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씨. 저 M이에요. 당신은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지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사실 아직까지 오므라이스의 달걀 지단을 갈라지게 하지 않고 부치는 법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오늘도 점심에 오므라이스를 시도해 봤는데 역시나 당신처럼 지단을 만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혹시 그런 제 모습을 천국에서 바라보면서 비웃었습니까? 천국에서는 지상이 보인다는데 진짜인가요? 왠지 그렇다면 당신은 하루종일 저만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름이 돋습니다. 아, 지금 너무해!라고 하셨죠? 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그런데 진짜 하루종일 저만 보고 계신건 아니시죠...? 


 당신이 그 곳으로 가신지도 벌써 1년이 되었네요. 계절은 네번 바뀌어 다시 당신이 떠나버린 겨울이 되었습니다. 겨울은 상실의 계절인거 같네요. 모든 생명력을 앗아가잖아요. 생각해보니 어릴적 제가 키우던 강아지 '지로'도 겨울에 얼어 죽었던 것 같네요. 저는 이 겨울이 참으로 밉습니다. S씨는 겨울을 좋아한다고 하셨죠? 우리는 참으로 공통분모가 없는 것 같네요. 이렇게 당신과 다른 저를, 당신은 왜 좋아해주었는지 아직까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뭐, 극단끼리는 끌린다는 말도 있지만요. 그러고보니 천국에는 계절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가요? 천국의 겨울은 어떤가요? 아, S씨. 천국에는 가신 겁니까? 문득 걱정이 되네요. 


 일년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나이가 한살 한살 더 먹어갈 수록 시간이 너무 휙휙 지나가는 기분이라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던 추억은 금방 잊어먹게 되네요. 음.. 글쎄 뭐가 있을까요. 아, 사쿠마 리츠씨가 얼마 전에 일주일동안 깨어나지 않고 깊이 잔 일이 있었습니다. 마오군에게 리츠씨가 일주일째 깨어나지 않는다는 전화가 왔을때는 사쿠마씨도 당신의 뒤를 따라 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냥 단순히 일주일 간 숙면했던것이라고 해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일주일이나 잠을 잘 수 있을까요. 그러보면 당신이 속해있던 그룹은 참으로 개성적인 사람이 많았지요. 


 아, 그리고 아라시군은 최근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간간히 배우활동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아라시군 이름으로 메이크업 브랜드도 런칭했다고 해요.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면서 아라시씨 이름으로 메이크업 제품이 담긴 박스가 두상자나 도착했을때는 처치 곤란했습니다. 아무래도 전 주변에 아는 여자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께 친구들과 나눠쓰시라고 드렸더니 참으로 좋아하시더군요. 레오씨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계세요. 얼마 전에 일본전역을 강타한 걸그룹의 히트송을 써서 몸값이 꽤나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레오씨는 정말 작곡에 재능있는 분이네요.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으려니 당신이 저희집에 찾아왔던 그 날이 생각나네요. 이제 한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S씨가 말해왔을때는 솔직히 속으로 질색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제는 스토킹을 하다 못해 거짓말이라도 쳐서 동정표를 얻으려는 건가? 라고 생각했어요. 너무하다고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S씨의 평소 행실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하여튼 이제 한 달밖에 살 수 없으니 한 달만이라도 저희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을 때는 진심으로 경찰에 신고할 참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진중한 분위기의 S씨를 보고 있자니 어째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지요. 제가 허락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지고 왔던 짐을 제 집안으로 들여놓던 당신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좀 많이 무섭지만요.


