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가볍게 가자 01




"이사라군은 보면 꾸준히 그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쩌다 마오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옆에서 흘끗 쳐다본 주임이 마오에게 말을 붙였다. 주임은 낯익은 연예인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마오의 배경화면을 보며 이게 누구더라, 가수인가 배우인가- 하고 얼마 남지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어 왔다. 마오는 '지금은 배우예요 예전에는 가수였지만' 하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그래그래, 배우지! 그 왜 이름이...우리 딸내미가 좋아하는 앤데..하고 주임이 마오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연예인 이름 외우는 것보다 이번 달 내야할 자동차 보험비에 관심이 더 많을 나이인w지라 주임은 쉽게 이름을 기억해내질 못했다. 생각나지 않는 이 연예인의 이름때문에 답답한 지 급기야 가슴까지 치던 주임은 이내 근처에 앉은 마오의 동료에게 헬프의 눈빛을 보냈다. 주임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마주한 동료는 대체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뭔데요 봐봐-'하고 목을 길게 빼내어 마오의 핸드폰 배경을 보려고 노력했다. 

"아, 사쿠마 리츠 맞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답게 동료는 보자마자 리츠의 이름을 뱉어냈다. 아니, 너무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게 이상하려나. 정답을 말한 동료에게 마오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옆에서 고기를 두어점 집어다가 제 입에 넣고 있던 주임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익숙한 그 이름에 이제야 속이 뻥 뚫리겠는지, 제대로 씹지 않은 입안의 음식물을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열의까지 보이며 아 맞다 걔!하면서 두툼한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쳤다. 키야- 내가 이래뵈도 유행에 많이 뒤쳐지지는 않는 아저씨란 말이지- 하는 말까지 덧붙여가면서.

"이사라씨 리츠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는데."

 동료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쿠마 리츠'라는 연결고리가 생기자 대화에 물꼬가 튼 기분이었다. 

"아, 뭐.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연예인 중에선 그나마 좋아하는 편이에요."

"에이. 이사라군 벌써 이년째 그 배우 좋아하는 거 우리 팀 다 알고 있는데. 그 뭐시기 뭐냐. 이사라군 잘생겼는데도 애인도 없고 남자 배우만 좋아하고 있으니까 유우키군이 이사라군 게이 아니냐고 묻던-"

"주임님!!!!!!!"

 테이블 맨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씹고 있던 마코토가 갑자기 봉변을 맞았다. 너 나를 그렇게 말하고 다녔냐- 하는 조금 씁쓸한 눈빛으로 마오는 제 후임인 마코토를 쳐다보았다. 주변에서 와하하-하고 웃어와 분위기는 유쾌해졌지만 마코토만은 절대로 그 유쾌한 분위기에 녹아 들 수 없었다. 마코토는 해명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말이 얽히고 섥혀서 이내 자기도 감당이 안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마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왔다. 

 딱히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던 마오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뭐 내가 게이인 게 사실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유우키는 옆 부서의 어떤 남정네한테 무한 대쉬를 받고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게이가 될 확률이 높았다. 마오는 특별히 마코토를 동정의 의미로다가 용서해주기로 했다. 마코토의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자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꽤 오래 전 부터 사쿠마 리츠 좋아하셨나봐요? 사실 저도 가수 활동때부터 좋아했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동료가 이사라와의 공통점을 찾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근하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걸어왔다. 동료가 자기는 나이츠-사쿠마 리츠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룹 이름- 팬페이지도 운영해 본 진성팬임을 은연 중에 밝히며 자랑스러워하자 마오는 속으로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말이지, 하고 조금 난처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완전 빠돌이로 낙인 찍하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연예인 중에선 사쿠마 리츠를 가장 좋아하고, 핸드폰 배경으로 사쿠마 리츠의 사진을 설정해 놓고 있었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 잘생겨서 등이 아닌 조금 특별한 이유에서다. 너무 힘들어서 방황만 하던 과거의 어느 날, 리츠라는 존재가 그에게 큰 해답을 주었기에 마오는 그 때부터 리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삼년 전 쯤인가, 마오는 고시원에 틀어박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에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사회적으로 청년들 대다수가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되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 해졌고 마오는 앞 서 두어번 쳤던 공무원 시험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 이렇게 세번 네번 열번 스무번을 더 시험쳐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마오는 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우연히 누군가 읽다가 공원 의자에 놓고 간 연예 잡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손에 든 것이었는데 은근 재미가 붙어서 마오는 잡지를 꽤 진지하게 정독했다. 그러던 도중 중간 쯤에 아마도 스페셜 게스트인지 잡지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는 연예인의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마오는 거리를 오가다 종종 광고 포스터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 이름이 사쿠마 리츠구나. 본명일까? 하고 마오는 생각했다. 프로필을 보니 자신보다 나이가 겨우 한 살 많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회적으로 석공하다니. 이런 애들은 얼굴이 조금 반반하다는 이유로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서 부럽네- 하는 조금 삐뚤어진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내리고 있던 마오는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에서 읽어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눈으로 진지하게 그 부분을 다시 더듬었다.


