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배트 이름은 그냥 금속배트로 쓰겠습니다 . 배드가 조금 어색하네요 ;ㅅ;









 "…."

 세 심사위원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왼쪽에 앉은 안경을 쓴 남자 심사위원은 차마 더이상 보는 것은 한계라는 듯 명부를 뒤적거리며 딴 짓을 하였으며 오른쪽에 앉은 여자 심사위원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았다. 오직 가운데 앉아있는 남자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금속배트를 연기를 바라봐 줄 뿐이었다. 사실 연극부따위에 절대로 들 생각은 없었다. 그 소중하디 소중한 여동생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금속배트가 연기를 하면 할 수록 강당의 공기는 썰렁해졌다. 적성에 맞지않는 연극 오디션따위는 집어치우고 싶다. 지금이라도 심사위원의 잘난 면상에 대본을 던져버려도 딱히 나쁠 것은 없다. 물론 여동생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와 친해져서 나와 연결해줘!' 라는 여동생의 요구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남들이 본다면 그저 어린애의 땡깡에 불과했기에 그저 머리나 한대 쥐여박아주면 그만이었겠지만 자신은 여동생에게 물러도 너무 무른 것이 문제였다. 분명 언젠가는 여동생때문에 한번 크게 데일 놈이라고 친구들이 진지하게 말해올 정도다. 더불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자신들에게는 전화하지 말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당시에는 그런 친구들의 주둥아리를 비틀어주는 것으로 그쳤지만, 사실 여동생이 위험에 빠지는 것 보다야 자신이 위험해지는 쪽이 백번이고 천번이고 낫다고 생각한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그 '오빠'라는 놈은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금속배트의 연기를 평가하고 있는 놈들중에 한 사람인 저 아마이마스크란 놈으로 이 지역에선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정도로 꽤 유명한 놈이었다. 예전에 꽤 잘나갔던 아역배우에 간간히 모델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서 학교의 명물이니 연극부의 왕자니 뭐니 불려대고 있지만 일단 금속배트 자신은 남자이고 저런 기생오라비같은 면상을 꽤나 싫어했다. 하지만 요새 여자애들은 저런 기생오라비같은 얼굴을 좋아하는 것인지 금속배트의 여동생도 어느날인가부터 아마이마스크 아마이마스크- 노래를 불러대서 금속배트의 마음속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놈 넘버원으로 아마이마스크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 동생의 친해지라는 부탁아닌 부탁이 없었다면 옥상으로 끌고가서 저 재수없는 면상을 한번쯤 손봐주었을 것이다.

 사실 친해지라는 부탁은 얼핏보면 쉬어보이지만 학년도 다르고 접점도 없는 아마이마스크와 친해지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가면 항상 여동생이 아마이마스크와 좀 친해졌냐고 물어오는 데 이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슬슬 눈치보일 지경이다금속배트는 이제야 1학년이었지만 아마이마스크는 이제 3학년 졸업반이라서 같은 동아리라도 들지 않으면 전혀 접점이 없기에, 금속배트는 눈 딱 감고 연극부니 뭐시기니에 들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장벽이 하나 더 있었으니, 이 곳의 연극부는 꽤 유명한 모양이라서 입부희망생은 모두 테스트를 봐야했고 그 결과 이런 참혹한 장면이 눈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물론 신입생들중에서야 연기도 못하면서 그 혈기 하나만을 믿고 연극부에 오디션 보러 오는 놈들이 드문것도 아니었으나, 저 깡패같은 얼굴하며 의욕없어보이는 얼굴하며 …. 차라리 국어책을 읽어도 저것보단 낫겠다고 심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입밖으로 냈다가는 아마 맞아 죽을지 몰랐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 요구된 세가지 연기중에 마지막연기를 펼치려 할 때 아마이마스크가 입을 뗐다.


 "금속배트씨. 지금 하고 계신거 여주인공 부분인거는 알고 계신가요?"


 뭐야. 오필리아가 여자였나? 어쩐지 이름이 좀 여자같더라. 난 뭔 게이같은건 줄 알았지.. 그래서 저여자가 웃어댄 건가. 아니. 잘못 하고 있었으면 미리 알려줘야지. 그래서 그렇게 웃어댄거였냐! 금속배트는 날카로운 눈매로 심사위원석을 째려보았다. 금속배트와 눈이 마주치자 킥킥대고 있던 여심사위원은 히끅하고 웃음을 멈췄다. 


 " 금속배트씨는 이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연기 잘봤습니다. 나가는 쪽은 뒷쪽 문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아마이마스크가 친절히 강당 뒤쪽의 문을 가리키며 금속배트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 아, 망했다. 딱히 연극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쪽팔림을 무릎쓰고 오디션까지 보러 온 건데. 다 보기도 전에 나가라고 하다니. 이건 필히 나쁜 징조겠지. 금속배트는 어쩐지 조금 미련이 남는 얼굴로 심사위원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푸욱 쉬고 강당뒤로 쓸쓸하게 퇴장해버렸다. 좋은 오빠가 되기는 이렇게 험난한 것인가.








