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군은 보면 꾸준히 그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쩌다 마오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옆에서 흘끗 쳐다본 주임이 마오에게 말을 붙였다. 주임은 낯익은 연예인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마오의 배경화면을 보며 이게 누구더라, 가수인가 배우인가- 하고 얼마 남지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어 왔다. 마오는 '지금은 배우예요 예전에는 가수였지만' 하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그래그래, 배우지! 그 왜 이름이...우리 딸내미가 좋아하는 앤데..하고 주임이 마오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연예인 이름 외우는 것보다 이번 달 내야할 자동차 보험비에 관심이 더 많을 나이인w지라 주임은 쉽게 이름을 기억해내질 못했다. 생각나지 않는 이 연예인의 이름때문에 답답한 지 급기야 가슴까지 치던 주임은 이내 근처에 앉은 마오의 동료에게 헬프의 눈빛을 보냈다. 주임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마주한 동료는 대체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뭔데요 봐봐-'하고 목을 길게 빼내어 마오의 핸드폰 배경을 보려고 노력했다.
"아, 사쿠마 리츠 맞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답게 동료는 보자마자 리츠의 이름을 뱉어냈다. 아니, 너무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게 이상하려나. 정답을 말한 동료에게 마오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옆에서 고기를 두어점 집어다가 제 입에 넣고 있던 주임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익숙한 그 이름에 이제야 속이 뻥 뚫리겠는지, 제대로 씹지 않은 입안의 음식물을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열의까지 보이며 아 맞다 걔!하면서 두툼한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쳤다. 키야- 내가 이래뵈도 유행에 많이 뒤쳐지지는 않는 아저씨란 말이지- 하는 말까지 덧붙여가면서.
"이사라씨 리츠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는데."
동료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쿠마 리츠'라는 연결고리가 생기자 대화에 물꼬가 튼 기분이었다.
"아, 뭐.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연예인 중에선 그나마 좋아하는 편이에요."
"에이. 이사라군 벌써 이년째 그 배우 좋아하는 거 우리 팀 다 알고 있는데. 그 뭐시기 뭐냐. 이사라군 잘생겼는데도 애인도 없고 남자 배우만 좋아하고 있으니까 유우키군이 이사라군 게이 아니냐고 묻던-"
"주임님!!!!!!!"
테이블 맨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씹고 있던 마코토가 갑자기 봉변을 맞았다. 너 나를 그렇게 말하고 다녔냐- 하는 조금 씁쓸한 눈빛으로 마오는 제 후임인 마코토를 쳐다보았다. 주변에서 와하하-하고 웃어와 분위기는 유쾌해졌지만 마코토만은 절대로 그 유쾌한 분위기에 녹아 들 수 없었다. 마코토는 해명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말이 얽히고 섥혀서 이내 자기도 감당이 안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마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왔다.
딱히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던 마오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뭐 내가 게이인 게 사실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유우키는 옆 부서의 어떤 남정네한테 무한 대쉬를 받고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게이가 될 확률이 높았다. 마오는 특별히 마코토를 동정의 의미로다가 용서해주기로 했다. 마코토의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자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꽤 오래 전 부터 사쿠마 리츠 좋아하셨나봐요? 사실 저도 가수 활동때부터 좋아했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동료가 이사라와의 공통점을 찾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근하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걸어왔다. 동료가 자기는 나이츠-사쿠마 리츠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룹 이름- 팬페이지도 운영해 본 진성팬임을 은연 중에 밝히며 자랑스러워하자 마오는 속으로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말이지, 하고 조금 난처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완전 빠돌이로 낙인 찍하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연예인 중에선 사쿠마 리츠를 가장 좋아하고, 핸드폰 배경으로 사쿠마 리츠의 사진을 설정해 놓고 있었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 잘생겨서 등이 아닌 조금 특별한 이유에서다. 너무 힘들어서 방황만 하던 과거의 어느 날, 리츠라는 존재가 그에게 큰 해답을 주었기에 마오는 그 때부터 리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삼년 전 쯤인가, 마오는 고시원에 틀어박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에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사회적으로 청년들 대다수가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되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 해졌고 마오는 앞 서 두어번 쳤던 공무원 시험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 이렇게 세번 네번 열번 스무번을 더 시험쳐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마오는 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우연히 누군가 읽다가 공원 의자에 놓고 간 연예 잡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손에 든 것이었는데 은근 재미가 붙어서 마오는 잡지를 꽤 진지하게 정독했다. 그러던 도중 중간 쯤에 아마도 스페셜 게스트인지 잡지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는 연예인의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마오는 거리를 오가다 종종 광고 포스터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 이름이 사쿠마 리츠구나. 본명일까? 하고 마오는 생각했다. 프로필을 보니 자신보다 나이가 겨우 한 살 많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회적으로 석공하다니. 이런 애들은 얼굴이 조금 반반하다는 이유로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서 부럽네- 하는 조금 삐뚤어진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내리고 있던 마오는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에서 읽어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눈으로 진지하게 그 부분을 다시 더듬었다.