 Q:리츠씨는 일이 뜻대로 안 풀리실 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A:그냥 잡니다. 사실 일이 뜻대로 안되면 초조하고 불안해지잖아요. 사실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되는 거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어지게 자보는 거예요. 하루종일 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이틀을 누워서 마음껏 빈둥거려보시고, 그래도 부족하면 일주일도 좋을 거 예요. 저는 스케쥴이 밀려있어서 그러면 매니저한테 당장 혼나지만요(웃음)





 사실 별 내용 아니었는데 거기서 위안을 얻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마오는 조금 우스워졌다. 그래봤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별거없는 조언에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위로받을만큼 힘들고 지쳐있던 건 지도 몰랐다. 여하튼 잡지 속의 조언대로 충실에 일주일은 내리 빈둥거리며 자신의 생애에서 그렇게 지루한 기간은 더이상 없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재충전 기간이 끝나고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여기가 역시 내 길이다. 그 이후로 더욱 맘을 잡고 연필을 쥐어 공부했다. 그그래서 다음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고.

 회식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마오는 제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로 가기 위해 가로등만이 조용히 켜져있는 동네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술도 조금 들어갔겠다, 벌써 새벽 늦은 시간이겠다, 길에는 아무도 없겠다-이 완벽한 삼박자 덕에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 된 마오는 콧노래로 나이츠의 3집 앨범 타이틀 곡을 흥얼거렸다. 

 그래 나이츠가 해체한다고 할 때는 꽤 충격이었지, 처음에는 사쿠마ㄴ 리츠 때문에 알게 된 그룹인데 노래 듣다가 그 그룹에도 빠지게 됐으니까. 다른 수록곡도 좋지. 으으, 그래 역시 3집으 타이틀 곡이 제일 좋았어-하고 마오가 한창 필이 충만해졌다.흥얼거리고 있는 노래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사쿠마 리츠의 부분을 콧노래를 너머 이젠 입으로 열심히 열창하고 있었는데,

"저기"

 이 밤 중에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의 앞에 선 한 남자가 통행을 가로막았다. 마오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길에서 대놓고 나이츠의 노래를 열창했던 것인데, 이렇게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죽을 듯이 쪽팔려져서 술이 한 방에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얘, 얘는 뭐, 뭔데 이 밤 중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헉, 혹, 혹시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없다던가 하는 귀신인가. 아니면 그냥 변태인가? 마오는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 속설을 상기하며 땅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제대로 있는 것을 보아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역시 변태인가. 근데 어째서 나한테.. 하고 두서없이 생각하던 마오는 이내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에 몸이 굳었다.

" 나- 좀 재워줄 수 있어?"

 남자의 말에 얼이 빠진 마오가 예?하고 되물었다. 생긴 것은 엄청 멀끔히 잘 생겼을 거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변태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진 몰랐지만, 마오는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피신하는 것과 인근 경찰서로 달려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하고 마오가 머릿속에서 재어보고 있는데 그런 마오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조금 불쾌하다는 목소리 톤으로 상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나 수상한 사람 아니거든-?"