 "금속배트 이자식! 언제 연극부에 든거냐! 배신이다 이자식.. 넌 귀가부일줄 알았건만."

 " 연극부라니. 풉.. 연극부에가서 안받아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깽판이라도 친거냐? 와하하. 완전 의외다."

 " 연극부라면 아마이마스크인가 우마이마스크인가 있는 데 아니냐?"


 금속배트는 복도에 붙은 연극부 신입명단을 보며 저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옆에서 친구들이 배신자니 안어울린다니하며 금속배트를 놀려왔다. 평소같으면 몇대 쥐어박아야 성에 차겠지만 지금은 모든 소리가 다 공중에 흩어져버릴 뿐이다. 이거 무슨 오류난 거 아니야? 설마 동명이인? 하고 명단을 뚫어져라봐도 1학년 B반의 금속배트는 자신 뿐이다. 말도 안돼! 이거 뭐야! 분명 내 앞이나 뒤의 후보랑 헷갈렸던게 분명해! 자신도 믿기 힘든 상황에 두 손으로 착착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을 때려보았다. 믿기 힘들지만 어쨌건 제게는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금새 파악하고 금속배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끝나고 연극부 OT가 있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금속배트는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연극부의 부실을 찾아갔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신입부원들인지 똘망똘망 눈을 빛내며 앉아있는 부원들이 스무명쯤 보였다. 오디션에서 대기번호가 거의 200번대인가 그랬으니까-대부분은 여자였지만- 자신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연극부에 뽑힌 것이다. 잘못 뽑았다고 돌아가라고 하면 다 죽여버려야지, 하는 불량한 마음으로 금속배트가 맨 뒷줄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금속배트의 무서운 인상에 옆자리에 있던 아마도 신입부원인 듯한 소년 하나가 잠시 흠칫했다. 자신이 앉자 앞문이 열리며 선배인 듯한 인상의 학생 네명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두명은 이미 오디션을 볼 때 본 적이 있기에 낯이 익었다. 하나는 자신이 연기하는 것을 킥킥대며 보던 여자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 연극부에 들어온 이유인 아마이마스크다. 


 "연극부에 들어온 것을 다들 환영합니다. "


 아마이마스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 같다고 금속배트는 느꼈다. 눈이 마주치자 금속배트는 불량한 마음가짐을 한껏 표정에 실어서 녀석을 째려보아 주었다. 아마이마스크는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차마 금속배트가 어? 저자식? 하고 소리칠 새도 없이 아마이마스크는 금속배트에게서 시선을 떼고 이제 막 입부한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에게 할 축사를 위해 입을 뗐다. 분명 저자식 나 비웃었지? 금속배트는 뒤늦게 열이 올랐지만 벌써 신입부원들 하나하나가 자기 이름과 간단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부원이 많지는 않았으므로 금방 뒷자리에 있던 금속배트의 차례까지 돌았다.


 " …금속배트라고 한다. "


 반말? 여기저기서 초면에 반말을 찍찍 하는 금속배트를 보며 수군거렸다. 확실히 자신은 여기서도 미움받는 역할이구나. 여기서 잘 해나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긴, 어차피 저 아마이인지 우마이인지하는 놈이 졸업하면 자신도 퇴부할 예정이니까. 아니 아마이라는 놈이랑 친해지기만 한다면 목적은 달성된거니까 이 범생이집단에서 탈피할 수 있겠지.


 " 아아 ㅡ. 금속배트군은, 오디션에서 아주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죠. 그럼 다들 시간 내줘서 고마웠어요. 아마 다음주부터는 꽤 부에 모이는 시간이 많아질 거예요. 오가다 마주치면 먼저 인사해주세요. 자 그럼 오늘은 이걸로 해산할까요? "


 꺄아 ㅡ 역시 아마이마스크님이야! 연극부에 들기 잘했어! 하는 여학생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자식이 좋은 건가? 하고 의자에서 마악 일어나려는 아마이마스크의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아마이마스크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제가 무례하게 상대의 얼굴을 대놓고 살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이마스크는 아까처럼 금속배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올곧게 금속배트를 바라보았다. 누가보면 눈싸움이라도 하냐고 물어올 만큼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달아보이네."


  ? 아마이마스크의 말의 의미를 깨닫기 전에 아마이마스크가 먼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앞서나간 다른 학생들을 따라 아마이마스크도 부실을 나가버렸다. 결국 남겨진 것은 금속배트 혼자. 저 자식 뭐냐고...!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금속배트는 화가 치밀어서 앞에 놓인 의자를 차버리려다가 주머니에서 울려오는 핸드폰 벨소리에 이내 얼굴이 샐쭉 풀어져서 평소와는 다른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응. 어 ㅡ 당연히 합격했지. 응응. 그래. 아마이의 싸인? 아아. 그건 내일 받아다 줄테니까 응응. 응. 알겠어!"


 역시 좋은 오빠가 되는 것은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