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글들 포스타입에 업로드해두었습니다!


안녕하세요

mesk입니다 :-)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전에 운영했던 블로그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기뻐요 :-)

 

현재까지 간간히 독자분들이

DM이나 댓글 등으로 작품에 대해 문의를 주셔서

이전 작품들을 모아둔 포스타입을 새로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

 

앙스타 관련 완성작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열람하실 수 있도록 올려두겠습니다.

 

https://mesk-backup.postype.com/

 

운영했던 블로그가 많아 글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데,

이번 기회에 한 공간에 모아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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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2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결혼날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샵에 같이가고 , 샵에서 나온 후엔 그녀와 내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를 사고, 그녀의 인가친척에게 돌릴 선물들을 고르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휙휙 보내다보니 어느 덧 결혼식 날은 하루 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어차피 남들처럼 분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될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집이 벌써부터 그립다거나하는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진정으로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의 가장이 되어 제 한사람 몫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역할 수행을 동시에 해야하는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짖눌러 결혼이라는 것이 두렵게 다가왔다. 그녀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래봤자 어차피 내일 나는 결혼식 장에 입장할 것이고, 이제와서 도망칠 거라는 용기있는 결단도 못 내릴 겁쟁이지만 말이다.

 피부를 위해서 일찍 자두라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오늘따라 왜이리 잡념이 많은거냐. 나는 벽에 걸린 시계가 벌써 자정을 가리키는 것을 보며 어머니의 충고대로 얼른 잠에 들자고 마음 먹었으나 인간은 항상 긴장하면 잠이 안오기 마련인 동물이다. 나는 처음 수학여행 가는 어린애라도 된 것 마냥 결국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눈만 멀뚱멀뚱히 뜬 상태로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먼저 결혼한 형이 이르기를, 연애랑 결혼은 많이 다르다던데 그녀도 결혼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져버리는 걸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을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참한 여성이니 바가지 긁는 모습은 전혀 상상히 안갔다. 아이는 둘이나 셋 쯤이 좋을까.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적당할 것 같단 말이지. 내일 친구들은 몇명이나 올려나. 대학 친구들은 온다고들 하던데, 중학교 동창들은 와줄까? 아무래도 집끼리 아는 손님들이 많이 오겠지.  

 에이치는... 오려나? 나는 급기야 생각난 소꿉친구의 이름에 조금 가슴이 먹먹해졌다. 녀석은 올 생각일까. 그 날 이후 다시 연락 한 통 없네.

 역시 녀석이 아무리 내게 심한 소리를 했다고 해도 역시 친구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이런 때 녀석이 몹시 생각나는 거 보면. 얼굴이 생각나니 녀석의 다정한 목소리가 조금 듣고 싶어졌다. 녀석이 나를 사랑의 감정으로서 좋아하든 말든 지금은 그저 내 일생의 대부분을 같이 지냈던 소중한 '친구'인 텐쇼인 에이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녀석이 괜찮다고 해주면, 나는 당장에라도 미래에 관한 두려움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편안한 기분으로 잠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다 깬 잠은 저 한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남들이 보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법하게 '텐쇼인 에이치'라고 정직하게 저장된 이름을 보니 조금 두근거렸다. 늦은 시간인데 전화 걸어도 될까-, 처음에 말은 뭐라고 꺼내지, 녀석이 일부러 안받는 건 아닐까? 라고 혼자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때, 운명같이도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너무나 기가막히는 타이밍이라 나는 잠시 방 안에 몰래카메라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주변을 휘휘 돌아보다가 이내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케이토"

"어, 에이치"

 이게 뭐라고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설상가상으로는 손에 땀까지 차서 핸드폰 놓칠 뻔 했다.

"내일 결혼 축하한다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늦게까지 안자고 있었나보네"

 녀석의 음색은 한없이 다정하고 포근했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녀석의 목소리를 퍽 좋아했다. 외모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사실 에이치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딱히 녀석이 별 말을 건낸 것은 아닌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그 날 밤, 내 귀가 어떻게 되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에이치는 내가 아는 그 다정한 음색의 에이치로 돌아와 있었다. 

"너야말로 이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뭐하냐. 뭐. 축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얼른 자둬. 그래야 내일 이쁘게 하고 만나지."

"곧 신랑될 사람한테 이쁘게 하라는 게 뭐냐."


"흐음 글쎄. 뭐,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하니까 말이야."

