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ㅡ악. 뒷통수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날아와 꽂혔다. 충격의 크기로 봐서는 철로 된 필통이라던가, 적어도 3cm 이상의 두게를 가진 공책 정도였을 것이다. 쥬시마츠의 고개는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살짝 앞으로 숙여졌다가 용수철인형 마냥 제자리를 찾았다. 쥬시마츠는 아무 일도 없다는 것 마냥 제 손에 쥐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쥬시마츠의 덤덤한 행동이 그가 쫄아서 한 행동이라고 착각한 것인지 평소 품행이 나쁘기로 소문 난 이 일의 주도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킬킬되었다. 하지만 쥬시마츠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실껏 떠들어보라면 떠들어보라지, 어차피 들리지도 않는걸.


 쥬시마츠는 씁쓸하게 웃었다. 쥬시마츠의 귀는 자신을 향한 비웃음도, 욕지거리도 들어낼 수 없는 머리에 거추장스레 붙어있는 얇은 두개의 고기덩어리에 불과했다. 쥬시마츠의 담담한 태도는 이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인지 타악 ㅡ 새로운 것이 날아와 쥬시마츠의 뒷통수를 때렸다. 이번에는 얇고 무언가 끝이 뾰족한 물건같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아픔까지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쥬시마츠는 얼얼한 제 뒷통수를 무의식적으로 한 번 쓸었다.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한껏 비웃음당하고 있을 것이다. 책상아래로 고개를 숙여 방금 자신의 뒷통수에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 살피니, 끝이 꽤 뾰족해서 분명 제대로 찌른다면 훌륭한 살인무기가 될 수 있는 제도샤프였다. 쥬시마츠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조용히 책읽기는 글렀구나. 읽고있던 책을 손에 들고 쥬시마츠는 교실 밖을 나가 학교 뒤 벤치로 가 앉았다. 자신만의 아지트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교장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어서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벤치였다. 


 쥬시마츠는 방해받아서 흐름이 끊겨버린 부분부터 다시 책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그는 소리내어 책을 읽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여 책속에 담긴 아름다운 구절을 되내었다.사실 자신이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인지, 발음이 엉망으로 꼬여서 혹시나 하늘이라는 단어를 마늘이라고 읽고있지는 않는지 확인해낼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쥬시마츠는 최대한 입근육을 팽팽히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며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소리들을 재현해내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예전에 소리라는 것을 학습한 상태였다. 


 오년 전만 해도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단정한 손가락으로 소리의 가락을 재현해 낼 수 있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 정신을 다해 귀를 기울여봐도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살랑되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으며 수업과 쉬는시간 사이의 텀을 알리는 종소리도 들리지 않게되었다. 그날 이후로 쥬시마츠의 세상은 완전히 무음속에 떠밀어졌다. 오디오의 버튼을 눌러 너무나도 간단히 음소거해버린 것 처럼 쥬시마츠의 세상은 '그 날'부터 어떤 소리도 담아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 날이라면 바로 오 년 전, 그러니까 쥬시마츠의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거대한 존재가 사라져버리고만 날을 말한다. 그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 꾸덕꾸덕한 먹구름이 해를 가린 날이었고, 버스 안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 습기로 축축해져 있었다.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의 시트에는 축축한 습기가 깊숙히 베어있어서 엉덩이에는 기분나쁜 땀이 송골 맺히는 기분이었다. 쥬시마츠는 어머니와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쥬시마츠는 몇번이고 어머니에게 치과 같은 곳은 가고 싶지 않다고 칭얼거렸으나, 어머니는 그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치료를 잘 마친다면 평소에 갖고싶어하던 게임기를 사주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진심을 다해 약속했다. 그 말에 쥬시마츠는 뾰로통해졌던 얼굴을 조금 펴보였지만, 그래도 왠지 바로 항복해버기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용납못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자신은 그다지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보기위해 다리를 앞뒤로 흔들어 의자를 퍽퍽 차보였다. 끼익- 의자는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버스는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시골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로 나가려면 필히 이 언덕을 올라야했다. 언제나처럼 덜덜거리는 버스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지 평소보다 기분나쁜 엔진소리를 내고있었다. 마을버스가 노후화되었던 탓인지 아니면 습기로 축축해져서있던 탓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결국 기분 탓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쥬시마츠는 의자차기는 이제 그만두고 언제라도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창 밖을 바라보았다. 게임기는 어떤 색으로 할까, 나카무라는 검정을 가지고있고 요시다는 흰색을 가지고있는데 왠지 자신은 두사람과는 다른 색으로 하고싶었다. 역시 하늘색일까 … ?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려서 쥬시마츠는 게임기색깔에 관해 생각하고있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응? 하고 쥬시마츠가 앞을 바라보았으나 그때는 이미 세상이 한 번 구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스가 길을 벗어나 낭떠러지에서 두어번 구른 후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생지옥이었다. 꺄악ㅡ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앞자리의 여고생이라던가, 곰과 비슷한 포효를 내고있는 중간자리의 아저씨라던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온갖 비명이 버스 내부에 뒤섞여서 쥬시마츠의 귀를 터질것 같이 만들었다. 분명 버스가 추락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쥬시마츠는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이래서 지옥에서의 시간은 영겁과 같다고 하는 것인가, 쥬시마츠의 어린 몸은 그 생지옥 안에서 벌벌 떠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어린 몸은 폭- 하고 따듯한 것에 감싸졌다. 천사인가 …? 종교는 믿지 않는 쥬시마츠였지만 자신을 감싼 것이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올려보니 자신을 감싼 것은 천사도, 저승사자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울듯말듯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품에서 쥬시마츠는 편히 눈을 감았다. 맨몸을 햇살의 따스함에 맡겨버린 것 같았다. 그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평생 잊지못할 행복한 꿈이었다. 어머니의 무릎배게를 베고 사각사각- 파내지는 귀지에 간지럽다고 투정을 부리며 마음껏 오후를 만끽하는 꿈이었다. 


