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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가] 반례 02







 이 학교에 들어와서 안 사실이지만 학교내에서도 유닛에 따라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저 순수히 음악만 하기 위해서 이 학교에 온 나야 그런 것 따위 알리가 없었지만 이 학교 학생이 된 이상 아주 모른척 하고 살 수도 없었다. 사쿠마 레이는 유메노사키의 권력 집단인 'fine'에게 대항하려고자 하는 몇몇 반역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 반역자들의 수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역을 꿈꾸는 그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서 그당시의 나는 그 눈동자를 보고 사쿠마 레이를 또다시 멋지다고 동경해 버렸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싸움이었지만 나는 내심 그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사쿠마 레이가 비상하기를 바랬다. 그의 무궁한 가능성을 믿었다. fine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가 언제나 반짝거리는 상태로 사람들의 무수한 동경을 받는 스타로서 남아주길 바랬다. 녀석은 충분히 그래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놈이 었으니까.


 녀석을 동경하고 나아가 녀석의 곁에 머무는 사이에 나에게도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무의식중에 녀석의 말투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 말투는 어느새 녀석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 외에도 녀석을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게 되었다. 뒤늦게 사랑에 빠진 사춘기의 소녀마냥 그자식이 좋아한다는 음료를 사서 건넸고 그자식이 한번이라도 더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익힌 안무를 모른다는 듯이 녀석에게 묻곤 했다. 정말이지 다시 돌아보면 부끄러울 정도의 애정표현이었다. 내 짝사랑이 점점 색을 더해가는 동시에 녀석의 반역도 점점 진전을 더해갔다. 학생들은 이때를 유메노사키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기대하고 입학했을 학생들은 살벌한 파벌싸움에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결국 사쿠마 레이는 졌다. 


 사쿠마 레이의 날개가 꺾인 것은 참으로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 반역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사쿠마 레이에 대한 동경심이 한순간에 꺼져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노력했던 녀석을 곁에서 지켜봐왔기에 반역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지 그래도 녀석을 우상시하던 나의 사고는 바뀌지 않았다. 녀석을 향한 동경심을 철회해 버린 것은 녀석이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고 게다가 도피하듯 유학까지 가겠다고 선언한 때였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움직인 싸움에서 fine를 결국 꺾지 못해 실망한 마음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사쿠마 레이는 그저 사쿠마 레이로 있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이녀석은 진짜 체력의 한계라는 것이 있는걸까?하고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쌩쌩한 체력조차 반역이 실패한 이후 급속히 떨어졌다. 녀석은 하루종일 관에서 잠만 잘 뿐이었다. 경음부에 놓아진 관을 나는 밉다는 듯이 두어번 찰때도 있었다. 얄궂게도 관은 참 튼튼해서 기스 하나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쿠마 레이가 꼴보기 싫을 때는 녀석의 관을 찼다.


 유학을 간다고 선언한 녀석은 마지막으로 유닛과 동아리 멤버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지독한 날짜 선정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땅을 쳐대는 날씨였다. 녀석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경음부 부실이었다. 경음부 부원들은 녀석의 안녕을 바라며 그에게 잘되라는 둥 건강하라는 둥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건냈다. 녀석은 애매한 미소를 흘리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난 대놓고 노골적으로 녀석을 무시했다. 사쿠마 녀석은 끝내 나에게 악수를 받지 못한 텅 빈 손을 바라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부원들은 나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나는 어쨌거나 막무가내였다. 


 흡혈귀녀석이 나가버리자 경음부원들도 각자 부실을 나가버렸다. 부실에 남은 것은 나 혼자였다. 나는 경음부의 창가에 걸터앉아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경음부 부실은 운동장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쪽에 있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걷고 있는 사쿠마 녀석의 뒷모습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녀석의 퇴장에 어울리는 지독한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녀석은 저 어깨에 유메노사키의 전부를 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 하나 지기도 벅차하는 저 어깨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이새끼야!"


 사쿠마 레이를 붙잡은 것은 무의식의 반영이었다. 사실 끝까지 무시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녀석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버리자, 그 애처로운 어깨에 남겨진 영광의 잔향을 기억해내자 울분의 목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가버렸다. 녀석은 뒤를 돌아서 곧은 시선으로 경음부 부실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비를 맞고 있었다. 이런 날 우산 하나 챙겨오지 않다니. 도대체가 자신은 왜 저런 얼뜨기를 이제껏 좋아해왔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시간 낭비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자신보다 학년도 어린 후배가 반말을 해오는데도 흡혈귀녀석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인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항상 존댓말을 써왔고, 사쿠마 선배라고 제대로 부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녀석에게 더이상 비를 맞게 할 수 없어서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 온 비닐우산을 오른손에 들고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녀석을 향해 뛰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밖에 없다. 녀석이 점점 가까워졌다. 운동장을 달렸다. 비를 맞은 채. 사실 우산을 펴서 썼으면 될 일이었지만 그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다급했다. 이제 더이상 못 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자 최고속도였던 내 달리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녀석의 앞에 섰다. 비에 절은 녀석의 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패배자의 향기가 났다.


 "우리 멍멍이는 착하네. "


 녀석은 이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미 비는 홀딱 맞은 상태였지만 나는 녀석의 앞에서 우산을 펴서 녀석의 머리 위에 씌웠다. 싸구려 비닐 우산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런 사람이었다. 조금 더 좋은 우산을 사올 걸, 하고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아직 똑똑한 멍멍이는 될 수 없는 모양이구나. 우산이 있는데도 굳이 그걸 쓰지 않고 주인에게 달려오다니. "

 "누가 … 누가 니 멍멍이라는거야, 진짜… 죽고싶냐?"

 

  눈물이 흘렀다. 상관없었다. 이때만큼은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빨리 돌아와라, 네 녀석. 다음엔 … 다음엔 내가 네 녀석을 쳐 부술거니까. 더, 더 강해져서 오라고!"

 

 결국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녀석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문장이 왜이렇게도 말하기 힘들었는지. 내 머리를 손으로 잔뜩 헝클어놓은 것을 마지막으로 교문을 떠나는 사쿠마의 진짜 마지막 뒷모습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나는 좋아한다고 자그마하게 중얼거려 보았다. 사실 그날 나는 네게 고백했었다. 세상의 모든 잡음을 묻어주는 빗소리의 힘을 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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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가] 반례 01


 





 아이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7살의 생일선물로 기타를 품에 안아본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오직 음악이라는 것에 맞춰져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음악에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정도 잘 살았던 집안과 인간불신이라는 모토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 타고난 외톨이 기질 때문인지도 몰랐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에 담임은 유메노사키라는 고등학교를 나에게 귀띔해줬다. 본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만약 합격한다면 자취를 해야하는 곳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아마 이 낮은 성적으로 그런 명문고등학교를 붙게 된다면 부모님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시며 얼마든지 자취비를 대주실 테니까 걱정은 없었다.


 유메노사키에 견학을 간 것은 원서를 쓰기 일주일 전, 외부인에게 개방하는 드림패스인지 뭔지를 하던 기간이었다. 사실 아이돌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것들이 음악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냐는 삐뚤어진 마음으로 향한 곳이었다. 학교 안에는 쓸모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여학생들이라서 내 얼굴은 금세 질색이 되었다. 그중에서는 'fine'이니 '사쿠마 레이'이니하는 응원굿즈들을 들고있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아까 복도에서 팔던 것들을 보며 저런게 팔리겠어?하고 코웃음쳤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응원굿즈를 든 채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이보라고들, 그 굿즈 하나 살 돈으로 아프리카 아이들 몇끼를 먹여살릴 수 있는 줄 알아? 라고 호통쳐주고 싶었으나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시비 걸 정도로 난 용기있지 못했다.


