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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6[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2
  2. 2016.06.05[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16
  3. 2016.06.04[리츠마오] 가볍게 가자 01
  4. 2016.05.31[츠카레오] 결손신부 02
  5. 2016.05.30[츠카레오] 결손신부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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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6.05.13[이즈마코] 극성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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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2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결혼날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샵에 같이가고 , 샵에서 나온 후엔 그녀와 내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를 사고, 그녀의 인가친척에게 돌릴 선물들을 고르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휙휙 보내다보니 어느 덧 결혼식 날은 하루 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어차피 남들처럼 분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될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집이 벌써부터 그립다거나하는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진정으로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의 가장이 되어 제 한사람 몫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역할 수행을 동시에 해야하는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짖눌러 결혼이라는 것이 두렵게 다가왔다. 그녀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래봤자 어차피 내일 나는 결혼식 장에 입장할 것이고, 이제와서 도망칠 거라는 용기있는 결단도 못 내릴 겁쟁이지만 말이다.

 피부를 위해서 일찍 자두라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오늘따라 왜이리 잡념이 많은거냐. 나는 벽에 걸린 시계가 벌써 자정을 가리키는 것을 보며 어머니의 충고대로 얼른 잠에 들자고 마음 먹었으나 인간은 항상 긴장하면 잠이 안오기 마련인 동물이다. 나는 처음 수학여행 가는 어린애라도 된 것 마냥 결국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눈만 멀뚱멀뚱히 뜬 상태로 다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먼저 결혼한 형이 이르기를, 연애랑 결혼은 많이 다르다던데 그녀도 결혼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져버리는 걸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을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참한 여성이니 바가지 긁는 모습은 전혀 상상히 안갔다. 아이는 둘이나 셋 쯤이 좋을까.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적당할 것 같단 말이지. 내일 친구들은 몇명이나 올려나. 대학 친구들은 온다고들 하던데, 중학교 동창들은 와줄까? 아무래도 집끼리 아는 손님들이 많이 오겠지.  

 에이치는... 오려나? 나는 급기야 생각난 소꿉친구의 이름에 조금 가슴이 먹먹해졌다. 녀석은 올 생각일까. 그 날 이후 다시 연락 한 통 없네.

 역시 녀석이 아무리 내게 심한 소리를 했다고 해도 역시 친구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이런 때 녀석이 몹시 생각나는 거 보면. 얼굴이 생각나니 녀석의 다정한 목소리가 조금 듣고 싶어졌다. 녀석이 나를 사랑의 감정으로서 좋아하든 말든 지금은 그저 내 일생의 대부분을 같이 지냈던 소중한 '친구'인 텐쇼인 에이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녀석이 괜찮다고 해주면, 나는 당장에라도 미래에 관한 두려움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편안한 기분으로 잠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다 깬 잠은 저 한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남들이 보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법하게 '텐쇼인 에이치'라고 정직하게 저장된 이름을 보니 조금 두근거렸다. 늦은 시간인데 전화 걸어도 될까-, 처음에 말은 뭐라고 꺼내지, 녀석이 일부러 안받는 건 아닐까? 라고 혼자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때, 운명같이도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너무나 기가막히는 타이밍이라 나는 잠시 방 안에 몰래카메라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주변을 휘휘 돌아보다가 이내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케이토"

"어, 에이치"

 이게 뭐라고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설상가상으로는 손에 땀까지 차서 핸드폰 놓칠 뻔 했다.

"내일 결혼 축하한다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늦게까지 안자고 있었나보네"

 녀석의 음색은 한없이 다정하고 포근했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녀석의 목소리를 퍽 좋아했다. 외모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사실 에이치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딱히 녀석이 별 말을 건낸 것은 아닌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그 날 밤, 내 귀가 어떻게 되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에이치는 내가 아는 그 다정한 음색의 에이치로 돌아와 있었다. 

"너야말로 이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뭐하냐. 뭐. 축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얼른 자둬. 그래야 내일 이쁘게 하고 만나지."

"곧 신랑될 사람한테 이쁘게 하라는 게 뭐냐."


"흐음 글쎄. 뭐,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하니까 말이야."

 녀석이 지금 내게 농을 건낸 건가? 하고 녀석의 말에서 과연 유머코드가 어디에 담겨 있었는지 해석해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녀석은 이내 내일 결혼할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내일보자 케이토"

 전화를 끊고 나는 정중히 테이블 위에 방금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어느덧 불안과 초조함은 눈 녹듯 사라져 있어, 나는 이게 친구 좋다는 건가- 싶었다. 자, 어서 자자. 그리고 내일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자.





 다음날, 나는 눈이 부셔서 감았던 눈을 떴다. 굉장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이었다. 아마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 쪽으로 나있는 발코니 덕인 듯 싶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발코니가 방의 채광을 담당하고 있는 값비싼 호텔 스위트룸 같은 이 곳은 내 방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기우뚱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침대가 무척 푹신했기 때문에 어디가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일어나는 것이 잘 되지 않을까? 나는 궁금해서 내 몸을 살피다 발견하고야 말았다. 없어진 내 팔과 다리를. 너무 비현실적이라 순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꿈 속인가? 아니 이건 필히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만에 삼십년을 달고 살아온 멀쩡한 팔다리가 신체분리 마술이라도 부린 것 마냥 없어질 리가 없으니까. 나는 너무나 깔끔히 잘려있는 팔 다리의 절단면을 바라보다가 팔다리가 없어지는 꿈은 흉몽일까 길몽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 너무 꿈 속에 안주하고 있으면 결혼식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꿈에서 깨려고 노력했다. 꿈 속에서 이게 꿈이란 것을 의식하면 으레 깨어나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의식해도 이 꿈은 깨어지지가 쉽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무언가 무서운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아냐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애써 밀려 들어오는 생각을 무시하고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입술을 한껏 물어 뜯었다.

"케이토 일어났어?"

  알고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 꿈에서 일어나려고 노력해도 전혀 효과가 없어 마침 울고 싶어 진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에이치가 꿈에 나오다니. 드문 일이었다. 나는 꿈 자체를 잘 꾸지 않을 뿐더러, 에이치가 나오는 꿈은 살면서 몇 번 꿔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생한 형태의 꿈이라니. 어떤 악마가 이런 꿈을 내게 보여주는 지는 몰라도, 이 꿈은 너무 생생하고 정교해서 정말 까닥하다가는 진짜라고 믿어버릴 것 만 같았다. 홍차잔을 들고, 흰 양복을 입은 에이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침대 머리에 앉아 내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었다. 이렇게 생생한 촉감과 온도라니, 정말 실력좋은 악마가 프로그래밍한 꿈 인가보군. 

"생각보다 안아프지? 실력 좋은 사람한테 부탁해했거든."

 녀석이 내 이마에 제 입술을 맞췄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 입술 촉감에 나는 한순간 생각 저 뒤 편으로 밀어두려고 노력했던 그 공포를 무방비하게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피부가 조금 거치네. 케이토. 그러게 일찍 자랬잖아. 신부는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존재니까 말이야."

 구토가 일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이 현실에, 차라리 이 자리에서 즉시 기절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은 이미 내 편이 아니었기에 그것마저 쉽게 이뤄주지 않았다.

"어서 가자. 우리 결혼식에 늦겠다."

 그런 다정한 음색으로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 녀석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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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 테디베어 신부 01


*주의: 테디베어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어릴 적 부터 내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사춘기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야 에이치와 친하게 지내라는 아버지의 명령도 있었고, 에이치는 여러모로 나보다 훨씬 잘나고 인기도 많은 놈이었기에 이 쪽에서 오히려 에이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에이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게 친구로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인가?'하는 의문이 피어 오르기가 반복되고, 직접적으로 '너 좀 이상해, 친구끼리 이러는 거 좀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에이치는 나에게 농익은 연정을 품었을 때로 에이치에게,

' 좋아해'

 라는 고백을 받았다. 물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이라니. 딱히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나 자신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 해본 적이 전혀 없었고, 출산 능력이 없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평생을 사로 잡혀있던 나에게 절대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선 나는 여자가 좋았다. 여자의 알몸 사진이 잔뜩 박혀져 있는 성인용 잡지를 몰래 침대 밑에 숨겨놓고 필요할 때 마다 그것으로 종종 자위를 하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어디서 듣기론, 사춘기 무렵에는 우정과 사랑을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데서 생기는 질투심을 '사랑'으로 잘못 착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에이치도 그런 부류겠거니 하고 어렴풋이 넘겨 짚었다. 아무래도 에이치는 당시에는 몸이 약해서 학교도 잘 못나오고 있었기에, 매번 병실에 들러 이것저것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들을 챙겨주는 내가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어리석게도 가볍게 넘겨짚고 말았다. 그 뒤로 에이치는 다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므로 역시 나는 에이치가 당시에 우정과 사랑을 착각해 우발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구나-하고 안심했다. 최근까지는 말이다.