 아니 저기요. 밤 중에 선글라스 끼고 생초면인 사람한테 재워달라고 하는 사람을 수상하다고 하지 않으면 대체 수상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수상하다고 할 것 같은 데 말이죠. 마오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상대는 한 숨을 푸욱 쉬더니 마오를 설득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 처럼 선글라스를 벗었다. 사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두 눈이 뚫려있는 귀신이라는 추측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으려 할 땐 마오는 잠시 쫄았다가 그 얼굴을 확인하고 망부석 처럼 굳어버렸다.

"저기, 알아보겠어?"

이사라 마오는 당연히 몰라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쿠,마..리츠?"

 사쿠마 리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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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2







 츠카사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지하실은 넓었으므로 혼자서 다 청소하기는 무리였기에, 츠카사는 강단의 주변을 기점으로 열심히 쓸고 닦았다. 교회에서 자주 쓰는 긴 의자를 한 번 닦자마자 걸레가 금방 시커매졌다. 이대로 닦다간 정말 끝도 안나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원래 좀비란 체력과 쓸모없는 생명력만 넘쳐나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츠카사는 물이 담긴 큰 양동이에 시꺼매진 걸레를 푹 담궜다가 꺼내 손으로 주욱- 짜냈다. 꾸정물이 뚝뚝 양동이로 떨어져서, 물이 금방 탁해지고 말았다.

 걸레질을 끝마친 뒤에는 창고에서 꺼내 온 부드러운 붉은 카펫을 입구에서 강단까지 깔았다. 카펫은 신부와 신랑이 입장하기 위한 용도로, 결혼이란 것은 해 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던 츠카사지만 서재에 있는 책을 찾아 조사 해보니 인간의 결혼식은 대략 이런 형태로 하는 것 같아 지하 창고를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카펫 이외에도 지하실을 인간들의 결혼식장처럼 꾸미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의 울타리 즈음에 피어있던 흰 제비꽃도 꺽어와 곳곳에 장식했고, 촉감 좋은 융단도 내빈석 곳곳에 깔았다. 물론 내빈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츠카사는 인간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제 신부에게, 가장 최고의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은 좀비건 인간이건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밤이 되서야 그럴 듯 하게 결혼식장이 완성 되었다. 흑백이 주로 쓰인 결혼식 장은 얼핏보면 장엄한 종교 집회와 같은 이미지를 가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도들이 하나씩 나와 교주에게 자신의 죄를 고할 것 같은 신성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츠카사는 이만하면 혼자 준비한 것 치곤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일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선 일찍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츠카사는 침실로 돌아가 옷장에 있던 가장 부드러운 실크잠옷을 몸에 걸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뭍었다. 이 넓기만 한 침대도 이제는 끝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츠카사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살풋 걸려있었다.



*



 츠카사가 자신의 신붓감과 다시 조우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도 그 인간 남자는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간 여자와 함께 큰 바구니를 양 팔에 끼고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츠카사는 울타리에 피어난 담쟁이 덩굴 뒤에 숨어 그들을 살폈다. 여전히 그들은 저 하늘을 닮은 쾌청한 웃음을 피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이제 자신도 저렇게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츠카사는 조금 주변을 살피다 이내 격리지대와 안전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섰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정말 방어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울타리였다. 이러니 항상 좀비들이 조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안전 지대를 침범하지.

 츠카사는 천천히 남매에게 다가섰다. 둘은 등을 돌린채로 한참을 독버섯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 빠져 츠카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보였다. 남자쪽이 이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자 쪽에게 훈계조로 말하고 있으니, 여자 쪽도 지기 싫은 지 얼굴을 붉힌 채 조금 부투룽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시시덕거리더니, 지금은 싸우고 있네. 츠카사는 인간들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의아함을 품으며 한발짝, 두발짝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탁- 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꽤 크게 숲을 울리는 소리에, 남매가 반응을 했다. 