 정신을 잃은지 거의 이틀째. 이제는 돌아가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무슨소리냐고 반박하려고 했을때 쥬시마츠는 겨우 길고 긴 잠에서 깨어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쥬시마츠는 일본 전역에서 주목하고있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쥬시마츠가 깨어나자, 쉴새없이 기자들이 병실로 밀려들어와 앞다투어 얼마전의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물었다. 하지만 어느 질문 하나도 쥬시마츠의 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왜 다들 입은 움직이면서 목소리는 내지 않는거야? 쥬시마츠는 멍해진 얼굴로 제 담당 주치의를 바라보았다. 그의 한숨은 곧 사형선고와 같았다. 청각손실. 하지만 이로인해 쥬시마츠가 청각하나만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었다. 일단 그는 하나 둘씩 제 곁을 떠나는 친구들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무척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으나 어느새 그것도 익숙해져서 점점 매말라버리는 우정을 보며 그러려나보다 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텅하니 비워져있는 무언의 빈자리를 매꾸기위해 쥬시마츠는 예전엔 죽어도 쳐다 보지않던 책을 대채물로 삼았다. 소리를 최대한 읽지 않기 위해, 몇번이고 눈으로 입으로 머릿속으로 그동안 알고지내왔던 소리를 더듬으며 책을  읽어나가고 생각해내고 읊조렸다. 문학이란 것은 예전 세상과 현재의 세상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구원줄 같은 것이었다. 쥬시마츠는 그 구원줄을 단단히 붙잡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쥬시마츠는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암기수준으로 되내이고는 책의 표지를 덮었다. 벌써 하늘이 노을빛을 띄고 있었다. 분명 하교시간은 훨씬 지나있을 것이다. 무단결석을 한 것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어질 선생님의 잔소리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봤자 들리지 않을 잔소리지만, 무슨소리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듣고있어야 할 자신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쥬시마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앉아있었기 때문인지 허리가 조금 뻐근했다. 쥬시마츠는 교실에 혼자 남겨져 있을 제 책가방을 가지러 곧장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제 책가방만이 덩그러니 놓여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쥬시마츠는 그것을 어깨에 매고 하교했다. 교문을 나서서 학교 앞 횡단보도 거리에서 신호등의 색이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신호로 바뀌어서 걸음을 떼어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뒤에서 무언가 급하게 자신을 붙들어왔다. 쥬시마츠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그 곳에는 한 소년이 서있었다. 쥬시마츠의 당황스러움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저 교복은 분명 자신의 학교것은 아니었다. 


 "몇번이나 불렀는데도, 안 돌아봐서.. "

 억울하다는 변명조로 앞에 서있는 소년이 중얼거렸다. 돌아볼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난 귀가 들리지 않는걸- 하고 가볍게 마음 속으로 반박하다가 쥬시마츠는 이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들린다. 소리가. 쥬시마츠는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했지만 분명 이것은 현실이었다. 꿈이라면 쌀쌀한 가을날씨가 피부로 체감 될리가 없다, 노을빛이 이렇게 선명할 리가 없다. 쥬시마츠는 크게 놀랐지만, 이내 상황판단을 하고자 근 오년간 쓰지않은 귀를 기울여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소리, 바람에 팔락이며 사사삭거리는 단풍의 소리, 그리고 제 앞의 소년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생생히 잘 들려왔다. 이럴수가….


 "…사실 저는 귀가 들리지 않아서, 아 그런데 그러니까 -. 그게, 지금은 또 소리가 들리는 데.."

쥬시마츠는 말을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문장으로 끝맺음하지 못한 채 바보같이 더듬거렸다. 상대는 자신을 조금 모자란 놈으로 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상대의 눈은 한층 더 진지해져있었다. 그 눈빛에서 쥬시마츠는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당신도 힘들었어?라고 그를 껴안고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고, 나도 엄청 힘들었어-라고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리고도 싶었다. 그것이 두 소년의 첫만남이었다. 두 소년은 서로를 보는 순간 운명이라는 한단어를 떠올렸다. 그 이후에 두 소년이 얼마나 서로에게 깊게 빠질 수 밖에 없었는가는, 아마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준 독자라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다시 한번 찾아올 사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