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마츠의 눈은 색채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희미한 어린시절. 미술시간이었던가. 사과를 그리라는 선생의 말에 이치마츠 나름대로는 그것을 그린 후 정성들여 색칠까지 했는 데, 어째서인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말았다. "파란색 사과라니. 조금 먹기 싫어지는구나. 굳이 파란색으로 사과를 칠한 이유라도 있니?" 이치마츠는 그때서야 세상에는 인간이 임의로 붙인 여러가지 명칭의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치마츠의 세상은 모든 것이 파괴된 것 같았고, 익숙히 봐오던 물건 하나하나에 다른 사람이라면 이걸 다르게 보겠지?라는 회의감이 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분열 속에 갇혀버렸고, 어린시절 골목대장 노릇도 했을만큼 사교적이었던 성격은 그 빛을 잃고 이제는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숨결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내면의 혼돈에 침식해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착적이라고 할 만큼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느껴서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도피의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위를 돌려보면 남들과는 다른 세상이 제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초록신호등에 길을 건너고, 붉은신호등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는데 이치마츠는 도대체 무엇이 초록이고 무엇이 붉은색인지 분간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남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 세상이라는 것은 모두 색채를 품고있으므로, 색채를 알지 못하는 이치마츠에게는 퍽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일종의 도피처를 문학속에 세웠다. 그곳에선 모든 색깔이 글로만 쓰여져 있을 뿐이다. 그 도피처는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이뤄져 있을 뿐이라 흰정도와 검은정도의 구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완벽한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치마츠는 현실의 사람인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했고, 도피처는 일시적인 방어수단일 뿐 자신을 지켜낼 공격수단이 될 수 없었다. 신이나 악마가 자신의 소원 들어줘서 세상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면, 이치마츠는 세상을 무채색으로 뒤집어버리고 싶었다. 남들이 푸르다고 하는 저 하늘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맑은 회색에 불과했고, 남들이 짙푸르다고 하는 저 우거진 녹음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선명한 회색쯤에 불과했다. 과연 푸른색은 어떤 색일까라고 제 머릿속에서 이제까지 경험해본 색깔들을 최대한 섞어 만들어보려하지만 그래봤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어짜피 회색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세상을 전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현재의 자신에게 세상이란 회색 물감 공장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풍경화라도 그것이 회색범벅이라면 절대 아름답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치마츠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니 사실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만한 특별한 경험이라서, 책상에 앉아 창밖너머의 무채색 운동장을 보고있는 와중에도 손이 덜덜떨려 과연 그것이 진짜였을까?하고 오늘 아침에 일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오늘 처음으로 '색'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아니, 사실 이치마츠는 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때문에 사실 그것을 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솔직히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때껏 이치마츠가 보지 못해본 그런 것이었다.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우연히 같은 전차, 같은 칸에 탔던 남자의 주변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성한 색채가 빛과 생기를 머금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갓 딴 오렌지를 손으로 힘껏 쥐여 팟-터트려 과즙을 사방으로 퍼지게 한 것과 같이 상쾌했다. 어째서 저 사람의 주변만 색채가 보이는 거야. 이치마츠는 난생처음 경험해 본 세상의 색채에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싶을 정도로 황홀혀져서 그 남자가 내린 후에도 몇분이고 멍하게 서서 제가 처음보는 세계에 경탄하고 있었다. 겨우 정신차렸을 때는 남자가 전차에서 내린 후 수 분이 지난 뒤로 그때는 이미 세상은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빼앗겨버린 색채의 세상, 아니 돌려받아진 무채색의 현실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마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창 밖의 운동장은 무채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책상에 놓여있던 '노인과 바다'를 펼쳐 그것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치마츠는 이후 몇번이고 그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퇴색되는 법이라, 결국 제게 황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영롱한 색채도 뭉뚝한 지우개로 뭉개버린 듯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미 맛 본 그 흥분은 일종의 중독의 기능을 갖고있어서, 이치마츠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니, 이왕이면 그것을 제 곁에 영영 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그 날과 비슷한 시간에 매일같이 같은 칸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은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그가 서있던 자리를 바라봐도 그 자리는 역시 무채색이었다. 계절이 두어번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번이고 되새기는 그 날의 세상도 무채색의 장막에 덮어져버릴 때 쯤, 구원과도 같이 그가 나타났다. 이치마츠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사람들 속에 파묻힌 전차 안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눈물때문에 흐려진 눈으로 기껏 보게 된 색채를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남자를, 그리고 남자의 주변 색채를 외워버릴듯 똑똑히 눈에 담았다. 깜빡이지 못한 눈이 약간 충혈되어 눈이 지끈거렸지만 그것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처절하게 그 색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그 고통을 반복해나갔던 그 시간들에 비하면 눈이 지끈거리는 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남자가 역에서 내려버리자, 이치마츠도 영겹결에 그를 따랐다. 그의 주변은 여전히 색채를 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색채의 반경도 움직였다. 그의 주변 상하좌우 30cm정도는 어떤 것이던 이제껏 이치마츠가 경험해보지 못한 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그의 곁에서 푸른 하늘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신호등의 붉은신호와 푸른신호가 번갈아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흙과 잔디의 색은 전혀 다른 것이고, 잔디와 나뭇잎의 색깔은 비슷한 것이라는 것을, 단풍에는 붉은신호등과 같이 붉은 것과 저기 꼬마가 신고있는 장화처럼 노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언제까지나 그 남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남자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한 눈에 그 학교 학주의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었다. 학주는 정문에서 이치마츠를 막아세웠다. 