 그렇게 앉아있으니 곧 몇팀의 공연이 지나갔다. 물론 그 중에서야 몇몇 괜찮은 노래를 하는 놈도 있었으나 여자애들에게 비위를 맞추기위해 일부러 달아빠진 노래를 하고 있는 놈들에게는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곳에 오면 마음껏 음악할 수 있다고 해서 원서를 넣으려고 한 것인데, 저렇게 팀을 꾸려서 활동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홀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차라리 집 근처의 일반고를 넣어서 방과후에 음악에만 매달리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갔다. 이곳까지 견학을 온 시간은 아깝지만 역시 이 학교랑은 연이 없나보다-하고 자리를 뜨려할 때, 그 때 내 인생을 바꿔놓은 목소리가 나를 잡아챘다. 정말이지 그때 조금만 늦었더라면 내 인생은 아주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여러분, 즐기고 있어?"


 왜 그 목소리가 유독 시선을 채갔는지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래 인생사란 이해하려 들 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면 흡혈귀녀석이 항상 주장하듯 그가 진짜 흡혈귀라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 웃기는 농담에는 조금이나마 대꾸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으나 가끔은 정말로 그녀석이 흡혈귀가 아닌지 의심가는 순간은 종종 있다.


 우습게도 내가 흡혈귀녀석의 목소리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한 그 사이에 라이브무대는 시작되었다. 솔직히 노래자체는 앞서 불렀던 녀석들보다 월등히 잘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끄는 무언의 힘이 더해져서 노래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사쿠마 레이 너무 멋져..'하고 감탄사를 흘리기에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사쿠마 레이.' 내 의지에 의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날로 돌아가서 나는 유메노사키에 원서를 썼고,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오오가미 코가라는 이름을 올렸다. 정말이지 그녀석과 같이 음악할 생각으로 그때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유메노사키에서 입학허가장이 날라온 그 날, 어머니는 내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질 나쁜 학교에 가서 질 나쁜 아이들이랑만 어울리는 거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마음 고생을 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모님 걱정만 시키는 못된 아들이었나 …하는 충격도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명문고에 합격했으니 그 걱정은 실현되지 않은 셈이었다. 아버지도 내심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코끝이 조금 빨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그 날 밤은 고기파티였다. 너무 많이 먹어서 이대로 아이돌치곤 몸매가 뒤딸린다는 이유로 퇴학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렇게 레온과 둘이서 도쿄에서의 자취를 시작했다. 


 

 입학하는 날은 벚꽃이 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4월이다보니까 전국 어느 학교에가나 벚꽃이 만개했겠지만 유메노사키의 벚꽃은 유독 더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아이돌학교다보니까 심미성을 중요시 여겨서 학교의 나무 하나하나까지 잘 정돈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교문을 지나자마자 쉴새없이 내 앞으로 건네지는 동아리 홍보지에 나는 지레 기겁을 했다. 교문에서 교실까지 이동했을 뿐인데 홍보지는 내 품 안에 한아름 안겨 있어서 처치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것들을 그대로 쓰레기통 안으로 직행시키고 나는 창가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한 반의 인원이 적어서인지 같은 반의 동급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덥지 않은 인사치레를 해오길래 나는 싹 다 무시한 채 오로지 이것 하나만을 물었다. 


 "너, 사쿠마 레이라고 알아?"


 역시 그 녀석은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그 동급생 녀석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줬다고 생각해서 기쁜 것인지 제가 아는 온갖 정보를 떠벌댔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녀석에는 조금 감사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그 동급생녀석에게 얻어낸 정도를 바탕으로 사쿠마 레이가 멤버로 있는 유닛에 들어갔고, 그녀석과 같은 동아리를 택했다. 그리고 유닛 모임이 있어서 그 녀석을 제대로 처음 대면했을 땐 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생겨도 되나하고 쓸모없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그때는 멀어서 거의 성냥개비 수준의 녀석을 봤기 때문에 목소리로만 녀석을 기억했지만, 사실 얼굴까지 몹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사쿠마 레이라는 남자는.


 "안…녕하세요, 사쿠마 선배님"


 그가 날 보고 오른손을 건네왔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였다. 나는 평범한 악수요청 하나에도 너무나도 긴장해버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할 정도였다. 내민 손을 잡았다. 혹시 손바닥으로도 심장의 빠르기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첫 기타를 선물로 받은 7살의 그 날도 이렇게 설렜던 것 같다. 





* 제목을 뭘로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반례로...

반례제 떡밥 최곱니다..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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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금속] 좋은 오빠 01




※금속배트 이름은 그냥 금속배트로 쓰겠습니다 . 배드가 조금 어색하네요 ;ㅅ;









 "…."

 세 심사위원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왼쪽에 앉은 안경을 쓴 남자 심사위원은 차마 더이상 보는 것은 한계라는 듯 명부를 뒤적거리며 딴 짓을 하였으며 오른쪽에 앉은 여자 심사위원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았다. 오직 가운데 앉아있는 남자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금속배트를 연기를 바라봐 줄 뿐이었다. 사실 연극부따위에 절대로 들 생각은 없었다. 그 소중하디 소중한 여동생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금속배트가 연기를 하면 할 수록 강당의 공기는 썰렁해졌다. 적성에 맞지않는 연극 오디션따위는 집어치우고 싶다. 지금이라도 심사위원의 잘난 면상에 대본을 던져버려도 딱히 나쁠 것은 없다. 물론 여동생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와 친해져서 나와 연결해줘!' 라는 여동생의 요구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남들이 본다면 그저 어린애의 땡깡에 불과했기에 그저 머리나 한대 쥐여박아주면 그만이었겠지만 자신은 여동생에게 물러도 너무 무른 것이 문제였다. 분명 언젠가는 여동생때문에 한번 크게 데일 놈이라고 친구들이 진지하게 말해올 정도다. 더불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자신들에게는 전화하지 말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당시에는 그런 친구들의 주둥아리를 비틀어주는 것으로 그쳤지만, 사실 여동생이 위험에 빠지는 것 보다야 자신이 위험해지는 쪽이 백번이고 천번이고 낫다고 생각한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그 '오빠'라는 놈은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금속배트의 연기를 평가하고 있는 놈들중에 한 사람인 저 아마이마스크란 놈으로 이 지역에선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정도로 꽤 유명한 놈이었다. 예전에 꽤 잘나갔던 아역배우에 간간히 모델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서 학교의 명물이니 연극부의 왕자니 뭐니 불려대고 있지만 일단 금속배트 자신은 남자이고 저런 기생오라비같은 면상을 꽤나 싫어했다. 하지만 요새 여자애들은 저런 기생오라비같은 얼굴을 좋아하는 것인지 금속배트의 여동생도 어느날인가부터 아마이마스크 아마이마스크- 노래를 불러대서 금속배트의 마음속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놈 넘버원으로 아마이마스크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 동생의 친해지라는 부탁아닌 부탁이 없었다면 옥상으로 끌고가서 저 재수없는 면상을 한번쯤 손봐주었을 것이다.

