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레이아들(라이) x 코가입니다. 





 "라이군은 Y대 법학부에 지원한다고 했었나? 마음이 바꼈다던가 하진 않았니?"


 푸근한 미소를 가진 담임이 학기 초에 조사한 대학희망 종이를 팔랑이며 물었다. 기본적으로 상담가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본직은 화학교사라지만 담임에게는 문과적 소양이 다분해 보였다. 뭐, 그래서 학생들에게 신뢰받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 역시도 담임은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 사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Y대에 가겠다는 마음에 딱히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기에 굳이 입을 열어 에너지 소모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라이군은 성적 좋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부활동만 좀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나저나 라이군정도면 T대도 가능한데 굳이 Y대에 지원하는 이유가 있니?"


 담임은 조금 아쉽다는 어투로 내가 Y대를 지원하는 이유를 물어왔다. 사실 어릴적부터 법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는데 어느날 Y대의 학생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부터 …라던가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Y대가 집에서 제일 가깝고 그나마 좋은 대학이기에 그 곳에 가려고 하는, 무척 재미없고 무기력한 이유였다. 그리고 법학과라고 쓴 것은 그다지 아는 학과도 없고, 관심있는 분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사람한테 지나가는 말로 법학과나 지원할까- 라고 했을 때 반응이 좋았던 이유도 있고. 


 "별로 없어요"


 솔직하게 말해버리자 담임은 잠시 당황하는 얼굴이 되었다. 누가 솔직함이 인간의 미덕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어느정도의 위선으로 살아야 미덕있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법이다. 교실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선생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 솔직하게 살아버리면 평판 나쁜 인간으로 자라버린다. 그 중 하나의 예가 나다. 나는 그다지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은 귀찮다. 그리고 이 예의없는 솔직함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 외모로 용서되는 사회다.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재수없는 내용이지만 나는 겉껍데기만은 훌륭하다. 아마 일본 전역에 있는 기획사란 기획사의 명함은 다 받아 봤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주변에는 내 팬클럽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있는 모양이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있거나 수돗가에서 땀을 식히고 있으면 어디선가 셔터소리가 한두개씩 들려온다. 뭐, 나에게 관심을 가져오는 것은 귀찮긴 하지만 그것을 작정하고 쫓아내는 것은 더더욱 귀찮은 일이므로 가만히 두고 있었다. 이 외모가 가져오는 이점은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얼굴이 지독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아침 거울을 보며 커터칼로 얼굴을 북북 그어버리는 망상을 할 만큼.

 

  이 얼굴은 나의 부친인 '사쿠마 레이'에게서 고대로 물려 받은 것으로, 내 부친의 생전 동창이었던 카오루씨는 가끔 날 보면 '진짜 사쿠마씨 판박이잖아...물론 성격은 반대지만.'이라는 말을 해왔다. 언젠가 봤던 부친의 졸업앨범에선 정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었다. 그만큼 닮았던 것이다. 우리 둘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너무 기분 나쁘게 똑닮아있었다. 차이점은 언제나 올라가있는 아버지의 입꼬리와, 언제나 세상 일에 무력한 듯 살짝 내려간 나의 입꼬리 정도가 아닐까. 차라리 평범하게 생겼던 엄마 쪽을 닮았으면 좋았을걸. 그리고 내가 이 외모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


 






 "왔냐 라이? 오늘 저녁은 카레다."


 현관을 열자 앞치마를 두르고 밥주걱을 든 오오가미가 보였다. 아마 지금 막 밥을 푸려던 중인 것 같았다. 연두색의 앞치마에는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지역의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었다. 방긋웃고 있는 강아지 캐릭터가 '어서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삼년은 넘게 쓴 앞치마라 조금 너덜거렸지만 그래도 난 저 앞치마가 참 좋았다. 오오가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오늘은 좀 늦었다? 혹시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냐?"

 "내가 넌 줄 알아? 담임이랑 상담했어"

 "이자식이 또 싸가지없게 반말이나 찍찍해대는거 봐라.." 


 오오가미는 내 머리에 주먹을 쿵- 쥐여박았다. '어렸을때는 꽤 잘따랐는데…'하면서 혀를 쯧쯧차며 시선을 올려 나를 째려봤다. 삼년 전에는 내가 오오가미를 조금 올려보아야 했는데, 어느샌가 오오가미가 날 올려다 봐야하게 됐다. 이것이 삼년 간 우리 관계의 진전일까, 라고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젠 내가 더 키도 크잖아. 오오가미는 오오가미로 충분해."


 조금 꿍해져서 오오가미에게 툴툴거리니 오오가미의 눈이 잠시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갸웃거리며 내 이마를 제 손바닥으로 집어보더니 '열은 안나는데..'하고 중얼거렸다. 아마 최근 더욱 심해진 나의 투정이 오오가미에게는 어디가 아픈걸로 비춰지는 모양이었다. 바보. 멍청이. 오오가미는 멍청하다. 가끔 국에 설탕과 소금을 구별하지 못해서 설탕을 부을 만큼 멍청하다. 서른 후반의 나이가 되었어도 무서운 영화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멍청하다. 언젠가 곰국을 끓이다가 외출해서 집을 홀라당 태워버릴뻔 했을 정도로 멍청하다. 그리고, 이제는 너에게 존칭하지 않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정말로 오오가미는 멍청하다. 








 "이제 곧 있으면 니 부모님 기일이네. 금요일인거 같던데. 학교끝나고 바로 올 수 있냐?"


 카레는 조금 싱거웠다. 후각이 예민한 오오가미는 향신료가 강한 요리는 항상 싱겁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오오가미가 만든 카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밑반찬으로 나온 마늘장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귀가부였고, 방과후에 딱히 삼삼오오 모여서 어디를 놀러가는 체질도 아닌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부모 기일에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 것은 낳아준 부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의 부모는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외투를 껴입지 않으면 안되는 이 늦가을에 죽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고 한다. 둘은 교토로 단풍을 보려 내려간 모양이었고, 그 곳에서 취객이 운전하는 차에 들이받혀져 그대로 그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오오가미의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 딸랑이나 가지고 놀면서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어린 나를 데리고 긴시간 차 여행을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던 내 부모님의 처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다. 아니, 사실은 그때 죽어버리는 것이 좋았을까?

 

 원래 내 부모의 재산도 상당했거니와, 보험금까지 나와서 솔직히 나는 고아치고는 분에 넘칠듯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살던 집은 너무 커서 이미 예전에 처분해버렸지만, 지금 살고있는 이 집도 두명이 살기에는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 될 만큼 컸다. 실질적으로 이 집을 계약한 오오가미의 말로는 이 집의 정원이 레온이 뛰어다니기 좋을정도로 커서 이 집을 골랐다고 한다. 정말 단순한 이유였다. 


 지금 그 레온은 죽고 없어서, 마당 한 켠에는 빈 개집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