 "타학교학생이 타학교교복을 입고 당당히 들어오려하다니…. 세상 말세다."


 학주는 혀를 끌끌차며 이치마츠에게 몇가지 꾸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치마츠에게 학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윙윙-. 분명 앞에서 누군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이내 공기처럼 분해되버려 귀에 의미가 닫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버린다. 이치마츠는 혼 빠진 사람처럼 색채를 내뿜는 남자만을 좇았다. 그가 멀어질 수록 이치마츠가 겨우 볼 수 있는 진짜 세상이 점점 좁아져버리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내 학주에게 무력으로 저지당했다. 안돼 … 그를 좇지 않으면 안돼 ….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그의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저지당했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안으로 사라져 버려서 이내 이치마츠의 진짜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아 … , 이치마츠는 소리없이 신음했다. 목이 갈라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제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비참했던 적이 있던가. 이치마츠는 그가 사라진 무채색의 세상을 눈으로 더듬으며 차라리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치마츠의 눈은 색채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에게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희미한 어린시절. 미술시간이었던가. 사과를 그리라는 선생의 말에 이치마츠 나름대로는 그것을 그린 후 정성들여 색칠까지 했는 데, 어째서인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말았다. "파란색 사과라니. 조금 먹기 싫어지는구나. 굳이 파란색으로 사과를 칠한 이유라도 있니?" 이치마츠는 그때서야 세상에는 인간이 임의로 붙인 여러가지 명칭의 색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치마츠의 세상은 모든 것이 파괴된 것 같았고, 익숙히 봐오던 물건 하나하나에 다른 사람이라면 이걸 다르게 보겠지?라는 회의감이 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분열 속에 갇혀버렸고, 어린시절 골목대장 노릇도 했을만큼 사교적이었던 성격은 그 빛을 잃고 이제는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숨결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내면의 혼돈에 침식해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착적이라고 할 만큼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느껴서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도피의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위를 돌려보면 남들과는 다른 세상이 제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초록신호등에 길을 건너고, 붉은신호등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는데 이치마츠는 도대체 무엇이 초록이고 무엇이 붉은색인지 분간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남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 세상이라는 것은 모두 색채를 품고있으므로, 색채를 알지 못하는 이치마츠에게는 퍽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일종의 도피처를 문학속에 세웠다. 그곳에선 모든 색깔이 글로만 쓰여져 있을 뿐이다. 그 도피처는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이뤄져 있을 뿐이라 흰정도와 검은정도의 구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완벽한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치마츠는 현실의 사람인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했고, 도피처는 일시적인 방어수단일 뿐 자신을 지켜낼 공격수단이 될 수 없었다. 신이나 악마가 자신의 소원 들어줘서 세상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면, 이치마츠는 세상을 무채색으로 뒤집어버리고 싶었다. 남들이 푸르다고 하는 저 하늘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맑은 회색에 불과했고, 남들이 짙푸르다고 하는 저 우거진 녹음도 이치마츠에게는 조금 선명한 회색쯤에 불과했다. 과연 푸른색은 어떤 색일까라고 제 머릿속에서 이제까지 경험해본 색깔들을 최대한 섞어 만들어보려하지만 그래봤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어짜피 회색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세상을 전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현재의 자신에게 세상이란 회색 물감 공장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풍경화라도 그것이 회색범벅이라면 절대 아름답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치마츠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니 사실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만한 특별한 경험이라서, 책상에 앉아 창밖너머의 무채색 운동장을 보고있는 와중에도 손이 덜덜떨려 과연 그것이 진짜였을까?하고 오늘 아침에 일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오늘 처음으로 '색'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아니, 사실 이치마츠는 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때문에 사실 그것을 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솔직히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때껏 이치마츠가 보지 못해본 그런 것이었다.