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로만 한정짓기에는 송구스러울 만큼, 인간계의 내노라하는 미녀들을 다 데려다 그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서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어도 저 남자만의 발끝에도 못 닿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잠시 이 곳이 마계가 아닌 천상계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손에 쥐고있는 피로 얼룩진 장검이 얼른 마왕의 목을 따버리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신비로운 마력에 사로잡혀 마왕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용사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몇년 전 일이라 흐릿하지만, 아마 그것은 마왕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물들이 인간계를 침범해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마왕 본인이 인간계로 넘어오는 일은 없었고, 마왕을 잡으러 갔던 용사들은 단 한명 돌아온 이가 없었기에 마왕에 대해서는 소문만 자자할 뿐이었다. 아마 그 때 배우고 있던 책에서는 '마왕은 너무나 용모가 끔찍하여 그 용모를 본 사람들은 기절한다고 한다. 그러니 마왕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흉측한 것에도 단련이 되야 한다.'라고 써져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 반대였다. 마왕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라도 몸이 경직된다, 라고 고쳐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인간계에 돌아간다면 그 책의 저자를 찾아가서 이 구절은 잘못되었다고 일러주리라. 물론 살아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보였지만. 


 솔직히 마왕성에 들어왔을 때는 마왕도 쉽게 생각했다. 잘하면 내가 마왕의 목을 따고 돌아가서 나라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래봬도 나는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용사였고, 여기까지 무수한 마수들과 싸우면서 결국 끝에가서는 다 처리했으니 이런 자만감이 붙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마왕을 보자마자 나는 용사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이것은 백이면 백 다 지는 싸움이라고. 앞서 물리쳐왔던 집채만한 마수들보다 나와 비슷한 체격을 지니고 있는 저 마왕이라는 남자가, 훨씬 강했고 훨씬 위험했다. 


 아아,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죽음은 각오하고 왔지만 어째서인지 막상 죽어야한다니까 도망치고 싶은 심경이었다. 이대로 도망쳐버릴까? 하지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여기에 나를 묶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초인간적인 존재라는 걸까. 수천년을 살아온 마왕에게 수십년밖에 못사는 인간이 덤비기에는 역시나 무리란 말일까. 그래도, 그래도 살고 싶었다. 집에 돌아 갈 수 있다면, 스바루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싶었고 호쿠토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아주 오래전에 마오라는 애도 마왕성 토벌군에 합류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아이도 이 마왕을 봤을까? 아니면 마왕성에 도착하기 이전에 죽어버린걸까?


  " 흐응 -. "


 마왕이 눈을 떴다. 아마 애초부터 잠자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금방이라도 날 덮쳐올 정도로 생생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왕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 미소는 이미 승리자의 미소였다. 마왕은 져본적이 없으리라, 수천년동안 그 누구에게. 


 마왕, 그는 웃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이즈마코] 마왕님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걸 01

                   w. mesk 












 "아 진짜아! 글쎄 이런거 필요 없다니까요? 여자도 아니고 꽃다발이 뭐예요 꽃다발이!"

 "하지만 이건 마왕님이 용사님을 위해, 백년에 한번 핀다는 꽃 암브로스를 꺾어다 만든…"

 "아 글쎄 내가 여자도 아니고! 됐다고요!"


 꽃다발을 다시 받아든 마수의 표정이 슬픈 듯 축 쳐졌다. 그래봤자 인간들의 눈에 보기엔 흉측한 표정이지만. 여하튼 암브로스인지 브로맨스인지 그게 얼마나 귀한 꽃인지는 몰라도, 남자가 준 꽃다발은 결단코 받기 싫었다. 줄거면 아리따운 쭉쭉빵빵한 누님이 주면 좀 좋냐고! 마계에는 예쁜 애도 없냐? 마왕한테 다 얼굴 몰아주기 하고 있냐? 이런거 줄거면 좀 예쁜애한테 시켜서 보내든가, 금방이라도 사람잡아먹을 거 같이 생긴 마수를 통해 전달하는 건 또 무슨 심보래. 나는 축 쳐져있는 마수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전한 뒤 문을 쾅 닫아버렸다.


"마코토님.. 이대로 돌아가면 마왕님이 절 죽이실 지도 몰라요.."