 아, 당신이 가져왔던 제 피규어는 아직도 선반 위에 모셔두고 있답니다. 당신이 당당히 그것을 꺼내서 선반위에 올려놨을 때는 대체 당신은 어느정도까지 구제불능인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치우자니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느낌이라 아직도 제 선반위에 놓아져 있어요. 몇달 전에 제 집을 방문한 스바루군이 그 피규어를 보더니 'M군 혹시 나르시스트야...?'라고 썩은 물고기의 눈알로 바라봤지만요. 그것은 어찌저찌 잘 해명했습니다. 그나저나 그런 피규어는 대체 어디서 제작한 겁니까 S씨? 혹시 그 피규어에게 이상한 짓을 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지요? 아무리 당신이지만 거기까진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당신이 제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질색하셨던 것도 기억에 나네요. 아무래도 저는 평범한 남자일뿐이라 인스턴트라던가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당신은 그것을 모두 내다버리라고 명령하셨죠. 이런걸 먹고 피부가 썩어서 죽을 생각이냐며.. 전국에 인스턴트 식품 사장님들을 적으로 돌리는 소리를 간단히 해버리고 저희는 S씨가 만족할 만한 식품들로 냉장고를 채워넣기 위해 마트에 갔었죠. 사실 이건 비밀인데 당신이 내다버리라고 했던 그 인스턴트들은 아까워서 내다버리진 않고 도로 가져왔었어요. 화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당신처럼 뜯지도 않은 음식을 뭉텅이로 버릴 사람은 못되니까요.

 

 대충 마트에서 특가라고 써져있는 야채들을 고르고 있으려니 당신은 저에게 얼굴을 찌푸렸죠. 그리곤 농약의 해로움에 관해 이것저것 설교를 늘어놓은 뒤, 얼이 빠져있는 저를 이끌고 유기농 코너로 갔어요. 토마토 하나 고르는 데도 십분이 넘게 걸리는 S씨를 보면서 참으로 꼼꼼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모델으로서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있구나- 하고 조금 감탄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 날 저녁은 파스타였지요? 학창시절에 S씨가 종종 저에게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져다 줄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 안에 수면제라도 탄 건 아닐까 두려웠어서 한 번도 입에 댄 적은 없었습니다. 즉, 그 파스타가 제가 먹어본 S씨의 첫 요리였지요. 파스타는 잘 먹을 일이 없어서 어떤게 맛있는 파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S씨의 그 파스타는 꽤나 제 입맛에 맞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음식을 대접받고도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네요.

 

 감사했습니다 S씨. 당신의 그 파스타 무척이나 맛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그 답례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드렸는데, 기억나나요?  제가 보기에도 안 탄 부분보다 탄 부분이 더 많은 괴상한 요리가 되어있었지만, 굳이 버리자는 제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당신은 그것을 다 먹어 치우셨지요. 물론 당신다운 혹독한 악평은 잊지 않으 신 채로요. 이후에 당신은 제게 지단 부치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솔직히 저는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엉성하게 만들어진 제 오므라이스를 보고 있으려니 당신의 꾸짖음이 들리는 거 같아 조금은 웃게 됩니다. 역시 전 평생 오므라이스는 제대로 만들 수 없을 거 같아요.


 당신은 남은 한 달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다 가고 싶다고 어딘지 제게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S씨가 속해있던 그룹인 나이츠의 멤버들을 제 집에 초대했었죠. 그때 기억나시나요? 츠카사군이 '저 선배가 결국 인신매매까지 손댄건가..' 라고 중얼거리면서 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을요. 얼마안가 츠카사군은 당신에게 머리를 쥐어박혔지만요. 레오씨도 '결국 S녀석이 우려하던 일을 ...' 이라던가 아라시씨도 '이거 신고해야해 말아야해? 정의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라던가 어쩐지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서 우스웠어요. 하여튼 나이츠의 멤버들은 모두 재밌는 분들입니다.


 나이츠의 여러분에게 'S씨와 같이 살자고 제가 허락했습니다.'라고 말하니까 또 한번 나이츠의 모두가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리츠군은 '저기.. M군..S한테 협박당한거라면 경찰에 같이 신고해줄테니까..'라며 핸드폰을 건네왔지요. 당신 평소에 대체 행실이 어땠던 겁니까.. 