 우리 집은 꽤 유서깊은 가문이기 때문에 내가 혼기가 차자마자 고리타분하게도 결혼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꽤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여서 나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아름다운 여성과는 절대 눈 한 번 못 맞춰 봤을 것이 뻔해서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고분고분 이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혼수이야기도 오가고 결혼식 날짜도 잡히고, 그렇게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니 주변에선 '니가 벌써 결혼을 하냐?'라거나 '축하한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 중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에이치에게서 만큼은 회답이 오지 않아서 나는 내심 에이치가 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돌아간 제 아버지를 대신해 텐쇼인 가의 실질적 소유주 자리를 인수인계 받느라 바쁘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이십년을 넘게 알아 왔던 친구이니만큼 축하한다고 문자 하나 보내주지 않는 것이 내심 섭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이치가 찾아왔을 때는 결혼 식이 얼마 남지 않은 불특정한 날의 아주 늦은 밤 시간이었다. 나는 유카타 한 장만을 품위없게 걸치고 있던 채로 대문을 열었는 데 못 본 시간 동안 많이 핼쓱해진 에이치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고요한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몇 달만에 얼굴을 비친 소꿉친구가 반가워서 입으로는 왜 이런 밤 중에 찾아왔느냐고 타박을 주면서도 내심 기뻐하며 그를 집 안으로 맞아 들였다. 사실 그러면 안 됐던 건데. 

"요새 많이 바쁜가보다? 그래도 친구 결혼한다는 데 문자 하나는 좀 줄 수 도 있었잖냐."

  나는 내 방 테이블에 앉은 에이치에게 직접 끓인 차를 내주며 내심 장난인 척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뱉었다. 평소같았으면 유하게 웃으며 '미안 요새 좀 바빠서'라고 대답해주었을 친구였으나 그 날은 어딘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에이치는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나는 에이치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최근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하고 자신을 성찰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치에게 잘못한 것이 없자 나는 단순히 에이치가 피곤해서 저런 것일거라고 생각해서 녀석을 웃게 해주려고 어줍짢게 알고 있던 농을 하나 건네려고 했는데 마침 에이치가 입을 열었기에 그것은 무산이 되었다.

"하스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낯설었다. 어릴 적 부터 한 번도 녀석이 나를 성으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인가.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는 종종 '하스미'라고 불리고 있으면서 어쩐지 녀석이 부르는 '하스미'는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이질적으로 들렸다. 

"하지마."

"뭘?"

"결혼말야."

 무리한 것을 말하는 주제에 녀석의 목소리는 꽤나 당당하기까지해서, 나는 내심 결혼이 이제 사회적으로 용인 될 수 없는 나쁜 짓으로 낙인 찍힌건가?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결혼이 나쁜 짓일리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 받아야 마땅한 일생일대의 기쁜 행사이지 않는가. 그런데,몇달 만에 얼굴을 비춘 소꿉친구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의 파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신이 어떻게 됐냐? 이미 결혼 이야기 다 오고가고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무슨 니가 결혼을 하라마라야."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에이치를 쏘아 붙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억 저편의 어딘가에서, 에이치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덜 여문 사춘기의 어느 날을 회상해냈다. 설마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할 셈인가?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쭉 돋았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친구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연인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단순히 녀석이 아직은 이성에게 흥미가 없을 뿐 언젠가 녀석은 자신처럼 참한 아가씨를 만나 좋은 자신을 닮은 유순한 아들 딸 두 명을 낳고 나와 인생의 동무로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누군가에게 흥미가 없던 게 아니라, 십년 전 나에게 고백했던 그 시점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른 시점부터 녀석이 '나에게만' 오롯이 흥미를 보였던 거라면?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졌다, 당장이라도 십수년 전 처럼 녀석이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올 까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텐쇼인 에이치는, 가끔 무서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 말랄 때 하지마. 정말로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붙잡아 두는 수가 있어."

 얼어 붙은 나를 뒤로 한 채 에이치는 '그럼, 차 잘마셨어'하고 다시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나에게 인사를 건내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 날 그렇게 떠나버린 녀석의, 생각보다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녀석이 내게 보인 집착의 크기에 무서워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녀석이 뱉은 말 하나 하나까지 잘 곱씹어 보았어야 했다. 녀석은 어렸을 때 부터 괜한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뒤로 내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하루 아침에 멀쩡하게 불어있던 팔 다리를 잃었는가-하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짧은 과정과, 현재 나와 에이치의 관계와 행위 관한 현상 파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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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마오] 가볍게 가자 01




"이사라군은 보면 꾸준히 그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쩌다 마오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옆에서 흘끗 쳐다본 주임이 마오에게 말을 붙였다. 주임은 낯익은 연예인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마오의 배경화면을 보며 이게 누구더라, 가수인가 배우인가- 하고 얼마 남지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어 왔다. 마오는 '지금은 배우예요 예전에는 가수였지만' 하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그래그래, 배우지! 그 왜 이름이...우리 딸내미가 좋아하는 앤데..하고 주임이 마오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연예인 이름 외우는 것보다 이번 달 내야할 자동차 보험비에 관심이 더 많을 나이인w지라 주임은 쉽게 이름을 기억해내질 못했다. 생각나지 않는 이 연예인의 이름때문에 답답한 지 급기야 가슴까지 치던 주임은 이내 근처에 앉은 마오의 동료에게 헬프의 눈빛을 보냈다. 주임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마주한 동료는 대체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뭔데요 봐봐-'하고 목을 길게 빼내어 마오의 핸드폰 배경을 보려고 노력했다. 

"아, 사쿠마 리츠 맞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답게 동료는 보자마자 리츠의 이름을 뱉어냈다. 아니, 너무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게 이상하려나. 정답을 말한 동료에게 마오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옆에서 고기를 두어점 집어다가 제 입에 넣고 있던 주임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익숙한 그 이름에 이제야 속이 뻥 뚫리겠는지, 제대로 씹지 않은 입안의 음식물을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열의까지 보이며 아 맞다 걔!하면서 두툼한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쳤다. 키야- 내가 이래뵈도 유행에 많이 뒤쳐지지는 않는 아저씨란 말이지- 하는 말까지 덧붙여가면서.

"이사라씨 리츠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는데."

 동료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쿠마 리츠'라는 연결고리가 생기자 대화에 물꼬가 튼 기분이었다. 

"아, 뭐.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연예인 중에선 그나마 좋아하는 편이에요."

"에이. 이사라군 벌써 이년째 그 배우 좋아하는 거 우리 팀 다 알고 있는데. 그 뭐시기 뭐냐. 이사라군 잘생겼는데도 애인도 없고 남자 배우만 좋아하고 있으니까 유우키군이 이사라군 게이 아니냐고 묻던-"

"주임님!!!!!!!"

 테이블 맨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씹고 있던 마코토가 갑자기 봉변을 맞았다. 너 나를 그렇게 말하고 다녔냐- 하는 조금 씁쓸한 눈빛으로 마오는 제 후임인 마코토를 쳐다보았다. 주변에서 와하하-하고 웃어와 분위기는 유쾌해졌지만 마코토만은 절대로 그 유쾌한 분위기에 녹아 들 수 없었다. 마코토는 해명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가 말이 얽히고 섥혀서 이내 자기도 감당이 안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마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왔다. 

 딱히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던 마오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뭐 내가 게이인 게 사실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유우키는 옆 부서의 어떤 남정네한테 무한 대쉬를 받고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게이가 될 확률이 높았다. 마오는 특별히 마코토를 동정의 의미로다가 용서해주기로 했다. 마코토의 거의 울 듯한 얼굴을 보자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꽤 오래 전 부터 사쿠마 리츠 좋아하셨나봐요? 사실 저도 가수 활동때부터 좋아했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동료가 이사라와의 공통점을 찾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근하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걸어왔다. 동료가 자기는 나이츠-사쿠마 리츠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룹 이름- 팬페이지도 운영해 본 진성팬임을 은연 중에 밝히며 자랑스러워하자 마오는 속으로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말이지, 하고 조금 난처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완전 빠돌이로 낙인 찍하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연예인 중에선 사쿠마 리츠를 가장 좋아하고, 핸드폰 배경으로 사쿠마 리츠의 사진을 설정해 놓고 있었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 잘생겨서 등이 아닌 조금 특별한 이유에서다. 너무 힘들어서 방황만 하던 과거의 어느 날, 리츠라는 존재가 그에게 큰 해답을 주었기에 마오는 그 때부터 리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삼년 전 쯤인가, 마오는 고시원에 틀어박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에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사회적으로 청년들 대다수가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되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 해졌고 마오는 앞 서 두어번 쳤던 공무원 시험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 이렇게 세번 네번 열번 스무번을 더 시험쳐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마오는 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우연히 누군가 읽다가 공원 의자에 놓고 간 연예 잡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손에 든 것이었는데 은근 재미가 붙어서 마오는 잡지를 꽤 진지하게 정독했다. 그러던 도중 중간 쯤에 아마도 스페셜 게스트인지 잡지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는 연예인의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마오는 거리를 오가다 종종 광고 포스터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 이름이 사쿠마 리츠구나. 본명일까? 하고 마오는 생각했다. 프로필을 보니 자신보다 나이가 겨우 한 살 많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회적으로 석공하다니. 이런 애들은 얼굴이 조금 반반하다는 이유로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서 부럽네- 하는 조금 삐뚤어진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내리고 있던 마오는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에서 읽어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눈으로 진지하게 그 부분을 다시 더듬었다.