 우선 여자 쪽의 비명이 먼저 들려왔다.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츠카사가 만나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보았을 때 얼어 붙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둘 중 한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얼어 붙는 쪽의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잠시 얼어붙어 츠카사를 멀뚱히 바라보며 사태파악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사태파악을 끝마치고 여동생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응이다. 츠카사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인간들을 볼 때 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자식을 감싸는 부모들을 식량으로 삼을 때는 조금 입맛이 떨어지곤 했다.

"루카, 넌 어서 달려나가. 여긴 내가 맡을게."
"하지만 오.."
"어서!"

 츠카사는 남매의 대화 내용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매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리 달려봤자 그 약한 인간의 체력으로는 자신들과 견줄 수 없는 데 인간들은 한 명이 희생하면 한 명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제 오빠의 호통에 조금 겁먹은 듯 츠카사와의 반대편을 향해 무작정 뛰어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츠카사의 앞을 가로막고 츠카사의 관심을 루카에게서 돌려내기 위해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자세를 취했다. 여자쪽은 별로 관심도 없고 이대로 쫓아가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츠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신붓감에게 다가섰다. 나는 그냥 당신만 원할 뿐 인데.

 이내 처절한 고함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

 츠카사는 침대에서 곤히 눈을 붙이고 있는 남자의 옷주머니를 뒤져 약간의 소지품을 찾아냈다. 열쇠와 지갑, 그리고 이 지역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그 중 지갑에는 약간의 돈과 신분증, 그리고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아까본 그 여자애가 같이 찍혀있었으므로 츠카사는 아마 가족 사진일 것이라 판단했다. 사진을 다시 지갑속에 고이 껴두곤 츠카사는 신분증을 손에 들었다.

'츠키나카 레오'. 츠카사는 자신의 신붓감의 이름을 낮게 읊조려 보았다. 레오, 레오.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려지는 그 음이 마음에 들었다. 츠카사는 레오의 옆머리를 귀 뒤로 다정히 넘겨주었다.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고 있는 달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레오는 마치 밤을 관장하는 여신과 같았다. 그는 밤을 훔쳤다.

 레오는 츠카사에게 물린 상태로, 현재는 죽어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몸의 살점들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며 좀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좀비가 된다는 걸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하기도 우습지만 여하튼 레오는 내일이면 아마 살아날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결혼식을 올리자. 이 아름다운 신부와, 내일,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자.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자. 네가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너도 나처럼 모든 기억을 잃고야 말겠지. 그 땐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줄게, 레오. 나의 신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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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1






 츠카사가 '그것'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산책하던 도중이었다. 츠카사는 한 눈에 그것이 자신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들은 츠카사들을 '좀비'라던가 '괴물'등으로 불러 오는, 자신들 스스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무리였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구분하는지 츠카사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츠카사는 왜 '좀비'라고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고 소멸시키려하는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저들을 식량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가? 츠카사는 작은 인간 여자에게 미소지으며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인간 남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개나 돼지, 닭 등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인간은 왜 우리를 해치려 드는 걸까. 그것은 오래전부터 츠카사의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채로 남아있는 하나의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직접 연구해 볼 기회는 오지 않았으므로 츠카사는 오래전부터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딘가 간지러운 부분을 긁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 곳을 오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인데, 저 인간 남매는 어째서인지 이 곳을 잘 아는 사람들 마냥 풀 숲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여러 빛깔의 버섯들과 산과일들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댔다. 또한 자기들이 담은 버섯들을 꺼내 서로 비교하다 입꼬리를 올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무언가 재잘거렸다. 인간에 대한 츠카사의 두번째 궁금증은, 인간은 어째서 저렇게 얼굴을 다양하게 바꾸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자기의 기분에 따라 바꾸어낼까-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게 되어버린 '격리지대'에는 예전에 살던 인간들이 남긴 건물터나 물건들이 상당수 존재했는데, 그 중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묘사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그러한 택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수치심, 경멸, 사랑 등의 단어를 습득해나갔지만 글자만 가지곤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는 다르게 참으로 복잡한 감정선을 지녔다. 츠카사는 그래서 인간이 참으로 부러웠다.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츠카사는 울타리 너머에서 버섯을 따는 남매를 보며 저둘을 감싸고 있는 조금 따듯한 공기가 '기쁨'이라는 감정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책의 삽화에서 봤던 것과 유사해보였으므로. 


