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평화로웠다.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전투 전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한 법이다. 일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 전의 평화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곁들여져 있다. 마코토도 그랬다. 별 거부감 없이 새 집에는 잘 적응해 나갔고 새로운 가족들과의 관계는 원만했으며 전학 간 학교에서도 모범생이라고 칭찬을 받는 둥 일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그 화풀이를 위해 마코토를 욕하고 때리던 어머니는 이제 없었다. 속은 썩디 썩어버렸지만 겉만은 최고로 번지르르한 과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겉은 번지르르하더라도 그 안에 애벌레가 과육을 다 헤쳐놓고 있는 쭉쩡이는 조금만 건드려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기념일이라며 2박3일로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이즈미와 마코토는 같은 쇼파에 앉아 의미없이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사실 마코토는 별로 저 예능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최근에 친해진 아이들이 하도 재밌으니 한번만 보라고 권유해왔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뭣해서 어쩔수 없이 이번편만이라도 보자고 생각하며 보던 중이었다. 한번도 tv보는 모습을 보인적 없던 이즈미가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던 마코토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그건 너무 노골적인 반응 같아서 적당히 십분만 더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유우군은 참 뻔뻔해. 나같으면 못할거야. 자기아빠와 바람 난 여자의 가정에서 사는거."


 마치 '저 예능 재밌지 않아?'라고 묻는 것 같이 단조로운 표정으로 이즈미가 물었다. 여전히 tv 브라운 관에서 시선은 떼지 않은 채였다. 말의 내용이 지독하지만 않았더라면 마코토는 아마 이즈미를 무시했을 것이다. 마코토는 이 집 식구들과 모두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었지만 이즈미만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딱히 혐오하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보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식구들 처럼 먼저 사근사근하게 다가가서 관계를 원만히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집안에 살고 있는 어색한 남처럼 이즈미를 대해왔다. 그런데 저런 폭탄같은 발언을 해올 줄이야. 하긴,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걸 간과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에도 꽤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있던 이즈미지만 저렇게까지 포악한 인간이었다니.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저 도발에 넘어가버린 자신이었다.


 "이즈미씨만 하겠어요? 저같으면 못할걸요? 새아버지의 전아들이랑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는거."

 

 이즈미가 tv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서서히 떼서 마코토에게 돌렸다. 이즈미에게 조금이라도 상처주고 싶었는데 마코토의 말이 이즈미에겐 이상하게 작용했던 것 같았다. 마주친 이즈미의 눈동자 속에는 웃음이 서려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눈빛이 '그러게 빼앗긴 네 쪽이 잘못 아니야?'라는 비웃음을 함축하고 있었다. 주먹이 나간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 주먹이 이즈미의 얼굴에 보기좋게 박혀버렸다면 좋았을련만 그 시나리오는 보기좋게 구겨졌다. 탁-, 너무나도 손쉽게 이즈미가 자신의 주먹을 잡아채자 마코토는 당황했다. 여자친구의 앙탈을 손쉽게 잡아채는 남자친구처럼 이즈미는 참으로 쉽게 마코토를 제어했다. 이즈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럴때도 이즈미가 잘생겼다고 느껴버리는 제 뇌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워워ㅡ. 형을 때리는 동생이라니. 버릇없는 동생은 키운 적이 없는데, 나는."

 "동생이라고 하지마요. 존나 역겨우니까."

 "뭐, 나도 널 동생으로 볼 마음은 없는데. 이제부터 안 봐줘도 되지?"


 사각사각-, 애벌레가 마음 속을 엉망징창으로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 속에 사는 애벌레에겐 먹는다는 행위에 일정 규칙이 없어서 이곳 저곳 생각도 못한 모양으로 마음을 갉아먹어 버린다. 세나 이즈미가 자신의 위에 올라탔다. 사각사각사각사각, 귓가가 시끄러웠다. 이제는 뇌까지 갉아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 , 낯선 체온이 마코토의 가슴팍 위로 올라왔다. 낯선 손길이 그런 가슴을 난잡하게 지분거렸다. 한껏 발길질을 했다. 천장의 무늬가 눈가를 어지럽혔다. 제 바지는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벗겨져 저만치 던져졌다. 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마코토의 중심부터 뇌까지 뚫어버렸다. 뇌가 부스러졌다. 숨 넘어가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즈미가 웃었다. 저 입가의 미소만 거둬버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애처로운 숨을 신께 바칠 의향이 있었다.


 아아, 박수갈채가 들렸다. 자신만 빼고 모두들 즐거워 하는 무대 위에서 마코토는 나체인 몸이 찣어발겨지도록 굴려졌다. 퍽퍽퍽 -, 난잡하고 음란한 효과음이 아래로부터 들렸다. 원래는 무언가를 넣을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 곳은 불가항력으로 역류당했다. 하읏, 자신의 위에서 교미의 쾌락으로 신음하는 이즈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마코토는 저 악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겠노라 맹세했다. 악인은 제 영웅이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픔으로 인해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이즈미의 땀방울이 제 안경의 유리알에 떨어져 시야를 방해했다. 


 "난 널 동생으로 볼 생각이 없어."

 

 절정에 근접해있는 들뜬 목소리가 마코토에게 말했다. 이내 뱃속은 따듯한 액체로 푹 절여졌다. 


 "난 …난, 당신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 … 앗, 어요 …, 절대로."

 "그것 참 유감이네."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거야. 당신의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거야. 내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거야. 


 "난 널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거든."


 이즈미로부터 뿜어지는 욕정은 나를 향해서만 곧게 뻗어있어서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