 Q:리츠씨는 일이 뜻대로 안 풀리실 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A:그냥 잡니다. 사실 일이 뜻대로 안되면 초조하고 불안해지잖아요. 사실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되는 거거든요. 제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어지게 자보는 거예요. 하루종일 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이틀을 누워서 마음껏 빈둥거려보시고, 그래도 부족하면 일주일도 좋을 거 예요. 저는 스케쥴이 밀려있어서 그러면 매니저한테 당장 혼나지만요(웃음)





 사실 별 내용 아니었는데 거기서 위안을 얻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마오는 조금 우스워졌다. 그래봤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별거없는 조언에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위로받을만큼 힘들고 지쳐있던 건 지도 몰랐다. 여하튼 잡지 속의 조언대로 충실에 일주일은 내리 빈둥거리며 자신의 생애에서 그렇게 지루한 기간은 더이상 없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재충전 기간이 끝나고 마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여기가 역시 내 길이다. 그 이후로 더욱 맘을 잡고 연필을 쥐어 공부했다. 그그래서 다음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고.

 회식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마오는 제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로 가기 위해 가로등만이 조용히 켜져있는 동네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술도 조금 들어갔겠다, 벌써 새벽 늦은 시간이겠다, 길에는 아무도 없겠다-이 완벽한 삼박자 덕에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 된 마오는 콧노래로 나이츠의 3집 앨범 타이틀 곡을 흥얼거렸다. 

 그래 나이츠가 해체한다고 할 때는 꽤 충격이었지, 처음에는 사쿠마ㄴ 리츠 때문에 알게 된 그룹인데 노래 듣다가 그 그룹에도 빠지게 됐으니까. 다른 수록곡도 좋지. 으으, 그래 역시 3집으 타이틀 곡이 제일 좋았어-하고 마오가 한창 필이 충만해졌다.흥얼거리고 있는 노래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사쿠마 리츠의 부분을 콧노래를 너머 이젠 입으로 열심히 열창하고 있었는데,

"저기"

 이 밤 중에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의 앞에 선 한 남자가 통행을 가로막았다. 마오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길에서 대놓고 나이츠의 노래를 열창했던 것인데, 이렇게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죽을 듯이 쪽팔려져서 술이 한 방에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얘, 얘는 뭐, 뭔데 이 밤 중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헉, 혹, 혹시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없다던가 하는 귀신인가. 아니면 그냥 변태인가? 마오는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 속설을 상기하며 땅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제대로 있는 것을 보아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역시 변태인가. 근데 어째서 나한테.. 하고 두서없이 생각하던 마오는 이내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에 몸이 굳었다.

" 나- 좀 재워줄 수 있어?"

 남자의 말에 얼이 빠진 마오가 예?하고 되물었다. 생긴 것은 엄청 멀끔히 잘 생겼을 거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변태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진 몰랐지만, 마오는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피신하는 것과 인근 경찰서로 달려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하고 마오가 머릿속에서 재어보고 있는데 그런 마오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조금 불쾌하다는 목소리 톤으로 상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나 수상한 사람 아니거든-?"

 아니 저기요. 밤 중에 선글라스 끼고 생초면인 사람한테 재워달라고 하는 사람을 수상하다고 하지 않으면 대체 수상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수상하다고 할 것 같은 데 말이죠. 마오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상대는 한 숨을 푸욱 쉬더니 마오를 설득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 처럼 선글라스를 벗었다. 사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두 눈이 뚫려있는 귀신이라는 추측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으려 할 땐 마오는 잠시 쫄았다가 그 얼굴을 확인하고 망부석 처럼 굳어버렸다.

"저기, 알아보겠어?"

이사라 마오는 당연히 몰라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쿠,마..리츠?"

 사쿠마 리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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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2







 츠카사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지하실은 넓었으므로 혼자서 다 청소하기는 무리였기에, 츠카사는 강단의 주변을 기점으로 열심히 쓸고 닦았다. 교회에서 자주 쓰는 긴 의자를 한 번 닦자마자 걸레가 금방 시커매졌다. 이대로 닦다간 정말 끝도 안나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원래 좀비란 체력과 쓸모없는 생명력만 넘쳐나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츠카사는 물이 담긴 큰 양동이에 시꺼매진 걸레를 푹 담궜다가 꺼내 손으로 주욱- 짜냈다. 꾸정물이 뚝뚝 양동이로 떨어져서, 물이 금방 탁해지고 말았다.

 걸레질을 끝마친 뒤에는 창고에서 꺼내 온 부드러운 붉은 카펫을 입구에서 강단까지 깔았다. 카펫은 신부와 신랑이 입장하기 위한 용도로, 결혼이란 것은 해 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던 츠카사지만 서재에 있는 책을 찾아 조사 해보니 인간의 결혼식은 대략 이런 형태로 하는 것 같아 지하 창고를 뒤져 찾아낸 것이었다. 카펫 이외에도 지하실을 인간들의 결혼식장처럼 꾸미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의 울타리 즈음에 피어있던 흰 제비꽃도 꺽어와 곳곳에 장식했고, 촉감 좋은 융단도 내빈석 곳곳에 깔았다. 물론 내빈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츠카사는 인간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제 신부에게, 가장 최고의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은 좀비건 인간이건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밤이 되서야 그럴 듯 하게 결혼식장이 완성 되었다. 흑백이 주로 쓰인 결혼식 장은 얼핏보면 장엄한 종교 집회와 같은 이미지를 가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도들이 하나씩 나와 교주에게 자신의 죄를 고할 것 같은 신성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츠카사는 이만하면 혼자 준비한 것 치곤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일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선 일찍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츠카사는 침실로 돌아가 옷장에 있던 가장 부드러운 실크잠옷을 몸에 걸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뭍었다. 이 넓기만 한 침대도 이제는 끝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츠카사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살풋 걸려있었다.



*



 츠카사가 자신의 신붓감과 다시 조우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도 그 인간 남자는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간 여자와 함께 큰 바구니를 양 팔에 끼고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츠카사는 울타리에 피어난 담쟁이 덩굴 뒤에 숨어 그들을 살폈다. 여전히 그들은 저 하늘을 닮은 쾌청한 웃음을 피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이제 자신도 저렇게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츠카사는 조금 주변을 살피다 이내 격리지대와 안전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섰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정말 방어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울타리였다. 이러니 항상 좀비들이 조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안전 지대를 침범하지.

 츠카사는 천천히 남매에게 다가섰다. 둘은 등을 돌린채로 한참을 독버섯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 빠져 츠카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보였다. 남자쪽이 이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자 쪽에게 훈계조로 말하고 있으니, 여자 쪽도 지기 싫은 지 얼굴을 붉힌 채 조금 부투룽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시시덕거리더니, 지금은 싸우고 있네. 츠카사는 인간들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의아함을 품으며 한발짝, 두발짝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탁- 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꽤 크게 숲을 울리는 소리에, 남매가 반응을 했다. 

 우선 여자 쪽의 비명이 먼저 들려왔다.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츠카사가 만나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보았을 때 얼어 붙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둘 중 한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얼어 붙는 쪽의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잠시 얼어붙어 츠카사를 멀뚱히 바라보며 사태파악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사태파악을 끝마치고 여동생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응이다. 츠카사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인간들을 볼 때 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자식을 감싸는 부모들을 식량으로 삼을 때는 조금 입맛이 떨어지곤 했다.

"루카, 넌 어서 달려나가. 여긴 내가 맡을게."
"하지만 오.."
"어서!"

 츠카사는 남매의 대화 내용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매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리 달려봤자 그 약한 인간의 체력으로는 자신들과 견줄 수 없는 데 인간들은 한 명이 희생하면 한 명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제 오빠의 호통에 조금 겁먹은 듯 츠카사와의 반대편을 향해 무작정 뛰어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츠카사의 앞을 가로막고 츠카사의 관심을 루카에게서 돌려내기 위해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자세를 취했다. 여자쪽은 별로 관심도 없고 이대로 쫓아가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츠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신붓감에게 다가섰다. 나는 그냥 당신만 원할 뿐 인데.

 이내 처절한 고함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

 츠카사는 침대에서 곤히 눈을 붙이고 있는 남자의 옷주머니를 뒤져 약간의 소지품을 찾아냈다. 열쇠와 지갑, 그리고 이 지역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그 중 지갑에는 약간의 돈과 신분증, 그리고 손바닥만한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아까본 그 여자애가 같이 찍혀있었으므로 츠카사는 아마 가족 사진일 것이라 판단했다. 사진을 다시 지갑속에 고이 껴두곤 츠카사는 신분증을 손에 들었다.