 녀석이 지금 내게 농을 건낸 건가? 하고 녀석의 말에서 과연 유머코드가 어디에 담겨 있었는지 해석해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녀석은 이내 내일 결혼할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내일보자 케이토"

 전화를 끊고 나는 정중히 테이블 위에 방금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어느덧 불안과 초조함은 눈 녹듯 사라져 있어, 나는 이게 친구 좋다는 건가- 싶었다. 자, 어서 자자. 그리고 내일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자.





 다음날, 나는 눈이 부셔서 감았던 눈을 떴다. 굉장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이었다. 아마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 쪽으로 나있는 발코니 덕인 듯 싶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발코니가 방의 채광을 담당하고 있는 값비싼 호텔 스위트룸 같은 이 곳은 내 방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기우뚱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침대가 무척 푹신했기 때문에 어디가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일어나는 것이 잘 되지 않을까? 나는 궁금해서 내 몸을 살피다 발견하고야 말았다. 없어진 내 팔과 다리를. 너무 비현실적이라 순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꿈 속인가? 아니 이건 필히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만에 삼십년을 달고 살아온 멀쩡한 팔다리가 신체분리 마술이라도 부린 것 마냥 없어질 리가 없으니까. 나는 너무나 깔끔히 잘려있는 팔 다리의 절단면을 바라보다가 팔다리가 없어지는 꿈은 흉몽일까 길몽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 너무 꿈 속에 안주하고 있으면 결혼식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꿈에서 깨려고 노력했다. 꿈 속에서 이게 꿈이란 것을 의식하면 으레 깨어나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의식해도 이 꿈은 깨어지지가 쉽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무언가 무서운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아냐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애써 밀려 들어오는 생각을 무시하고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입술을 한껏 물어 뜯었다.

"케이토 일어났어?"

  알고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 꿈에서 일어나려고 노력해도 전혀 효과가 없어 마침 울고 싶어 진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에이치가 꿈에 나오다니. 드문 일이었다. 나는 꿈 자체를 잘 꾸지 않을 뿐더러, 에이치가 나오는 꿈은 살면서 몇 번 꿔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생한 형태의 꿈이라니. 어떤 악마가 이런 꿈을 내게 보여주는 지는 몰라도, 이 꿈은 너무 생생하고 정교해서 정말 까닥하다가는 진짜라고 믿어버릴 것 만 같았다. 홍차잔을 들고, 흰 양복을 입은 에이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침대 머리에 앉아 내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었다. 이렇게 생생한 촉감과 온도라니, 정말 실력좋은 악마가 프로그래밍한 꿈 인가보군. 

"생각보다 안아프지? 실력 좋은 사람한테 부탁해했거든."

 녀석이 내 이마에 제 입술을 맞췄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 입술 촉감에 나는 한순간 생각 저 뒤 편으로 밀어두려고 노력했던 그 공포를 무방비하게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피부가 조금 거치네. 케이토. 그러게 일찍 자랬잖아.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존재니까 말이야."

 구토가 일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이 현실에, 차라리 이 자리에서 즉시 기절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은 이미 내 편이 아니었기에 그것마저 쉽게 이뤄주지 않았다.

"어서 가자. 우리 결혼식에 늦겠다."

 그런 다정한 음색으로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 녀석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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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1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어릴 적 부터 내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사춘기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야 에이치와 친하게 지내라는 아버지의 명령도 있었고, 에이치는 여러모로 나보다 훨씬 잘나고 인기도 많은 놈이었기에 이 쪽에서 오히려 에이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에이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게 친구로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인가?'하는 의문이 피어 오르기가 반복되고, 직접적으로 '너 좀 이상해, 친구끼리 이러는 거 좀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에이치는 나에게 농익은 연정을 품었을 때로 에이치에게,

' 좋아해'

 라는 고백을 받았다. 물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이라니. 딱히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나 자신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 해본 적이 전혀 없었고, 출산 능력이 없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평생을 사로 잡혀있던 나에게 절대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선 나는 여자가 좋았다. 여자의 알몸 사진이 잔뜩 박혀져 있는 성인용 잡지를 몰래 침대 밑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 마다 그것으로 종종 자위를 하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어디서 듣기론, 사춘기 무렵에는 우정과 사랑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데서 생기는 질투심을 '사랑'으로 잘못 착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에이치도 그런 부류겠거니 하고 어렴풋이 넘겨 짚었다. 아무래도 에이치는 당시에는 몸이 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고 있었기에, 매번 병실에 들러 이것저것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들을 챙겨주는 내가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어리석게도 가볍게 넘겨짚고 말았다. 그 뒤로 에이치는 다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므로 역시 나는 에이치가 당시에 우정과 사랑을 착각해 우발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구나-하고 안심했다. 최근까지는 말이다.