 문밖에서 우는 소리가 집안으로 흘러 들려왔다. 알게뭐냐, 마수의 죽음따위 오히려 기쁘거든? 이라고 대꾸해주고 싶었으니 기본적으로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어느새 나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이미 내 손은 문을 열어서 마수에게서 다시 그 꽃다발을 가져가고 있었다. 마수는 방긋 웃으며 '살았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그 웃음마저 흉측하게 보였지만. 하여튼 마수는 제 임무를 다하고 뒤를 돌아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녀석들도 나름 귀여운 놈일지도 … 라고 생각하는 내 머리를 쥐여박고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용사인 나와 마수인 저들이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사건은 위로 거슬러가서 내가 마왕의 목을 따려던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흐응 -.'


 나는 곧 죽는다고 생각했다. 마왕은 금방이라도 개미를 밟아죽이려는 아이처럼 즐겁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여전히 나는 손가락 마디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동공만을 움직여 내가 겁에 질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마왕은 왕자에서 사뿐히 내려왔다. 그는 합리적이게 오만했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나는 최고야, 라는 오만함이 묻어있었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동안에도 시선은 나에게서 떼지 않은 채로 마왕은 신중히 나를 훑었다. 그리고 내 눈 바로 앞까지 그가 다가오는 순간,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아름다운 피사체에 대한 경외감에 몸을 부르르 떨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인간은 몇 안되는데, 보기보다 실력이 있나보네?'


 마왕은 검지손가락으로 내 턱을 좌우로 돌리며 뜻밖에도 내 실력을 칭찬했다. 방심하게 만든 다음에 죽이려는 속셈인가 이녀석.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죽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죽여도 될 것이다. 아니면 인질로 삼겠다는 건가? 하지만 나따위를 인질로 삼아서 뭐하게? 나는 일개 용사일 뿐이다. 나라에서 나 하나를 구하려고 귀중한 국력과 돈을 투자할 리가 없다. 


 '이름이 뭐야?'

 '유ㅡ 유우키 마코토.'


 입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내 이름이 유우키 마코토였나. 머리가 멍해졌다. 마왕의 얼굴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것에 감명한 나는 주륵- 눈물을 흘렸다. 마왕의 입술이 내게 닿았다. 말캉, 생각보다 마왕의 입술은 별 다를 것 없이 인간에 가까웠다.



 "으아아아아아아!! 그거 내 첫키스였다고!!"


 나는 암브로스인지 브로맨스인지 하는 꽃다발을 거실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쳤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온몸에 닭살이 오소소 돋고, 얼굴이 벌게지고 개미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아 진짜 죽어! 얼굴만 예쁜 변태새끼! 예쁘다고 생각한 내 뇌를 뜯어버리고 싶다. 그런 스토커새끼가 뭐가 이쁘다고 으아아아아! 솔직히 가장 죽이고 싶은건 그 키스에 느껴버린 나지만. 누가 그런식으로 키스해 올 지 알았겠냐고! 내 키스 돌려내 이 사이코 마왕자식!




*




 "네?"

 "마계에 다녀오라고. 왕명이다."

 "싫다면요?"

 "음. 이자리에서 당장 네녀석을 죽이는 수 밖에."

 "으아아아! 농담이거든요 농담. 농담도 못합니까?"


 목 바로 앞에 멈춰진 검을 보며 나는 덜덜 떨었다. 쿠누기대장님은 진짜 나를 베어버리기라도 할려는지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낮에는 대장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밤에는 마왕에게 동정을 위협받는 처지라니. 이렇게 불쌍한 처지가 세상에 어딨어, 흑흑흑. 


 "그럼 다녀온다고 한거다?"

 

 네 그럽구말구요. 나는 제발 내 목앞에 있는 이 검 좀 치워달라는 눈빛으로 쿠누기대장님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은 검을 내 목에서 거둬 칼집에 넣어두더니 이내 툭-하고 무언가를 던졌다. 보따리였다. 응? 이건 왜..


 "자, 갔다와라."

 "지금부터요?!!?! 아니 저 옷가지도 안챙겨왔 …"

 "불만있냐?"


 다시 칼집에 꽂아둔 칼로 손을 가져라려는 대장님의 행동에 '아니요 불만 없습니다, 흑흑'하고 눈물을 흘리며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지독한 사람들이랑 엮이는 걸까. 아니 한명은 이미 사람이 아니지만... 얼마 전에 미도리가 저승으로 훅 가는 약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디서 구했냐고 좀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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