'츠키나카 레오'. 츠카사는 자신의 신붓감의 이름을 낮게 읊조려 보았다. 레오, 레오.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려지는 그 음이 마음에 들었다. 츠카사는 레오의 옆머리를 귀 뒤로 다정히 넘겨주었다.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고 있는 달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레오는 마치 밤을 관장하는 여신과 같았다. 그는 밤을 훔쳤다.

 레오는 츠카사에게 물린 상태로, 현재는 죽어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몸의 살점들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며 좀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좀비가 된다는 걸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하기도 우습지만 여하튼 레오는 내일이면 아마 살아날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결혼식을 올리자. 이 아름다운 신부와, 내일,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자.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자. 네가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너도 나처럼 모든 기억을 잃고야 말겠지. 그 땐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줄게, 레오. 나의 신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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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결손신부 01






 츠카사가 '그것'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산책하던 도중이었다. 츠카사는 한 눈에 그것이 자신과는 다른 종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들은 츠카사들을 '좀비'라던가 '괴물'등으로 불러 오는, 자신들 스스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무리였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구분하는지 츠카사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츠카사는 왜 '좀비'라고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고 소멸시키려하는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저들을 식량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가? 츠카사는 작은 인간 여자에게 미소지으며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인간 남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개나 돼지, 닭 등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인간은 왜 우리를 해치려 드는 걸까. 그것은 오래전부터 츠카사의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채로 남아있는 하나의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직접 연구해 볼 기회는 오지 않았으므로 츠카사는 오래전부터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딘가 간지러운 부분을 긁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전지대와 격리지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 곳을 오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인데, 저 인간 남매는 어째서인지 이 곳을 잘 아는 사람들 마냥 풀 숲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여러 빛깔의 버섯들과 산과일들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댔다. 또한 자기들이 담은 버섯들을 꺼내 서로 비교하다 입꼬리를 올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무언가 재잘거렸다. 인간에 대한 츠카사의 두번째 궁금증은, 인간은 어째서 저렇게 얼굴을 다양하게 바꾸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자기의 기분에 따라 바꾸어낼까-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게 되어버린 '격리지대'에는 예전에 살던 인간들이 남긴 건물터나 물건들이 상당수 존재했는데, 그 중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묘사해내고 있었다. 츠카사는 그러한 택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수치심, 경멸, 사랑 등의 단어를 습득해나갔지만 글자만 가지곤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는 다르게 참으로 복잡한 감정선을 지녔다. 츠카사는 그래서 인간이 참으로 부러웠다.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츠카사는 울타리 너머에서 버섯을 따는 남매를 보며 저둘을 감싸고 있는 조금 따듯한 공기가 '기쁨'이라는 감정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책의 삽화에서 봤던 것과 유사해보였으므로. 


 츠카사는 남매를 관찰하다 그들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호선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쁨'이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츠카사는 밤잠을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인간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부러움일까. 츠카사는 푹식한 베개에 머리를 묻곤 높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그 인간을 '먹고' 싶은 것일까. 츠카사는 여러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이 책장에는 모두 빽빽히 책이 꽃혀 있었다. 인간들이 남기고 사라진 이 서적들은 츠카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였음에도 츠카사는 책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격리지대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새로운, 최신의 책을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츠카사는 때때로 새로운 책이 필요한 날에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도 했다. 


 인간의 글은, 처음부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츠카사는 그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처음에는 '인간'이었을까?. 츠카사는 자신이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신기해져서 종종 아무런 소리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제 서재의 발코니에 걸터 앉아서, 인간 세상이 가장 잘 보이는 쪽을 내다보곤 했다. 푸른 어둠이 얕게 덮은 인간세계는, 이 곳과는 다르게 참으로 고요하기만 했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생활리듬이 달랐으므로, 밤에는 다들 쉴새없이 놀리던 입을 다물고, 눈을 살포시 닫은 채로 편안한 단잠에 빠져버린다-,고 책에 쓰여 있었다. 그래서 츠카사는 되도록 밤 시간에 잠을 자려고 했다. 츠카사는 사실은, 인간을 동경했고 그래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최대한 베껴냈다.


 츠카사는 하늘 위에 커다랗게 떠 있는 창백한 보름달을 보며, 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외롭다고 생각했다.



*



  츠카사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마을로 들어섰다. 이 곳은 좀비들도 잘 오지 않는 곳으로 츠카사는 종종 이 마을을 산책하거나 가끔은 메말라버린 분수대에 걸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인간의 집'이었던 곳에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걷다가, 마을 광장 가까이에 위치한 노랑 지붕 집이 눈에 들었다. 무단침입이었지만, 츠카사는 어디선가 책에서 봤던 내용대로 '실례합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말을 꺼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먼지가 잔뜩 쌓여 매캐했고, 겨우 자그마한 창문 구멍만이 온 햇빛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의 반의 반도 안되어보이는 집의 크기에 츠카사는 인간들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뭉쳐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인간이었을 적엔 이렇게 조그마한 집에서 이렇게 조그마한 식탁에 둘러 앉아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을까. 때로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불평도 하고, 좋아하게 된 급우에 대해 부모님께 조잘거리며 그렇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았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 분했다.


 츠카사는 작은 토끼모양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여져 있는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익-. 경첩 녹슬었는지 문이 부드럽게 열리질 않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발산했다. 츠카사는 집 안에 들어왔던 걸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아마 여자아이의 방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인형과 동화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쪽 벽지엔 핏자국이 흥건히 베어있어 아마 여기서 좀비에게 일가족이 몰살 당했을 거라고 추정하게 했다. 


 츠카사는 담담히 그것을 바라보곤 이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동화책 중 하나를 골라 침대에 걸터 앉았다. 츠카사가 풀썩 침대에 앉자 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몇년을 쌓여져서 묵혀졌을 먼지는 츠카사의 작은 행동 하나에 금방 그 세월의 축적을 파기당해 버린다. 


 츠카사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동화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여기도 여전히 '기쁨'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은 기쁨이 무엇인지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는데 인간 세계에는 왜 이렇게 기쁨, 행복,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은 걸까. 츠카사는 표지를 한 장 넘겨 책을 읽어내렸다. 아동용 책이라 별 다른 노력없이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불행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가 '결혼'을 통해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해 진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지는 걸까? 나도, 신부를 얻으면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츠카사는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여자와 남자가 활짝 웃으며 궁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채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삽화를 단아한 손끝으로 조용히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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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마오] 오메가버스 05





 교실이 시끄러웠다. 지금 체육시간이려나. 마오는 얼굴을 책상에 박고 엎드려 시간표를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로, 아마 이 쯤이면 체육시간이겠네- 하고 어림잡아 짐작했다. 사물함 쪽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남자애들의 고함에 가까운 말 주고받기, 교실밖을 우당탕 뛰어나가는 소리 등이 난잡하게 섞여 마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아마 체육시간이라 체육복으로 다들 갈아입는 모양이었다. 마오 자신도 체육수업에 나가기 위해서는 교복을 갈아입어야했으나, 마오는 지금 모든 것이 다 무력해졌다. 무단 결석이건 뭐건 될대로 되라지. 체육복을 다 갈아입은 급우들이 하나 둘 교실을 빠져나가자 소음이 점점 사그라 들었다. 마오는 교실 한 가운데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그러니까, 코가의 히트사이클이 있던 그 날,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리츠를 좋아하고 있었는지 깨달아버린 그 날부터 마오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엎드려서 보냈다. 자신의 이런 행동은 아라시한테 걱정을 끼쳐버린 모양이었지만 아라시가 보약 한두첩 가져다준다고 해결 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마오는 뒤늦게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놈으로다가.


 마오와 리츠와의 관계는 아직 싸운 그 날 이후로부터 진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코가가 히트사이클 이후로 일주일 정도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리츠도 아예 결석하는 날이 잦았다. 그래서 벌써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한 것이 몇주째더라..좋아한다고 인식한 상대와 말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다니, 나는 무슨 이차원의 여자아이와 연애하는 거냐고. 아니 차라리 그 쪽이 더 낫겠다. 이차원 여자아이들은 속마음이라도 알기 쉽지, 리츠는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일까. 뭐, 언제나 별 생각없이 흐르는 대로 사는 놈이니까 이 상황에 대해서도 별 생각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혼자서 끙끙되고 있는데 사실 그녀석은 아무 생각도 없을거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 비참해진다. 


 "이사라, 네 녀석 언제까지 엎어져있을 생각이냐. 얼른 나가라. 문 잠궈야 해."


 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오오가미 코가의 목소리였다. 이번주 주번인 코가는 체육수업을 위해서 문을 잠궈야만 했는데 이사라가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오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코가는 한 손으로 열쇠를 허공에 던졌다 잡았다를 반복하며 자기딴에는 꽤 참을성 있게 마오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깊게 잠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파서 저러고 있는지 계속 책상에 엎드려있기만 한 마오의 모습에, 조금 걱정된 코가가 조심스레 마오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이, 이사라. 너 자..."