 사실 친해지라는 부탁은 얼핏보면 쉬어보이지만 학년도 다르고 접점도 없는 아마이마스크와 친해지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가면 항상 여동생이 아마이마스크와 좀 친해졌냐고 물어오는 데 이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슬슬 눈치보일 지경이다금속배트는 이제야 1학년이었지만 아마이마스크는 이제 3학년 졸업반이라서 같은 동아리라도 들지 않으면 전혀 접점이 없기에, 금속배트는 눈 딱 감고 연극부니 뭐시기니에 들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장벽이 하나 더 있었으니, 이 곳의 연극부는 꽤 유명한 모양이라서 입부희망생은 모두 테스트를 봐야했고 그 결과 이런 참혹한 장면이 눈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물론 신입생들중에서야 연기도 못하면서 그 혈기 하나만을 믿고 연극부에 오디션 보러 오는 놈들이 드문것도 아니었으나, 저 깡패같은 얼굴하며 의욕없어보이는 얼굴하며 …. 차라리 국어책을 읽어도 저것보단 낫겠다고 심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입밖으로 냈다가는 아마 맞아 죽을지 몰랐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 요구된 세가지 연기중에 마지막연기를 펼치려 할 때 아마이마스크가 입을 뗐다.


 "금속배트씨. 지금 하고 계신거 여주인공 부분인거는 알고 계신가요?"


 뭐야. 오필리아가 여자였나? 어쩐지 이름이 좀 여자같더라. 난 뭔 게이같은건 줄 알았지.. 그래서 저여자가 웃어댄 건가. 아니. 잘못 하고 있었으면 미리 알려줘야지. 그래서 그렇게 웃어댄거였냐! 금속배트는 날카로운 눈매로 심사위원석을 째려보았다. 금속배트와 눈이 마주치자 킥킥대고 있던 여심사위원은 히끅하고 웃음을 멈췄다. 


 " 금속배트씨는 이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연기 잘봤습니다. 나가는 쪽은 뒷쪽 문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아마이마스크가 친절히 강당 뒤쪽의 문을 가리키며 금속배트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 아, 망했다. 딱히 연극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쪽팔림을 무릎쓰고 오디션까지 보러 온 건데. 다 보기도 전에 나가라고 하다니. 이건 필히 나쁜 징조겠지. 금속배트는 어쩐지 조금 미련이 남는 얼굴로 심사위원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푸욱 쉬고 강당뒤로 쓸쓸하게 퇴장해버렸다. 좋은 오빠가 되기는 이렇게 험난한 것인가.








 "금속배트 이자식! 언제 연극부에 든거냐! 배신이다 이자식.. 넌 귀가부일줄 알았건만."

 " 연극부라니. 풉.. 연극부에가서 안받아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깽판이라도 친거냐? 와하하. 완전 의외다."

 " 연극부라면 아마이마스크인가 우마이마스크인가 있는 데 아니냐?"


 금속배트는 복도에 붙은 연극부 신입명단을 보며 저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옆에서 친구들이 배신자니 안어울린다니하며 금속배트를 놀려왔다. 평소같으면 몇대 쥐어박아야 성에 차겠지만 지금은 모든 소리가 다 공중에 흩어져버릴 뿐이다. 이거 무슨 오류난 거 아니야? 설마 동명이인? 하고 명단을 뚫어져라봐도 1학년 B반의 금속배트는 자신 뿐이다. 말도 안돼! 이거 뭐야! 분명 내 앞이나 뒤의 후보랑 헷갈렸던게 분명해! 자신도 믿기 힘든 상황에 두 손으로 착착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을 때려보았다. 믿기 힘들지만 어쨌건 제게는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금새 파악하고 금속배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끝나고 연극부 OT가 있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금속배트는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연극부의 부실을 찾아갔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신입부원들인지 똘망똘망 눈을 빛내며 앉아있는 부원들이 스무명쯤 보였다. 오디션에서 대기번호가 거의 200번대인가 그랬으니까-대부분은 여자였지만- 자신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연극부에 뽑힌 것이다. 잘못 뽑았다고 돌아가라고 하면 다 죽여버려야지, 하는 불량한 마음으로 금속배트가 맨 뒷줄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금속배트의 무서운 인상에 옆자리에 있던 아마도 신입부원인 듯한 소년 하나가 잠시 흠칫했다. 자신이 앉자 앞문이 열리며 선배인 듯한 인상의 학생 네명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두명은 이미 오디션을 볼 때 본 적이 있기에 낯이 익었다. 하나는 자신이 연기하는 것을 킥킥대며 보던 여자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 연극부에 들어온 이유인 아마이마스크다. 


 "연극부에 들어온 것을 다들 환영합니다. "


 아마이마스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 같다고 금속배트는 느꼈다. 눈이 마주치자 금속배트는 불량한 마음가짐을 한껏 표정에 실어서 녀석을 째려보아 주었다. 아마이마스크는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차마 금속배트가 어? 저자식? 하고 소리칠 새도 없이 아마이마스크는 금속배트에게서 시선을 떼고 이제 막 입부한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에게 할 축사를 위해 입을 뗐다. 분명 저자식 나 비웃었지? 금속배트는 뒤늦게 열이 올랐지만 벌써 신입부원들 하나하나가 자기 이름과 간단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부원이 많지는 않았으므로 금방 뒷자리에 있던 금속배트의 차례까지 돌았다.


 " …금속배트라고 한다. "


 반말? 여기저기서 초면에 반말을 찍찍 하는 금속배트를 보며 수군거렸다. 확실히 자신은 여기서도 미움받는 역할이구나. 여기서 잘 해나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긴, 어차피 저 아마이인지 우마이인지하는 놈이 졸업하면 자신도 퇴부할 예정이니까. 아니 아마이라는 놈이랑 친해지기만 한다면 목적은 달성된거니까 이 범생이집단에서 탈피할 수 있겠지.


 " 아아 ㅡ. 금속배트군은, 오디션에서 아주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죠. 그럼 다들 시간 내줘서 고마웠어요. 아마 다음주부터는 꽤 부에 모이는 시간이 많아질 거예요. 오가다 마주치면 먼저 인사해주세요. 자 그럼 오늘은 이걸로 해산할까요? "


 꺄아 ㅡ 역시 아마이마스크님이야! 연극부에 들기 잘했어! 하는 여학생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자식이 좋은 건가? 하고 의자에서 마악 일어나려는 아마이마스크의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아마이마스크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제가 무례하게 상대의 얼굴을 대놓고 살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이마스크는 아까처럼 금속배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올곧게 금속배트를 바라보았다. 누가보면 눈싸움이라도 하냐고 물어올 만큼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달아보이네."


  ? 아마이마스크의 말의 의미를 깨닫기 전에 아마이마스크가 먼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앞서나간 다른 학생들을 따라 아마이마스크도 부실을 나가버렸다. 결국 남겨진 것은 금속배트 혼자. 저 자식 뭐냐고...!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금속배트는 화가 치밀어서 앞에 놓인 의자를 차버리려다가 주머니에서 울려오는 핸드폰 벨소리에 이내 얼굴이 샐쭉 풀어져서 평소와는 다른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응. 어 ㅡ 당연히 합격했지. 응응. 그래. 아마이의 싸인? 아아. 그건 내일 받아다 줄테니까 응응. 응. 알겠어!"


 역시 좋은 오빠가 되는 것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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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올커플링] 전력으로 이사가고싶다.. 01


※ 이즈마코. 카나카오. 레이코가. 치아미도. 와타토모 나옵니다 


1

이사가고 싶다.


