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너 빨리 안 올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분명 멀리서 부르고 있을 터였는데 어째서인지 코 앞에서 윽박지르는 것마냥 귀가 울렸다. 저 여자는 저 목소리 하나로 이 구역의 관리자가 된 것일 거다. 그렇다는 데에 내기를 해도 좋았다. 이번에 새로 이 구역의 관리자가 된 저 기녀는 참을성이 부족했다. 게다가 엄청난 동성애 혐오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관리하고 있는 이 구역은 남창들만 모여사는 구역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입에선 저 고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지독한 말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저 여자는
마코토를 유독 싫어했다. 정말이지 마음이 못난 사람이었다.
마코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머릿기름을 조금 더 발라 뻗친 옆머리를 빗질했다. 저번의 관리자였던 기녀는 자주 자신의 머리를 빗어주곤 했다.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마코토를 신경써주며 이별선물로 이 빗을 선물한 아주 선한 사람이었다. 지방의 관리의 첩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마코토는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기녀의 삶이나 첩의 삶이나 그다지 행복할 거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마코토는 그녀가 그 곳에 가서도 그 미소를 유지하기만을 바랐다. 그녀는 기녀 짓을 하기엔 너무나도 성녀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 유곽을 떠나서 관리자가 저런 괴팍한 여자로 바뀐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지만.
"유키 너 이새끼 얼른 안와?"
다시 한번 복도에서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키, 라고 불린 마코토는 얼굴을 찌푸리곤 '금방 갈게요'라고 퉁명스레 그녀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그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목소리로 마코토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같은 남자에게 다리나 벌리는 남창'이라거니 '우리 유곽의 수치'라거니 하는 악질적인 말들이었다. 마코토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너도 남자한테 다리 벌리는 처지인 주제에 뭐가 잘나서 그런 말을 씨부리는 거야?
마코토는 자리를 일어섰다. 계속 굼뜨게 행동했다가는 저 기녀가 마마에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섞어서 마마에게 고발할 거라는 건 불보듯 뻔했다. 마마는 이 유곽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였다. 마마는 서양언어로 '엄마'라는 뜻이라고 했다. 성인 여자 평균에 훨씬 못미치는 자그마한 키를 가진 늙은 여자였지만 그 노련함과 처술은 무시할 게 못되었다. 그녀는 이 유곽거리에서 가장 많은 기녀를 보유하고 있고 가장 많은 단골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운영자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수도로 올라와 유곽을 차리기 전에는 지방에서 알아주는 기녀였다고 했다. 그녀는 마코토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딱히 대놓고 뭐라 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마코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초리에서 종종 혐오라는 감정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얼굴에 잔뜩 짜증을 덕지덕지붙인 기녀가 마코토를 새침하게 째려보았다. 정말이지 마음만 곱게 썼다면 이 유곽에서 세손가락 안에 기녀가 되었을 여자다. 제 손님에게는 그렇게 갖은 아양을 다 떨어대면서 동료에게는 평이 안좋다. 마코토는 방어수단으로 그녀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그녀는 재수없는 것을 봤다는 듯 대놓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휙 돌아서 접대손님이 있는 방으로 마코토를 안내했다.
이 유곽은 이 거리에서 제일 큰 유곽답게 복도도 길었고 방도 많았고 구조도 무척 복잡했다. 관리자가 안내를 해주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은 복도에선 쉽게 방을 헷갈리고 만다. 복도에는 다다미가 구김살 없이 깔려있고 방 문 앞에는 홍등이 하나씩 달려 있다. 여기저기 홍등이 켜진 방과 켜지지 않은 방이 보였는데 홍등이 켜졌다는 의미는 일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수의 홍등이 켜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교성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은 그녀 '연기'일 뿐인 교성이었다. 이 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누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지, 누가 억지로 교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은 여자의 교성이었으나 가끔은 굵은 목소리의 남자 것도 들렸다. 사실 이 유곽이 이렇게 까지 성장한 데에는 다른 유곽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은밀한 성적취향을 개별적으로 만족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변수들을 마련해 놓았다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 중에서는 남자를 좋아하는 손님도 있었으며사지가 없는 것을 좋아하는 손님도 있었고 때리는 데에서 흥분을 느끼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맞는 것에서 흥분을 느끼는 손님도 존재했다. 마코토는 그 중에서도 남자를 좋아하는 손님을 맞는 창남이었다.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존재했다.
" 어떤 방법으로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오늘도 그 사람이 널 지명했어. 참 웃기는 사람이라니까? 이 유곽엔 너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자가 발에 채일정도로 넘쳐나고 너보다 더 귀엽게 생긴 남자애들도 있는데 말이야?"
여자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마코토 앞에서 그를 험담했다. 그렇지만 마코토는 그녀가 자신을 험담하면 험담할 수록 조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질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마코토가 이 구역의 에이스취급을 받고 있는게, 그리고 최근엔 왕족의 마음에 들어버린 것에.