 "오, 오가....미...."

 "야, 너, 너 왜 우냐? 많이 아프냐? 야, 아프면 양호실을,"

 

 고개를 든 동급생의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어서 코가는 뒤로 물러서며 흠칫했다. 아마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한 코가가 걱정된다는 얼굴로 양호실에 갈 것을 권했지만, 마오는 다 큰 남자애가 타인 앞에서 운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잊은 것인지 서럽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둘 뿐인 반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울어대는 마오의 행동에 제가 울린 것도 아닌데 괜히 안절부절하게 된 코가가 마오의 두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사라 왜 그래! 정신차려. 선생님이라도 불러줄까? 야, 너 괜찮은 거냐?"

 "흐어어엉, 이 나쁜놈아. 사쿠마랑 하니까 좋더냐!"

 

 한순간 마오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던 코가의 손이 얼음처럼 굳었다. 그리곤 무척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마오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봐왔다. 코가의 눈빛은 마치 '네 녀석, 그걸 어떻게…'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마오는 점점 더 서러워졌다. 것봐, 얘네 했잖아. 사쿠마 이 나쁜 자식. 천하의 바람둥이자식! 내가 좋달 땐 언제고 한순간에 휙하고 다른 놈으로 갈아타는 거냐. 막말로 내가 코가보다 못한 게 뭔데! 내가 더 상냥하고, 내가 더 너랑 오래했고, 그리고 내가 더 널 좋아하는데, 흐어어엉. 진짜 부질없어. 아무리 잘해줘봤자 다 부질없다고. 으아아아, 호모가 되려면 혼자 될 것이지 왜 나한테까지, 책임 지지도 않을 놈이, 진짜로, 아아아, 진짜 싫어, 진짜, 진짜!


 "내가 너보다 리츠를 더 좋아하는데, 흐어엉, 진짜, 내가 훨씬 오래전부터 함께 했는데!"

 "리…츠?"

 "아 이젠 그 이름도 듣기싫어! 몰라, 이제 니들끼리 맘대로 해! 내가 다 키워놨더니 어디서 굴러온 돌맹이가, 흐어어엉, 진짜"

 "돌,맹이? 야, 그리고 니가 오해하나본데..."

 "아 몰라! 내연녀의 이야기따위 듣고싶지 않아!"

 "넌 뭐가 이렇게 고집불통이냐! 야, 좀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라! 야 나 리츠랑 그런 사이 아니거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마오의 난리브루스에 머리가 아파진 코가가 마오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얘 이런 캐릭터였나?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캐릭터 아니었어? 요새 무슨 지랄병바이러스라도 유행하고 있는 건가. 내가 사쿠마 리츠랑 했다니 이건 또 무슨 거지발싸개같은 소리냐. 억울하게 오해를 사고있는 것 같아 갑자기 울컥한 코가가 마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니 넘겨 짚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무슨 내가 릿치.. 아, 설마 최근에 릿치랑 좀 친하게 지냈다고 이러는 건가? 하지만 그 자식은 이사라랑 최근에 싸운 모양이어서 아침에 깨워줄 사람도 없는 모양이고, 흡혈귀자식은 릿치한테 미움받고 있어서 같이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부득이하게 흡혈귀한테 부탁을 받아서 등하교를 책임져주고 있을 뿐이었고, 그 이상의 관계는 전혀 네버 아니었다. 그런데 등하교 좀 같이 했다고 내연녀니 뭐니 하는 소리나 듣고 앉아있다니. 나 이거 얘 고소해도 할 말 없는거지? 


 "리츠랑 그런 사이 아니라니, 뭐야 엔조이라는거냐!"

 "와, 하다하다 이런 미친 소리를 다 듣고. 야! 나 리츠랑 안했다고! 니 뇌는 나랑 리츠랑 어떻게든 엮고 싶어서 어떻게 된거냐고!"

 "하, 하지만 너 양호실에서... 나 다 들었는데."

 "시..발, 전교에 사쿠마 녀석이 릿치 하나냐고!"


 무슨 소리야. 마오가 잠시 이해가 안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자신보다 한 학년 위의 '사쿠마 레이'의 존재를 떠올렸다. 아, 설마. 헐, 설마. 너, 설마. 야, 너, 어? 야, 이게 아닌데. 헐, 야 뭐야. 그러니까 레이선,배랑. 헐? 그러니까, 나, 나 혼자, 지금 뻘, 뻘,뻘짓한거..라고? 방금전까지 제가 코가에게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어, 음. 일단 리츠랑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이건 이것 나름대로 충격인데?


 "아, 야, 어, 미안, 헐, 미안, 둘이 그런 사이일줄은. 아, 맞다. 너 사쿠마 선배 빠돌이였지?"

 "빠돌이는 누가 빠돌이라는 거야! 아오, 진짜 이게! 야 너 때문에 체육…"


 못 나가고 있잖아! 라고 소리치기 전에 뒷문이 드르륵- 열리며 체육복을 입은 한 무더기의 동급생들이 우수수 밀려들어왔다. '아 뭐야! 자습이라니! 아오! ' '시험이 아직 이주나 남았는데 자습은 무슨 자습이야!'라고 불평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아마 체육이 자습으로 교체된 모양이었다. 교실에 들어오던 학생들은 교실 한 가운데서 요상한 모양새로 단 둘이 독대하고 있던 마오와 코가와 마주쳤다. 


 "야 뭐야 니네 둘이 교실에서 뭐하냐 ㅡ?"

 "유후- 분위기 좋은데! 야 니네 둘이 사귀냐!"


 동급생들은 재밌는 건덕지가 생겼다는 듯 휘파람까지 불어오며 코가와 마오를 놀려왔다. 누가봐도 장난섞인 행동이었기에 마오는 잠자코 웃기만 할 뿐이었지만, 한창 마오 때문에 짜증이 나있던 코가는 동급생들이 자신을 놀려오자 약이 머리끝까지 올라 이내 귓볼까지 붉어진 얼굴로 동급생들을 향해 교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야 내가 얘랑 왜사귀는데! 얜 리츠 좋아한대거든? 아오 진짜 하다하다 별 것들이 다!"

"누가 누굴 좋아해?"

"누구긴 누구냐! 이자식이지! 이사라가 사쿠마자식이 너무 좋아서 돌아버리겠단다! 지가 훨씬 더 전부터 좋아했댄다! 아오! 치정싸움은 지들끼리 할 것이지, 왜 남한테 다들 지랄인거야!"


 어, 저기, 오오가미야? 잠깐 그 입 좀 다물어 줄래..? 마오는 당장에라도 죽고 싶어졌다. 

 

 




*마오가 캐붕...이 일어났네요, 죄송합니다.

 아마 다음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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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너는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죽었다. 그것은 벌써 삼 년이 된 일이었지만, 그 아이들은 아직도 내가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와줄 것만 같아서 나는 가끔 그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곤 한다. 아케호시 스바루, 히다카 호쿠토, 이사라 마오. 이 셋은 모두 다음 스케쥴을 위해 장소를 이동하다가 변을 당했다. 그 날 감기때문에 스케쥴을 같이하지 못한 나는, 혼자 살아남았다. 


 별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던 아이들은, 정말로 밤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를 두고 별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미워서 아직도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한다. 사실은 밤하늘만 못 올려다보게 된 것 만이 아니다. 나는 그 이후로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정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나는 기름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북북 긁으며 머리를 감은지 벌써 며칠째인지 속으로 어림잡아봤다. 어제는 확실히 아니었고, 엊그제도 기억이 없고, 아마 3일전 인 것 같다. 두피가 슬슬 가려워지는 것이 아마 3일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려운 머리를 감으러 화장실로 가는 대신 게임기가 연결된 TV앞 쪽에 앉는 쪽을 택했다.


 게임기 옆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용기, 음료수병, 과자봉지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나는 그것을 대충 발로 한 구석에 밀어버리고 발가락으로 게임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게임기가 로딩되는 것을 기다리다 조금 출출해져서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음식이 냉장고에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엊그제 먹다 남은 피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지이잉- 돌아가는 피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전자레인지의 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그곳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쳤다.


 여드름 가득한 피부, 아이돌로 활동했던 시절때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늘어난 체중, 감지 않아서 더러운 머리카락, 미용실에 간 지 일 년은 되지 않아 눈은 이미 다 덮은지 오래인 앞머리, 언제 갈아 입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목이 다 늘어난 꾸질꾸질한 티셔츠, 입을 열면 나는 역겨운 구취, 코만 조금 벌름거리면 쉽게 맡을 수 있는 시큼하고 쿱쿱한 체향. 이 모든 것이 다 역겹게 변해버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냄세나는 특징들이었다. 