2

전력으로 이사가고 싶다.


3

무슨일이야?


4

왜 그래? 집에 쥐라도 있어? 아 그리고 고정닉 부탁해!


5

집에서 귀신이라도 나온거야? 


6안즈

달고왔어. 음. 아니. 쥐도 귀신도 아니야.. 아니 차라리 쥐나 귀신이었다면 좋겠어.


7

...여기 호러스레냐? 나 그런건 면역력없다고..


8안즈

나에게는 호러스레겠지만... 음. 객관적으로보면 호러는 아니야. 


9

혹시 민폐끼치는 이웃문제야? 소음공해라던가..


10

아.. 그럴수도 있겠다. 나도 몇년전에 소음공해때문에 윗집이랑 많이 싸웠으니까.


11

하지만 소음공해같은건 아파트나 빌라같은데 살고있으면 다들 겪는 문제 아니야? 그정도 고민으로는 내 흥미를 끌 수 없다고! 


12안즈

맞아. 민폐이웃들에 대한 문제다. 하지만 단순히 소음공해라던가 ... 그거 하나 때문만은 아니야. 소음공해정도야 그냥 일상이야. 아, 지금도 옆집에서 이상한소리 들리고 있고.. 이정도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정도.


13

이웃'들'? 그런 이웃이 한둘이 아니라는거네? 


14

그나저나 옆집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라니.. 어.. 음.. 내가 생각하는 그거는 아니겠지?


15안즈

>>14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거다. 


16

음. 옆집에 꽤나 뜨거운 신혼부부라도 사는 모양이구나.


17안즈

맞아. 하지만 옆집뿐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 윗집도, 아랫집도 다 저모양이다.


18

안즈씨가 점점 안쓰러워지네.. 처음엔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사방이 그러면 스트레스겠다.


19

일단 옆집 부부는 어떤 사람들이야? 


20

부인은 예뻐?


21

>>20

남의 부인에게 관심갖지마 ㅋㅋㅋㅋ


22안즈

미안하지만 옆집 부인은 남자다. 예쁘냐고하면.. 음, 일단 남자니까 잘생겼다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23

....


24


25


26


27

호모!


28

호모호모!

29

┌(┌^ㅇ^)┐┌(┌^ㅇ^)┐┌(┌^ㅇ^)┐ 호모오오오오!!


30

음.. 나 그런거에는 편견없으니까 썰 풀어줘 안즈!


31

난 그런거에는 엄청 관심있으니까 썰 풀어줘 안즈!


32

>>31 ㅋㅋㅋㅋ이자식 ㅋㅋㅋ


33안즈

일단 이 빌라 구조부터 설명할게. 내가 사는 빌라는 총 4층으로 되어있고 1층은 가게로 쓰이고 있어. 사람이 사는 곳은 2층부터이고 한 층당 두가구가 살고있다. 내가 사는 곳은 302호. 


34안즈

옆집 부부부터 설명할게.

남편- 흡혈귀. 낮에는 잘 안보인다. 밤마다 기운이 솟는건지 항상 시끄럽다. 능글거리는 타입.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하지만 남을 잘 놀려먹는 타입인거같다. 잘생김.

아내- 멍멍이. 츤데레타입이다. 은근 팔불출이다. 음악을 하는지 가끔 악기연주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아직도 경계심을 가지고있음. 잘생김.


35

흡혈귀라니 ㅋㅋㅋ 그나저나 잘생김은 다 기본으로 가지고있는 부부구나.


36

이 세상의 잘생긴 남자분들! 다 게이가 되어주세요! 남은 여성분들은 제가 위로해드리겠습니다..!


37

>>36 이자식! ㅋㅋ


38안즈

내가 살고있는 빌라가 방음이 잘 안돼서 (대신 집값은 조금 싼편) 항상 옆집 부부의 엣치한 소리를 들어야해. 아, 지금 옆집부부 두번째 턴에 들어간 거 같다. 


39

안즈씨도 애인이라던가 불러서 복수해버려!


40안즈

… 미안하지만 나 모쏠이고..처음엔 잘생긴 남자들이 잔뜩 이사와서 이건 행운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다 호모들인거 같고.


41

호모인것은... 옆집부부만이 아니었어?


42

안즈...안쓰러워...


43

안즈가 302호라고 했으니까 흡혈귀부부는 301호겠네! 다른 층 부부들도 설명해줘!


44안즈

아.. 타자를 치는 내 손이 썩어가는 기분이야.. 그래도 일단 설명은 해야겠지.

(201호부부) 

남편- 변태가면. 항상 유쾌하다. 모든 잘하는거 같다. 얼마전에는 제 아내의 부탁으로 우리집의 전구를 갈아줬다. 

아내- 쇼타. 상당히 어려보인다. 자기입으로 성인이라긴 하지만 엄청난 동안인듯. 가장 정상인. 자신의 남편이 폐를 끼칠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역할. 


(202호부부)

남편- 히어로. 실제로 이 동네에서 평판이 좋다. 여러 착한 일을 많이하는 듯. 웃는소리가 크다. 

아내- 의지박약.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말버릇은 '이혼하고싶어..'. 금방이라도 죽을거같은 얼굴을 하고있다. 


45안즈

(401호부부)

남편- 푸카푸카. 말버릇이 푸카푸카다. 무슨뜻인지는 의미불명.. 알수없는 헛소리를 많이하는거 같다. 평소엔 천사속성 캐릭터지만 가끔 무섭게 돌변한다. 특히 지 아내가 바람피울때 누구지싶을정도로 무서워진다.

아내- 카사노바. 왜 남자랑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무척 좋아한다. 나에게도 가끔 대쉬해온다. 


(402호부부)

남편- 스토커. 항상 자신의 아내를 스토커한다. 유명한 모델이다. 말버릇은 '엄~청 짜증나'. 성격나쁨.

아내- 안경.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다2. 201호부인과 더불어 가장 정상인.


46

와 ㅋㅋㅋ 누가누군지 엄청 헷갈려 ㅋㅋㅋ 무슨 미연시의 캐릭터들 같네.


47

저는 402호 부부를 공략하고 싶습니다!


48

>>47

ㅋㅋㅋㅋ야! ntr은 그만두라고!


49안즈

방음이 잘 안되서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하는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제발 내 앞에서 염장 좀 안질렀으면 좋겠다. 특히 멍멍이랑 스토커.


50

멍멍이라면 301호 부인이지? 어떤 식으로 염장 지르는거야?


51

츤데레라니까 대놓고 염장지르는 타입은 아닐거같은데


52

스토커는 대놓고 염장지를거 같다. 우리 아내 예쁘지? 하면서 ㅋㅋㅋ


53안즈

너희들 말이 맞아. 일단 멍멍이는.. 아무래도 옆집이다보니까 자주 마주치는 편인데 항상 지 남편 뒷담을 깐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 염장지르는 내용 뿐이다.

"흡혈귀그자식! 항상 밤에만 팔팔해져서는! 죽어!" 라던가 "어제는 먹지도 못하는 장미꽃다발을 사가지고와서는! 진짜! 경제관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니깐!!" 이런거.

제발 입 다물어줬으면..


5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즈 ㅋㅋㅋ 마지막줄에 모든 원한이 서려있다.