 그 날은 나이츠의 모든 분들이 밤늦게까지 저희 집에서 술파티를 벌였었네요. 당신의 주량이 그렇게 약한지 저는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주사를 알고 계셨습니까? 술취하면 힘이 장사가 된다는 말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말 같았습니다. 술취하자마자 저에게 달려드는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다행히 나이츠의 모든 분들이 당신의 사지를 잡고 말려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는 그 자리에서 동정을 빼앗길 뻔 했습니다. 진짜로 무서웠다고요. 진짜로요. 저도 남자니까 S씨가 아무리 덤벼들어도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건 제 착각이라는 것을 저는 그날 밤 깨달았습니다. 다시한번 그 때 S씨를 전력으로 말려준 나이츠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당신이 떠나버리고 가장 많이 울어주었던 것도 나이츠의 모두네요. 어째서 당신이 죽는다는걸 말하지 않았던 거냐고 리츠씨가 제 멱살을 쥐여올 때는 솔직히 쫄았습니다. 매일 잠만 자는 사람한테 그렇게 엄청난 기운이 있을 줄 몰랐어요. 아마 레이씨가 말려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보기좋게 이빨하나 정도는 나갔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꽤 사랑받고 있던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저도 당신처럼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이야기가 조금 세어 버렸네요. 나이츠 멤버분들이 고주망태가 되어 매니저라던가 지인이라던가에게 이끌려 사라 진 후, 당신은 '저녀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죽고싶지 않아.'라며 중얼거렸죠. 새벽바람에 흩어져 그 중얼거림은 미미하게 들렸지만 그래도 저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상을 사랑했던 것 이지요? 그 세상 안에 저도 들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자만일까요? 


 저희가 첫 입맞춤을 했던 날을 기억하세요?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는 당신의 요구에 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저에게 어느 정도의 애정을 기대하고 왔다는 것을 저는 잘 알았습니다. 당신을 집 안에 들여 놓은 것은 일종의 허락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사실 '뽀뽀해도 돼?' 라는 요구는 당신의 입에서 나온 것 치곤 너무 건전해서 놀랐답니다. 사실 저는 그 이외의 더 심한 짓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너무 변태인 건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아마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어도 저는 들어주었을 거예요. 저는 그정도로 각오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니까 당신은 조심조심 망설이며 제게 다가왔지요. 학창시절에는 대놓고 좋아한다고 스토킹 비스무리 한 것도 했던 당신인데 입맞춤 하나에 그렇게 바들바들 긴장하다니 솔직히 좀 웃었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인간답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당신을 예전부터 인간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확실히 제 입술에 닿은 당신의 말캉거리는 입술 촉감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당신은 인간이었어요.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맞추는 것에 긴장하는 보통의 인간이었어요. 왜 저는 당신을 예전부터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을까요? 그렇게나 인간다운 사람이었는데 말예요.


 그 이후, 하루하루 수척해 지는 당신의 모습은 제 심장을 잘게잘게 찣어버리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 앞에선 애써 밝은 척 했을 진 몰라도 괴로운 것은 S씨 당신만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옆에서 당신을 지켜보던 저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아마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괴로운 일은 몇번 더 겪어야 하는 것이겠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거나 제 친구가 죽는다던가 할 때 말이에요. 저는 또 이 괴로운 일을 반복 할 자신이 없네요. 이것은 다 당신의 책임입니다 S씨. 


 당신이 죽기 전에 했던 부탁을 기억해요? '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나인걸로 해줘'라니 끝까지 당신다운 부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곧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면서도 저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당신에게는 그 전 부터 이미 질려있었지요. 사실 당신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저를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S씨였습니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모두들 아는 사실일텐데, S씨 당신은 왜 그런 부탁을 하고 떠난 것일까요? 뭐, 아직까지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보다 더 절 좋아해 주는 사람은 나타질 않고 있네요. 왠지 나타나게 된다면 당신이 무슨수를 써서라도 퇴치할거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사실 저는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언제나 빛나는 당신을 보며 저도 당신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달려왔어요.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당신과 같은 선상에 서고 싶어서 노력했기때문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지도 몰라요. 제가 지금 당신과 같은 선상에 섰다는 무례한 말은 하지 않아요. 저는 아무리 해도 S씨, 당신의 발치에도 닿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 쯤 당신이 저 먼 곳으로 떠나버려서 저는 이제 좇아야 할 상대가 없어졌습니다. 그것이 너무 분해요.


  저는 꽤 괜찮은 놈이었나요 S씨? 대답하지 않으신다면 그런 것으로 알겠습니다. 저는 원래 제멋대로인 억지쟁이니까요.


 이제는 봄이 다가옵니다 S씨. 당신이 가져간 겨울은 참 길기만 했네요. 이제, 봄에는 행복하세요. 




                                                                                         -M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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