여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이 나라의 왕족인 '텐쇼인 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과는 먼 친척 사이지만 왕족이란 이유만으로도 이 유곽에서 그 손님을 특별 취급해주는 것은 당연했다. 딱히 왕족이 아니더라도 돈이 많은 사람이니 분명 특별관리 명단에 올랐을 것이지만. 여튼 마코토도 알게모르게 왕족이라는 이유로 그를 신경쓰고 있었다. 매너없고 제멋대로인 남자였지만 조금만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터였다. 당장 죽여져도 할말 없을 정도로 더러운 목숨이었지만, 그래도 목숨은 소중했다.
"그럼 지명받아보시지 그랬어요."
마코토는 빙긋 웃으며 그녀를 도발했다. 보기좋게 그 도발에 넘어가버린 그녀는 얼굴에 형형색깔의 색을 피웠다. 그녀가 꽉 쥔 주먹을 부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때릴 기세로 주먹을 어깨로 치켜 들었다. 여자의 주먹이라 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실으면 꽤 아플 것이다. 마침 마코토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녀를 따돌리곤 휙-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통쾌했다.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해하고 있을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없던 식욕도 돌 지경이었다.
"또 뵙습니다, 텐쇼인 아타야마님."
방에 들어서니 한 쌍의 침구, 촛대 그리고 텐쇼인 아타야마라는 남자가 이미 그 안에 들어서 있었다. 마코토는 일단 차례를 지키려 무릎을 꿇고 그에게 절을 했다. 벌써부터 남자의 눈에는 번뜩이는 욕망이 엿보였다. 참으로 왕족답지 못한 남자였다. 이 나라의 왕인 '텐쇼인 에이치'는 굉장히 기품넘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의 피를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있는 저 남자는 어찌 저리 품위가 없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성미급하게 초에 붙은 불을 거센 입김으로 훅 불어버렸다. 심지에 붙은 미약한 불빛이 한순간에 사그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코토는 제 과거를 떠올렸다.
마코토는 좀 전의 도련님에게 받은 과자 보따리를 소중히 빨랫대아에 넣고 길을 걸었다. 분명 어머니도 초콜릿이란 것을 맛보시면 기운이 나실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코토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다. 의원도 무슨 병인지 정확히 진단 내리지 못하는 희안한 병이었으나, 마코토는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의 7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나 흰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어 본 적 없었고, 또 도박꾼에게 시집와서 하루도 맘 편해 본 날이 없었다. 마코토의 아버지라는 작자는 한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하는 난봉꾼이었으며, 그마저 한번 돌아올 때 마다 도박에 쓸 돈을 찾기 위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다. 아직 소년의 몸인 마코토에게는 아버지를 막아낼 힘이 없었기에 마코토는 하루 빨리 자라서 못된 아버지를 쫓아내고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미니가 아프시기 때문에 마코토는 왠만한 집안일은 제가 다 하고 있었고, 이웃들의 빨래를 해주는 댓가로 푼돈을 얻어 조금이나마 살림을 꾸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초콜릿이 얼마나 하는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림잡아 짐작건데 이웃집의 빨래를 백번 해줘도 사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코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뛰었다. 집이 보였다. 어째선지 시끄러웠다. 집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마코토는 불안해졌다. 설마 아버지가 돌아온 것인가? 아버지가 오지 않은지 최근 두달정도 되었으니 아마 아버지가 돌아왔을 수도 있었다. 어디에서 객사하기를 매일밤 빌고 또 빌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코토는 황급히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제가 없다면 어머니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어어-. 저기 자네 아들 오는구만?"
마당에 들어서니 낯선 얼굴의 남자가 마코토를 보고 누런 이를 들어내며 씨익 웃었다.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술에 절어있는 아버지가 서있었고 마당바닥에는 마코토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통곡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뭔가 평소와는 달랐다. 뭔가 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일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를 살피니 다행히도 아버지에게 어딘가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찝찝할까?
"애가 참 곱상하게 생겼네. 사내애 맞아?"
"하하, 물론입죠. 쟤가 생긴건 지 어미를 닮아 좀 기집애같긴해도 달릴건 다 달린 사내아입니다."
"음, 뭐 요새 수도에선 저런 얼굴이 인기긴 하니까 말이지. 뭐 특별히 내가 더 쳐주겠네."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요. "
남자와 제 아버지는 마코토를 두고 물건 흥정하듯 흥정하기 시작했다. 이내 이가 누런 남자가 마코토의 팔목을 잡아왔다. 본능적으로 이 남자를 따라가면 영영 이 곳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코토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어머니는 그 약한 몸으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통곡했다. 하지만 마코토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자에게 돈을 받은 아버지가 조용히 하라며 어머니를 때리는 것이 보였다. 마코토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이내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마코토에게도 손찌검을 해왔다. 투박한 그 주먹이 멍치를 강타하자 어째서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이러면 안 …돼는데, 내가 어머니를… 의식이 몽롱해졌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이후로도 마코토는 죽을때까지 그 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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