55

확실히 짜증나겠다 ㅋㅋㅋㅋㅋ 학창시절에 꼭 남친 자랑을 돌려하는애들 있지ㅋㅋㅋ


56

멍멍이랑은 남이지만 ㅋㅋㅋㅋㅋ어째서인지 한대 때려주고싶어져 ㅋㅋㅋㅋ


57

내가 안즈였어도 이사가고 싶었을거야 ㅋㅋ 이사가는게 어때?


58안즈

>>57

정말 이사가고 싶지만.. 이 가격에 직장이랑 이렇게 가까운 곳은 찾기 힘들어서 말이야.. 매일 부동산을 들락거리고는 있어. 하지만 괜찮다싶으면 가격이 쎄고, 가격이 싸다싶으면 중심지에서 멀어져서..


59

그럼 스토커는 어떤 식으로 염장지르는거야? ㅋㅋㅋㅋㅋ 


60안즈

음 별거없어. 그냥 아내자랑을 엄청해댄다. 어느날 안경의 사진을 들고와서는 "우리 안경 무척귀엽지? 응?" 하고 물어오길래 마지못해서 귀엽다고 하니까 "안경군은 내꺼니까 말이야. 관심가지지 말아줄래?" 라고.. 대체 어쩌라는건데!!!! 


61안즈

또 어느날은 안경이랑 잠깐 얘기나누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 안경군이랑 바람난다면 옥상에서 밀어버릴거야!"

라고 협박해왔다.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62

생명위협까지...받고있는..거야?


63

이거 웃고넘길 상황이 아닌데?... 안즈 여러의미로 존경해.


64

대체 어느 애니의 얀데레캐릭터인거야... 


65

안즈 제발 이사가....;ㅁ;


66안즈

나도 언제든지 이사가고싶어.. 다만 마땅한 집이 없을뿐.. 스토커의 만행이라면 이외에도 꽤있어. 엄청난 의처증이라서 안경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되게 싫어하는 편이야. 어느날은 집안에 cctv단 것을 안경에게 들켜서 꽤 혼이 나더라고. 


67

....갑자기 안즈보다 안경이 더 불쌍해진다


68

신고같은거 안해도 되는거야..? 그거 그냥 스토커아냐...?


69

안즈의 이웃들...다른의미로 엄청나네...


70안즈

남편들은 대부분 부인한테 집착하는 편인거 같더라고. 아, 최근에는 푸카푸카한테도 견제받았어


71

푸카푸카 누구더라.. 


72

하도 많아서 이름외우기 어렵네


73

401호산다는 사람이네 ㅋㅋㅋ 천사속성이라며! 


74안즈

푸카푸카는 401호의 남편으로 평소엔 천사. 그렇지만 부인이 여자한테 치근덕거리면 무섭게 돌변해. 카사노바가 왠지 나한테 관심있는 모양이라서 평소에 종종 마주치는데.. 어느날 우편함을 보니까 축축한 종이가 있더라고. 읽어보니깐 '우리 부인을 건들면 익사체로 만들어버릴거예요 푸카푸카 ♪' 라는 내용이었어.


75

생명위협을 하는건 스토커만이 아니었구나...


76

난 오히려 푸카푸카가 더 무섭다..


77

안즈는 무슨 잘못인거야.. 치근덕거리는 쪽은 카사노바잖아!


78

남편은 이쁘고 사랑스러운 내 카사노바가 바람피울리없어! 여자쪽이 잘못인거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음.. 


79

뉴스에 익사체로 발견되는 a양이라던가..그런 기사가 나오면 일단 범인은 푸카푸카인걸로 해두자.


80

푸카푸카랑 스토커랑 협력해서 안즈를 익사체로 만들 수도..


81

>>80

무슨 무서운 소리를 하는거야 이녀석... 그런데 차마 웃어넘길수 없다는게 더 무서워...


82안즈

그리고 이녀석들 부부싸움하면 항상 우리집으로 와.. 제발 쉬게해줬으면 좋겠어.. 상식적으로 여자혼자 사는집에 이렇게 자주 들락거려도 되는거냐고 녀석들!


83

게이니까 아무래도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하잖아 녀석들!


84

커플들은 다 죽어라!


85

호모던 뭐던 상관없어! 커플은 모두 적이야!


86

갑자기 각성했어 ㅋㅋㅋㅋ


87안즈

특히 자주 오는 것은 옆집 멍멍이야. 멍멍이가 집에 없으면 흡혈귀도 자연스럽게 우리집와서 멍멍이를 찾아갈 만큼 자주 집을 나온다. 이유를 들어보면 흡혈귀가 놀려서 삐진것이 대부분이고.. 이런 쓸데없는 이유로 우리집에 방문하지 말아줄래?


88

놀린다고 집나오다니 ㅋㅋㅋㅋㅋ 초딩이냐 ㅋㅋ


89

유리멘탈이네 ㅋㅋㅋㅋㅋㅋ 멍멍이는 ㅋㅋㅋㅋ


90안즈 

백번양보해서 우리집으로 가출하는 건 괜찮다고 해도 제발 화해를 우리집에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화해의 키스라던가 이런건 좀 집에가서 하라고 망할 호모들! 


91안즈

그리고 쇼타도 자주 우리집으로 온다. 이쪽도 변태가면이 매일 놀려먹는 모양이라.. 솔직히 멍멍이쪽이랑 다르게 쇼타는 좀 안쓰럽긴해.. 여장의 날이라면서 쇼타한테 여자옷을 강요한다거나.. 귀신분장으로 쇼타를 놀라게한다던가.. 솔직히 얘넨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남편쪽만 너무 좋아라하는 느낌이라.


92

쇼타는 좀 안쓰럽다...


93

쇼타는 가출할만 하네


94

집에 들여보내줄 때마다 돈 받는건 어때? 그럼 분명 꽤 많이 벌거야 


95안즈

>>94 오! 좋은생각이다.

아 잠깐만. 갑자기 집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96

물?


97

홍수?


98

장마철도 아닌데..?


99안즈

큰일이다. 잠깐 이따가 오도록할게.


100안즈

뭔가 복도에 물이 찬거같아. 집 안으로도 들어오고있어. 


101

무슨일이 일어나는거야?


102

빨리 물부터 퍼내..!


103

안즈 꼭 살아돌아와야해 ...!


104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105

궁금하네.. 그보다 안즈가 걱정된다.


106

여기 스레애들 착하네


107

그나저나 안즈가 불쌍해서 이 스레를 떠날수 없다..


108

우리들이 갱신시켜놓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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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6 (完) (포스타입 유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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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5 (포스타입 유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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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4 (포스타입 유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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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3 (포스타입 유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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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2


 

 타ㅡ악. 뒷통수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날아와 꽂혔다. 충격의 크기로 봐서는 철로 된 필통이라던가, 적어도 3cm 이상의 두게를 가진 공책 정도였을 것이다. 쥬시마츠의 고개는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살짝 앞으로 숙여졌다가 용수철인형 마냥 제자리를 찾았다. 쥬시마츠는 아무 일도 없다는 것 마냥 제 손에 쥐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쥬시마츠의 덤덤한 행동이 그가 쫄아서 한 행동이라고 착각한 것인지 평소 품행이 나쁘기로 소문 난 이 일의 주도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킬킬되었다. 하지만 쥬시마츠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실껏 떠들어보라면 떠들어보라지, 어차피 들리지도 않는걸.


