 새삼스레 크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꽃이 필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


 소년은 진심으로 아쉬운 듯 했다. 철쭉과 진달래 등이 피는 봄에 이 언덕에서 동네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고 소년이 사족을 덧붙였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나이는 아직 아니였지만 소년이 말하니 왠지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둘은 눈이 쌓이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이즈미가 가져온 보자기를 풀었다. 형형색색 고운 색깔을 띄고 있는 양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무래도 유모가 과자를 더 넣은 것 같았다. 혼자먹기에는 아무래도 많은 양이었다.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간지럽혔다. 소년은 초콜릿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이즈미에게 물었다. 약간 소똥같은 색깔이라며 작게 꺄르르 되었다. 이즈미는 소년에게 친절하게 초콜릿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서양에서 즐겨먹는 간식이래. 원래는 카카오라는 열매인데 그걸로 이 초콜릿을 만든다나봐. 나도 카카오라는 열매는 본 적이 없지만 이 초콜릿은 종종 즐겨먹어. " 


 그리곤 별모양이 찍혀있는 초콜릿 하나를 조심히 들어 소년에 입에 신중히 넣어주었다. 소년은 먹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듯 초콜릿을 입에 넣고 한동안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이즈미만을 바라보았다. 이즈미는 소년의 행동에 어깨를 으쓱이곤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며 제 입에 초콜릿을 하나 넣고 우물우물 빠는 행동을 해보였다. 소년도 이내 그것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러더니 잠시 혼이나간 듯 혼미한 표정을 지어보이곤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예요.."


 생각 외의 반응이 이즈미를 즐겁게 했다. 이즈미는 기분이 좋아져서 남은 과자는 다 너 먹으라고 웃어보인 뒤 보자기를 다시 묶어서 소년의 빨랫대야에 넣어주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으로 몇번이고 이즈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제 선물이라며 엉성하게 깍여진 나무인형도 보답으로 건냈다. 사실 이즈미의 집에는 저 나무인형보다 훨씬 훌륭하고 재밌는 장난감이 발에 채일정도로 많이 있었지만 이즈미는 처음으로 남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이렇게 좋은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


 언덕에서 내려와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기 전, 이즈미가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점심때 쯤에 서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내일은 더 맛있는 과자를 가져다 주겠노라고 이즈미는 선언했다. 소년은 와아-하고 환호했다. 둘은 이내 큰 길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즈미의 입에서는 아무리 연습해도 잘 되지 않던 휘파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모! 정말 다 담았지? 그 쿠키도 담고, 초콜릿도 가득 담았지? "

"어휴, 도련님. 몇번이나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 챙겼다니까요. 너무 많이 드시면 살쪄요?"

"상관없어-. 그건 그렇고 젤리도 챙겼지?"


 주전부리를 싼 보따리는 어제보다 훨씬 그 부피가 커져있었다. 이즈미는 보따리를 건네받지마자 신발을 신은 채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늦게 피운 바람이 더 독하다더니 우리 도련님이 딱 그꼴이구나, 하며 유모는 허허 웃었다. 대체 어떤 친구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까다로운 세나 이즈미 도련님을 저렇게까지 구워삶다니.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즈미는 이내 우물가에 도착했다. 어제 저녁에 눈이 와서 그런지 우물에 소복히 눈이 쌓여 있었다. 우물가에는 어린 여자애 하나가 빨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이즈미와 눈이 마주치더니 이내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아무래도 추위때매 생긴 홍조는 아닌 듯 싶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소녀에겐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어제 마코토가 앉아있던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오늘 더 커진 과자 보따리를 보면 마코토가 어떤 표정을 지어줄 지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마코토가 조금 늦는 것 같았다. 자신이 너무 빨리 나와버린 것인가? 이즈미는 보따리를 끌어 안으며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겨보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낙네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부지런히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갔다. 벌써 스물여섯번째 아낙네였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단발머리 소녀도 진즉에 가버리고 없었다. 마을 여기저기서 밥짓는 냄새가 솔솔 풍겨와 점심때부터 계속 공복상태인 이즈미의 코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있던 그림을 잠시 멈추곤 하늘을 바라보았다. 색붉은 주황색의 노을이 이 포근한 마을을 어머니가 자식을 감싸듯 포근한 모양새로 덮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그 자리를 별들이 촘촘히 매꾸기 시작했다. 수도(首都)에서는 좀 체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손이 찼다. 지문이 쩌억 갈라져 있었다. 이미 감각이 사라져서 별 느낌은 없었다. 아까의 소녀처럼 자신도 손에 입바람을 후후 불어봤다. 결국 소년은 오지 않았다. 과자 보따리는 이미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아 둔 채였다. 왜 너는 오지 않았을까? 너는 바쁜 일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널 기다리고 있는데? 넌 내가 널 미워하게 되어도 좋은 것일까? 묻고 싶은 것이 저 하늘의 별만큼이었다. 별이 참 무수했다. 밝게 떠있는 별이 참 미웠다.


