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고 그거-,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는데 굳이 지가 데려다 주겠다고 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무슨 보균자도 아니고! 그리고 일단 매일 잠이나 자는 리츠보다야 내가 더 체력도 쎌거고, 어려서부터 리츠를 업어 버릇했으니까 내쪽이 더 잘 업었을 건데. 그리고 내가 아플때도 그렇게 업어서 보건실로 달려가 준 적은 한번도 없었으면서 아주 코가는 잘만 업도 뛰더라?
이미 자신이 수업 도중임을 새까맣게 잃은 마오는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 오른쪽 귀퉁이에 리츠의 이름을 썼다가 찍찍 몇번 선으로 그어버리고 샤프 꽁다리에 달려있는 지우개로 북북 지워버리다 이내 생각에 잠겼다. 잠시 눈을 감은 마오의 앞에, 살색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 이런거 아니라고! 훠이훠이 물러가!
겨우겨우 눈 앞에서 살색 풍경을 지워낸 마오는 이번에는 다시 울쩍해졌다. 아무리 의존하지 말라고 했어도 사실 마오의 가장 친한 친구는 리츠인것을. 하루아침에 그렇게 쌩 무시를 하고..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고 그렇게 하루 아침에 쌩까는게 어딨냐! 니가 초딩이냐! 아니 이미 정신연령은 초딩인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말로 너랑 나랑 하루 이틀 친구한 사이도 아니고! 솔직히 나는 니가 하지 말란다고 안할 놈이었으면 말 안했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는 말은 죽어도 안듣더니 이런건 왜 또 잘듣는데ㅡ ! 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옆에 앉은 아라시가 진지하게 정신병동에 전화해볼까하는 눈빛으로 마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라시에게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평정을 잃지 않은 척 하던 마오는 아라시가 다시 수업에 집중하자 후- 한숨을 내쉬곤 다시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사실 리츠에게 이제 그만 의존하라고 선언해버렸지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인지도 몰랐다. 리츠에게 항상 나 좀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친구라던가 나이츠의 멤버랑 돌아가라고 투정부리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리츠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저만 찾아 줄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사실, 예전엔 조금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이렇게 잘생긴 애가 내 친구라니- 게다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기대온다니- 하고선 조금 뿌듯해 하던때도, 부끄럽지만 있었다. 역시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친구가 다른 친구랑 논다고 섭섭해 한다니 나는 무슨 어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인거냐고!
"이사라 마오. "
다행이도 제가 이렇게 소녀틱한 마음이 있었다니!하고 부끄러워서 몸이 베베 꼬여버리기 직전에 마오는 다시 한번 다른 이유로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수업시간에 자지 마라. 복도로 가서 서있어."
"선생님 저는 … !"
"말대꾸하지마라."
쿠누기는 번뜩이는 은테안경너머로 마오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복도로 나가라고 단언했다. 엎드린지 고작 십초도 안지난 것 같은데 잔다고 오해받은 마오는 무척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쿠누기 선생님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밍기적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왜 하필 걸려도 쿠누기쌤인거냐고. 저 선생님 까다롭게로 유명한데.
마오는 복도에 서서 대충 핸드폰을 끄적이다가 문득 리츠가 아직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코가가 쓰러진 것이 화학시간이었고, 지금이 쿠누기선생님의 수업시간이니까 적어도 삼십분은 지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양호실까지 거리래봤자 왕복으로 겨우 오분정도이고. 이렇게 늦는다는건...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이사라! 클레스메이트로 그런 망상의 나래 펼치지 말라고?
마오는 제 머릿속에 다시한번 비집고 들어오려는 리츠와 코가의 위험한 그림을 애써 부정하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예 가망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리츠는 알파고, 코가는 오메가다. 둘이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리츠는 발정의 정도가 심한 알파였고, 코가는 막 각성한 오메가였기때문에 아마 서로에게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오메가 나 알파중에는 사랑없이도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들었고. 아니! 일단 얘네 아직 미성년자지만! 하지만 미성년자끼리 그, 그렇고 그런거 했던 나도 있지만! 아니 일단 절대로 그건 리츠가 먼저 원해서 한거니깐! 내가 좋아서 한건 아니니깐! 그나저나 얘네는 왜 안돌아와서 내가 이렇게 불안해 해야하는 건데!
마오는 실내화의 앞코로 툭툭 불안한 듯 바닥을 쳤다. 한번...가 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섰다. 음, 그래! 그래! 이건 그냥 확인이다. 제 소꿉친구가 클래스메이트를 덮쳤다는 명목으로 깜빵에 가는 일이 없도록 살펴주는 것일 뿐이다! 마오는 그렇게 덜떨어진 합리화를 하며 양호실이 있는 1층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렸다. 한걸음마다 초조함이 뚝뚝 떨어져 그 긴거리에 흔적을 남겼다.
아, 양호실까지 이렇게 멀 줄이야. 마오는 뛰어오느라 가빠진 숨을 고른 후, 조심스럽게 양호실의 문을 열었.. 아니, 열려고 했다. 하지만 벌써 양호실의 문은 단단히 잠궈져 있어서 마오가 아무리 힘을 줘봐도 열릴리가 없었다. 리츠와 자신은, 항상 그 비밀스러운 일을 하기 위해서 누가 올까 문을 이렇게 잠구곤 했었다. 마오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침착하게 억누르며 문가로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래, 뭐 양호실 문 좀 잠겨있을 수도 있지! 양호 선생님이 잠궈놓지 않았단 법은 또 어디있겠는가!
마오는 방음이 안되는 싸구려 나무재질의 양호실 문으로 최대한 귀를 붙였다.
'으 ㅡ '
'으- 읍!'
마오는 일순간 숨을 멈췄다. 분명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면 이건, 코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충격에 빠진 마오에게 확인 사실을 시키듯 '그만, 흣, 하라고, 사쿠, 마, 자식!' 하는 달콤한 코가의 교성이 얇은 문 너머로 새어나와 마오의 귀에 깊이 박혔다.
마오는 결국 기정사실화 시킬수 밖에 없었다. 리츠와 코가는, 이 문 너머에서 … 나와 리츠가 하던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지금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쿠마 리츠는 제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좋은거였다. 아니, 애초에 코가를 마음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언제부터? 분명 리츠는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마오는 제 실내화 앞코에 뚝뚝 떨어지는 제 눈물 방울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서러운 감정에 휩싸여 양호실의 문 앞에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양호실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마오를 더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리츠는 언제나 제게 '좋아한'다고 말해왔지 사랑한다고 말해왔던 적은 없다. 게다가 리츠의 '좋아한'다는 대상은 저뿐만 아니라 나이츠의 멤버, 홍차부, 그리고 그 부의 그 귀여운 후배도 포함되는 것인데 자신은 리츠와 조금 더 가깝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너의 호의를 이상하게 해석한 나는 혼자 멋대로 니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사실은 넌 날 그냥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거였는데.
하지만,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나한테 기댄다는 게 은연중에 무척이나 기뻤던 나는, 네가 다른 녀석과 함께 있다고 해서 미친듯이 서러워지는 나는, 너를 과연 소꿉친구로 바라보고 있던걸까? 역시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을 지도 모른다. 아아. 깨닫기 싫었다. 사실은, 내쪽에서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
이제는 오메가버스 설정은 어떻게해도 좋은 것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별거 없는 평범한 삽질물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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