 쥬시마츠는 씁쓸하게 웃었다. 쥬시마츠의 귀는 자신을 향한 비웃음도, 욕지거리도 들어낼 수 없는 머리에 거추장스레 붙어있는 얇은 두개의 고기덩어리에 불과했다. 쥬시마츠의 담담한 태도는 이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인지 타악 ㅡ 새로운 것이 날아와 쥬시마츠의 뒷통수를 때렸다. 이번에는 얇고 무언가 끝이 뾰족한 물건같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아픔까지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쥬시마츠는 얼얼한 제 뒷통수를 무의식적으로 한 번 쓸었다.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한껏 비웃음당하고 있을 것이다. 책상아래로 고개를 숙여 방금 자신의 뒷통수에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 살피니, 끝이 꽤 뾰족해서 분명 제대로 찌른다면 훌륭한 살인무기가 될 수 있는 제도샤프였다. 쥬시마츠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조용히 책읽기는 글렀구나. 읽고있던 책을 손에 들고 쥬시마츠는 교실 밖을 나가 학교 뒤 벤치로 가 앉았다. 자신만의 아지트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교장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어서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벤치였다. 


 쥬시마츠는 방해받아서 흐름이 끊겨버린 부분부터 다시 책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그는 소리내어 책을 읽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여 책속에 담긴 아름다운 구절을 되내었다.사실 자신이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인지, 발음이 엉망으로 꼬여서 혹시나 하늘이라는 단어를 마늘이라고 읽고있지는 않는지 확인해낼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쥬시마츠는 최대한 입근육을 팽팽히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며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소리들을 재현해내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예전에 소리라는 것을 학습한 상태였다. 


 오년 전만 해도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단정한 손가락으로 소리의 가락을 재현해 낼 수 있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 정신을 다해 귀를 기울여봐도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살랑되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으며 수업과 쉬는시간 사이의 텀을 알리는 종소리도 들리지 않게되었다. 그날 이후로 쥬시마츠의 세상은 완전히 무음속에 떠밀어졌다. 오디오의 버튼을 눌러 너무나도 간단히 음소거해버린 것 처럼 쥬시마츠의 세상은 '그 날'부터 어떤 소리도 담아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 날이라면 바로 오 년 전, 그러니까 쥬시마츠의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거대한 존재가 사라져버리고만 날을 말한다. 그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 꾸덕꾸덕한 먹구름이 해를 가린 날이었고, 버스 안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 습기로 축축해져 있었다.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의 시트에는 축축한 습기가 깊숙히 베어있어서 엉덩이에는 기분나쁜 땀이 송골 맺히는 기분이었다. 쥬시마츠는 어머니와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쥬시마츠는 몇번이고 어머니에게 치과 같은 곳은 가고 싶지 않다고 칭얼거렸으나, 어머니는 그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치료를 잘 마친다면 평소에 갖고싶어하던 게임기를 사주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진심을 다해 약속했다. 그 말에 쥬시마츠는 뾰로통해졌던 얼굴을 조금 펴보였지만, 그래도 왠지 바로 항복해버기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용납못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자신은 그다지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보기위해 다리를 앞뒤로 흔들어 의자를 퍽퍽 차보였다. 끼익- 의자는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버스는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시골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로 나가려면 필히 이 언덕을 올라야했다. 언제나처럼 덜덜거리는 버스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지 평소보다 기분나쁜 엔진소리를 내고있었다. 마을버스가 노후화되었던 탓인지 아니면 습기로 축축해져서있던 탓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결국 기분 탓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쥬시마츠는 의자차기는 이제 그만두고 언제라도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창 밖을 바라보았다. 게임기는 어떤 색으로 할까, 나카무라는 검정을 가지고있고 요시다는 흰색을 가지고있는데 왠지 자신은 두사람과는 다른 색으로 하고싶었다. 역시 하늘색일까 … ?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려서 쥬시마츠는 게임기색깔에 관해 생각하고있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응? 하고 쥬시마츠가 앞을 바라보았으나 그때는 이미 세상이 한 번 구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스가 길을 벗어나 낭떠러지에서 두어번 구른 후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생지옥이었다. 꺄악ㅡ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앞자리의 여고생이라던가, 곰과 비슷한 포효를 내고있는 중간자리의 아저씨라던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온갖 비명이 버스 내부에 뒤섞여서 쥬시마츠의 귀를 터질것 같이 만들었다. 분명 버스가 추락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쥬시마츠는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이래서 지옥에서의 시간은 영겁과 같다고 하는 것인가, 쥬시마츠의 어린 몸은 그 생지옥 안에서 벌벌 떠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어린 몸은 폭- 하고 따듯한 것에 감싸졌다. 천사인가 …? 종교는 믿지 않는 쥬시마츠였지만 자신을 감싼 것이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올려보니 자신을 감싼 것은 천사도, 저승사자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울듯말듯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품에서 쥬시마츠는 편히 눈을 감았다. 맨몸을 햇살의 따스함에 맡겨버린 것 같았다. 그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평생 잊지못할 행복한 꿈이었다. 어머니의 무릎배게를 베고 사각사각- 파내지는 귀지에 간지럽다고 투정을 부리며 마음껏 오후를 만끽하는 꿈이었다. 


 정신을 잃은지 거의 이틀째. 이제는 돌아가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무슨소리냐고 반박하려고 했을때 쥬시마츠는 겨우 길고 긴 잠에서 깨어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쥬시마츠는 일본 전역에서 주목하고있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쥬시마츠가 깨어나자, 쉴새없이 기자들이 병실로 밀려들어와 앞다투어 얼마전의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물었다. 하지만 어느 질문 하나도 쥬시마츠의 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왜 다들 입은 움직이면서 목소리는 내지 않는거야? 쥬시마츠는 멍해진 얼굴로 제 담당 주치의를 바라보았다. 그의 한숨은 곧 사형선고와 같았다. 청각손실. 하지만 이로인해 쥬시마츠가 청각하나만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었다. 일단 그는 하나 둘씩 제 곁을 떠나는 친구들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무척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으나 어느새 그것도 익숙해져서 점점 매말라버리는 우정을 보며 그러려나보다 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텅하니 비워져있는 무언의 빈자리를 매꾸기위해 쥬시마츠는 예전엔 죽어도 쳐다 보지않던 책을 대채물로 삼았다. 소리를 최대한 읽지 않기 위해, 몇번이고 눈으로 입으로 머릿속으로 그동안 알고지내왔던 소리를 더듬으며 책을  읽어나가고 생각해내고 읊조렸다. 문학이란 것은 예전 세상과 현재의 세상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구원줄 같은 것이었다. 쥬시마츠는 그 구원줄을 단단히 붙잡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쥬시마츠는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암기수준으로 되내이고는 책의 표지를 덮었다. 벌써 하늘이 노을빛을 띄고 있었다. 분명 하교시간은 훨씬 지나있을 것이다. 무단결석을 한 것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어질 선생님의 잔소리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봤자 들리지 않을 잔소리지만, 무슨소리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듣고있어야 할 자신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쥬시마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앉아있었기 때문인지 허리가 조금 뻐근했다. 쥬시마츠는 교실에 혼자 남겨져 있을 제 책가방을 가지러 곧장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제 책가방만이 덩그러니 놓여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쥬시마츠는 그것을 어깨에 매고 하교했다. 교문을 나서서 학교 앞 횡단보도 거리에서 신호등의 색이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신호로 바뀌어서 걸음을 떼어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뒤에서 무언가 급하게 자신을 붙들어왔다. 쥬시마츠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그 곳에는 한 소년이 서있었다. 쥬시마츠의 당황스러움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저 교복은 분명 자신의 학교것은 아니었다. 