Q:리츠씨는 일이 뜻대로 안 풀리실 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A:그냥 잡니다. 사실 일이 뜻대로 안되면 초조하고 불안해지잖아요. 사실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되는 거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어지게 자보는 거예요. 하루종일 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이틀을 누워서 마음껏 빈둥거려보시고, 그래도 부족하면 일주일도 좋을 거 예요. 저는 스케쥴이 밀려있어서 그러면 매니저한테 당장 혼나지만요(웃음)
사실 별 내용 아니었는데 거기서 위안을 얻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마오는 조금 우스워졌다. 그래봤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별거없는 조언에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위로받을만큼 힘들고 지쳐있던 건 지도 몰랐다. 여하튼 잡지 속의 조언대로 충실에 일주일은 내리 빈둥거리며 자신의 생애에서 그렇게 지루한 기간은 더이상 없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재충전 기간이 끝나고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여기가 역시 내 길이다. 그 이후로 더욱 맘을 잡고 연필을 쥐어 공부했다. 그그래서 다음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고.
회식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마오는 제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로 가기 위해 가로등만이 조용히 켜져있는 동네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술도 조금 들어갔겠다, 벌써 새벽 늦은 시간이겠다, 길에는 아무도 없겠다-이 완벽한 삼박자 덕에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 된 마오는 콧노래로 나이츠의 3집 앨범 타이틀 곡을 흥얼거렸다.
그래 나이츠가 해체한다고 할 때는 꽤 충격이었지, 처음에는 사쿠마ㄴ 리츠 때문에 알게 된 그룹인데 노래 듣다가 그 그룹에도 빠지게 됐으니까. 다른 수록곡도 좋지. 으으, 그래 역시 3집으 타이틀 곡이 제일 좋았어-하고 마오가 한창 필이 충만해졌다.흥얼거리고 있는 노래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사쿠마 리츠의 부분을 콧노래를 너머 이젠 입으로 열심히 열창하고 있었는데,
"저기"
이 밤 중에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의 앞에 선 한 남자가 통행을 가로막았다. 마오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길에서 대놓고 나이츠의 노래를 열창했던 것인데, 이렇게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죽을 듯이 쪽팔려져서 술이 한 방에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얘, 얘는 뭐, 뭔데 이 밤 중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헉, 혹, 혹시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없다던가 하는 귀신인가. 아니면 그냥 변태인가? 마오는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 속설을 상기하며 땅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제대로 있는 것을 보아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역시 변태인가. 근데 어째서 나한테.. 하고 두서없이 생각하던 마오는 이내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에 몸이 굳었다.
" 나- 좀 재워줄 수 있어?"
남자의 말에 얼이 빠진 마오가 예?하고 되물었다. 생긴 것은 엄청 멀끔히 잘 생겼을 거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변태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진 몰랐지만, 마오는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피신하는 것과 인근 경찰서로 달려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하고 마오가 머릿속에서 재어보고 있는데 그런 마오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조금 불쾌하다는 목소리 톤으로 상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나 수상한 사람 아니거든-?"
아니 저기요. 밤 중에 선글라스 끼고 생초면인 사람한테 재워달라고 하는 사람을 수상하다고 하지 않으면 대체 수상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수상하다고 할 것 같은 데 말이죠. 마오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상대는 한 숨을 푸욱 쉬더니 마오를 설득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 처럼 선글라스를 벗었다. 사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두 눈이 뚫려있는 귀신이라는 추측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으려 할 땐 마오는 잠시 쫄았다가 그 얼굴을 확인하고 망부석 처럼 굳어버렸다.
"저기, 알아보겠어?"
이사라 마오는 당연히 몰라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쿠,마..리츠?"
사쿠마 리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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