"도련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유모가 제대로 된 외투도 입지 않은채 나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유모는 이즈미를 발견하더니 이내 눈물샘을 촉촉히 적셨다. 혹시 도적들에게 잡혀간 것이나 아닐지 안절부절 걱정하던 마음이 이즈미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으로 변했다. 유모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이즈미를 향해 뛰어와 어둠 속에 홀로 서있던 이즈미를 품에 꼬옥 안았다. 유모의 품은 따듯했다. 이즈미의 볼줄기를 타고 물줄기가 갸날프게 흘렀다. 몸이 따듯해지니까 흐르는 생리적인 눈물일거라도 이즈미는 생각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 유모 ... 흐, 읍. 유...모... "


 별이 참 무수했다. 저 별만큼 나는 너를 미워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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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우상철회 03








 겉보기엔 평화로웠다.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전투 전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한 법이다. 일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 전의 평화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곁들여져 있다. 마코토도 그랬다. 별 거부감 없이 새 집에는 잘 적응해 나갔고 새로운 가족들과의 관계는 원만했으며 전학 간 학교에서도 모범생이라고 칭찬을 받는 둥 일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그 화풀이를 위해 마코토를 욕하고 때리던 어머니는 이제 없었다. 속은 썩디 썩어버렸지만 겉만은 최고로 번지르르한 과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겉은 번지르르하더라도 그 안에 애벌레가 과육을 다 헤쳐놓고 있는 쭉쩡이는 조금만 건드려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기념일이라며 2박3일로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이즈미와 마코토는 같은 쇼파에 앉아 의미없이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사실 마코토는 별로 저 예능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최근에 친해진 아이들이 하도 재밌으니 한번만 보라고 권유해왔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뭣해서 어쩔수 없이 이번편만이라도 보자고 생각하며 보던 중이었다. 한번도 tv보는 모습을 보인적 없던 이즈미가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던 마코토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그건 너무 노골적인 반응 같아서 적당히 십분만 더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유우군은 참 뻔뻔해. 나같으면 못할거야. 자기아빠와 바람 난 여자의 가정에서 사는거."


 마치 '저 예능 재밌지 않아?'라고 묻는 것 같이 단조로운 표정으로 이즈미가 물었다. 여전히 tv 브라운 관에서 시선은 떼지 않은 채였다. 말의 내용이 지독하지만 않았더라면 마코토는 아마 이즈미를 무시했을 것이다. 마코토는 이 집 식구들과 모두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었지만 이즈미만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딱히 혐오하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보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식구들 처럼 먼저 사근사근하게 다가가서 관계를 원만히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집안에 살고 있는 어색한 남처럼 이즈미를 대해왔다. 그런데 저런 폭탄같은 발언을 해올 줄이야. 하긴,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걸 간과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에도 꽤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있던 이즈미지만 저렇게까지 포악한 인간이었다니.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저 도발에 넘어가버린 자신이었다.


 "이즈미씨만 하겠어요? 저같으면 못할걸요? 새아버지의 전아들이랑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는거."

 

 이즈미가 tv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서서히 떼서 마코토에게 돌렸다. 이즈미에게 조금이라도 상처주고 싶었는데 마코토의 말이 이즈미에겐 이상하게 작용했던 것 같았다. 마주친 이즈미의 눈동자 속에는 웃음이 서려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눈빛이 '그러게 빼앗긴 네 쪽이 잘못 아니야?'라는 비웃음을 함축하고 있었다. 주먹이 나간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 주먹이 이즈미의 얼굴에 보기좋게 박혀버렸다면 좋았을련만 그 시나리오는 보기좋게 구겨졌다. 탁-, 너무나도 손쉽게 이즈미가 자신의 주먹을 잡아채자 마코토는 당황했다. 여자친구의 앙탈을 손쉽게 잡아채는 남자친구처럼 이즈미는 참으로 쉽게 마코토를 제어했다. 이즈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럴때도 이즈미가 잘생겼다고 느껴버리는 제 뇌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워워ㅡ. 형을 때리는 동생이라니. 버릇없는 동생은 키운 적이 없는데, 나는."

 "동생이라고 하지마요. 존나 역겨우니까."

 "뭐, 나도 널 동생으로 볼 마음은 없는데. 이제부터 안 봐줘도 되지?"


 사각사각-, 애벌레가 마음 속을 엉망징창으로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 속에 사는 애벌레에겐 먹는다는 행위에 일정 규칙이 없어서 이곳 저곳 생각도 못한 모양으로 마음을 갉아먹어 버린다. 세나 이즈미가 자신의 위에 올라탔다. 사각사각사각사각, 귓가가 시끄러웠다. 이제는 뇌까지 갉아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 , 낯선 체온이 마코토의 가슴팍 위로 올라왔다. 낯선 손길이 그런 가슴을 난잡하게 지분거렸다. 한껏 발길질을 했다. 천장의 무늬가 눈가를 어지럽혔다. 제 바지는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벗겨져 저만치 던져졌다. 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마코토의 중심부터 뇌까지 뚫어버렸다. 뇌가 부스러졌다. 숨 넘어가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즈미가 웃었다. 저 입가의 미소만 거둬버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애처로운 숨을 신께 바칠 의향이 있었다.


 아아, 박수갈채가 들렸다. 자신만 빼고 모두들 즐거워 하는 무대 위에서 마코토는 나체인 몸이 찣어발겨지도록 굴려졌다. 퍽퍽퍽 -, 난잡하고 음란한 효과음이 아래로부터 들렸다. 원래는 무언가를 넣을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 곳은 불가항력으로 역류당했다. 하읏, 자신의 위에서 교미의 쾌락으로 신음하는 이즈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마코토는 저 악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겠노라 맹세했다. 악인은 제 영웅이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픔으로 인해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이즈미의 땀방울이 제 안경의 유리알에 떨어져 시야를 방해했다. 


 "난 널 동생으로 볼 생각이 없어."

 

 절정에 근접해있는 들뜬 목소리가 마코토에게 말했다. 이내 뱃속은 따듯한 액체로 푹 절여졌다. 


 "난 …난, 당신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 … 앗, 어요 …, 절대로."

 "그것 참 유감이네."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거야. 당신의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거야. 내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거야. 


 "난 널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거든."


 이즈미로부터 뿜어지는 욕정은 나를 향해서만 곧게 뻗어있어서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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