 "몇번이나 불렀는데도, 안 돌아봐서.. "

 억울하다는 변명조로 앞에 서있는 소년이 중얼거렸다. 돌아볼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난 귀가 들리지 않는걸- 하고 가볍게 마음 속으로 반박하다가 쥬시마츠는 이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들린다. 소리가. 쥬시마츠는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했지만 분명 이것은 현실이었다. 꿈이라면 쌀쌀한 가을날씨가 피부로 체감 될리가 없다, 노을빛이 이렇게 선명할 리가 없다. 쥬시마츠는 크게 놀랐지만, 이내 상황판단을 하고자 근 오년간 쓰지않은 귀를 기울여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소리, 바람에 팔락이며 사사삭거리는 단풍의 소리, 그리고 제 앞의 소년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생생히 잘 들려왔다. 이럴수가….


 "…사실 저는 귀가 들리지 않아서, 아 그런데 그러니까 -. 그게, 지금은 또 소리가 들리는 데.."

쥬시마츠는 말을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문장으로 끝맺음하지 못한 채 바보같이 더듬거렸다. 상대는 자신을 조금 모자란 놈으로 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상대의 눈은 한층 더 진지해져있었다. 그 눈빛에서 쥬시마츠는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당신도 힘들었어?라고 그를 껴안고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고, 나도 엄청 힘들었어-라고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리고도 싶었다. 그것이 두 소년의 첫만남이었다. 두 소년은 서로를 보는 순간 운명이라는 한단어를 떠올렸다. 그 이후에 두 소년이 얼마나 서로에게 깊게 빠질 수 밖에 없었는가는, 아마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준 독자라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다시 한번 찾아올 사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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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쥬시] 문학소년의 색채 01



 이치마츠의 눈은 색채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희미한 어린시절. 미술시간이었던가. 사과를 그리라는 선생의 말에 이치마츠 나름대로는 그것을 그린 후 정성들여 색칠까지 했는 데, 어째서인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말았다. "파란색 사과라니. 조금 먹기 싫어지는구나. 굳이 파란색으로 사과를 칠한 이유라도 있니?" 이치마츠는 그때서야 세상에는 인간이 임의로 붙인 여러가지 명칭의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치마츠의 세상은 모든 것이 파괴된 것 같았고, 익숙히 봐오던 물건 하나하나에 다른 사람이라면 이걸 다르게 보겠지?라는 회의감이 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분열 속에 갇혀버렸고, 어린시절 골목대장 노릇도 했을만큼 사교적이었던 성격은 그 빛을 잃고 이제는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숨결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내면의 혼돈에 침식해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착적이라고 할 만큼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느껴서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도피의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위를 돌려보면 남들과는 다른 세상이 제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초록신호등에 길을 건너고, 붉은신호등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는데 이치마츠는 도대체 무엇이 초록이고 무엇이 붉은색인지 분간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남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 세상이라는 것은 모두 색채를 품고있으므로, 색채를 알지 못하는 이치마츠에게는 퍽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일종의 도피처를 문학속에 세웠다. 그곳에선 모든 색깔이 글로만 쓰여져 있을 뿐이다. 그 도피처는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이뤄져 있을 뿐이라 흰정도와 검은정도의 구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완벽한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치마츠는 현실의 사람인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했고, 도피처는 일시적인 방어수단일 뿐 자신을 지켜낼 공격수단이 될 수 없었다. 신이나 악마가 자신의 소원 들어줘서 세상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면, 이치마츠는 세상을 무채색으로 뒤집어버리고 싶었다. 남들이 푸르다고 하는 저 하늘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맑은 회색에 불과했고, 남들이 짙푸르다고 하는 저 우거진 녹음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선명한 회색쯤에 불과했다. 과연 푸른색은 어떤 색일까라고 제 머릿속에서 이제까지 경험해본 색깔들을 최대한 섞어 만들어보려하지만 그래봤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어짜피 회색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세상을 전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현재의 자신에게 세상이란 회색 물감 공장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풍경화라도 그것이 회색범벅이라면 절대 아름답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치마츠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니 사실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만한 특별한 경험이라서, 책상에 앉아 창밖너머의 무채색 운동장을 보고있는 와중에도 손이 덜덜떨려 과연 그것이 진짜였을까?하고 오늘 아침에 일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오늘 처음으로 '색'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아니, 사실 이치마츠는 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때문에 사실 그것을 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솔직히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때껏 이치마츠가 보지 못해본 그런 것이었다.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우연히 같은 전차, 같은 칸에 탔던 남자의 주변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성한 색채가 빛과 생기를 머금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갓 딴 오렌지를 손으로 힘껏 쥐여 팟-터트려 과즙을 사방으로 퍼지게 한 것과 같이 상쾌했다. 어째서 저 사람의 주변만 색채가 보이는 거야. 이치마츠는 난생처음 경험해 본 세상의 색채에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싶을 정도로 황홀혀져서 그 남자가 내린 후에도 몇분이고 멍하게 서서 제가 처음보는 세계에 경탄하고 있었다. 겨우 정신차렸을 때는 남자가 전차에서 내린 후 수 분이 지난 뒤로 그때는 이미 세상은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빼앗겨버린 색채의 세상, 아니 돌려받아진 무채색의 현실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마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창 밖의 운동장은 무채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책상에 놓여있던 '노인과 바다'를 펼쳐 그것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치마츠는 이후 몇번이고 그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퇴색되는 법이라, 결국 제게 황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영롱한 색채도 뭉뚝한 지우개로 뭉개버린 듯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미 맛 본 그 흥분은 일종의 중독의 기능을 갖고있어서, 이치마츠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니, 이왕이면 그것을 제 곁에 영영 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그 날과 비슷한 시간에 매일같이 같은 칸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은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그가 서있던 자리를 바라봐도 그 자리는 역시 무채색이었다. 계절이 두어번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번이고 되새기는 그 날의 세상도 무채색의 장막에 덮어져버릴 때 쯤, 구원과도 같이 그가 나타났다. 이치마츠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사람들 속에 파묻힌 전차 안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눈물때문에 흐려진 눈으로 기껏 보게 된 색채를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남자를, 그리고 남자의 주변 색채를 외워버릴듯 똑똑히 눈에 담았다. 깜빡이지 못한 눈이 약간 충혈되어 눈이 지끈거렸지만 그것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처절하게 그 색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그 고통을 반복해나갔던 그 시간들에 비하면 눈이 지끈거리는 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남자가 역에서 내려버리자, 이치마츠도 영겹결에 그를 따랐다. 그의 주변은 여전히 색채를 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색채의 반경도 움직였다. 그의 주변 상하좌우 30cm정도는 어떤 것이던 이제껏 이치마츠가 경험해보지 못한 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그의 곁에서 푸른 하늘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신호등의 붉은신호와 푸른신호가 번갈아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흙과 잔디의 색은 전혀 다른 것이고, 잔디와 나뭇잎의 색깔은 비슷한 것이라는 것을, 단풍에는 붉은신호등과 같이 붉은 것과 저기 꼬마가 신고있는 장화처럼 노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언제까지나 그 남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남자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한 눈에 그 학교 학주의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었다. 학주는 정문에서 이치마츠를 막아세웠다. 


 "타학교학생이 타학교교복을 입고 당당히 들어오려하다니…. 세상 말세다."


