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


 아, 역시 여름은 달다. 뇌가 달달 녹아버릴 것 같다. 


 







[에이케이] 달달 녹아내리는 01










 "텐쇼인 에이치야."


 계란 노른자마냥 책상 위에 널브러져있던 교탁 맨 앞자리의 까까머리마저 일순간 호흡을 정지시켰다. 흡-. 교실에는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만이더라. 사내새끼들끼리 갇혀있는,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이 교실이라는 이름의 수컷우리가 이렇게 조용해 본 게. 케이토는 눈알만 살짝 굴려 교실을 훑어보며 조금 놀라운 기분이 되었다. 제 담임이 출석부로 교탁이 부숴져라 내리치며 조용히하라 협박해도 귓등으로도 안듣는 이 사내놈들이 저들이 알아서 입을 이렇게 닫다니. 이건 분명 3학년 반의 기념비적인 일일 것이다. 거봐라, 담임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지 않은가. 


 일순간 찾아온 정적으로인해 끼득-, 교실의 낡은 선풍기의 바람소리마저 귓가에 생생히 느껴졌다. 아무리 시골학교라도 아직까지 천장 위에 다는 선풍기라니. 수험생한테 너무한 취급이다. 적어도 삼학년 교실만이라도 에어컨을 달아주면 좋을련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손에 쥐고있던 샤프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 침묵속에서는 내 자그마한 행동마저 소음으로 간주되어버리는 것인지 탁-하고 샤프를 놓은 내 행동에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버렸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저 전학생은 전학 온 첫날에 아무렇지 않게 해버렸다. 조금 대단한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런 찌린내만 풍겨대는 동급생들보다야 말이다.  

 
"다들 친하게 지내자."


 잠깐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확히 내쪽을 봤다고야 확신할 수 없지만 녀석은 어쩐지 나와 눈이 마주쳤던것도 같고 사실은 아닌것도 같다. 그래도 나는 녹음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옆자리가 빈 것은 우리 반에 나뿐이었으므로 녀석은 자연스레 내 짝이 되었다. 다른 녀석들이 고개를 돌려 왠지 부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사실 아름다움은 어딜가나 통용된다. 나이, 성별 그 무엇을 너머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선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선망받기에, 텐쇼인 에이치는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였다. 녀석이 가방을 걸어 자리에 앉곤 통성명이라도 하려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무척 부드러울 것 같았다. 햇빛을 뽑아만든 실과 같았다. 


 "넌 이름이 뭐야?"


 목소리까지 고운 건 반칙이다.







*




"어, 나도 이쪽 살아."

"…그래?"

"같이 하교할래?"

" …뭐."


 녀석은 하교하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생긴건 안그렇게 생겨선 어찌 그리 말이 많은지 전생에 참새였나 싶었다. 불행히도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나로서는 '그래?' '아,' 정도의 화답을 해주는 것이 다였지만 그래도 녀석은 말을 처음해보는 아이처럼 쉴새없이 조잘거렸다. 


"케이토 넌 동아리 안해?"

"아, 난 귀가부라. 그리고 시골학교라 동아리도 별로 다양하지 않고."

"그렇구나. 난 몸이 안좋아서 여지껏 동아리는 해본 적이 없어. 학교끝나면 항상 침대심세였거든, 하하. "


 제 아픈 얘기가 뭐가 그리 재밌다고.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의 행동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니 녀석도 조금 무안하다는 듯 웃어왔다.


 "이런 얘기 별로지?"

 "아니 뭐 그다지.. "

 "사실 나 아파서 요양차 여기 전학 온 거거든."


 아, 그런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어차피 내가 전학오기 전에 담임의 입을 통해서 대충 들었으니까 말이다. 네가 꽤나 아프다는 것도, 네가 그 '텐쇼인'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라는 것도, 이 길 건너의 엄청 으리으리한 집이 사실은 네가 요양차 머물고 있는 별장이라는 것도. 사실 나는 너에대해 네 생각보단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소리다. 그건 딱히 내가 잘난 놈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반장'이라서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학급에 꼭 있는 반장의 이미지. 안경쓰고, 공부는 언제나 상위권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왠지 조금 음침하고 재미없는 놈. 그 조건에 죽이게 잘 맞아떨어지는 놈이 바로 나란 말이다.  


 "시골은 하늘이 참 맑아."

 "그래? 난 너무 덥기만 한대."

 "정말, 아름다워. "


 하늘이- 라는 주어가 빠져있는 문장이었지만 뭐 딱히 지적해 주진 않기로 했다. 녀석과 시선이 얽혔다. 보면 볼수록 참 잘생긴 자식이었다. 부모님이 키울맛이 나시겠네.


 "정말, 정말로 아름다워."


 그렇게 바라보면서 말하지마라. 뭔가 이상하잖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