 우리 집은 꽤 유서깊은 가문이기 때문에 내가 혼기가 차자마자 고리타분하게도 결혼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꽤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여서 나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아름다운 여성과는 절대 눈 한 번 못 맞춰 봤을 것이 뻔해서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고분고분 이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혼수이야기도 오가고 결혼식 날짜도 잡히고, 그렇게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니 주변에선 '니가 벌써 결혼을 하냐?'라거나 '축하한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 중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에이치에게서 만큼은 회답이 오지 않아서 나는 내심 에이치가 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돌아간 제 아버지를 대신해 텐쇼인 가의 실질적 소유주 자리를 인수인계 받느라 바쁘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이십년을 넘게 알아 왔던 친구이니만큼 축하한다고 문자 하나 보내주지 않는 것이 내심 섭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이치가 찾아왔을 때는 결혼 식이 얼마 남지 않은 불특정한 날의 아주 늦은 밤 시간이었다. 나는 유카타 한 장만을 품위없게 걸치고 있던 채로 대문을 열었는 데 못 본 시간 동안 많이 핼쓱해진 에이치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고요한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몇 달만에 얼굴을 비친 소꿉친구가 반가워서 입으로는 왜 이런 밤 중에 찾아왔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내심 기뻐하며 그를 집 안으로 맞아 들였다. 사실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요새 많이 바쁜가보다? 그래도 친구 결혼한다는 데 문자 하나는 좀 줄 수 도 있었잖냐."

  나는 내 방 테이블에 앉은 에이치에게 직접 끓인 차를 내주며 내심 장난인 척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뱉었다. 평소같았으면 유하게 웃으며 '미안 요새 좀 바빠서'라고 대답해주었을 친구였으나 그 날은 어딘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에이치는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나는 에이치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최근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하고 자신을 성찰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치에게 잘못한 것이 없자 나는 단순히 에이치가 피곤해서 저런 것일거라고 생각해서 녀석을 웃게 해주려고 어줍짢게 알고 있던 농을 하나 건네려고 했는데 마침 에이치가 입을 열었기에 그것은 무산이 되었다.

"하스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낯설었다. 어릴 적 부터 한 번도 녀석이 나를 성으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인가.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는 종종 '하스미'라고 불리고 있으면서 어쩐지 녀석이 부르는 '하스미'는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이질적으로 들렸다. 

"하지마."

"뭘?"

"결혼말야."

 무리한 것을 말하는 주제에 녀석의 목소리는 꽤나 당당하기까지해서, 나는 내심 결혼이 이제 사회적으로 용인 될 수 없는 나쁜 짓으로 낙인 찍힌건가?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결혼이 나쁜 짓일리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 받아야 마땅한 일생일대의 기쁜 행사이지 않는가. 그런데,몇달 만에 얼굴을 비춘 소꿉친구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의 파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신이 어떻게 됐냐? 이미 결혼 이야기 다 오고가고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무슨 니가 결혼을 하라마라야."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에이치를 쏘아 붙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억 저편의 어딘가에서, 에이치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덜 여문 사춘기의 어느 날을 회상해냈다. 설마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할 셈인가?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쭉 돋았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친구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연인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단순히 녀석이 아직은 이성에게 흥미가 없을 뿐 언젠가 녀석은 자신처럼 참한 아가씨를 만나 좋은 자신을 닮은 유순한 아들 딸 두 명을 낳고 나와 인생의 동무로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누군가에게 흥미가 없던 게 아니라, 십년 전 나에게 고백했던 그 시점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른 시점부터 녀석이 '나에게만' 오롯이 흥미를 보였던 거라면?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졌다, 당장이라도 십수년 전 처럼 녀석이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올 까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텐쇼인 에이치는, 가끔 무서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 말랄 때 하지마. 정말로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붙잡아 두는 수가 있어."

 얼어 붙은 나를 뒤로 한 채 에이치는 '그럼, 차 잘마셨어'하고 다시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나에게 인사를 건내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날 그렇게 떠나버린 녀석의, 생각보다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녀석이 내게 보인 집착의 크기에 무서워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녀석이 뱉은 말 하나 하나까지 잘 곱씹어 보았어야 했다. 녀석은 어렸을 때 부터 괜한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뒤로 내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하루 아침에 멀쩡하게 불어있던 팔 다리를 잃었는가-하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짧은 과정과, 현재 나와 에이치의 관계와 행위 관한 현상 파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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