 학주는 혀를 끌끌차며 이치마츠에게 몇가지 꾸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치마츠에게 학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윙윙-. 분명 앞에서 누군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이내 공기처럼 분해되버려 귀에 의미가 닫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버린다. 이치마츠는 혼 빠진 사람처럼 색채를 내뿜는 남자만을 좇았다. 그가 멀어질 수록 이치마츠가 겨우 볼 수 있는 진짜 세상이 점점 좁아져버리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내 학주에게 무력으로 저지당했다. 안돼 … 그를 좇지 않으면 안돼 ….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그의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저지당했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안으로 사라져 버려서 이내 이치마츠의 진짜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아 … , 이치마츠는 소리없이 신음했다. 목이 갈라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제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비참했던 적이 있던가. 이치마츠는 그가 사라진 무채색의 세상을 눈으로 더듬으며 차라리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치마츠의 눈은 색채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희미한 어린시절. 미술시간이었던가. 사과를 그리라는 선생의 말에 이치마츠 나름대로는 그것을 그린 후 정성들여 색칠까지 했는 데, 어째서인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말았다. "파란색 사과라니. 조금 먹기 싫어지는구나. 굳이 파란색으로 사과를 칠한 이유라도 있니?" 이치마츠는 그때서야 세상에는 인간이 임의로 붙인 여러가지 명칭의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치마츠의 세상은 모든 것이 파괴된 것 같았고, 익숙히 봐오던 물건 하나하나에 다른 사람이라면 이걸 다르게 보겠지?라는 회의감이 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분열 속에 갇혀버렸고, 어린시절 골목대장 노릇도 했을만큼 사교적이었던 성격은 그 빛을 잃고 이제는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숨결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내면의 혼돈에 침식해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착적이라고 할 만큼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느껴서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도피의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위를 돌려보면 남들과는 다른 세상이 제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초록신호등에 길을 건너고, 붉은신호등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는데 이치마츠는 도대체 무엇이 초록이고 무엇이 붉은색인지 분간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남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 세상이라는 것은 모두 색채를 품고있으므로, 색채를 알지 못하는 이치마츠에게는 퍽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일종의 도피처를 문학속에 세웠다. 그곳에선 모든 색깔이 글로만 쓰여져 있을 뿐이다. 그 도피처는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이뤄져 있을 뿐이라 흰정도와 검은정도의 구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완벽한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치마츠는 현실의 사람인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했고, 도피처는 일시적인 방어수단일 뿐 자신을 지켜낼 공격수단이 될 수 없었다. 신이나 악마가 자신의 소원 들어줘서 세상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면, 이치마츠는 세상을 무채색으로 뒤집어버리고 싶었다. 남들이 푸르다고 하는 저 하늘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맑은 회색에 불과했고, 남들이 짙푸르다고 하는 저 우거진 녹음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선명한 회색쯤에 불과했다. 과연 푸른색은 어떤 색일까라고 제 머릿속에서 이제까지 경험해본 색깔들을 최대한 섞어 만들어보려하지만 그래봤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어짜피 회색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세상을 전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현재의 자신에게 세상이란 회색 물감 공장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풍경화라도 그것이 회색범벅이라면 절대 아름답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치마츠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니 사실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만한 특별한 경험이라서, 책상에 앉아 창밖너머의 무채색 운동장을 보고있는 와중에도 손이 덜덜떨려 과연 그것이 진짜였을까?하고 오늘 아침에 일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오늘 처음으로 '색'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아니, 사실 이치마츠는 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때문에 사실 그것을 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솔직히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때껏 이치마츠가 보지 못해본 그런 것이었다.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우연히 같은 전차, 같은 칸에 탔던 남자의 주변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성한 색채가 빛과 생기를 머금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갓 딴 오렌지를 손으로 힘껏 쥐여 팟-터트려 과즙을 사방으로 퍼지게 한 것과 같이 상쾌했다. 어째서 저 사람의 주변만 색채가 보이는 거야. 이치마츠는 난생처음 경험해 본 세상의 색채에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싶을 정도로 황홀혀져서 그 남자가 내린 후에도 몇분이고 멍하게 서서 제가 처음보는 세계에 경탄하고 있었다. 겨우 정신차렸을 때는 남자가 전차에서 내린 후 수 분이 지난 뒤로 그때는 이미 세상은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빼앗겨버린 색채의 세상, 아니 돌려받아진 무채색의 현실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마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창 밖의 운동장은 무채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책상에 놓여있던 '노인과 바다'를 펼쳐 그것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치마츠는 이후 몇번이고 그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퇴색되는 법이라, 결국 제게 황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영롱한 색채도 뭉뚝한 지우개로 뭉개버린 듯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미 맛 본 그 흥분은 일종의 중독의 기능을 갖고있어서, 이치마츠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니, 이왕이면 그것을 제 곁에 영영 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그 날과 비슷한 시간에 매일같이 같은 칸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은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그가 서있던 자리를 바라봐도 그 자리는 역시 무채색이었다. 계절이 두어번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번이고 되새기는 그 날의 세상도 무채색의 장막에 덮어져버릴 때 쯤, 구원과도 같이 그가 나타났다. 이치마츠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사람들 속에 파묻힌 전차 안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눈물때문에 흐려진 눈으로 기껏 보게 된 색채를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남자를, 그리고 남자의 주변 색채를 외워버릴듯 똑똑히 눈에 담았다. 깜빡이지 못한 눈이 약간 충혈되어 눈이 지끈거렸지만 그것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처절하게 그 색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그 고통을 반복해나갔던 그 시간들에 비하면 눈이 지끈거리는 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남자가 역에서 내려버리자, 이치마츠도 영겹결에 그를 따랐다. 그의 주변은 여전히 색채를 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색채의 반경도 움직였다. 그의 주변 상하좌우 30cm정도는 어떤 것이던 이제껏 이치마츠가 경험해보지 못한 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그의 곁에서 푸른 하늘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신호등의 붉은신호와 푸른신호가 번갈아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흙과 잔디의 색은 전혀 다른 것이고, 잔디와 나뭇잎의 색깔은 비슷한 것이라는 것을, 단풍에는 붉은신호등과 같이 붉은 것과 저기 꼬마가 신고있는 장화처럼 노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언제까지나 그 남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남자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한 눈에 그 학교 학주의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었다. 학주는 정문에서 이치마츠를 막아세웠다. 


 "타학교학생이 타학교교복을 입고 당당히 들어오려하다니…. 세상 말세다."


 학주는 혀를 끌끌차며 이치마츠에게 몇가지 꾸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치마츠에게 학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윙윙-. 분명 앞에서 누군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이내 공기처럼 분해되버려 귀에 의미가 닫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버린다. 이치마츠는 혼 빠진 사람처럼 색채를 내뿜는 남자만을 좇았다. 그가 멀어질 수록 이치마츠가 겨우 볼 수 있는 진짜 세상이 점점 좁아져버리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내 학주에게 무력으로 저지당했다. 안돼 … 그를 좇지 않으면 안돼 ….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그의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저지당했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안으로 사라져 버려서 이내 이치마츠의 진짜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아 … , 이치마츠는 소리없이 신음했다. 목이 갈라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제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비참했던 적이 있던가. 이치마츠는 그가 사라진 무채색의 세상을 눈으로 더듬으며 차라리 스스로 제 눈을 찔러버린 오이디푸스와같은 장님이나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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