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에 들어와서 안 사실이지만 학교내에서도 유닛에 따라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저 순수히 음악만 하기 위해서 이 학교에 온 나야 그런 것 따위 알리가 없었지만 이 학교 학생이 된 이상 아주 모른척 하고 살 수도 없었다. 사쿠마 레이는 유메노사키의 권력 집단인 'fine'에게 대항하려고자 하는 몇몇 반역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 반역자들의 수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역을 꿈꾸는 그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서 그당시의 나는 그 눈동자를 보고 사쿠마 레이를 또다시 멋지다고 동경해 버렸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싸움이었지만 나는 내심 그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사쿠마 레이가 비상하기를 바랬다. 그의 무궁한 가능성을 믿었다. fine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가 언제나 반짝거리는 상태로 사람들의 무수한 동경을 받는 스타로서 남아주길 바랬다. 녀석은 충분히 그래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놈이 었으니까.
녀석을 동경하고 나아가 녀석의 곁에 머무는 사이에 나에게도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무의식중에 녀석의 말투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 말투는 어느새 녀석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 외에도 녀석을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게 되었다. 뒤늦게 사랑에 빠진 사춘기의 소녀마냥 그자식이 좋아한다는 음료를 사서 건넸고 그자식이 한번이라도 더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익힌 안무를 모른다는 듯이 녀석에게 묻곤 했다. 정말이지 다시 돌아보면 부끄러울 정도의 애정표현이었다. 내 짝사랑이 점점 색을 더해가는 동시에 녀석의 반역도 점점 진전을 더해갔다. 학생들은 이때를 유메노사키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기대하고 입학했을 학생들은 살벌한 파벌싸움에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결국 사쿠마 레이는 졌다.
사쿠마 레이의 날개가 꺾인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 반역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사쿠마 레이에 대한 동경심이 한순간에 꺼져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노력했던 녀석을 곁에서 지켜봐왔기에 반역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지 그래도 녀석을 우상시하던 나의 사고는 바뀌지 않았다. 녀석을 향한 동경심을 철회해 버린 것은 녀석이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고 게다가 도피하듯 유학까지 가겠다고 선언한 때였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움직인 싸움에서 fine를 결국 꺾지 못해 실망한 마음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사쿠마 레이는 그저 사쿠마 레이로 있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이녀석은 진짜 체력의 한계라는 것이 있는걸까?하고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쌩쌩한 체력조차 반역이 실패한 이후 급속히 떨어졌다. 녀석은 하루종일 관에서 잠만 잘 뿐이었다. 경음부에 놓아진 관을 나는 밉다는 듯이 두어번 찰때도 있었다. 얄궂게도 관은 참 튼튼해서 기스 하나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쿠마 레이가 꼴보기 싫을 때는 녀석의 관을 찼다.
유학을 간다고 선언한 녀석은 마지막으로 유닛과 동아리 멤버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지독한 날짜 선정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땅을 쳐대는 날씨였다. 녀석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경음부 부실이었다. 경음부 부원들은 녀석의 안녕을 바라며 그에게 잘되라는 둥 건강하라는 둥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건냈다. 녀석은 애매한 미소를 흘리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난 대놓고 노골적으로 녀석을 무시했다. 사쿠마 녀석은 끝내 나에게 악수를 받지 못한 텅 빈 손을 바라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부원들은 나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나는 어쨌거나 막무가내였다.
흡혈귀녀석이 나가버리자 경음부원들도 각자 부실을 나가버렸다. 부실에 남은 것은 나 혼자였다. 나는 경음부의 창가에 걸터앉아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경음부 부실은 운동장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쪽에 있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걷고 있는 사쿠마 녀석의 뒷모습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녀석의 퇴장에 어울리는 지독한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녀석은 저 어깨에 유메노사키의 전부를 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 하나 지기도 벅차하는 저 어깨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이새끼야!"
사쿠마 레이를 붙잡은 것은 무의식의 반영이었다. 사실 끝까지 무시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녀석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버리자, 그 애처로운 어깨에 남겨진 영광의 잔향을 기억해내자 울분의 목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가버렸다. 녀석은 뒤를 돌아서 곧은 시선으로 경음부 부실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비를 맞고 있었다. 이런 날 우산 하나 챙겨오지 않다니. 도대체가 자신은 왜 저런 얼뜨기를 이제껏 좋아해왔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시간 낭비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자신보다 학년도 어린 후배가 반말을 해오는데도 흡혈귀녀석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인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항상 존댓말을 써왔고, 사쿠마 선배라고 제대로 부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녀석에게 더이상 비를 맞게 할 수 없어서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 온 비닐우산을 오른손에 들고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녀석을 향해 뛰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밖에 없다. 녀석이 점점 가까워졌다. 운동장을 달렸다. 비를 맞은 채. 사실 우산을 펴서 썼으면 될 일이었지만 그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다급했다. 이제 더이상 못 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자 최고속도였던 내 달리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녀석의 앞에 섰다. 비에 절은 녀석의 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패배자의 향기가 났다.
"우리 멍멍이는 착하네. "
녀석은 이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미 비는 홀딱 맞은 상태였지만 나는 녀석의 앞에서 우산을 펴서 녀석의 머리 위에 씌웠다. 싸구려 비닐 우산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런 사람이었다. 조금 더 좋은 우산을 사올 걸, 하고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아직 똑똑한 멍멍이는 될 수 없는 모양이구나. 우산이 있는데도 굳이 그걸 쓰지 않고 주인에게 달려오다니. "
"누가 … 누가 니 멍멍이라는거야, 진짜… 죽고싶냐?"
눈물이 흘렀다. 상관없었다. 이때만큼은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빨리 돌아와라, 네 녀석. 다음엔 … 다음엔 내가 네 녀석을 쳐 부술거니까. 더, 더 강해져서 오라고!"
결국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녀석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문장이 왜이렇게도 말하기 힘들었는지. 내 머리를 손으로 잔뜩 헝클어놓은 것을 마지막으로 교문을 떠나는 사쿠마의 진짜 마지막 뒷모습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나는 좋아한다고 자그마하게 중얼거려 보았다. 사실 그날 나는 네게 고백했었다. 세상의 모든 잡음을 묻어주는 빗소리의 힘을 빌려서.
'옛날 글들 > 앙스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즈마코] 슬침연(膝枕緣) 01 (0) | 2016.03.03 |
---|---|
[이즈마코] 우상철회 03 (0) | 2016.03.02 |
[레이코가] 반례 01 (0) | 2016.03.01 |
[앙스타/올커플링] 전력으로 이사가고싶다.. 01 (0) | 2016.02.14 |
레이코가리츠 (0) | 201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