 나는 더이상 이런 역겨운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어져 고개를 획 돌렸다. 이내 띵! 하고 전자레인지에서 조리를 끝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 안에서 피자를 빼 낸 나는 로딩이 끝난 TV게임 앞에 앉아 게임기를 손에 잡았다. 여러 음료수나 양념들이 찐득찐득하게 엉겨붙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굳이 그것을 닦아내려고 힘쓰고 싶진 않았으므로 애써 찐득거리는 게임기를 무시하며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벌써 최종보스까지 쓰러트린지 오래인 게임이었지만, 나는 이것을 반복하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유우군, 게임하고 있었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저녁 아홉시. 게임을 시작한 것이 세시쯤이었으니 벌써 여섯시간째 나는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나는 구부정해진 등을 조금 꼿꼿히 세우곤 이즈미씨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일만에 보는 이즈미씨였다. 아무래도 이즈미씨는 모델로 잘 나가고 있으니까 얼굴을 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는 다시 TV스크린에 집중했다. 이즈미씨는 아마 먹을 것을 만들 요량인지 부엌으로 들어갔다. 


 "유우군. 집이 엉망이네. 먹을만한 것도 없고."


 이즈미씨가 한숨을 쉬는 것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내 나에게 다가온 이즈미씨가 내 머리결을 만지며 '유우군 내가 감겨준 뒤로 머리 스스로 안감았지?'하고 물어왔다.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어진 나는 그 질문에 고분고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없으면 머리 하나 못 감는구나. 유우군은. 뭐, 일단 머리부터 감고 초밥이라도 배달시키자."


 끄덕끄덕. 다시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즈미씨가 일으켜주는대로 일어나선 화장실로 향했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팔까지 걷어부친 이즈미씨가 샤워기를 틀어 물 온도가 적당한 지 손에 대보고 있었다. 나는 별 말 없이 샤워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샤워기를 내 머리에 대는 이즈미씨의 행동에 흠칫했다.


 물의 온도는 적당히 맞춰져 있어서 조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즈미씨는 샴푸를 손에 조금 짜서 조심스레 내 머리에 거품을 냈다. 머리에 기름기가 많이 껴서 그런지 금방 거품이 사그라들고 미끌미끌 해졌다. 이즈미씨는 샴푸를 한 번 더 짜서 다시 거품을 냈다. 이번엔 거품이 풍성히 생겨났다.


 샴푸에서 사과향이 났다. 내가 이런 샴푸를 산 기억은 없으므로 아마 이즈미씨가 다 쓴 것을 교체해 준 모양이었다. 향이 나쁘지 않았다. 이즈미씨도 같은 브랜드의 샴푸를 쓰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유우군은, 정말 예쁜 얼굴이야."

 "다, 지난 이야기예요."

 "아니야, 유우군은 변함없이 예뻐."


 어째서 이 사람은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도 여전히 날 사랑해주는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에게, 항상 예쁘다는 말을 속삭여 주는 것일까. 어째서 당신은 친구들이 나만 빼고 하늘로 가버린 그 날부터 나를 찾아와 나를 살뜰히 돌봐주려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어째서 당신은 이렇게 변함없이 날 사랑해주는 걸까. 물어볼까, 하다가 이즈미씨마저 내게서 떠나버리는 것이 무서워 결국 그 질문은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이즈미씨에게 사랑받기엔, 난 너무나도 가치없는 인간이다. 







  "유우군, 예뻐."

 

 척추를 쓸어내리는 이즈미씨의 손길에 한순간 몸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등부분이 꽤나 예민하다. 그것은 발건한 것은 이즈미씨로, 그래서인지 이즈미씨는 애무를 할 때 등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부풀어버린 이 몸뚱아리를 이즈미씨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싫어서 나는 이즈미씨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즈미씨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보여달라는 이즈미씨의 요구에 나는 도리질을 치며 품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런 추한 얼굴, 보여준다면, 이즈미씨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이즈미씨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니까, 이렇게 변해버린 나따위는 사실 속으로는 혐오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은 이렇게 변해버린 나를 속으로 비웃는 것이 재밌어서 혹은 추해버린 내가 불쌍해서 내 곁에 남아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쪽이어도 좋다. 이즈미씨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비웃음 당하던지 얼마나 동정 당하던지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유우군은,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지금 나는 당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유우군은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나는 그 대사를 다시 곱씹으며 자고있는 유우군의 등을 쓸었다. 아아, 나는 너무 행복한 남자다. 이렇게 아름다운 유우군을 손에 넣은 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그 꼬맹이 삼인방에게는 진심을 다해 감사한다.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진 않지만 말이다. 그 애들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유우군과 붙어다닐때는, 정말로 죽여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 꼬맹이들이 죽은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유우군이 없었던 것은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유우군이 그 때 봉변을 당했다면 아마 나도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운좋게도 유우군은 감기바이러스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나는 덕분에 유우군의 뒤를 따라 죽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유우군은 그 날 이후로 트라우마같은 것이 생긴 모양이라서, 정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집에서만 생활했다. 당연히 대학은 못갔고, 고등학교에서도 퇴학 처리 되었다. 하루종일 했던 게임만 반복하고, 그야말로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내가 얼마나 바라던 시나리온가. 유우군이 주변 인간관계와는 다 단절된 채로 오로지 내 시야 안에만 들어오는 그런 스토리는, 내가 몇 년을 꿈꿔오던 스토리란 말인가. 


 유우군은 그 날 이후로 변했다. 제 외모를 비하하는 일이 많아졌으며, 자존감이 바닥을 길 정도로 하락해 버렸고, 확실히 말수도 적어졌다. 유우군은 종종 자기 피부에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나버렸다던가, 자기 체중이 너무 불어버렸다던가, 자기 몸에서는 역겨운 향기가 난다던가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 이것은 완벽한 내 세뇌의 결과이다. 유우군은, 지금은 오로지 나를 구원으로 삼고 있는 나의 유우군은,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법이자 진리로 여긴다. 그러니까 지금의 유우군은 내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유우군, 최근에 피부에 뭐가 자주나는것 같네.

'체중 조금 늘지 않았어?'

'안씻은지 꽤 됐구나?'-.


 내 작은 거짓말들을 너자신으로 내면화 시켜버렸구나.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유우군. 나는 들썩이고 있는 유우군의 등에 입을 맞췄다. 


사실 너는 변함없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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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마오] 비 내리는 어느 날




*12님께서 신청해주신 리츠마오 짧은 글입니다.

*주제는 비오는 날입니다.









"이왕이면 마군이랑 놀러가고 싶었는데."


 리츠는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덤덤한 듯 말을 꺼냈다. 사실 저렇게 덤덤한 척 하고 있어도 꽤나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리츠와 거의 십년을 넘게 한 마오는 잘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원지에 놀러가기로 한 날 이렇게 큰 비가 올지는 자신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 걸. 어제까지만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어째서 내려도 오늘 비가 내리는 걸까ㅡ 하고 실망스럽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마오는 리츠를 먼저 달래는 것이 우선이라서,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비내리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리츠의 곁에 자신도 쭈그려 앉았다. 


"유원지는 다른 때에 가도 되니까 그렇게 실망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 동거한지 일주년인데. 표도 다 사뒀는데..."


 리츠는 제 바짓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둔 표를 꺼내 마오의 눈 앞에 팔랑팔랑 흔들었다. 표에 잡혀있는 주름들이 리츠가 유원지에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가를 증명해주는 것 같아 마오는 괜히 제가 미안해졌다. 분명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풀이 죽어있는 리츠를 보고 있으니 소풍취소된 아들내미를 보고있는 어머니의 심정마냥 가슴이 따끔따끔했다. 할 수 있다면 날씨를 바꿔서라도 유원지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자신은 신이 아니니까 그건 무리다.


"DVD라도 빌려와서 영화라도 볼까?"


 마오는 리츠의 우울한 기분을 전환시켜주려고 요 앞 DVD가게라도 가서 영화라도 빌려볼 것을 제안했다. 리츠는 그다지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푸딩도 사도 돼?하고 묻는 것은 옵션으로.  간식 하나 사먹는 것 까지 제게 허락을 구해오는 리츠가 귀여워져서, 마오는 물론이지-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마오가 먼저 일어나 외투를 챙기려하자, 리츠는 마오쪽으로 양 팔을 크게 뻗었다.


"마-군. 나 일으켜줘."

"일어나는 것 쯤은 좀 혼자 해라."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마오는 리츠의 양 겨드랑이를 끌어안아 끙차- 하고 리츠를 일으켜 세웠다. 리츠를 일으켜 세우자, 리츠는 그대로 폭 마오의 품에 안겨왔다. 으으응- 마군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다니 너무하잖아-하곤 리츠는 새끼고양이마냥 마오의 목덜미에 머리를 한껏 부볐다. 대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얼굴이 붉어진 마오가 리츠의 몸을 밀어 리츠를 떼어내려 했으나 도저히 리츠는 제게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얘는 운동도 싫어하는 게 어디서 이렇게 힘을 키워오는 거야.. 그나저나 얘 좀 체중 늘어난 것 같은데. 


"리츠, 너 점점 무거워 지는 것 같다. 요새 야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거 아니야?"

"음, 진짜? 그럼 운동이라도 할까."