 츠카사는 남매를 관찰하다 그들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호선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쁨'이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츠카사는 밤잠을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인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부러움일까. 츠카사는 푹식한 베개에 머리를 묻곤 높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그 인간을 '먹고' 싶은 것일까. 츠카사는 여러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이 책장에는 모두 빽빽히 책이 꽃혀 있었다. 인간들이 남기고 사라진 이 서적들은 츠카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였음에도 츠카사는 책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격리지대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새로운, 최신의 책을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츠카사는 때때로 새로운 책이 필요한 날에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도 했다. 


 인간의 글은, 처음부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츠카사는 그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처음에는 '인간'이었을까?. 츠카사는 자신이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신기해져서 종종 아무런 소리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제 서재의 발코니에 걸터 앉아서, 인간 세상이 가장 잘 보이는 쪽을 내다보곤 했다. 푸른 어둠이 얕게 덮은 인간세계는, 이 곳과는 다르게 참으로 고요하기만 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생활리듬이 달랐으므로, 밤에는 다들 쉴새없이 놀리던 입을 다물고, 눈을 살포시 닫은 채로 편안한 단잠에 빠져버린다-,고 책에 쓰여 있었다. 그래서 츠카사는 되도록 밤 시간에 잠을 자려고 했다. 츠카사는 사실은, 인간을 동경했고 그래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최대한 베껴냈다.


 츠카사는 하늘 위에 커다랗게 떠 있는 창백한 보름달을 보며, 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외롭다고 생각했다.



*



  츠카사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마을로 들어섰다. 이 곳은 좀비들도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츠카사는 종종 이 마을을 산책하거나 가끔은 메말라버린 분수대에 걸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인간의 집'이었던 곳에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걷다가, 마을 광장 가까이에 위치한 노랑 지붕 집이 눈에 들었다. 무단침입이었지만, 츠카사는 어디선가 책에서 봤던 내용대로 '실례합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말을 꺼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먼지가 잔뜩 쌓여 매캐했고, 겨우 자그마한 창문 구멍만이 온 햇빛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의 반의 반도 안되어보이는 집의 크기에 츠카사는 인간들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뭉쳐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인간이었을 적엔 이렇게 조그마한 집에서 이렇게 조그마한 식탁에 둘러 앉아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을까. 때로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불평도 하고, 좋아하게 된 급우에 대해 부모님께 조잘거리며 그렇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았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 분했다.


 츠카사는 작은 토끼모양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여져 있는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익-. 경첩 녹슬었는지 문이 부드럽게 열리질 않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발산했다. 츠카사는 집 안에 들어왔던 걸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아마 여자아이의 방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인형과 동화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쪽 벽지엔 핏자국이 흥건히 베어있어 아마 여기서 좀비에게 일가족이 몰살 당했을 거라고 추정하게 했다. 


 츠카사는 담담히 그것을 바라보곤 이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동화책 중 하나를 골라 침대에 걸터 앉았다. 츠카사가 풀썩 침대에 앉자 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몇년을 쌓여져서 묵혀졌을 먼지는 츠카사의 작은 행동 하나에 금방 그 세월의 축적을 파기당해 버린다. 


 츠카사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동화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여기도 여전히 '기쁨'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은 기쁨이 무엇인지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는데 인간 세계에는 왜 이렇게 기쁨, 행복,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은 걸까. 츠카사는 표지를 한 장 넘겨 책을 읽어내렸다. 아동용 책이라 별 다른 노력없이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불행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가 '결혼'을 통해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해 진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지는 걸까? 나도, 신부를 얻으면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츠카사는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여자와 남자가 활짝 웃으며 궁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채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삽화를 단아한 손끝으로 조용히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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