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우연히 같은 전차, 같은 칸에 탔던 남자의 주변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성한 색채가 빛과 생기를 머금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갓 딴 오렌지를 손으로 힘껏 쥐여 팟-터트려 과즙을 사방으로 퍼지게 한 것과 같이 상쾌했다. 어째서 저 사람의 주변만 색채가 보이는 거야. 이치마츠는 난생처음 경험해 본 세상의 색채에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싶을 정도로 황홀혀져서 그 남자가 내린 후에도 몇분이고 멍하게 서서 제가 처음보는 세계에 경탄하고 있었다. 겨우 정신차렸을 때는 남자가 전차에서 내린 후 수 분이 지난 뒤로 그때는 이미 세상은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빼앗겨버린 색채의 세상, 아니 돌려받아진 무채색의 현실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마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창 밖의 운동장은 무채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책상에 놓여있던 '노인과 바다'를 펼쳐 그것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치마츠는 이후 몇번이고 그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퇴색되는 법이라, 결국 제게 황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영롱한 색채도 뭉뚝한 지우개로 뭉개버린 듯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미 맛 본 그 흥분은 일종의 중독의 기능을 갖고있어서, 이치마츠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니, 이왕이면 그것을 제 곁에 영영 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그 날과 비슷한 시간에 매일같이 같은 칸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은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그가 서있던 자리를 바라봐도 그 자리는 역시 무채색이었다. 계절이 두어번 바뀌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번이고 되새기는 그 날의 세상도 무채색의 장막에 덮어져버릴 때 쯤, 구원과도 같이 그가 나타났다. 이치마츠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사람들 속에 파묻힌 전차 안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눈물때문에 흐려진 눈으로 기껏 보게 된 색채를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남자를, 그리고 남자의 주변 색채를 외워버릴듯 똑똑히 눈에 담았다. 깜빡이지 못한 눈이 약간 충혈되어 눈이 지끈거렸지만 그것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처절하게 그 색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그 고통을 반복해나갔던 그 시간들에 비하면 눈이 지끈거리는 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남자가 역에서 내려버리자, 이치마츠도 영겹결에 그를 따랐다. 그의 주변은 여전히 색채를 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색채의 반경도 움직였다. 그의 주변 상하좌우 30cm정도는 어떤 것이던 이제껏 이치마츠가 경험해보지 못한 색이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그의 곁에서 푸른 하늘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난생처음으로 신호등의 붉은신호와 푸른신호가 번갈아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흙과 잔디의 색은 전혀 다른 것이고, 잔디와 나뭇잎의 색깔은 비슷한 것이라는 것을, 단풍에는 붉은신호등과 같이 붉은 것과 저기 꼬마가 신고있는 장화처럼 노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언제까지나 그 남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남자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한 눈에 그 학교 학주의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었다. 학주는 정문에서 이치마츠를 막아세웠다. 


 "타학교학생이 타학교교복을 입고 당당히 들어오려하다니…. 세상 말세다."


 학주는 혀를 끌끌차며 이치마츠에게 몇가지 꾸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치마츠에게 학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윙윙-. 분명 앞에서 누군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이내 공기처럼 분해되버려 귀에 의미가 닫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버린다. 이치마츠는 혼 빠진 사람처럼 색채를 내뿜는 남자만을 좇았다. 그가 멀어질 수록 이치마츠가 겨우 볼 수 있는 진짜 세상이 점점 좁아져버리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내 학주에게 무력으로 저지당했다. 안돼 … 그를 좇지 않으면 안돼 ….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그의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저지당했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안으로 사라져 버려서 이내 이치마츠의 진짜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아 … , 이치마츠는 소리없이 신음했다. 목이 갈라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제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비참했던 적이 있던가. 이치마츠는 그가 사라진 무채색의 세상을 눈으로 더듬으며 차라리 스스로 제 눈을 찔러버린 오이디푸스와같은 장님이나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