"무슨 운동? 너 운동하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섹스가 그렇게 칼로리소모가 높다던데"

"사쿠마!!"

"에, 장난이야 장난."


  사실 그렇게 장난인 것만도 아니지만, 하고 마오가 기겁할 만한 사족을 덧붙이며 리츠는 마오의 품에서 떨어져 쇼파의 행거에 걸려있는 얇은 가디건을 아무렇게나 주워입었다. 가디건의 안감과 겉이 뒤바뀐 채였지만 리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슬렁슬렁 현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예리한 마오의 눈에 걸려 그것을 지적당하고 말았다.


"리츠! 너 뒤집어 입었잖아."

"음, 아, 그러네. 귀찮으니까 이대로 가자."

"같이 다니는 내 입장은 생각 안하냐!"


 진짜 손이 많이 간다니까- 라고 잔소리하면서도 마오는 다정한 손길로 리츠의 팔을 들어올려 가디건을 벗겨냈다. 어떻게 이 상태로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한 건지! 마오는 가디건을 뒤집어 리츠에게 다시 입히며 이것저것 쫑알쫑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모습이 흡사 신데렐라의 계모와도 같아서 다른 사람의 반응에 둔감한 리츠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불만스럽다는 듯 말을 뱉었다.


"으으 마-군 시끄러워."

"네가 제대로 하면 이런 일도 없.."

 

 뒷 말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리츠의 입술이 쉴새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던 마오의 입술을 막아버렸기 때문으로 마오는 그대로 굳어있다가 농밀히 혀를 섞어오려는 리츠때문에 그제서야 정신차린 듯 화악- 리츠를 밀쳐냈다. 


"마-군은 부끄럼쟁이. 이제 키스는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마오는 어릴때는 너무나도 순진하게 자신을 따랐던 리츠의 얼굴을 잠시 떠올려보다, 누구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입술을 번들거리며 농염한 눈빛으로 마오의 위아래를 훑고 있는 지금의 리츠와 비교해 보았다. 얼굴은 그때 그대로 잘 자라 준 것 같지만.. 


"마군, 우리 오늘은 영화말고 섹스할까?"


 아. 내가 어릴때 부터 호랑이 새끼를 주워길렀구나.. 어릴 때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결국 그 귀여운 얼굴에 넘어가버린 내 탓일까.. 


 비는 점점 잦아들었지만, 어째선지 마오의 마음은 점점 착잡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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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소마/레이코가] 물랭루주 01


*레이코가/카오소마 나옵니다

*커플링은 추후 더 추가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늘 공연도 좋았어, 코가군."

 "하, 당연하지. 누가 하는 공연인데."


 하여튼, 칭찬해줘도 난리라니깐. 카오루는 코가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실력하나는 좋은 아이니까- 저렇게 어리광 부려와도 어쩔 수 없달까. 카오루는 닦고 있던 유리잔을 잠시 내려놓고 가게 안을 살폈다. 프랑스의 물랭루주를 롤모델로 만든 이 가게는 카오루 저의 화려한 취향을 한껏 반영하는 이 도시 최고 규모의 펍이다. 카오루의 자랑이기도 한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흥을 즐기려는 젊은이들, 뭔가의 찜찜한 뒷거래를 하려는 지하계의 사람들, 그리고 그저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녹아 자신을 잊어보려고 하는 사연있는 사람들이 한껏 섞이다 빠져나가는 곳이었다. 


 제 가게라지만 카오루는 이 곳에서 바텐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너무 놀고 먹는 것도 적성에 안맞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 밤 나와서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자체가 매출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도 했고, 게다가 최근에는 -.


 "뭐하는거냐 이 가게의 수치!"


 엄청 귀여운 생물이 가게 들어왔달까, 하루종일 이 생물을 관찰하는 재미에 살고 있달까. 잔을 닦는 것을 멈추고 가게만 두리번거리던 카오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소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걸어왔다. 사실 관계로 보면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의 상하관계지만, 재밌게도 소마는 카오루가 이 가게의 사장이라는 것을 아직도 알고 있지 못했다.


 뭐, 소마군의 면접은 매니저가 봤고 아무래도 카오루 자신은 이런 큰 가게의 사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편이었고, 게다가 직원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사장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도록 직원들한테 당부해 둬서 소마군이 모를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조금 지내다보면 거물급의 손님이오면 카오루가 미팅하러 나간다던가, 종종 매니저나 직원들이 자신을 사장이라고 불러온 다거나, 눈치 챌 요소는 되게 많은 데 말이지.


 소마군은 눈치가 없는걸까, 조금 바보인걸까. 카오루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소마를 응시했다. 소마와 눈이 마주치자, 카오루는 예쁘게 눈을 접어 웃어주었다. 일당백의 미소였지만, 그런 뺀질거리는 행동에 더 화가 난 것인지 소마가 잔을 닦던 천을 카오루의 얼굴로 던져버렸다.


 "너같은 놈한테 월급을 주는 사장님 얼굴 보기가 미안하지 않소? 얼른 일이나 하시오!"


 아니, 일단 내가 그 사장인데 말이지. 카오루는 즐거운 듯 빙긋 웃었다. 아아- 내가 사장인 걸 알면, 상하관계에 너무나도 예민한 소마군은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아, 이거 진짜 재밌어! 진짜 멈출 수 없어!





*




"오늘 공연도 좋았다네, 코가군."


 기타를 매고 펍의 후문으로 나온 코가는, 불쑥 나타난 인영에도 놀랐다는 기색 없이 인상을 확 찌푸릴 뿐이었다. 어두운 뒷 골목길인데도 이 남자의 존재로 어두운 골목이 전혀 어둡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로, 빛나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코가의 앞을 막아서서 불쑥 어림잡아 백송이는 될 법한 장미꽃다발을 건내왔다. 하지만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해진 코가는 제 앞으로 들이 밀어지는 장미 꽃다발을 그대로 낚아채서 언제나와 같이 땅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내던져진 장미 꽃다발에서 꽃잎들이 떨어져 나와 길거리를 붉게 어지럽혔다. 


"이거 마음이 아프구먼, 포장해줬던 꽃가게 아가씨가 본다면 무척 가슴 아파하겠구먼."


 상대는 태연하게 코가가 내던진 장미 꽃다발을 들어 제 품에 다시 안았다. 흰 슈트에 장미꽃다발까지 든 그의 모습은 여자, 아니 남자가 보기에도 지독히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그런 모습은 지금의 코가에게 화만 더 부추기는 꼴이었다. 코가는 장미를 안고있는 남자를 쌩 무시한채로 그의 곁을 지나치려 했지만 그가 강한 힘으로 코가의 손목을 낚아 채자, 코가는 이빨을 드러내며 상대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이거 놔라."

"싫다면 어쩔 생각이누?"

"좆같은 새끼."


 속을 알기 힘든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있는 상대에게 코가는 제 살기를 온전히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상대도 코가를 아무말 없이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어쩐지 조금 쓸쓸한 기색이 담겨있어서, 휴지통만 간간히 세워져있는 이 쓸쓸한 뒷골목에 너무나도 잘 녹아내렸다. 거의 십분간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응시하다가 결국 인내심에서 바닥이 난 코가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레이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짜증나는 새끼."


 코가는 뒤를 돌아, 네온사인이 휘향찬란 빛나고 있는 도시의 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사쿠마 레이라고 불리우는 남자는 골목에 서서, 코가를 끌어안아 가버린 도시의 품 만을 참을성 있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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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코] 극성팬- 외전


*수위글입니다.

*제가 야한걸 못쓰는 병에 걸려서..별로 안 야한거 같지만..








 마코토의 풀린 동공을 보며, 이즈미는 역시 비싼 돈 들여 좋은 약으로 사길 잘했다고 제 자신을 칭찬했다. 오랫동안 상상속으로만 그려왔던 그림을, 오늘 밤 저는 드디어 실현시키고 만 것이다. 최고로 좋은 음식과 술로 기쁨의 만찬이라도 즐기고 싶지만 그것은 마코토를 천천히 맛보고 난 다음이다. 


  마코토는 약에취해 제대로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지 눈 앞의 이즈미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그저 부푼 성기가 아픈 듯 끙끙 되었다. 마코토의 손은 이즈미가 끈으로 단단히 묶어놓았기 때문에 마코토는 제 성기를 손으로 만지지 못한채 쇼파 팔걸이에 계속 비비기만 하고 있었다. 이즈미는 마코토의 동물과도 같은 본능적인 행위에 흡족한 듯 웃었다. 자신의 귀여운 고양이가,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렇게 마코토를 손에 넣기까지 어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세나 이즈미 자신도 무언가에 쉽게 질려하는 자신이 한사람에 대한 소유욕을 십년동안이나 간직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뭐 '유우키 마코토' 라는 이름하나만으로 모든 의문점은 어떻게도 좋을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유우군- 에로하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예뻐."


 이즈미는 마코토의 옆에 앉아, 마코토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두어번 쓸었다. 마코토는 풀린 눈으로 이즈미를 바라보는 듯 싶더니, 이내 쇼파에 성기를 비비던 것을 그만두고 이즈미의 품 안에 달려들었다.

흐앙, 흐앙, 하고 마코토가 야하게 울었다. 이제는 쾌감을 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마코토가 이즈미의 품에 안겨 이즈미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한없이 부볐다. 그 행동이 너무나도 저속해서 이즈미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위치를 바꿔 마코토를 제 아래로 깔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코토의 얼굴은 이미 타액범벅이 된 지 오래라서, 이즈미는 '야한 유-우군.'하고 비웃는 소리를 내면서도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는 듯 마코토의 입 주변의 타액을 핥았다.


"유우군, 여기가 아파?"

 

 이즈미가 잔뜩 부풀어 있는 마코토의 성기에 제 손을 얹었다. 조금만 자극을 주자 마코토는 갈것같은 표정으로 제가 더 허리를 흔들어 마찰을 높이려고 했지만, 이즈미는 그건 허용해줄 수 없다는 듯 금방 손을 떼었다. 마코토가 상실감 짙은 표정으로 이즈미의 손끝만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는 듯 상체를 조금 일으켜 이즈미의 손 마디마디를 핥았다.


 츕, 츄릅, 자그마하지만 그래도 마코토와 이즈미 둘 뿐인 이 조용한 공간에서는 너무나 크게 들리는 야한 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마코토는 이즈미의 마음에 들기위해 이즈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핥았다가, 손가락도 제 입에 넣어 쪽쪽 빨아봤다가 손목의 핏줄도 핥았다가 중간중간에 이즈미의 눈치를 가봐며 정성스레 손을 애무했다. 아아, 손만으로도 갈 것 같다니. 이거 진짜 위험한데..

 

 이즈미는 마코토의 타액으로 범벅된 제 손을 다시 마코토의 바지춤으로 가져다댔다. 그리곤 버클을 풀어 바지와 브리프를 내려버리곤, 곧게 잘 선 마코토의 성기를 세게 손에 쥐었다. 그러자 예상했던대로 조금 놀란 듯 마코토의 입에서 단발마가 터져나왔다.


"힛, 익!"

"유우군-. 좋아?"


 이즈미는 마코토의 성기를 위아래로 마찰시켰다. 으하, 하응, 읍, 아흐, 거, 거기, 으, 이즈, 미씨, 흐아읍ㅡ 하는 마코토의 신음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너무 오래 참아왔던 탓인지 이즈미가 쓸어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마코토가 사정했다. 꿀럭-. 진득한 액체가 이즈미의 상의에 묻어버렸다. 흰 와이셔츠는 얼마전에 명품 브랜드로 부터 협찬받은 고가의 옷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의따위, 유우군의 정액이 묻어져 버리게 된다면 절대로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즈미는 좋은 트집거리가 생겼다는 듯 조금 목소리를 낮게 하고는 아직 사정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코토에게 심술궂게 말을 붙였다.


"아아. 이거 비싼 옷인데 어쩔거야. 유우군. 조금 혼을 내줘야겠는데."


 이즈미는 손이 묶여있어 벗기기 힘든 맨투맨을 그대로 가위로 북 찣어버렸다. 어차피 유우군에게 이젠 옷같은 건 필요하지 않게 될 테니까. 이즈미는 마코토의 오른쪽 유두를 엄지로 꾸욱- 눌러 비볐다. 흐으으, 읏. 아직까지 약의 기운이 남아있는 것인지 마코토에게서는 달콤한 교성이 여과없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을 조금 빙글-거리며 유두를 지분거리던 이즈미는 마코토의 유두에 혀를 가져다 되고 감질나게 할짝거리다, 이내 엄마 젖을 빠는 아이마냥 마코토의 유두를 강하게 빨았다. 으앗, 으아흐, 으, 싫어요, 으아, 이상해, 으으, 녹는거같아, 으아으, 하고 고개를 도리질하던 마코토는 제 뒷구멍으로 쑤욱- 밀어 넣어진 손가락 한개에 히끅, 하고 입을 다물었다. 


"유우군, 한 개도 힘든거 같네. 역시, 여기는 처음이겠지? 아니, 지금까지 동정일 수도 있으려나?"


 이즈미는 손가락을 빽빽하게 조여오는 느낌에, 마코토가 이 곳은 처음일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 처음이어야만 했다. 자신이 어떻게 이때까지 참아왔는데, 다른 새끼가 먼저 이 곳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열이 뻗쳐서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이즈미는 길들여지지 않은 마코토의 뒤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저었다. 처음이라 쾌감보다야 고통이 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약 덕분인지 조금이나마 마코토가 느끼고 있는 듯 중간 중간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얌전한 유우군이라니. 조금 신기하네. 언제나 내가 한발짝 다가서면 두발짝 피하던 유우군이었는데 말이야.


 이즈미는 마코토의 뒤가 제 손가락 하나를 아까보다는 조금 능숙히 받아들이자, 이내 손가락 두개를 더 넣었다. 예정이었다면 조금 더 천천히 공을 들여 애무하려했지만, 역시 자신의 인내심이 버텨내질 못할 거 같다. 이미 이즈미의 성기는 거의 직각으로 우뚝 솟아서, 바지의 지퍼가 당장이라도 터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즈미는 땀에 젖은 마코토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넘겨주며, 밑으로는 한없이 마코토를 유린했다. 손가락 세개가 촉촉히 젖는 것이 느껴졌다. 마코토의 신음소리가 점점 고양되었다. 그러다 툭, 하고 건드린 무언가에 흐아아,아,읏,하아아앙, 하고 거센 반응이 흘러나왔다. 여기구나- 싶어서 이즈미는 도착지를 찾은 만족스런 탐험가의 미소를 지은 채로 손가락을 빼냈다. 


"유우군, 처음이라 조금 아플거야. 그렇지만 유우군은 잘 할 수 있지?"


 마코토는 이즈미의 말 뜻이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지 못했으면서, 그저 고개를 한없이 끄덕거렸다. 지금 세나 이즈미는 유우키 마코토의 절대적인 주인이었다.


 세나 이즈미가 제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툭- 튀어나온 성기가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코토는 맛있는 솜사탕을 바라보는 초등학생의 눈빛으로 그것을 갈구했다. 이즈미는 제 성기를 마코토의 입구에 조심스레 가져다 대었다. 입구에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금방이라도 쌀 듯 성기가 후끈거렸다. 역시 자신은 유우키 마코토에 관해서는 한없이 자제력이 부족해진다고 생각하며 이즈미는 조금의 겨를도 주지 않고 그것을 마코토의 끝까지 쑤셔 박아버렸다. 으아악, 하는 마코토의 비명이 거실을 크게 울렸다. 아까의 달콤한 교성과는 다르게, 정말로 아픈 듯 마코토는 온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이즈미가 그렇다고 드디어 손에 넣은 마코토를 놓아줄리가 없었다.


"그만, 너무, 아프, 흣,"

"유우군. 아까 여기가 좋댔나?"


 이즈미는 조금의 배려차원에서 마코토의 전립선을 꾸욱- 제 성기로 찔렀다. 눈을 한껏 크게 꿈뻑이다 마코토는 이내 이즈미의 목에 매달려 아까와 같이 거친 신음을 토해냈다. 거기, 거기 너무 좋아요, 으아, 미칠, 거 같은데, 왜 좋은지, 모르겠는, 흣, 데, 진짜, 거기 , 조금만 위로, 으아, 흐, 거기,거기, 하고 무자비하게 저를 찔러오는 세나 이즈미의 피스톤질에 맞춰 허리를 흔들어댔다. 마코토의 안은 생각보다 좁아서, 이즈미는 간헐적으로 욕을 내뱉으며 쾌감에 의해 미간을 찌푸렸다. 흐으, 시발, 유우군 존나 미칠거같아. 결국 참기힘들어진 이즈미는 마지막 스퍼트로 퍽퍽- 거세게 마코토의 전립선을 위주로 박아댔다. 이미 눈물범벅인채로 마코토는 거의 갈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까뒤집으며 그저 이즈미가 박는대로 몸이 흔들렸다. 하으, 어, 히익,히이잇, 하고 제 본능에 충실한 소리를 입으로 내며 이즈미가 자신의 안의 사정하는 순간, 마코토도 머리에 번뜩 화이트 플래시가 터져서 그대로 대차게 가버리고 말았다. 주우욱- 마코토는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즈미는 눈을 감은 제 사랑스런 마코토의 볼에 한없이 입을 맞췄다. 아, 아, 이제야 왔구나. 유우군, 내가 십년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는 모르겠지? 아아, 나는 언제라도 너를 이렇게 만들고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인내하고 또 인내했는지 몰라. 아아, 사랑스러워.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 역시 이런 귀여운 유우군은 나만 보는 편이 좋아. 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모두 파버려서, 이 세상에 너를 기억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면 좋겠어. 아아, 유우군-. 여기서 나랑 평생 사랑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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